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권 21화
421 화
“망각의 늪!”
위협을 느낀 존이 황급히 기운을 방출하며 공격들을 쏟아낸다.
콰과광-!
이름처럼 끈적끈적한 늪이 일대 의 땅에 생겨나며, 그 안에 담겨있 는 망각의 힘이 서준의 전신을 뒤 덮는다.
파지직-!
서준의 몸에 뒤덮인 혼돈기와 망
각의 힘이 맞부딪히며 스파크가 일 어난다.
허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계속되는 힘 싸움에 충격이 제법 있긴 했지만 견디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남의 힘을 빌려온 존에 비해서 서준은 본연의 것, 스스로 혼돈제 라 인정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성취해냈다.
이런 무식한 힘 싸움에서 패배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준비한 게 고작 이 정도야?”
고대의 존재들과 연관되어 있는 힘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나 약했다.
이어, 서준의 날카로운 시선은 허공에 떠있는 존에게로 향한다.
“고대의 존재들에게 생각보다 총 애를 받지 못하나 보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구태여 대답을 들을 필요 가 없었다.
화를 억누르기 위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존의 표정은 충
분한 답을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 빌어먹을……
근래 고대의 존재들과의 연락이 끊기긴 했지만 그간 많은 성물을 하사받고, 총애를 받아 온 만큼 이 렇게 허무하게 당할 것이라고는 생 각한 적 없었다.
그저 눈앞의 괴물이 예상을 아득 히 넘어서고 있었다.
“과연, 고대의 존재들께서 인정 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구나.”
이런 칭찬을 건네는 것조차도 허 락되지 않는다.
후웅-!
바람 소리와 함께 서준의 신형이 시야에서 자취를 감춘다.
뒤이어, 가슴팍에서 아찔한 고통 이 밀려온다.
“커헙……
압도적인 차이다.
반격은커녕, 움직임조차 좇지 못 했다.
본능적인 감각이 존의 머릿속에 경종을 울린다.
‘승산은 없다.’
존과 사도들은 한때 한서준 의장 이 돌아온다 할지라도 승리를 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영웅담을 남길 정도 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긴 했 지만,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고 대의 존재들께 하사받은 힘이 있다 면 충분히 승리를 할 수 있을 것이 라 생각했다.
하다못해, 나름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으며 시간 정도는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존은 과거, 고대의 존재들의 명 령에 따라 라와 공방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비록 승리를 거머쥐지는 못했지
만 명령대로 라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데 성공했던 적이 있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한서준 의 장과 대결을 자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 다.
‘시간 끌기조차 할 수 없다 니……
한서준은 고대의 존재들의 힘을 가볍게 떨쳐내는 위용을 보이며, 당당하게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니,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 고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한서준 의
장 너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떠한 존재보다도 강력하다, 패배를 받아 들이마.”
고대의 존재들로부터 인정을 받 는 괴물이자, 돌아올 수 없는 심연 에서 되돌아온 존재.
한서준 의장은 말 그대로 격이 다른 존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주의 관점으로 보자면 주신들조차도 그리 대단 한 존재는 아니었다.
주신은 은하에 몇 존재할 수 없 으며, 질서를 세워낼 수 있을 정도 로 드높은 존재였지만, 드넓은 우
주의 관점으로 보자면 제법 많은 숫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준은 돌아올 수 없는 심연 내에서 무언가 성장을 이루어 냈고, 혼돈제의 자리에 오르고 인 정을 받은 존재였다.
일반적인 주신의 틀을 벗어났다 는 것이다.
‘라와는 격이 다르다.’
고대의 존재들조차도 압도한다.
굳이 비슷한 존재를 찾아내자면 아주 멀리서 보았던, 흡사 고대의 존재들이 모시는 신과 비슷한 위용 이 느껴지고 있었다.
서준을 바라보는 존의 눈에는 경 악을 넘어서 경외가 어리기 시작한 다.
허나 존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은 한겨울의 얼음장처럼 차갑기 그지 없었다.
“너 따위가 나를 평가한다고?”
“ 무스.
“게다가 고대의 존재들과 손을 잡아놓고 항복을 선언한다고 끝날 거라 생각한 거야? 내가 선언했던 말들이 꽤나 우습게 느껴졌나 봐?”
서준은 천천히 자세를 다잡는다.
그러자 서준의 몸 주변에 회색빛 기운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평화를 외치는 리벨리온의 의장 이 패배를 인정한 나를 공격하려는 건가?”
“난 배신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 아.”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었다.
단순히 세계의 시선이 쏠려있는 지금, 본보기를 확실하게 보여주어 야 한다.
반기를 든 배신자의 처참한 최후 의 모습을 말이다.
“정말로 나에게 자비를 바랐다 면, 적어도 고대의 존재들과 손을 잡지는 말았어야지.”
리벨리온 의장, 허울뿐인 직책이 라고는 하지만 책임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되었던 전쟁, 당장 승리를 거머쥐며 고대의 존재들을 몰아내 긴 했지만, 무수히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누군가는 친구, 연인, 가족을 잃 었다는 것이다.
비록 직접적으로 전장에 나선 것 은 아니었지만, 리벨리온의 의장으
로서 그들이 흘려야만 했던 눈물과 피를 짊어져야 한다.
서준의 몸에서 당장이라도 베일 것 같은 살기가 일대에 퍼져나간다.
긴장감에 마른침이 목울대를 타 고 넘어가는 순간, 복부에서부터 아찔한 충격이 전해진다.
“커헙-!”
피분수가 입에서부터 터져 나온 다.
이어지는 연격들에 전신이 난타 당한다.
상처 하나 없던 피부가 터져나가 며 흉측한 형태로 변해간다.
“잠깐......!”
