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권 16화
466화
난생 처음 보는 괴수부터 시작하여 악마, 천사 혹은 거인부터 용을 닮은 종류까지.
서준은 그들이 뛰어드는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콰드드드득-!
무수히 많은 병장기들과 날카로 운 이빨과 발톱까지 서준의 몸을 찢어발길 기세로 달려온다.
“광기에 물든 소환수들의 공격은
우주에서도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유명하지.”
허공에 사로잡힌 카릴의 손은 어 느덧 마치 흡사 거대한 용의 발톱 과 닮은 형상을 취해가고 있었다.
단단한 비늘로 뒤덮여진 팔목 그리고 날카롭게 솟아나기 시작하는 발톱.
“넌 나한테 시간을 주면 안 됐 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카릴의 양 팔은 어느덧 붉은 용의 팔이 되어 있었다.
광기로 빚어진 용의 발톱과 용의
비늘, 종의 정점이라 칭송받는 힘 에 대한 자신감이 카릴의 가슴 한 편에서 크게 박동했다.
“처참하게 눌려 죽어라. 혼돈의 황제여.”
“결국 광기의 힘을 형상화시킨 것뿐이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 이하네.”
서준의 비웃음에 카릴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괜한 허세로 나를 흔들려는 모 습이 안쓰럽네.”
비릿한 미소를 그리는 카릴의 손 에서 소환수들을 강화시키기 위한
광기가 퍼져 나올 때였다.
번쩍-!
회색빛이 마치 태양처럼 사방으로 폭발했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빛이 피부에 닿기도 전이었다.
회색빛의 신형이 눈앞에 다가왔 다.
직후, 아찔한 고통이 손바닥에서 부터 치밀어 오른다.
“나름 공들여서준비하고 있어서 한껏 기대했는데, 너무 약하잖아.”
이제야 귓가에 폭음이 터져 나온
다.
콰직-!
무엇도 뚫을 수 없던 방패라고 생각했던 광기의 형상이 단숨에 붕 괴한다.
“바로 죽이지는 않을 거야, 아직 묻고 싶은 것들이 많거든.”
“끄아아아-!”
카릴이 가지고 있는 광기의 힘을 폭발시키듯 쏟아내었지만, 무리였 다.
“이런 단순한 공격이 나한테 닿 을 리가 없잖아, 애송아.”
쩌저적-!
단 한 번의 주먹질, 그것만으로 세상에 균열이 가는 소리와 함께, 높이 튀어 오른 카릴의 시야가 뒤 집어진다.
붉게 물들었던 세상은 어느덧 본 래 푸른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패배했다.
이를 인지하는 순간, 카릴의 눈 은 새하얗게 뒤집혀지며 의식을 잃 어간다.
‘안…… 돼……!’
쿵-!
밀려오는 고통과 함께 억지로 부 여잡으려 한 의식의 끈이 끊어진다.
이윽고 침묵이 찾아왔다.
광기제, 카릴을 가볍게 때려잡은 서준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그의 기운을 가볍게 치료해주었다.
“o O..”
옅은 신음을 흘리는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 서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죽지는 마라, 아직 물어봐야 할 게 많으니까.”
아마 의식을 찾게 된다면, 방금 전 전투에서 죽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애초에서준은 적으로 분류한 대 상에게 지독할 정도로 악랄했다.
이런 서준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카릴의 미래는 볼 것도 없 이 암울할 터였다.
“그나저나 언제쯤 깨어나는 거
야, 생각했던 것보다 더 허약한데.”
어느덧, 반나절.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만큼 서준은 카릴이 곧 의식을 차릴 수 있 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헌데 카릴의 의식은 좀처럼 돌아 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간을 너무 허무하게 소비하고 있었다.
지금 천대륙의 상황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까운 시간이었다.
‘곤란한데.’
서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쿠구궁-!
세계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 한 잿빛 기운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미 직접 보고, 싸워본 만큼 서준은 저 힘의 정체를 쉽사리 유추 할 수 있었다.
‘ 망각.’
그것도 최소, 황제급이다.
새로운 적의 출현을 염두에 둔 서준이 가벼이 몸을 풀고 있을 때 였다.
“상황이 좋지 않아서 어쩌면 죽 었을 수도 있다 생각했거늘, 다행 히도 건강히 살아있군.”
태양을 등진, 잿빛 신형을 바라 보고 있는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 다.
“ 너는……
망각제, 쿠루후.
다행히도 적은 아니다.
스승, 위지강과의 인연을 만들어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오히 려 아군이라 볼 수 있었다.
허나 천대륙에서 마주할 것이라
고는 생각지 못했다.
“얼핏 봐서는 날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서준의 눈동자에는 경계심이 가 득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계 약을 맺어 한배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쿠루후 또한 망각제다.
고대의 존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명령을 듣고 날 죽이러 온 거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
혹시나 모를 상황에 잔뜩 날이 서있는 서준이었지만 다행히도 최
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계약을 지켜라, 인간, 심연의 지 배자, 수마나스를 죽여 다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엄청나게 딱딱한 목소리였지만 그 어떠한 말보다도 달콤하게 들렸 다.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는데 수마나스는 어차피 제거해야 할 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쿠루후, 망각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직접 적으로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하네.”
상관없었다.
대신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 정 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수마나스에 대해서 가르쳐 줘.”
이미 계약으로 엮여 있는 만큼 쿠루후는 이 조건을 거부할 수 없 었다.
“심연의 지배자, 어둠과 공포를 다루는 고대의 존재다.”
이미 몇 번씩이나 들었던 이야 기, 형식적인 쿠루후의 대답에서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것들을 물어보는 게 아니
란 걸 알고 있잖아.”
“강하다, 지금의 너보다, 이곳에 심연이 없다 할지라도 감당해낼 수 없을 거다.”
