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권 10화
435화
“생각 이상이군.”
허공에 떠올랐던 서준의 육신이 한 바퀴 이상 뒤집히며 다시 바닥 에 떨어진 순간,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위지강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지구에 무슨 일이 있나요?”
다소 두서없는 말이었지만, 계속 해서 피어나는 걱정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던 만큼 서준은 곧장 그 의 미를 알아들었다.
정말 다행히도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위지강의 고개가 돌아가며 서준을 바라보며 웃음을 보인다.
“아무 문제없다, 사도가 생각 이 상으로 훌륭해, 정복왕이 생각했던 것보다 철저하게 준비를 해놨군.”
“서연이가요? 아직 혼돈구가 네 개뿐일 텐데, 그렇게 강한가요?”
“제자야, 너도 알고 있지 않느 냐? 강함이라는 것은 그런 구체의 숫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란 것 O ”
“그렇긴 하죠.”
서준은 고개를 주억일 수밖에 없
었다.
애초에 혼돈구의 숫자가 절대적 인 강함을 대변했다면, 서준은 카 리안을 꺾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설마 망각제 둘을 동시 에 상대할 줄은 몰랐는데, 정복왕 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였던 것 같군.”
“혼자서 망각제를 둘이나 상대하 고 있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압도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은 수준이지.”
“말도 안 돼……
분명, 서연이 강하다는 것은 어
느 정도 알고 있었다.
허나 혼자서 망각제 둘을 여유로 이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 상치 못했다.
믿을 수 없는 말에 휘둥그레 눈 을 뜬 서준의 모습에 위지강은 너 털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스승이 거짓말을 할 이 유가 없지 않느냐? 뭐, 네게 조언 을 하나 하자면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지 말거라. 초월은 어느 경지 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내가 가진 무한의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거라.”
“그래도 가능성에만 기대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따지는 서준의 바로 앞으로 거센 돌풍이 불었다.
바로 앞, 지근거리에서 몰아쳐오 는 감각에 가까스로 허리를 비틀어 낸 서준이 헛바람을 삼켰다.
후웅-!
“처음보다는 확실히 반사 신경이 좋아졌군. 허나 단순히 빠르다고 전부가 아니다.”
위지강이 즐거운 표정으로 웃음 을 보이며 짧은 감탄을 내뱉는다.
“제자가 질문을 한 건데, 답변 정도는 제대로 해주셨으면……
“빠르면서도 유연해져라.”
“원래 유연합니다.”
“그렇다면 그 안에 더 폭발적인 힘을 담아내거라.”
칠흑과 같은 검은 기운이 서준의 볼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준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안다.
‘가볍게 내뻗은 일격.’
전력을 다해 내지른 공격이 아니 다.
즉 방금 전, 위지강의 주먹은 초 광속의 영역밖에 되지 않았다.
한데도 더 압도적이고 빠르다.
순간이라도 방심했다면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다.
‘내가 폭발적인 힘을 담지 못해 서인가?’
아니면 위지강의 말마따나 무언 가를 초월하는 것으로 도달한 새로 운 경지에 닿아있는 힘일 수도 있었다.
서준의 머릿속은 단숨에 무공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제자야. 가이사의 사도는 지금 너 같은 녀석이 다섯 명이 덤벼들 어야 간신히 동수를 이룰 만큼의
힘을 가졌단다.”
“다음 무극에 닿을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판단이 될 정도야, 놀라 운 일이지, 기분이 어떠냐?”
“서연이는 제 동생, 소중한 가족 입니다.”
“가족이기에 더 호승심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아니나 다를까, 본인은 모르겠지 만 서준의 눈동자에는 이전에는 없 던 투쟁심이 강하게 어리기 시작했 다.
“적어도 동생은 넘어설 수 있어
야 내가 빼앗긴 은하를 되찾을 때 도 쓸 만한 전력으로 쓸 수 있을 테니, 더 힘을 내보거라.”
“그렇지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 다.”
왜인지 정확히 형용할 수는 없었다.
허나 동생에게만은 지고 싶지가 않았다.
고개를 주억인 서준의 발이 움직 이는 순간이었다.
