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권 11화
461 화
“참나, 너희 같으면 믿을 수 있 겠어?”
솔직히 말하자면, 어차피 패배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 자리에 모인 광기제들은 최정 예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전력, 마 음먹고 싸운다면 수마나스의 편린 정도는 가볍게 찢어발기는 것은 그 리 어렵지 않았다.
만약 고대의 존재들과의 계약이
없었다면 고대의 존재라 칭송받았 을지도 모를 만한 강자였다.
허나 쉽사리 움직이기 힘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넷의 광기제는 고대의 존재들과 함께 오랜 세월 함께 전장을 헤쳐 왔다.
즉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어느 정 도 예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들여서 사냥에 성공하고 나면 뒤통수를 쳐서 날름 처먹을 생각이 잖아?”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는 하나
동료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충성 경쟁을 하고 있는 경쟁자라 할 수 있었다.
광기제들은 자신들을 억류하고 있는 제약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 서라도 고대의 존재들에게 자신의 충성심과 공적을 보여주기 위해 안 달이 나 있기 때문이었다.
힘을 합쳐 위지강과 정복왕의 사 도를 사냥해낸 후에는 분명, 공적 을 차지하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가 펼쳐질 것이다.
“그래도 적이 적인 만큼 이번에 는 괜한 욕심 부리지 말고 깔끔하
게 나누도록 하지.”
크로투의 말에 카릴이 코웃음을 친다.
“지나가던 개를 믿고 말지.”
“잘 생각해 봐, 위지강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정복왕의 사도가 합세 를 하고 있는 상황이야, 어찌저찌 전투에서 이긴다 할지라도 이곳에 당도하기 전까지 그 사냥감들을 지 킬 수 있을 것 같아? 공적을 탐내 려다가 기껏 사냥한 사냥감을 빼앗 길 수도 있을 텐데?”
크로투의 설득에 카릴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너무 위험성이 많았다.
한데 그렇다고 눈앞의 능구렁이 를 믿고 등을 맡긴다?
도리어 등에 칼이 꽂히는 것으로 공적을 모두 빼앗기고, 서열에서 밀려나 지금 눈앞에 있는 크로투를 상관으로 모셔야 할 수도 있었다.
죽음보다 끔찍한, 더 최악의 결 과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야, 난 빠지겠어.”
“캬주,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카릴과 같은 의견이야.”
“결국 이렇게 되는군, 선택은 자 유였지만 만약 추후 내 사냥에 끼 어들거나 공적만 챙겨가려는 놈은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크로투는 서슬 퍼런 경고를 남기 며 자리를 떠났다.
이후 카릴은 시선을 돌리어 말했 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야?”
“통로를 지킨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침입자들을 방지한다.”
“키투샤는 결국 나서지 않겠다는 거네.”
“해야 할일을 할 뿐이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혼 자서 움직여야지 뭐.”
키투샤에게 손으로 인사를 건넨 카릴이 모습을 감춘다.
“나도 가보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캬주마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 다.
남은 이는 이제 한 명뿐.
홀로 천제궁에 남게 되었지만 키 투샤는 곧은 시선으로 자리를 지켰 다.
지하의 동공.
이제는 빼앗겨 버렸지만, 한때나 마 위지강의 영토라 볼 수 있는 그 곳에서 수련에 전념하던 서준은 위 지율을 자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황금안이라는 게 생각했던 것보 다 불편하네요.”
만능이라 생각했던 눈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해보니 생각했던 만큼 편리한 능력은 아니 었다.
‘내가 볼 수 있는 만큼 보는 눈 이라니.’
많은 지식과 경험이 없다면 제대 로 사용하기 힘든 능력이었다.
태초의 수초룡들의 특권이라고 불리는 눈.
허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랜 세월을 살아온 태초의 수초룡들만 이 다룰 수 있는 눈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잊혀버린 힘과, 능력들은
직접 그 세월을 살아온 수호룡의 지식이 아니었다면 채울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애초에 이 우주에서 쉬이 얻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니 까.”
위지율의 말에서준은 고개를 주 억일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겠 지, 이례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성 장한 만큼 아는 게 적을 수밖에 없 지.”
“……부정할 수 없네요.”
확실히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
뤄낸 만큼 많은 정보나 지식을 모 을 시간은 없었다.
애초부터 시간이라는 것은 한정 적이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너는 너무 걱정할 거 없 어, 황금안과 함께 내가 가지고 있 던 지식들까지 모두 정리해서 넘겨 주었으니까.”
가볍게 미소를 지은 위지율이 서준의 머리 위로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황금안에 적응을 해가면 할수록 천천히 기억을 되찾아가듯이 많은
지식들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황금안이 어려운 사용 조건을 가 지고 있는 만큼 위지율은 단순히 황금안만을 서준에게 넘겨준 게 아 니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들을 마법 진으로 압축하여 함께 넘 겨주었다.
물론, 과부화로 인해 폭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서준이 받아 들일 수 있는 한계치에 한해서 기 억을 개방, 공유해주는 안전장치까 지 달아 둔 상태였다.
“대신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황
금안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는 황금 안을 지속해서 사용할 만한 집중력 과 통찰력이 필요해.”
많은 것을 통찰할 수 있다는 말 은 달리 말하자면, 많은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주신이라 칭송받는 존재들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정보 들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들어온다.
그리고 한계치를 넘어서면 뇌에 과부하가 올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보와 필요 없는 정보는 너 스스로가 분류할
수 있어야 황금안을 오랜 시간 사 용할 수 있을 거야.”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오네 요.”