꽤나 단호한 어조였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이길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어……
앞서 위지율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서준 본인도 황금안을 다루기 시 작한 이후,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 해서 확실한 판단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수련을 하고 있긴 하지 만……:
아쉽게도 이렇다 할 수련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광기제도 너무나도 쉽게 압도해 버렸다.
그 탓에서준이 황금안을 수련할 방법이 없었다.
허나 실망할 것은 없었다.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서준이 쿠 루후를 향해 물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아무 대책 없이 쿠루후가 찾아왔
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예상했던 대로 쿠루후 가 곧장 입을 열었다.
“우선 가장 확실한 거는 황금안 을 확실하게 다루는 거겠지.”
“알고 있었나 보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황금안은 엄청난 특권이지, 전 우주를 통틀어서 수호룡의 숫자는 아주 지극히 극소수다, 동태를 파 악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애초에 수호룡과 그를 다루는 황 금안의 능력이 뛰어난 만큼, 무수 히 많은 이들이 경계하거나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나도 전설로만 들어서 황금안을 정말로 넘겨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부정할 수는 없지.”
서준의 눈동자를 응시한 채로 피 식- 미소를 홀린 쿠루후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과거의 전 설 따위가 아니지, 그 눈이 부족한 네가 고대의 존재인 수마나스를 넘 어설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라는 걸 세.”
쿠루후의 이야기에서준은 고개
를 주억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황금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마나스를 쓰러뜨릴 수 있는 수 단 중 한 가지라는 것이다.
‘위지율 님의 말대로 상당히 강 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거지.’
무극의 영역에서, 모든 것을 통 찰해낸다.
두 가지를 떠올린 것만으로 서준 의 머릿속에 패배란 글자는 사라졌 다.
고대의 존재, 아니 그들이 신이 라고 떠받들고 있는 존재들 앞에서
도 당당히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드넓은 우주에서도 거스를 자가 없는 진정으로 지고(至高)한 존재 들에 닿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정말로 같은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면……
입맛을 다시는 서준의 마음속에 탐욕이 크게 들끓었다.
황금안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싶다.
“혹시 수련을 도와주려는 거야?”
앞서 사냥한 광기제, 카릴과는 다르다.
겉만 보아서는 엇비슷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 단련된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쿠루후는 숨기고 있는 한 수가 있어.’
그것도 아주 강렬한 한 방이다.
생각해보면 숨겨놓은 무언가가 없다면 애초에 고대의 존재들에게 반기를 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이다.
“흐음……. 나쁘지 않은 방법이 지만, 가능하다면 내가 이곳에 왔 었다는 걸 알리고 싶지는 않거든.”
쿠루후의 의중을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었다.
‘힘을 숨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텐데 굳이 배신자로 낙인찍 힐 수 있는 증거를 남겨서 좋을 거 는 없지.’
서준은 고개를 갸우뚱- 젖히며 물었다.
“그러면?”
황금안은 방법 중 한 가지라 했 다.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쿠루후의 입가에는 여 유로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거래를 하나 추가적으로 제안하 지.”
갑작스러운 제안에서준의 눈매 가 가늘어진다.
“무슨 거래?”
“망각의 시련을 받을 수 있는 곳 으로 안내해주도록 하지.”
자연스레 서준의 동공이 휘둥그 레진다.
“한 번에 두 개의 황제가 될 수 있는 거였어?”
“제약에 묶인 우리는 불가능하 다, 하지만 너라면 불가능할 이유
가 없지.”
“진작 가르쳐줬으면 좋았을 텐 데.”
“어렵사리 찾아낸 계약자를 죽이 고 싶지 않았을 뿐일세.”
냉담한 쿠루후의 반응에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무슨 뜻이야?”
“하나가 아닌 둘일세, 감당할 수 있었겠나? 내가 보기에는 과거의 자네가 망각의 시련을 받았으면 죽 거나 미치게 됐을 거야.”
부정할 수 없었다.
고대의 힘의 근간은 마음속 부정 적 감정이다.
내면의 욕망은 더욱더 진하고 강 해지게 될 거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가능하다는 거 네?”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표현이 옳 겠군.”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오히려 백 프로라 했으면 쿠후루 를 믿지 못해서 거래를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냉
정한 평가가 지금 쿠루후가 건네는 거래에 신뢰를 더해주고 있었다.
“내가 내주어야 할 건?”
서준의 질문에 쿠루후는 검지를 길게 내뻗으며 입을 열었다.
“광기제, 카릴.”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어차피 수마나스의 정보를 묻기 위해 살려둔 것이었다.
그런데 쿠루후와의 대화를 통해 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죽였을 때 획득할 수 있는 경험 치가 다소 아깝긴 했지만 망각의
시련을 받는 게 더욱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이었다.
서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쿠 루후의 입가에도 웃음이 흐른다.
표정만으로도 돌아올 대답을 유 추할 수 있는 탓이다.
“거래, 받아들일게.”
“지금 바로 가겠나?”
“미룰 이유가 없잖아.”
확실히, 작금의 서준은 샘솟는 욕망을 확실하게 제어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승, 위지강 일행이 카
릴과 같은 존재에게 쉽게 당할 것 같지도 않았다.
“좋아, 그러면 곧장 길을 열어 주도록 하지.”
쿠루후가 허공을 베어내며 허공 에 길을 열어낸다.
찢겨진 공간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운에서준 안에 잠재된 망각의 힘이 박동하는 것도 느껴졌다.
‘망각의 시련.’
혼돈의 시련을 겪어봤기에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서준은 눈을 감고 짧은 심호흡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균열을 넘어가면 곧장 도착할 수 있을 걸세.”
“나중에 다시 보자.”
균열 너머, 마지막 인사를 남긴 서준은 망각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