쾅-!
한 줄기의 섬광이 위지강의 머리 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사라져 버린 머리카락에 위지강 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훌륭한 변화야.”
이어서 미소를 보인 위지강이 고 개를 주억이며 발을 놀린다.
그 모습을 응시하고 있던 서준이 재빠르게 위지강을 쫓는다.
“금방 뛰어넘을 거니까요.”
서준의 목소리가 뒤를 따르고 몇 번의 공방이 펼쳐지며 검은 공간에서 연이은 폭발이 일어났다.
망각제들과 서연의 싸움이 시작 됐다.
공방은 처음부터 화려했다.
초광속의 세계에서 순간적으로 서로의 전력을 쏟아낸다.
전투의 여파는 대지를 갈라내고 하늘을 무너뜨리며, 드높게 뜬 별 을 추락시킨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등비등한 양 상의 전투였으나, 이 자리에서 있
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망각제들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다.
예상했던 바였다.
‘둘을 동시에 공간 전이를 시켰 으니......,
강한 존재를 이동시키기 위해서 는 그에 따른 대가 혹은 강력한 힘 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도 망각제들은 은하를 넘 어올 때 상당한 대가와 시간을 소 모했다.
그런데 서연은 망각제 둘을 단숨 에 이동시켜냈다.
‘압도적인 차이다……
허나 패배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망각구 최대 개방.’
파지지직-!
몸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다섯 개의 구체가 개방되며 흘러나온 망 각의 기운이 다가오는 잿빛 촉수들 과 부딪치며 스파크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 순간 서연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시간의 흐름이 변화한 다.
콰직-!
어느새 주먹을 내뻗어 크라쿠의
어깨를 꿰뚫은 서연의 입가에 비릿 한 미소가 흐른다.
“여유롭네? 흐르고 있는 시간들 은 너를 기다려 주지 않는데 말이 야.”
시간의 흐름 자체가 다르다.
아무리 발버둥 치며 공격을 막아 서려 해보아도 뒤틀린 시간의 흐름 이 망각제들이 내뻗는 공격을 수포 로 만들어버린다.
처음 이런 시간의 뒤틀림을 인지 했을 때 망각제들 역시 크게 당황 했다.
여전히 파훼법을 찾지는 못했지
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네놈이 가진 잔재주는 이제 잊 혀질 것이다.”
어깨에 꽂힌 서연의 주먹을 꽈악 - 말아 쥔 카라주가 웃어 보이는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카라주의 말에 크라쿠가 손을 내 뻗으며 잿빛 기운을 발산한다.
두 명의 망각제의 손아귀에서 존재 자체를 말소시켜버리는 막대한 양의 망각의 힘이 터져 나온다.
파지지직-!
잿빛 기운이 요란한 스파크를 일 으키며 서연을 휘감아 낸다.
아니, 정확하게는 서연의 전신을 휘감아 내어 흘러나오는 힘을 망각 시킴으로써, 뒤틀린 시간의 흐름을 안정시킨다.
허나 모든 것을 잊히게 만든 것 은 아니었다.
회색빛 촉수.
세계를 집어삼킬 기세로 넘실거 리고 있는 공허의 촉수들만큼은 카 라주가 자랑하는 망각의 힘 또한 지워내지 못했다.
본래의 흐름을 찾아가는 세계
속, 넘실거리는 촉수들을 마주한 카라주의 몸이 흠칫 떨렸다.
분명 성공적인 소멸이었다.
한데도 어째서 눈앞의 촉수들은 사라지지 않는단 말인가?
“시간의 흐름을 뒤틀어내는 힘을 봉인시킨 거는 훌륭했어, 그런데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있네.”
육신을 옥죄어오는 잿빛 스파크 속, 서연이 웃으며 몸에 힘을 주었다.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구체들이 폭발하며 서연의 전신을 휘감고 있 던 망각의 힘을 떨쳐내 버린다.
“공허는 아무것도 품지 않아.”
위협을 느낀 카라주가 다급하게 소리를 내지른다.
“도망쳐!”
크라쿠가 재빠르게 내뻗은 손을 거두어들이며, 뒷걸음질을 친다.