“미안하네…… 억지로 떠맡긴 것 같아서.”
위지율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 는 모습에서준이 입가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내젓는다.
거절하려면 할 수 있었을 것이 다.
허나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생각 했기에 받아들였다.
“아니에요, 제가 선택한 길인걸
요.”
“궁금한 거나 곤란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내가 가진 지식 들을 동원해서 최선의 답을 찾아볼 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 지금 상태로 싸우러 가는 건 무리겠죠?”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위지율이 눈을 감더니, 고개를 내젓는다.
“지금으로는 안 돼, 위지강이랑 합류해서 2:2로 싸운다 해도 위험 해.”
“스승님과 함께 싸워도요?”
“이미 천 대륙은 놈들의 손에 떨 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놈 들이 거점으로 삼은 주요 요충지는 수마나스의 땅인 심연과 연결된 상 태야, 무슨 뜻인지 이해돼?”
서준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천 대륙은 빼앗겼고, 그곳에 놈 들의 영토인 심연이 대신 자리 잡 고 있었다.
어둠을 다루는 주샤콘과 수마나 스의 입장에서 최고의 무대라는 것 이다.
“특히나 수마나스는 밤의 군주, 지옥의 지배자, 어둠을 걷는 공포
라는 이명을 가진 고대의 존재야, 어둠 안에서 놈의 힘은 절대적이라 는 거지.”
“늦으면 늦을수록 힘들어지겠네 요……
“그래도 천 대륙에는 위지강이 뿌리 내려놓은 신앙과 힘들이 제법 많이 있으니 쉽사리 대륙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할 거야, 네가 황금 안에 적응할 만한 시간은 충분히 벌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너무 걱 정하지는 마.”
긍정적인 말을 들었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최 악의 경우 천 대륙 전체가 심연에 잠식될 수 있었다.
천 대륙을 되찾지 못하게 될 수 도 있다는 말이었다.
“혹시 황금안을 어느 정도로 다 뤄야 어둠 속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확실한 목표가 필요했다.
어디까지 성장을 해야 목표 지점 에 도달하는 것인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서준의 물음 에 위지율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그건 나도 몰라, 어둠 속에서 주샤콘과 수마나스를 상대했던 이 는 여태껏 없거든.”
“……난감하네요.”
아쉬움에 입맛을 쩝, 하고 다신 서준이 위지율에게 고개를 숙인 후, 수련을 위해 자리를 벗어났다.
어찌 됐든 본래의 궁금증이라 할 수 있었던 황금안의 적응 방법, 그리고 상대해야 할 적들에 대한 정 보는 얻었다.
‘주샤콘과 수마나스.’
서연이 고된 수련을 끝마쳐 성장 을 해올 것이고, 위지강이라는 든
든한 안배가 있지만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고대의 존재들은 파멸이 라 칭송받을 정도의 힘을 가진 강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빠르게 황금안에 적응해내야
해.’
최우선의 목표는 최대한 오래 황 금안을 유지하는 것과, 스스로 정 보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것.
이 두 개만 이루어진다면 부족한 지식은 위지율의 마법들로 인해 알 아서 메꿔질 것이다.
그렇기에서준은 곧장 두 눈에
안력을 돋아 황금안을 개방해냈다.
광기제 캬주.
고대의 존재에게서 내려진 명령 을 곧장 이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어차피 눈치 싸움으로는 이길 수 없다.’
영악한 크로투와 카릴과 달리 우
직하게 기사와 같은 길을 걸어온 캬주의 입장에서 계산적인 싸움은 적성에 맞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무슨 꿍꿍이를 부릴지 예상조차 가지 않 는다.
“정면 돌파 한다.”
2M가 넘는 장신에, 절규하는 인 간의 형상을 새겨 놓은 검은 갑주 를 걸친 캬주가 고개를 주억이며 앞으로의 방향을 정해낸다.
사실 승산이 그리 높다고는 볼 수 없었다.
위지강과 정복왕의 사도, 둘을
감당하기에는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캬주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붉은빛 박쥐 날개를 활짝 펼친 캬주는 어느덧 허공으로 떠오르며 비행 준비를 끝마친다.
‘위지강의 성정을 이용한다면 돌 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직하다.
특히나 무(武)를 중시하는 대결 에서는 확고할 정도의 정의를 가지 고 있었다.
홀로 찾아가 정정당당히 대결을
신청한다면 정복왕의 사도라는 변 수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지강 하나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변수는 차고 넘쳤다.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서 수마 나스 님의 정신체를 가볍게 제압해 낸 존재였다.
허나 패배를 생각할 필요는 없 다.
실제로도 허공으로 다 날아오른 캬주의 딱딱한 표정에는 변함이 없 다.
“심연이 드리워가고 있다.”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심연의 힘
을 이용해온다면 어떠한 적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실제로도 과거, 캬주는 심연을 침입해온 침입자들을 수없이 무찔 러 왔다.
그리고 개중에는 수호자라 칭송 받는 존재를 쓰러뜨린 경험도 있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속된 말로 선택을 받은 존재, 수 호자는 드넓은 우주에서도 이름을 떨치는 강자였다.
고대의 존재 또는 드높은 고대의 신이 아니라면 그를 홀로 무릎 꿇
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 수호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심연을 침공해오며 수마나스에게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결국 수호자는 심연의 지 배자인 수마나스를 마주하지 못했 다.
그를 따르는 광기제들이 수호자 의 앞길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