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권 13화
413화
그.리고 욕심에 눈이 먼 이들은 그 검은 손을 망설임 없이 잡았을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이 모두가 힘겹게 일궈낸 평화를 박살 내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멍청하게 손을 잡은 놈들도 문 제지만.’
진짜 문제는 몸을 숨긴 채로 그 들을 현혹하는 이들이었다.
당연하지만, 서준은 이렇게 뒤에 숨어서 평화를 좀먹는 벌레들을 결 단코 좋게 봐줄 수가 없었다.
‘쓰레기 같은 것들.’
직접적인 지배력 혹은 공포를 떨 치던 상위 종족이 사라진 자리에 스스로가 군림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벌레와 같은 이들.
당연하지만, 서준은 이런 혐오스 러운 존재들을 처단하는 것에 있어 서 일말의 자비심도 품지 않는다
‘모두 죽인다.’
결단을 내린 서준은 동굴 내부에 들어선 순간, 체내의 기운을 넓게
퍼뜨리며 동굴 내부를 살핀다.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 기운으로 삽시간에 동굴 전체를 훑어내며 동 굴 내부의 생명체들과 지형지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가던 서준의 입 가에서늘한 미소가 흐른다.
‘비상 탈출구 같은 곳은 없네.’
일이 상당히 쉬워졌다.
입구만 막아낸다면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고개를 주억인 서준은 입구를 향 하여 가볍게 손을 내뻗는다.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회색빛 기 운이 동굴의 입구를 가로막는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모두 죽이는 것 뿐이다.
“사냥을 시작해볼까.”
고개를 주억이고 일(一)자의 형 태로 검을 그어내는 순간, 번쩍이 는 섬광과 함께 길을 밝히던 횃불 들이 일제히 사라지며, 동굴에 자 욱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쿠구궁-!
굉음과 함께 지축이 뒤흔들리며 입구에 설치되어 있던 함정들이 모 두 파괴되어 버린다.
이어서 서준의 신형이 한 줄기의 빛살이 되어 앞으로 쏘아진다.
“크악!”
“커헙-!”
한 줄기의 섬광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기이한 문장들이 새겨진 괴상한 가면을 쓰고 있는 숭배자들 의 육신이 조각조각 베어진다.
어떤 공격에, 어떻게 당했는지조 차 알지 못하며 허망한 죽음을 맞 이한다.
서준은 불과 1분이라는 시간이 되기도 전에 동굴 내부에 숨어있던 숭배자들을 제거해낸다.
자그마치 수백에 달하던 숭배자 들을 순식간에 제거해내는 데 성공 해내었지만 서준은 만족스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라 보긴 힘들겠군.’
분명, 고대의 존재들과 연관되어 있는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가벼운 공격을 단 일격도 받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준수하다고 볼 만한 실력자가 없 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몸통 정도밖에 되지 않 는 곳이다.
원하던 정보를 얻기에는 힘들어
서준이 속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 래고 있던 때였다.
‘ 이건?’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고대 의 존재들의 기운이 강렬하게 느껴 지고 있었다.
‘머리가 있었나?’
잡아낸다면, 이 비밀 집단에 대 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다.
서준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동굴 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쾅-!
굳게 잠겨있던 문을 가벼이 부숴 내며 고대의 존재들의 기운이 풍겨 져 나오는 방에 당도해냈다.
그곳에서 마주한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형태에서준은 의문을 느꼈 다.
“이건 뭐야?”
넓은 우주를 돌아다니며 기이하 거나 끔찍한 형태의 괴물 혹은 지 성체들을 봐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이 의아 함을 느낀 이유는 하나였다.
“인간이야? 혼돈인이야?”
도저히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없 는 형태다.
허나 혼돈인이라고 칭할 수도 없 었다.
팔과 다리를 대신해 무수히 많은 촉수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어깨 위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눈앞의 존재가 혼돈인이 아님을 대변해주 고 있었다.
“크하하하-! 드디어 왔구나! 어 리석은 침입자여!”
단순히 생김새만 기이한 게 아니 었다.
‘어째서 주샤콘의 힘이……
시스템 창에서도 알림을 보내왔 기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주샤콘은 분명 죽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눈앞의 남자에 게서 주샤콘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 을 것이다.
생기를 양분 삼아가며 광기를 증 폭시키고 있었다.
실제로도 이성을 잃어가는 다이 스케는 당장 서준의 얼굴을 마주하
고도 단순히 침입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머지않아서 광기에 생기가 모두 잡아먹히며 완전히 잠식되겠군.’
아마도 그때가 된다면 내면에 숨 어있던 광기가 고개를 들며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서준이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때였다.
목소리를 드높인 다이스케가 오 연한 눈빛으로 서준을 내려다본다.
“하하하-! 어리석은 침입자여, 내가 두려운가? 위대한 힘을 목도 했느냐?! 크하하하-!”
자신감의 근원은 이해가 된다.
지금 눈앞의 괴물이 가진 순수한 기운의 총량은 중격의 신 정도였다.
물론, 리벨리온 연합에 속한 강 자들의 격을 보자면 그리 강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괴물이 가진 진짜 힘은 단순히 기운의 총량에서 나오는 것 이 아니었다.
괴물이 풍기는 기운에는 단순히 마주한 것만으로도 정신을 병들게 하고, 무너뜨리는 광기가 배어 있었다.
의문에 빠진 서준의 모습을 보며
광기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여울 정도군.’
광기에 물든 정신은 다가오는 죽 음조차 인지 못하고 있었다.
“위대하신 고대의 존재시여, 부 디 미천한 편인인 제 몸에 강림하여 저 겁 없고 오만한 침입자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릴 수 있는 힘을 내려주소서!”
