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권 1화
451화
시원하게 이마를 연 가르마를 탄 포마드 스타일이 꽤나 잘 어울린다.
중간에 크리스토퍼가 면도를 해 주고, 눈썹까지 다듬어준 덕인지 깔끔한 이미지가 더 부각되었다.
“굉장하네요. 전 제 눈썹이 이렇 게 매력 있는지 처음 알았네요.”
“과찬이십니다. 이미 숱이 많고 진한 편이라 건드리기 쉬웠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원판이 워낙 좋았
거든요.”
“크리스토퍼의 실력이 정말 좋습 니다. 괜히 제가 추천드린 게 아니 죠.”
“열심히 제 일에 충실할 뿐이지 요.”
서준의 눈에도 이제 크리스토퍼 는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다.
이처럼 적당한 겸손과 훌륭한 실 력을 겸비한 사람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계산은……
“괜찮습니다. 사실상 지금의 평 화가 유지되는 게 모두 한서준 의
장님 덕분 아닙니까. 평화를 누리 고 있는 제가 감히 돈을 받을 수는 없지요.”
“그치만……
“돈을 받게 된다면 제 마음에 부 담이 될 것 같습니다.”
“당사자인 크리스토퍼가 이렇게 까지 말하는데 어쩌겠습니까, 어서 가시죠, 저녁을 부모님들과 드시려 했던 거 아니신가요?”
이어지는 강석호의 말에서준은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인다.
어느덧 오후 5시, 시간을 확인한서준은 크리스토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겠 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잠시 나마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 크리스토퍼에게 인사를 마치고 빠져나와 미용실 앞에 주차 해 놓은 차에 타려는 순간이었다.
“어! 강석호다!”
지나가던 남자가 강석호를 알아 보고는 소리쳤다.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연예인과 다름이 없는 그였기에 당연한 반응
이었다.
강석호가 가볍게 손을 들어 화답 하기도 전, 남자의 외침에 시선을 돌린 사람들이 서준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악-! 한서준 의장님이 야!”
“뭐? 한서준 의장?”
자연스럽게 주변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준에게 로 향했다.
“진짜! 진짜 한서준 의장이다!”
“ 맙소사.”
“존잘이잖아!”
“꺄아아악-!”
그들을 향해 어색하게 웃은 서준 이 손을 들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등을 미는 강석호의 손 길에 따라 재빨리 차에 몸을 싣는 다.
“짧지만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보도록 하 겠습니다!”
강석호는 익숙한 행동과 말투로 마무리를 한 이후 함께 차에 탔다.
“직접 움직이시는 게 더 빠르실 테지만, 최대한 화려하게 움직이셔 야 하니, 차량으로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시죠.”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움직일 필 요가 있을까요?”
“부모님들에게 효도를 하기 위함 이죠.”
“……이게 효도랑 관련이 있을까 요.”
뒷머리를 긁적이는 서준의 모습 에 강석호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멋
지게 성장한 모습과, 사회적인 성 공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어떠한 선물보다도 값비싼 법이죠.”
부정할 수 없었다.
부모 된 이의 가장 큰 기쁨은 자 식의 성공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은 이유 도 납득이 가네.’
용모가 전체는 아니지만 풍겨지 는 분위기를 어느 정도 바꿔낼 수 있었다.
당장 머리를 마친 이후, 스스로 가 거울을 보기에도 조금 더 품격
있어 보이는 느낌을 받았었다.
“굳이 한 가지를 더하자면 맛난 식사 한 끼 정도만 대접해주시면 될 겁니다.”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 은 일이다.
허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사실 제가 맛있는 식당을 잘 모 르거든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 고 서준은 돈을 쓰는 방법에 대해 서 정확히 모른다.
실제로도 서준은 집 밥 혹은 배 달 어플을 이용한 음식을 먹을 뿐
이었다.
푸짐하게 먹어 봐야 동네 고깃집 에서 소고기를 사먹는 정도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제가 알 아서 다 맞춰드리겠습니다, 자그마 치 서준 님이 오랜만에 부탁하신 일 아닙니까.”
웃음을 흘린 강석호가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문자를 넣었다.
그러자 수십 통의 문자가 기다렸 다는 듯 강석호에게 쌓였다.
강석호는 그중 무언가를 찾는 듯 검지로 몇 번을 훑더니 한 곳을 선 정했다.
개중에는 서준이 과거에 영상 매 체로만 보았던 음식점, 예약만 몇 개월이 걸린다는 식당들이 여럿 존재했다.
“여기가 좋겠네요.”
그중 외국의 정상들이 한국을 방 문할 때 즐긴다는 한정식 집을 고 른 강석호가 서준을 향해 문자를 보여주었다.
[한국 최고의 한정식을 만든다고 자부할 수 있는 정 숙수입니다, 꼭 대접하고 싶으니 방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유명한 미슐랭의 평가마저 거 부한다는 한정식 집이 부탁하듯 답 신을 보내오고 있었다.
“확실히 부의장님의 영향력이 보 통이 아닌가 보네요.”
“저에게 보낸 메시지가 아닙니 다.”
“ 네?”
“당연히 서준 님을 초대하는 이 야기지요. 서준 님의 이름으로 식 당에 예약 리스트 올려달라고 했습 니다. 여기 대표 쉐프인 정진수 님 이 워낙 콧대가 높으셔서요. 제 이 름으로도 꿈쩍도 안 하십니다. 그
래서 저도 몇 번 먹어 보지 못했습 니다, 대신 맛은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끝내줍니다. 어떻게, 여기로 할까요?”
웃음을 홀린 강석호의 질문에서준은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오랜만에 효도를 하려 한다지만 조금 과한 건 아닐까?’
