- 19권 19화
469화
백귀야행이 일어났다는 곤륜산에 도착한 서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처참하네……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우연으로 일어난 백귀야행이 아 니라 천 대륙을 침공해온 고대의 존재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 꼬리를 쫓아가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고대의 존재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더 강한 이들과 싸워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족했던 경험을 충족할 수 있었다.
능력이 부족해서, 도움을 주지 못할 때의 감정을 알고 있어서일 까?
서연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 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위지강과의 수련을 통해 감정을 억제할 수 있게 된 이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느낌과 함께 몇 개의 벽을 넘어서 공허의 일부 를 엿보았다.
‘나아가야 할 길은 확실히 알아 냈어.’
놀랍게도 서연은 제자리에 앉아 집중을 하면, 정복왕이 남겨놓은 지식과 힘에 대하여 알 수 있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남겨준 듯한 메 시지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어째서 남겼냐가 아니었다.
서연은 그를 읽고, 또 읽으며 공 부했다.
정복왕이 사용하던 무공들, 그리고 전투 방식까지, 그 모든 것은 서연을 성장시키기 위핸 안배 같았
하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머릿속에 쌓인 지식을 응용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때마침 천 대륙에 고대의 존재와 광기제들이 침공을 해왔다.
‘확실하게 사냥하고 경험을 쌓아 야 해.’
그로부터 시작된 욕심이었다.
서연은 빠르게 요괴들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했다.
허나 머지않아서 주변을 살피던 서연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어렵네.”
통제를 벗어난 요괴들 때문일까, 아니면 백귀야행의 규모가 생각했 던 것 이상으로 거대해서일까?
푸른 나무들은 모두 쓰러졌으며, 대지는 황폐해졌고, 곤륜산 전체에 불이 치솟았던 것인지 곳곳이 꺼멓 게 타 죽어가고 있다.
제멋대로 뒤엉켜있는 발자국들과 기의 흐름에 요괴들의 이동 경로를 완벽하게 잡아낼 수가 없었다.
“따로 조사하고 모이도록 하는 게 좋겠군.”
서연이 고개를 주억이는 순간,
위지강의 신형이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사라진다.
근방의 조사를 맡긴 것이다.
넓디넓은 곤륜산을 혼자 뒤져볼 생각에 막막했는데, 불행 중 다행 히도 먼 거리에서 느껴지는 다량의 기척이 있었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내자, 길게 이어진 피난민 행렬이 눈에 들어온 다.
자연스레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전설 속의 백귀야행이 일어났 다.’
갑작스레 나타난 요황을 중심으로, 천 대륙이 대격변을 맞이하고 있다.
무림맹을 필두로 많은 무인들이 힘을 합쳐 싸우고 있지만 승산은 없어 보인다.
사실상 필요로 하는 정보는 없었다.
‘이렇다 할 수확은 없겠네.’
전부 다, 피난민 행렬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공포에 잠식되어버린 사 람들의 입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확률은 희박했다.
“어쩔 수 없나.”
서연이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퍼 뜨린 감각을 거둬 내려던 순간이었다.
‘요황의 이름이 엄청나게 특이하 더군, 크로투라고……
여태껏 들었던 것들과는 다른, 제법 쓸 만해 보이는 정보가 들려 왔다.
허나 애석하게도 서연은 그 피난 민의 대화에 마음 편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끈적끈적하 면서도 악의 넘치는 시선이 느껴졌
기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도?’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기 에 보이는 욕망이었다.
백귀야행으로 마을과 가족, 재산 까지 모두 잃은 피난민의 행렬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하지만 피난민 내에서도 나름대 로 전력을 담당하는 이들은 있다.
그들은 한때 나름대로 마을에서 이름 좀 날리던 관군 혹은 무인이 었지만 지금처럼 지쳐 있어서야 아 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그리 멀지 않
은 곳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자신 들을 바라보는 서연을 아무 의미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나 몇몇의 누군가는 욕심이 번 들거리는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깨끗한 의복, 몇 날 며칠은 굶은 피난민들과 다르게 윤기가 나는 피 부는 호기심과 욕심을 불러일으키 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해 어떠한 행동이나 언어도 내뱉지 못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운에서 힘의 차이를 느낀 탓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말할 것도 없
고, 이름깨나 날렸다는 무인들조차 접근조차 하기 힘든 그 기묘한 기 운에, 사람들은 더욱더 서연을 신 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나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정작 봐야 할 것은 놓쳐버렸네.’
대륙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백귀 야행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하 지만, 모든 대륙의 요괴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진군 중 누락되어 떨어져 나온 요괴들도 존재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바로 최전방으
로 진격하는 것이 아니다.
주로 이들처럼 누락된 이들을 습 격하고 생기를 홉수하여, 힘을 키 워낸다.
이미 요괴들의 습성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었고, 작금에 와서는 소문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멀지 않은 곳에서 이들을 발견하고 다가오는 요괴 무리가 있었다.
최선두에서 있던 피난민 무리에서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 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괴! 요괴다!”
“맙소사!”
“살려줘!”
요괴라는 존재에 각인되어 있는 공포에 피난민 무리가 비명을 내지 르며 팔방으로 도주하려 할 때였다.
피난민 무리의 선두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회백색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주 먹을 말아 쥔, 서연이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요괴 무리를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터뜨려버린다.
살점의 파편, 그리고 피의 비가 내리는 전장에서 홀로 검은 머리카 락을 가볍게 흩날리는 서연은 곧장
고개를 돌리어 뒤를 돌아보았다.
“다, 당신은?”
요괴 무리에 기겁하며 도주하려 던 이들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 던 서연올 알아보고는 놀란 눈이 되어 물었다.
