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권 3화
453화
성장을 끝마친 서준이 다음 목적 지로 정한 곳은 지구가 아닌, 위지 강이 머물고 있던 은하였다.
‘이쯤이면 어느 정도 수련이 끝 났겠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말할 수 있는 한 달이라는 시간.
허나 위지강과 능력과 서연의 재 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유의미한 성장을 이루었을 것이라 의심치 않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이유 가 없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면 그만 이다.
지구에 들러 우주선을 이용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서준은 은하 간에 존재하는 벽을 향해 주먹을 내뻗는다.
콰직-!
이미 고대의 존재들로 인해 나약 해져 있던 장벽은 단 일격에 찢어 발겨져버린다.
치지직-!
갑작스레 생겨난 검은 균열, 은 하의 틈새이자 통로를 향해 서준은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딛는다.
균열 내부에 보이는 세계는 어둠 속에 무수한 별빛이 깔려있는 우주 공간이다.
‘고대의 존재들은 매번 이런 방 식으로 넘어오는 거였나 보네.’
무극에 닿은 이후로 새로운 세계 를 계속해서 접해나간다.
경험은 곧 힘이 되는 법이다.
서준은 눈앞의 광경을 모두 머릿
속에 담아내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고대의 존재들이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강제로 연결해놓은 망각의 은하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생각보다 기네?’
은하의 통로는 엄청나게 길었다.
제법 오랜 시간 이동을 해왔음에 도 끝이 어디쯤인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
허나 이제 와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등을 돌리어보아도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입구 또한 보이지 않는
이제 와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손 해 보는 기분이지 않은가?
그렇기에서준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 확인해보고 싶은 것도 있 고 말이야.’
가늘어진 서준의 눈매가 은하의 통로에 펼쳐진 어둠 속을 향한다.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아까부터 정체 모를 존재의 시선 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착각이라고 생
각했는데..
새로운 경지에 올라 감각이 너무 예민해졌기에 벌어진 실수라고 생 각했다.
헌데 아니었다.
시선이 느껴져서 바라보면, 사라 져버렸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 하면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나자 확실하게 느껴진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
물론, 단순히 지켜보는 것이라면
개의치 않을 것이다.
정체 모를 존재의 시선에는 강한 적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아주 희미할 정도로 숨겨두었지만 날카로운 서준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서준은 고개를 돌리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은하수를 응시한다.
통로에는 처음 보았던 것처럼 어 두운 우주와 빛을 내뿜는 별들뿐이 다.
하지만 서준은 그 너머에 숨어있 는 무언가에게로 시선을 고정한다.
“누구냐?”
침묵이 흐른다.
애초에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 생 각지도 않았다.
“어차피 곧 정체를 밝히게 될 거 야.”
어느새 서준의 손에는 회색빛 기 운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조준하듯이 손가 락을 튕기는 순간, 회색빛 기운이 앞으로 쏘아진다.
거대한 회색빛 섬광은 가뿐하게 어둠을 찢어발긴다.
“끄아아악-!”
우주의 어둠 속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익숙한 실루 엣을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 천사?”
인간의 모습과 우아한 깃털을 뽐 내는 날개, 겉모습만 보자면 흔히 봐왔던 천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헌데 흔히 알고 있던 백색의 날 개가 아니었다.
아주 진한 회색빛, 혼돈기와 같 은 색상을 띤 날개가 솟아나 있었다.
“종족이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느껴지던 시선의 주인이 눈앞의 존재라는 것 이었다.
어차피 궁금한 것들은 산 채로 잡아서 질문을 하면 그만이다.
그 순간, 서준의 의도를 눈치챈 것인지 기이한 날개를 가진 천사가 날갯짓을 해 달아나려 했다.
허나 도주를 허용할 서준이 아니 었다.
서준은 초광속에 도달한 움직임 으로 도망치려던 천사의 목을 낚아 챘다.
직후, 서슬 퍼런 시선을 한 채로
질문을 던진다.
“정체가 뭐지?”
“아, 아수투, 혼돈의 천사다!”
“혼돈의 천사? 이 통로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관리를 하고 있다!”
“은하의 통로를 관리한다고?”
“그렇다!”
가늘어진 서준의 눈매가 아수투 의 얼굴을 훑어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지만 거짓을 말하는 것처 럼 보이지는 않는다.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 거 지?”
“의도치 않게 은하의 통로에 들 어온 어린 양들을 구원해주고 우주 의 의지에 따라서 연결된 은하의 통로들을 유지 혹은 폐쇄하고 있 다.”
“구원이라고 보기에는 살의가 가 득하던데?”
아수투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통 칭 ‘구원’이라는 것은 죽음을 뜻하 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침묵에서준은 목을 부여 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끄으으읍-! 다, 다른 방도가 없 어서다!”
“무슨 뜻이지?”
성실한 답변에서준이 손아귀에 주고 있던 힘을 조금 풀어낸다.
“애, 애초에 은하의 통로에 인간 같은 나약한 종족이 들어온다면 출 구에 도착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은하의 통로에 갇혀 영원히 헤매어 미치게 될 뿐이니 빠르게 안식을 선사해주려는 것뿐이다.”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닌가?”
다시 한번 입을 다문 아수투가 황급히 눈을 굴리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변명거리를 찾는 모습이었지만 서준은 개의치 않는 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당장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 니.”
각자 가진 정의가 다를 뿐이다.