허나 도망칠 곳은 없었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촉수들은 자 그마한 틈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망각의 힘을 폭발시킨다면 쉽게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구체를 개방시킨 것으로 폭발시
킨 망각의 힘은 서연이 뒤틀어버린 시간의 흐름을 안정시키는 데 사용 한 상태였다.
“설마, 처음부터……
서연이 당황하는 크라쿠의 모습 을 응시한다.
슥-!
스산한 눈빛에 담겨 있는 강한 살기에 크라쿠의 미간이 찌푸려진 다.
“내게 있어 시간을 뒤트는 것은 부가적인 능력일 뿐이야.”
촤르륵-!
회색빛 촉수들이 넘실거리는 너 머, 번뜩이고 있는 회색빛 눈동자 가 기괴한 웃음을 그렸다.
턱 밑까지 찾아온 죽음에 크라쿠 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내가 가진 진정한 힘은 아무것 도 없어, 하지만 그렇기에 품을 수 있었지.”
공허.
아무것도 맺혀 있지 않았지만, 기이하게도 서연이 손을 내뻗는 순 간, 회색빛 촉수들이 초광속으로 움직이며 크라쿠와 카라주를 휘감 아낸다.
휘리릭-!
뻗어진 촉수에 휘감긴 크라쿠와 카라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단순히 속도가 빠른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촉수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공허 의 힘이 크라쿠의 내부를 마구잡이 로 헤집고,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공허가 바라는 것은 단순한 포식 이 아니었다.
‘내 힘들이……
공허와 하나가 되어간다.
망각제에 도달하며 얻은 힘.
육신을 이루고 있는 신격과 존재 의 기억까지.
허무하리만큼 쉽게 공허에 휩싸 이며 사라져가는 그 충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끄아아악-!
분노와 당황도 잠시일 뿐이었다.
이런 감정마저도 사라져간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이 비워지 는 순간, 망각제들의 육신이 손끝 에서부터 가루가 되어 흩어져간다.
사르르륵-!
조용하지만 확실한 죽음을 맞이 한 것이다.
“영원히 비어있는 공허의 공간, 그곳이 이제 네놈들이 평생을 살아 가야 할 곳이야.”
오랜 세월, 무수히 많은 은하를 파괴해낸 두 망각제들의 육신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서연이 등장하는 순간, 압도적이 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던 거인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망각제를 믿고 전투에 임하려던 혼돈인, 군단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망각제들께서 당하셨다고?’
카툴라는 고개를 내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모습을 감춘 것뿐이다.
머리를 회전시켜, 생각을 하고 나니 조금 더 침착하게 전장이 보 였다.
지쳐 보이는 리벨리온 연합.
“저들쯤이라면……
창을 뽑아든 카툴라의 눈에 살의 가 번뜩일 때였다.
“분명 동료를 만나러 왔는데, 망 각의 은하에 처박혀 있어야 할 것 들을 만날 줄은 몰랐군.”
대체 어느새였을까?
둥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다급 하게 촉수로 몸을 방어한 카툴라의 머리 위, 긴 백발을 홑날리는 노인 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누구냐?!”
본래, 겁먹은 개가 요란하게 짖 는 법이다.
카툴라는 갑작스런 노인의 등장 에 놀람과 동시에 불길한 느낌이 심장을 옥죄어 옴에 따라 큰 소리 를 내지르며 압박을 가해 보려 한 다.
허나 눈앞의 노인은 조금의 압박 도 받지 않고 있었다.
“휴가라지만, 이건 수호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군, 허허.”
“설마......
“자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을 걸세.”
입가에 호선을 그린 카터가 마도 서를 펼치는 순간 찬란한 빛이 터 져 나온다.
그러자 놀랍게도 우주 한복판에서 육망성의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 작한다.
말 그대로 삽시간에, 우주를 가 득 매우고 있던 혼돈인들을 에워쌀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마법진이 그 려졌다.
“타오르거라, 영원의 업화여.”
눈을 빛낸 카터가 말을 끝맺는 순간이었다.
콰과광-!
군단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던 카 툴라의 군세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