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권 5화
455화
남궁도위, 남궁세가의 아픈 손가 락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결국 한 가문의 자식이어서일까?
천 대륙 내에서도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는 무인을 호위 무사로 붙여두었다.
“감히-!”
상황을 뒤늦게나마 인지한, 남궁 도위의 옆을 지키고 있던 호위 무 사가 다급히 허리춤에 손을 얹는
순간이었다.
“뽑으면 죽는다.”
서준의 서슬 퍼런 경고에 호위 무사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세가 아니다.
고작 살기를 담은 말 한마디였지 만, 눈앞의 사내와 자신들의 벽이 보였다.
비교하는 것조차 실례가 될 정도 의 아득한 격차다.
“고인을 알아보지 못하여 죄송합 니다, 저는 부족한 후학인 천살검 귀라 불리는 엽초풍이라 합니다.”
중후한 목소리, 누가 보아도 엽 초풍이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허나 압도적인 차이에 엽초풍은 서준을 반로환동한 고인으로 평가 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감이 좋네.”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 기세를 풀었지만 엽초풍은 단박에 그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허나 애석하게도 엽초풍이 지켜 야 하는 호위 대상인 남궁도위는 그런 격차조차 느끼지 못했다.
“뭣, 뭣들 하는 거야! 인사 따위
를 할 때가 아니잖아! 빨리 이놈을 죽여 버려!”
말 그대로, 하룻강아지가 범 무 서운지 모르고 날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궁도위를 내팽 개치고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가능하시다면 남궁도위 님께서 고인께 보인 무례를 제가 대신 대 가를 치르고 싶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서준의 질문에 엽초풍은 곧장 허 리춤에 손을 얹으며 칼을 뽑아든다.
목표는 자신의 팔.
서걱-!
엽초풍은 피가 폭포처럼 흘러나 오는 상처를 지혈도 하지 않고서 서준에게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왼팔 하나로 부족하다면 오른팔 까지 내어드리겠습니다.”
양쪽 팔이 없는 무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즉, 엽초풍은 무인의 길 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다.
“남궁도위 님은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분이라 어린아이의 철없는 만행이라 생각하고 부디 자 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가늘어진 서준의 눈이 엽초풍을 홅는다.
처음에는 남궁도위의 행동들 때 문에 불쾌했었다.
허나 엽초풍의 모습에 마음이 어 느 정도 풀렸고, 동시에 호기심도 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지리한테 이렇게까지 하 는 이유를 듣고 싶은데.”
“……고향에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내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엽초풍은 부인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남궁도위를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남궁도위.”
고개를 주억인 서준의 시선이 남 궁도위에게로 향한다.
동시에 억눌러두고 숨겨두었던 기세를 모두 풀어낸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세를 정면에서 받게 된 남궁도위 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지에 실금을 지릴 정도로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그런 남궁도위를 향해 서준은 차 가운 말을 흘린다.
“호위 무사의 충성이 너를 살린 것이다, 평생 기억하고 은혜를 갚 아라.”
“알, 알겠습니다!”
“내뱉은 말을 지키는 게 좋을 거 야, 그렇지 않으면 나를 다시 보게 될 테니.”
서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궁 도위가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의식 의 끈이 끊어졌다.
“넓은 아량을 보여주셔서 감사합 니다.”
“잘린 팔이나 내놔.”
엽초풍은 대답 대신 곧장 잘린 팔을 들어올렸다.
물론, 서준은 전리품이나 증표로 서 취하기 위해서 팔을 달라 한 것 이 아니었다.
서준은 회복술에 무결의 힘을 더 하여 잘린 팔을 본래의 형태로 붙 여주었다.
“이, 이게 무슨……
무게의 균형, 오랜 세월 익혀온
감각들까지.
한쪽 팔이 없어진 엽초풍은 더 이상 천살검귀라 칭송받던 시절의 실력을 보이기 힘들었다.
아예 검사의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엽초풍 자신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헌데 삽시간에 팔이 붙어 버렸 다.
직접 겪고도 믿을 수 없는 현실 에 엽초풍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로 서준을 바라본다.
“너의 용기가 만든 기적이라 생
각해라.”
마지막 말을 내뱉은 서준은 아공 간에 보관해놓은 금화 주머니를 엽 초풍에게 던지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객점을 빠져나온 서준의 다음 목적지는 근방에 있다는 수도 가 아니었다.
한 가지 걸리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미쳐서 목 베고 다닌 다는 이야기.’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서 처음 들었을 때는 믿기 힘들어 개 의치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믿기 힘들었다.
헌데 역설적으로 너무 믿을 수 없었기에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 했다.
‘고대의 존재들이 개입되었다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돼.’
고개를 주억인 서준은 곧장 기운 을 퍼뜨려 근방의 마을을 찾아냈다.
머지않아서 사람이 제법 많은 곳 을 찾아내었고, 이동 또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평화로운 마을 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을에 도착하는 동시에 커다란 폭음과 함께 사람들의 다급한 모습 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일단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
평소와 같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 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있던 마 을에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어났다.
콰광-!
커다란 폭음과 함께 바깥의 소란 이 커졌다.
“ 뭐야!?”
놀란 마을 사람들과 객점에서 술 을 마시던 이들이 모두 벌떡 일어 나며 각자의 병장기를 챙겨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갑자기 이게 무슨……
그런 그들이 마주한 것은 마을에 세워진 높은 담장의 일부가 무너져 가는 모습과, 하늘을 가릴 정도의 거대한 날개를 가진 요괴, 괴조였 다.
크아아오-!
5M가 넘는 거대한 크기, 부리에 마을의 망루가 두부처럼 으깨져 버 린다.