스스로를 혼돈의 천사라 소개한 아수투의 행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판단 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도 영원히 은하의 통로를 헤매는 것보다는 죽음을 선사해주 는 것이 더 마음 편안한 일이었을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서준은 천사란 족속이 그리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 었기에 그리 충격받을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아수투는 제법 훌륭 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은하의 통로를 관리하고 있 다 했으니까, 그러면 망각의 은하, 아니다, 위지강이라는 존재가 있는 차원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겠지?”
“당, 당연히 알고 있다! 원한다면 안내를 해주겠다.”
찰나의 순간이라 할 만큼 짧았지 만, 아수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 가 흘렀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더군다나 아수투는 이미 한번 살 의를 보였던 적이다.
심지어 대화를 나눠본 결과 그리 선한 종족도 아니었다.
도저히 신뢰를 가질 만한 건더기 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것
인지 아수투는 곧장 입을 열었다.
“성흔의 계약을 하겠다.”
들어본 적이 있었다.
과거 지구를 침공해온 천사도 이 를 통해 계약을 했던 적이 있었다.
허나 완전히 아수투를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흔의 계약이 모든 천사족들에 게 통용이 되는 건가?’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는 않았다.
애초에 아수투가 자신이 성흔의
계약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 기 때문이었다.
“좋아, 정확한 계약 조건은?”
“위대한 우주시여, 저의 성흔들을 걸고 눈앞의 인간, 계약자에게 위지강의 차원, 천 대륙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열어 주도록 하겠습니다, 대 신 계약자는 곧장 그 출구를 통해 은하의 통로를 벗어나도록 해주십 시오. 더불어 계약이 진행되는 동 안 우리는 서로에게 어떠한 위협도 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을 내려주십 시오.”
“내가 어기면 어떻게 되지?”
“직접 겪어보면 알게 될 거야.”
아수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썩 내키는 계약은 아니었지만 불 합리한 것도 아니었다.
잠시 동안 고민을 하던, 서준이 고개를 주억였다.
“계약 체결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두운 우 주가 서준과 아수투를 휘감고 파고 들며 심장에 자리 잡으려 한다.
억지로 밀어내보려고도 했지만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압도적인 기세로 밀어붙인 어둠 은 삽시간에 체내의 기운들을 갈라 내고 심장에 똬리를 틀어버렸다.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찝찝한 기 운이 체내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보다 빠르고 편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바로 통로를 열어주마.”
날개를 펼치고 흔들자, 회색빛 문이 생성되더니 너머의 세상에 푸 른빛 숲의 모습이 보인다.
통로 안에 또 다른 통로를 만들 어낸 것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문을 만드는 방법 가르쳐 줄 수 는 없겠지?”
“네가 나라면 가르쳐 주었을까?”
“아니, 절대 안 가르쳐 주지.”
“충분히 답변이 되었겠군.”
아쉽지만 강제할 수 없었다.
아까 전 아수투가 보인 미소는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도 여전히 심장에 검은 기 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쉽지만 과욕은 화를 부르는 법
이다.
오늘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할 때였다.
“다음번의 만남을 기대할게.”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을 거 다.”
“혹시 모르잖아, 오늘의 인연이 어떤 형태로 닿을지.”
“절대로 그럴 일 없을 거다.”
당찬 서준의 말에 아수투가 코웃 음을 친다.
“스스로가 선택한 파멸로 향하는 길, 오늘의 대화를 죽음 속에서도
후회하게 될 거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긴 아수 투가 손가락을 튕기자, 회색빛 문 이 서준의 신형을 집어삼켰다.
일반적인 통로와는 달랐다.
흡사 지구에서 보았던 게이트와 비슷했다.
눈 한 번 깜빡하는 순간, 서준은 위지강이 머물던 차원인 천 대륙에 도착했다.
‘직접 대륙에 온 건 처음이지 만……
계속되는 수련 중 짧은 휴식을 취하던 시기, 멀리서나마 지켜보았 던 천 대륙 차원의 풍경이 틀림없 었다.
‘멀리서 봤던 대로 울창하긴 하 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높은 나무 가 가득한 숲이다.
다만 숲의 풍경이 울창하다고 보
기는 힘들었다.
“무언가가 휩쓸고 지나갔나 보 네.”
드높은 나무가 이리저리 꺾여있 었고, 부서져 있었다.
전투로 인한 파괴라기보다는 꽤 나 거대한 덩치의 무언가가 숲을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대륙의 괴력난신들인가.”
지면에 어지간한 성인의 3배는 족히 넘을 법한 발자국이 보였지만, 서준은 곧 신경을 껐다.
‘괴력난신 따위를 사냥하러 온 게 아니지.’
나타나자마자 눈앞에 있었고, 갑 자기 공격을 가해왔다면 모를까 굳 이 뒤쫓아 가서 사냥할 이유는 없 다.
서준이 천 대륙에 온 것은 위지 강과 동생인 서연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우선…… 기운을 추적하면 되겠 지.’
평소 위지강은 대부분의 힘을 감 추고 있었기에 직접적인 추적은 힘 들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하는 장소 가 있는 만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수련했었던 성역으로 가 자.’
결정을 한서준이 숲길 한가운데 서 기운을 퍼뜨린다.
퍼져나간 기운이 수련을 했었던 위지강의 성역을 잡아냈다.
‘꽤 머네?’
서준의 위치는 대륙의 남쪽, 반 면 과거 수련을 했었던 위지강의 성역은 북쪽 방면에서도 끝에 위치 하고 있었다.
마음먹고 달려가면 금방이었다.
실제로도 초광속에 달한 움직임 으로 삽시간에 위지강의 성역 앞에 당도해내었다.
허나 기이하게도 위지강의 성역 은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