스스로들이 보였던 무례를 알고 있는지 동공이 거세게 흔들리며, 두려움을 보이고 있었지만 다행히 도 서연은 이들에게 죄를 묻기 위 해 온 것이 아니었다.
“거기.”
서연의 손가락이 요황, 크로투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피난민을 향한
다.
“방금 전 하던 대화를 마저 듣고 싶은데.”
거부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
강자존의 법칙을 따르는 천 대륙 에서 힘을 가진 강자의 말은 절대 적이다.
“별, 별거 없습니다, 들었던 이야 기들은……
피난민의 입에서 흘러나온 크로 투에 대한 정보를 들은 서연의 입 가에 홉족스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요황, 크로투는 말했다.
위대한 존재만이, 이 세상을 바 꿔 놓을 수 있다.
대다수의 이들은 그 말을 듣는 것을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만 했다.
하지만 천운으로 인하여 살아남 은 이도 아주 적게나마 있었다.
위대한 존재,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 한 법이다.
소문은 발 없는 말이 무엇보다 빠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불과 하 루도 되기 전에 천 대륙 전체를 강 타했다.
실권을 잡고 있는 권력자, 정치 가들은 설령 위대한 존재가 실존하 지 않더라도 이 소문이 세상 끝까 지 번져나가길 바랐고, 도왔기 때 문이었다.
요괴 군단은 강력하다.
작은 희망조차 없다면 인간들은 전의를 잃고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
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존재라……
무림맹주, 천 대륙에서 그리 불 리는 백발 머리의 노인, 금양백은 지평선의 끝에서 광기에 물들어 달 려오고 있는 요괴 군단을 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정말 존재한다면 이 땅을 구원 해줬으면 좋겠군.”
구파일방 중 두 곳이 역사의 뒤 안길로 사라졌다.
그 시간을 발판 삼아, 정파와 사 파를 가리지 않고 대륙의 무인들이 연합하여 요괴 대항군을 만들었고
그 군의 지휘관으로 금양백을 지목 했다.
여태껏 무림맹이라는 단체를 이 끌고, 청렴결백하면서도 가장 강력 했던 존재인 그야말로 모든 무인들을 지휘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 표 면적인 이유였다.
금양백의 기준에서 보자면 헛소 리였다.
‘욕심만 많은 늙은것들의 기득권 을 유지하기 위해서겠지.’
애초에 이 상황에 와서도 각 문 파들의 장문인과 원로들은 다른 세 력에 힘이 편중되는 것을 원치 않
혹여나 다른 문파에 힘이 실리 면, 이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자 신들의 입지가 위험해진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본인 들의 머리가 그대로 목 위에 달려 있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하나 금양백은 이런 속마음을 뒤 로한 채 지휘권을 잡았다.
서로간의 권력다툼으로 아웅다웅 하는 집단을 만들기보다는, 확실하
게 통제하여 제대로 된 전쟁을 하 는 편이 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금양백은 이미 물욕, 권력욕 등에 대해서 해탈한 인간이 었고, 또한 전쟁의 경험도 많았다.
‘나도 100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 끌어본 건 처음이다만……
요괴 무리 역시 어느덧 50만을 바라본다는 소식이 있었다.
하니 금양백은 머지않은 미래가 곧 승부처라고 확신했다.
‘아직 각 문파에서 보낸 지원군 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금양백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최대한 불어나고 있는 요괴의 숫 자를 줄여본다.
그조차도 버겁다면, 최대한 시간 을 끌어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을 것이다.
요황은 강하다
무림맹주, 금양백 본인도 압도적 인 강자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하여 정면으로 붙어 그와 제대로 된 합을 나눌 것이라 생각하지 못 했다.
‘요황이 전투에 참여하기 전에,
전장을 이탈한다.’
본래는 무엇보다 든든했어야 할 높디높은 성벽은 요황 앞에서는 아 무런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절대적으로 전략과 전술 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첫째가 바로 대살상 술법이었다.
무림맹주와 그의 친위대가 만든 결계는 천마가 재림하며 대륙 제패 를 선언할 때를 대비한 최후의 방 비책이었다.
무수히 많은 연구와 연습을 통해 그 성과를 입증한 이 술법은 발동
시기를 완벽히 조율할 수 있으며 적의 발밑에 숨겨 놓아 대규모 살 상을 초래할 수 있다.
몰려오는 요괴 군단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다.”
침을 꿀꺽 삼킨 금양백이 말한 순간, 망설임 없이 진격해오던 요 괴 군단의 발밑에서 커다란 화염의 폭풍이 일어났다.
지면이 흔들리고 삽시간에 성벽 이 큰 울림을 토하며 무너질 것처 럼 흔들린다.
가히 몇 만에 가까운 요괴들올
일거에 학살했을 것이라 생각했지 만 곧 금양백의 얼굴에 어두운 그 늘이 진다.
“요황님을 위하여!”
“인간들을 죽여라!”
성벽을 향해 달려들던 요괴들은 여전히 그 기세가 줄지 않았다.
심지어 최전방에 선 강력한 요괴 들 탓에 피해도 생각보다 적었다.
이런 술법 따위로는, 전설 속 요 괴들을 해할 수가 없다.
그들 하나하나가 금양백, 본인 수준의 강자란 것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 설치해놓은 술법들이 많이 남았다.
하나 금양백은 더 이상 이번 전 투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후퇴한다.”
술법들이 발목을 붙잡아 주는 사 이, 달아나는 것이 지금 금양백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번 전투를 과감히 포기하고 홋날의 승리를 그린다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기적이라도 일 어나지 않는 이상 승산이 없는 싸 움이 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