분명 서준은 실질적인 전투 능력 외로도 많은 것을 이룩해놓았다.
그중에 부(富)의 성장 역시 적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먹고 사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을 벗어나, 지구의 누구보다도
여유로운 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은 숫자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많았다.
놀라운 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서준이 가진 자본력은 신의 격에 올라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대한 양의 부가 형성된 것이다.
심지어 서준이 가진 것은 압도적 인 전투 능력과, 쌓아놓은 부뿐만 이 아니었다.
명예(名響) 역시 상당히 드높았다.
서준은 지구 최강, 아니 은하 최 강이라 칭송받고 있었다.
단체로 보자면 리벨리온 연합의 창시자이자 최고 의장.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세계인 대다수가 침공을 막아 주고 자유를 되찾아 준 서준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서준 역시 모르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체감하고는 있었다.
하나 고작 부모님들과 식사 한 번 하는데 이처럼 큰 규모로 무언 가가 움직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아마 그간의 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이 상황에 적응해놓지 않았다 면, 이쯤에서 강석호의 배려를 거 절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작은 걱정이 있었지만 서준은 결 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스스로 이룩해내었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으며, 부 도덕한 방식으로 부와 명예를 휘두 른 적도 없다.
심지어 누군가한테 피해를 끼치 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 스스로가 원해서 초대장을 보내온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서준은 이 상황 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 다.
“알겠습니다. 양정화 각성자님과 한석훈 각성자님, 두 분도 이 식당 으로 모시라고 하겠습니다.”
강석호가 문자로 화답하는 동안 차는 꽤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5층짜리 건물의 입구에 멈춰 섰다.
“필요하신 것들은 모두 준비된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물러가보도
록 하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타고 있던 뒷좌석의 문이 열린다.
서준은 망설임 없이 차량에서 내 리며 눈앞의 건물을 마주한다.
적어도 서준이 아는 한도 내에서 이처럼 고풍스러운 음식점은 처음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당히 화려하네.”
현실을 마주하면 할수록 그 규모 가 점점 더 커져가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
서준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 를 하고 있는 한석훈과 양정화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좋구나.”
“근래 인기가 더 많아졌던데, 역 시 우리 아들이다. 장하구나.”
“딱히 뭔가를 한 거는 없는데, 다들 좋게 봐주네요.”
이어지는 대화에 환한 미소를 담 아 답한, 서준은 식사를 이어간다.
안부 인사를 끝내기가 무섭게 코 스 음식들이 순서대로 들어온다.
그렇게 서준의 가족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 으며 그간 나누지 못했던 잡다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따뜻하면서도 푸근한 무언가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마냥 이 감정 을 만끽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서연이도 왔으면 엄청 좋아 했을 것 같은데, 아쉽네.”
“근래 보니까, 집에 아예 들어오 지를 않던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네.”
부모님들의 말에 쉽사리 입이 떨 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불현듯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 작한다.
혹시나 걱정이 들어 반대하면 어 떻게 해야 하지?
이야기를 잠시 뒤로 미뤄야 하나?
부모님들의 말이 끝난 지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머릿속에 생각 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중 서준이 고른 것은 바로 정면 돌파였다.
“아마 서연이도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급한 일이 있나 보구나.”
“서연이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 에요.”
단호한서준의 말에 더 이상의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한석훈과 양정화는 그저 고개를
주억이며 납득할 뿐이다.
허나 뒤이어 내뱉을 이야기의 걱 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서 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수는 없 었다.
“아시다시피 지금 지구의 상황이 마냥 좋지는 않잖아요, 끝난 줄 알 았던 전쟁이 지속되고 끊임없이 침 공을 받고 있죠……. 그래서 저도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야 할 수도 있어요.”
짧은 침묵이 흐른다.
명분이 있긴 했지만 근래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던 만큼 부모 된
입장으로서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양정화가 조심스레 입을 열 었다.
“괜찮겠니? 혹여나 원치 않는데 분위기나 주변의 반응 때문에 강제 로 등을 떠밀려 하는 건 아니지?”
오늘 많은 혜택을 누려서인지 쉽 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오롯이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가?’
많은 사람들의 찬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점은 단호히 말할 수 있었다.
지구를 지켜내는 것이 서준의 가 장 큰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하는 것, 가족들과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야 했다.
“강제는 없어요,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자 제 오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서준의 대답에 굳어있던 양정화 와 한석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어린다.
“그거면 됐다, 그게 우리 아들의 꿈이라면 이 엄마는 전적으로 응원 하겠다.”
“언제나 말했지만 우리를 비롯한
주변의 시선이나 반응은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거를 하고 살아가 거라.”
진심 어린 행복을 비는, 한 치의 거짓도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새삼스럽지만 왜 자신이 그토록 가족들과의 행복을 지키고 싶어 하 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런 부모님들이 있어서였지.’
아무리 강한 힘을 얻고, 많은 부 와 명예를 쌓는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들을 얻 을 수는 없었다.
오롯이 가족으로 이어진 따뜻한
마음만이 가슴을 풍족하게 채워줄 수 있었다.
우주의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다.
“고마워요.”
“부모라면 당연한 거란다, 그리고 힘들거나 지칠 때는 언제든지 돌아와서 쉬어도 된단다.”
모든 세계, 드높은 주신조차도 서준의 힘에 기대고 있었다.
허나 신격도 이루지 못한 존재에 게 걱정을 받고 있었다.
그저 가족이기에 걱정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주 함께하 지 못했지만, 서로를 걱정하고 위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가족이다.
마음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충족 감으로 가득 찬 기쁨에서준의 입 가에는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가 흐른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역시 서준에게 있어 지구, 가족 들이 있는 이 세계는 반드시 지키 고 싶은 행성이자 소중한 보금자리 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