한마디 변명을 내뱉을 틈도 없 이, 무자비한 폭력이 존의 전신을 가격한다.
빠각-!
뼈가 뒤틀리고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아 찔한 고통 속에서 존은 후회했다.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존재들과 손을 잡은 줄 알았거든……
하늘 위의 하늘이 존재했다.
허망한 현실이었지만 여기서 포 기할 수는 없었다.
‘빌고 빌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애초에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 었다.
이 공간에 한서준이 들어온 것만 으로도 계획이 성공한 것이었다.
시간만 끌어낸다면 승리를 거머 쥘 수 있었다.
허나 세상일이 그렇듯,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없었다.
서준은 단순히 고통을 선사하기
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만 죽자.”
차가운 말투를 내뱉은 서준이 허 공에 손을 내뻗는다.
이어서 모여드는 혼돈기에 위협 을 느낀 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살려, 살려 주십시오!”
처음으로 다급한 목소리를 내지 른 존이 목숨을 구걸한다.
허나, 서준의 움직임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너
도 죽을 각오를 했어야지.”
“첫, 첫 번째 사도인 저를 죽이 게 된다면 고대의 존재들께서도 지 금처럼 방관하시지는 않을 겁니 다!”
존은 최후의 발악을 보이며, 갖 은 말들로 위협을 가해온다.
하지만 서준의 표정에는 일말의 동요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리어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래? 오히려 잘됐네.”
단숨에 거리를 좁혀 낸 서준이 주먹을 내뻗으며 존의 복부를 가격
한다.
“크읍-!”
“어차피 전부 정리할 생각이었으 니까, 빨리 와서 덤비라 해.”
이건 선전포고일 뿐이다.
심어놓은 숭배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고대의 존재들이 있는 우주를 찾 아내, 그들의 모든 것을 부술 것이 었다.
“제정신이 아니……
고개를 내젓고 있는 존을 바라보 며 보란 듯이 혼돈기를 주먹에 두
른다.
“저승에서 직접 지켜봐.”
콰직-!
서준이 휘두른 주먹이 존의 머리 를 부숴냈다.
띠링-!
[첫 번째 사도, 존 허트가 사망했 습니다.]
[칭호, 패황의 효과로 고대의 존재의 힘을 흡수해냅니다.]
떠오르는 메시지 창에서준의 입 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예상외의 수확이네.”
전투 능력이 다소 부족했기에, 유의미할 정도의 고대의 힘을 품고 있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칭호, 패황의 효과가 발동 하며 존의 힘을 흡수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본래 목적인 숭배자들의 머리를 제거하는 데 성공해내었다.
‘나쁘지 않은 성과네.’
애초에 숭배자들을 제거하러온 것은 리벨리온, 지구에 위협이 되
기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 애초에 런던에 방 문한 본래 목적은 숭배자들의 본거 지를 파괴하고, 머리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성공적이 라고 볼 수 있었다.
‘음지에 숨어서 활동하던 숭배자 들도 더 이상 결속할 수 없겠지.’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첫 번 째 사도가 죽었다.
왕성하게 활동해오던 숭배자들의 입장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 다.
서준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흐른다.
“당연히, 본부 쪽도 문제없을 거 고.”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리 벨리온 최고의 전력들을 한자리에 모아두었다.
고작 이런 사도들 따위에게 패배 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여기, 본거 지를 파괴하는 것 정도겠네.”
서준은 고개를 돌리어 일대의 세
계를 시야에 담아낸다.
“그럼 시작해볼까.”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어느덧, 서준의 입가에 피어났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쉽지는 않겠네.’
망각의 힘에 완전히 집어삼켜진 곳이어서일까?
차원 전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술 수 있는 틈, 약점조차도 말 이다.
물론,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모두 부숴내면 그만이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가 없다면 아예 차원 자체를 붕 괴시키면 될 것이다.
‘오히려 좋네.’
새로이 얻은 힘과 강인해진 육신 을 시험해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내뻗은 손아귀에 계속해서 혼돈 기가 웅축된다.
찌지 직...
아무것도 없던 잿빛 공간이 움츠 러든다.
들썩거리던 지면이 천천히 주저 앉는다.
무미건조했던 세계가 일그러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쥐고 있던 팔이 뻐근해질 때쯤, 서준은 미련 없이 주먹을 내뻗는다.
콰광-!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소리가 일어난다.
주먹이 내뻗는 곳에 있던 모든 것이 파괴된다.
허나 차원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세상을 휘감고 있던 잿빛의 기운 은 빠른 속도로 그 상처마저 잊혀 지게 만들어버렸다.
“생각 이상이네.”
입꼬리가 비틀린 서준이 반대편 손을 말아 쥔다.
그새 말아 쥔 주먹에는 막대한 양의 혼돈기가 응집되어 있었다.
요동치던 잿빛 기운은 더 이상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서준 의 주먹을 휘감아내려 한다.
완전히 존재 자체를 지울 기세로 쇄도해왔지만, 애석하게도 서준의 몸에는 닿을 수 없었다.
곧장 주먹을 내뻗어, 폭발하는 혼돈기가 잿빛 기운을 집어삼키고 차원을 가격한다.
콰광-!
요란한 폭음이 일어나며 하늘이 무너져 내렸지만, 전과 같이 잿빛 기운은 그 공격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도 견딘다고?”
공격이 연이어 실패했지만 서준 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흐른다.
‘혹시나 힘의 여파로 바깥에 영 향이 갈까 봐 조심했는데.’
이 정도 방어력이라면 힘 조절 할 필요는 없었다.
혹여나 민간인들에게 피해가 갈 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 잊혀진 차원 을 휘감고 있는 잿빛 기운의 능력 을 보면 괜한 걱정에 불과했던 것 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