‘저건……
서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과거, 중원 대륙에서 마주해본 적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나찰조라 불리는 괴력난신이다.
헌데 본래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냥 습성을 가진 나찰조 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부수고 사
냥할 뿐이다.
그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 다.
두 눈동자에 가득 차오른 고대의 힘, 광기의 흔적이 보인다.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괴조, 심지어 광기의 힘을 품고 있었다.
척 보아도 위지강의 성역을 부쉈 을 것이라 추정되는 고대의 존재들 과 연관점이 있어 보였다.
“나찰조!?”
“괴, 괴물이다!”
마을에서는 큰 소란이 일었다.
그리고 그중 대다수가 꽁지가 빠 져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튀어!”
일반적으로 괴력난신으로 분류된 괴물들은 조화경에 도달한 무인들 이나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찰조는 영악하기로 소문이 난 만큼 현경에 오른 고수 가 단박에 제압하는 것이 아닌 이 상 쉽사리 사냥할 수 없는 존재였 다.
허나 이런 시골 마을에 머무는 무인들은 일반적으로 삼류 무인들
뿐이었다.
마을 내에서 꽤나 대우받는 가문 의 무인들이라고 해도 결국 일류 무인밖에 되지 않았다.
나찰조를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쿵-!
그사。], 나찰조가 발톱을 휘두르 자 돌로 쌓아 올린 담벼락이 훤한 대문처럼 크게 벌어졌다.
도망칠 시간이 촉박했다.
“빨리 도망쳐!”
대다수의 사람들이 황급히 마을
을 버리고 도망가고 있었다.
허나 쉽사리 자리를 벗어나지 못 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혹은 임산부 들은 걸음이 상대적으로 느릴 수밖 에 없었다.
허나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안, 안 돼……
이렇게 허무하게 가족들을 잃을 수는 없다.
노약자 혹은 임산부들의 가족들 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하여 집안에 구비된 각자의 병장기들을
집어 들었다.
“내가 지킬 거야.”
나름의 각오를 하고 무기를 들어 올렸지만 나찰조의 단단한 피부에 상처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 담할 수 없었다.
휘두르기도 전에 죽을 확률이 높 았다.
허나 도망칠 수는 없었다.
소중히 생각하는 무언가를 지키 겠다는 일념으로 나찰조를 노려보 고 있었다.
“내 가족은…… 내가 지켜.”
아랫입술을 꼭 깨문 사람들의 눈 에 죽음을 각오한 투지가 솟아오른 다.
“……도저히 그냥 외면하고 있을 수가 없네요.”
그 순간, 광기의 힘의 주체를 추 적하려던 서준이 입맛을 다시며 그 녀의 옆에 선다.
“ 누구……
놀란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 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게 아 니잖아요.”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청년.
아마도 제법 높은 경지에 오른 무인일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결국 사람들은 고개를 내 저었다.
“도망칠 수 있다면 빨리 자리를 벗어나세요, 어차피 저희 힘으로는 사냥할 수 없어요.”
차가운 말.
하나 서준에게 있어서는 그리 무 거운 언어는 아니었다.
“제가 선인(善人)은 되지 못하지
만 악인(惡人)은 못 되거든요.”
피식 웃은 서준이 발걸음을 뗐 다.
파앙-!
그리고 뒤를 이어 커다란 파공음 이 들려오며, 거대한 나찰조의 머 리가 단숨에 터져나갔다.
“……어!?”
놀란 마을 사람들이 신음을 흘렸 다.
“맙소사!”
그것을 시작으로, 모두가 기겁한 표정이 되어 경악을 내질렀다.
공포, 혹은 두려움은 아니었다.
구원받은 자의 기쁨, 그리고 희 망.
쾅-!
쓰러지는 나찰조의 시체마저 가 볍게 날려버린 서준이 짧게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누구보다 그의 얼굴을 먼저 기억했다.
천 대륙의 상식에 있어 트윈 헤 드 괴력난신을 일격에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는, 무인 중에서도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존재, 그중에서도 반신에 오른 이들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사경의…… 고수?”
자연스럽게 의문이 터져 나왔다.
하나 서준은 그에 대한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모습을 감추었다.
보답을 받기 위해 한 일도 아니
었고,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도 있 기에서준은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결국 놓쳤네.”
다급하게 뒤를 쫓긴 했지만 광기 에 물든 나찰조를 멀리서 조종하고 있던 술사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본래라면 술사를 추적하기 위해 서 나찰조를 관찰만 하려 했지만 사람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 버렸다.
아쉽긴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천 대륙이 점점 이상해져 가고 있어.’
한번 광기의 힘을 인지했기 때문
불과 몇 시간 전, 처음 천 대륙 에 도착했을 당시에만 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이제 대륙 곳 곳에서 광기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심지어 세계의 자연기에 녹아들 어 있는 광기의 힘이 기운을 퍼뜨 리는 것을 방해까지 하고 있었다.
‘덕분에 굳이 스승님을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겠네.’
광기의 힘이 자연스럽게 자연기 에 녹아들었을 정도라면 고대의 존재들이 어떤 형태로든 움직임을 보
이고 있을 것이다.
‘고대의 존재들을 사냥해서 스승 님의 행방을 알아낸다.’
비록 기운을 퍼뜨리지 못하게 되 었지만, 일대를 수색할 방법이 없 는 것은 아니었다.
서준은 생각을 갈무리하고, 재빨 리 허공으로 떠올랐다.
넓다는 것은 멀리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기운을 더해 서준의 안력 을 돋운다면 세계 전체를 한눈에 담아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서준이 기운을 눈동자
에 집중시키며 세계를 천천히 훑어 내려던 순간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시야를 가릴 정 도의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