간절한 목소리를 홀리는 다이스 케의 주변으로 붉은빛 기운이 아지 랑이처럼 피어오른다.
“크하하-! 오신다! 오시고 있다
고!”
광소를 터뜨린 다이스케의 얼굴 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같이 빠르게 부풀어간다.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완전히 광기에 잡아먹힌 다이스 케가 마지막 말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콰광-!
유일하게 인간의 형태라 볼 수 있었던 얼굴이 폭탄처럼 폭발한다.
죽었다.
하지만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
터져나간 살점들이 검게 타오르 기 시작하더니, 방 안에 자욱한 어 둠이 휘몰아친다.
그 중심, 칠혹의 어둠을 두르고 있는, 붉은 두 눈동자가 풍기는 기 운에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 뭐야?”
어둠을 휘감은 붉은 눈동자, 눈 앞의 존재는 형태마저도 과거 사냥 했었던 주샤콘의 형태였다.
기이한 점이라면 어째서인지 움 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따지자면 움직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둠을 휘감고 있는 존재는 뒷걸 음질 치고 있었다.
육신이라 할 수 있는 칠흑과 같 은 어둠은 마치 겁이라도 집어먹은 듯이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네, 네놈이 어떻게!”
이어진 의문은 서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처음 느꼈던 기운은 정확했다.
당장 보이는 반응만 보더라도 눈 앞의 존재는 주샤콘이 확실하다.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린 서준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후웅-!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주샤콘의 어둠이 서준을 스쳐 지나가며 탈출 구를 향하여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당황할 것은 없었다.
애초에 질문을 던졌지만 순순히 대답을 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 없었다.
“느려.”
서준은 혼돈제라 인정받을 수 있 을 정도로 고된 수련을 통하여 크
나큰 성장을 이뤄낸 상태였다.
반면 주샤콘은 과거에 비해서 더 욱더 나으母 수준.
정확히 말하자면, 본체가 아닌 편린에 불과한 상태였다.
힘의 차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서준이 가벼이 손을 내뻗어 도망 치고 있는 주샤콘을 잡아당겨낸다.
“이, 이게 무슨!”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었다.
현실을 인지한 주샤콘이 다급히
소리를 내질렀다.
“멈, 멈춰라! 네놈이 원하는 정보 들을 내주겠다.”
“정보를 주겠다고?”
“그래,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 대가는?”
“이 분신체를 놓아주는 것.”
“필요 없어.”
서준이 비릿한 미소를 홀리며 검 을 쥐고 있던 손을 내뻗는다.
검에 꿰뚫린 육신을 바라보고 있 는 주샤콘의 입에서 의문 섞인 경
악이 터져 나온다.
“어…… 어째서!”
“너라면 믿겠어?”
지금 서준은 주샤콘의 말의 진위 여부를 확실히 판가름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주샤콘이 이 러한 맹점을 놓쳤을 리가 없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줄 리가 만무 하다는 것이다.
‘짚이는 게 없는 것도 아니고 말 이야.’
당장 이 자리에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측 들이 몇 가지 있었다.
괜히 주샤콘의 말에 속아 넘어가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다, 다시 한번 생각……!”
주샤콘이 마지막까지 잔꾀를 부 리고 있었지만, 의미 없는 발악이 었다.
서걱-!
순식간에 두르고 있던 어둠들이 완전히 갈라지고, 흩어진다.
내부에 숨겨져 있던 붉은 형태의 광기가 베어지며 허무하게 소멸했 다.
한 줌의 가루조차 남기지 못한 죽음, 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죽 음을 확인한 이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정보를 얻을 만한 물건이 있을 텐데……
그런 서준의 시선에 문득, 깨진 거울 조각들이 들어왔다.
겉으로 보아서는 일반적인 거울 처럼 보이지만 미약하게 남아있는 기운의 잔재가 단순한 거울이 아닌 통신용 아티팩트임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산산조각 나서 완전히 고치기는
힘들겠지만, 드워프 같은 전문가들 에게 가져다준다면 연결되어 있던 곳을 추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숭배자들의 머리에 닿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확인해봐서 나쁠 건 없겠지.’
정말 운이 좋다면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
설사 단서가 되지 못하더라도 크 게 상관은 없었다.
안정된 생활, 평화를 바라는 서준의 입장에서 고대의 존재들과 연 관된 집단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 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놈들의 규모가 생각보다 거대해.’
당연히 비축한 힘도 많을 것이 다.
아마도 이들의 목표는 고대의 존재들의 본체를 지구에 불러내는 것 일 것이다.
당장의 주샤콘이야 분신체라서 아무런 피해 없이, 손쉽게 제압해 냈다지만 만약 본체로 이곳에 강림 한다면?
절대 패배하지는 않겠지만 아무 런 피해가 없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했다.
주샤콘이 뿜어내는 광기에 잠식 된 사람들이 무수히 속출할 것이다.
심지어 이런 고대의 존재는 주샤 콘 한 마리가 전부가 아니었다.
‘글룬, 그로스, 글라키.’
당장 아는 것만 해도 세 마리나 더 있었다.
이런 고대의 힘을 품은 존재들이 불시에 침공을 해온다면 상당한 피 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제거 해둬야만 했다.
‘리벨리온을 소집해서 제대로 뿌
리를 뽑아놔야겠군.’
앞으로 가족과의 평화로운 일생 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이제는 조금 안정되었나 했더니
8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뼈아프 게 다가온다.
“쯧.”
허나 지난 일에 미련을 가지고 후회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빠르게 바로잡아 내야지.”
고개를 주억이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아낸, 서준은 곧장 동굴 바깥 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