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권 8화
408화
뿐만이 아니었다.
서준의 등장과 동시에 항거할 수 없는 압박감이 일대를 가득 메운다.
‘이게 무슨……?’
전쟁터에서 멀리서 보았을 때와 는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달라진 거겠 지.’
욕심에 눈이 멀어 우물 속에 갇 혀 버린 일본과 다르게 한서준 의
장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끝없이 성장을 해온 것이다.
‘그릇 자체가 다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존재 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각 나라의 수장 혹은 왕, 황제들은 은연중에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존재들이었다.
당연하지만 일본의 천황 또한 상 당히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존재였 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이것이 진짜 황제의 위엄.’
압도당한다.
긴장감에 등골에 식은땀이 홀러 내리고, 목울대로는 마른침이 꿀꺽 - 삼켜진다.
“어째서 온지가 중요한 거지.”
여유 있지만 느리지는 않고 고고 하면서도 위엄 있는 말을 흘린 서준의 시선이 료를 향한다.
마치 뇌리에 때려 박히는 듯한 목소리.
그 마법 같은 음성에 잠시 넋이 나가있던 료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 며 답한다.
“죄, 죄송합니다! 외교 장관으로 서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저의 실수였습니다! 조금 더 이들 의 욕심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상황 파악이 빠르네.”
스산한 미소를 그린 채로 료를 바라보던 서준이 고개를 주억인다.
“일단 보류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머리를 바닥에 찍으며 감사를 표 하고 있는 료를 뒤로한 채로 서준 은 거대한 문을 향하여 걸음을 옮 긴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얼굴을 굳힌 요시다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에 손을 올리며 살 의를 일으킨다.
이곳은 자그마치 일본 천황이 업 무를 보는 집무실이었다.
바깥에는 유능한 각성자들과 군 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을 뿐더러, 최첨단 마공학으로 설계된 경계 장치들이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그런 곳에 아무런 소음이나, 소란 없이 잠입했다.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일 것이다.
“직접 확인해 봐.”
여유롭지만 위엄 있는 걸음을 내 딛는 서준의 모습에 요시다가 번뜩 정답에 이르렀다.
“……한서준 의장이군.”
굳이 말하자면 무결의 주신, 혼 돈제라는 갖가지 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에 한해서는 역시 그 런 호칭보다는 한서준 의장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애초에 지금 중요한 것은 호칭 따위가 아니었다.
“어리석은 것! 제 발로 호랑이 굴로 걸어 들어오다니!”
요시다의 입가로 잔인한 미소가 피어난다.
서준의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담 긴 살의는 더욱더 짙어진다.
“우리가 지난 8년이라는 시간 동 안 네놈과의 싸움을 준비하지 않았 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요시다가 잽싸게 벽으로 달려가 붉은색 버튼을 누른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서준은 가볍게 요시다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각 인시켜주러 온 거니……
확연한 격차를 제대로 보여주는 쪽이 효과가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 꼴이 다소 가관이다.
드르르륵-!
톱니바퀴가 회전하는 듯한 소리 와 함께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하더 니 서준의 주변에 육망성의 마법진 이 그려진다.
동시에 백색 섬광이 서준의 신형 을 뒤덮는다.
가만히 그 마법을 받아들이니, 일대의 풍경이 어둡게 변하며 흡사 감옥과 같은 돔 형태의 결계가 모 습을 드러낸다.
동시에 다시 한번 마법진이 빛을 발산하더니 서준의 눈앞에 한 남자 의 형상이 홀로그램으로 떠오른다.
시선 속에 들어오는 홀로그램의 형상은 방금 스위치를 눌렀던 사내 가 아니었다.
60대 중반쯤, 욕심이 가득한 두 꺼비와 같은 인상을 한 남자의 형 상을 하고 있었다.
-반갑군, 한서준 의장.
화면 속,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 을 지은 채로 턱짓만으로 인사를 건네 온다.
이렇게 오만한 표정과 몸짓으로 인사를 건네을 남자의 정체는 한 명뿐이었다.
“고조 사토시.”
일본에서 천황이라 칭송받는 이.
그가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기에서준 또한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대 답했다.
-듣던 것보다 더 버릇이 없군.
“피차일반이지.”
굳이 따지자면, 귀빈이라 볼 수 있는 손님을 밀실에 가둔 쪽이 더 질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 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오만한 성격은 그대로 군. 지금 갇혀있는 함정에 대해서 알고도 이런 여유를 보일 수 있을 지 궁금하군.
“부디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 네.”
-……최후의 통첩으로 어느 정도 대화를 하기 위해 얼굴까지 비췄건 만, 우선은 그 오만한 성격부터 고
쳐놔야겠군.
한숨을 푹 내쉰 사토시가 고개를 내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마음껏 지껄여 둬, 대신……. 그 대가는 목숨이 될 거야.”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니. 쯧, 굳이 대화를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니 이 만 물러가도록 하지, 고통 속에서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도록 해라, 어리석은 것.
사토시가 고개를 내젓자 눈앞에 있던 홀로그램의 형상이 자취를 감 췄다.
대신하여 어둠이 내리깔린 감옥 에서 갖가지 소음들이 연달아 들려 오기 시작했다.
키이익-!
시작은 몬스터의 소리였고, 뒤이 어 기계가 회전하는 소리가 돔 안 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고작 몬스터들 몇 마리를 풀어 놓았을 리는 없을 거고.’
과거의 일이라지만 알려진 것만 해도 천사와 악마 그리고 거인과 용족의 침공을 막아낸 영웅.
그런 서준을 고작 몬스터로 따위 로 잡으려 했다면, 사토시는 단순
한 멍청이다.
“ 역시......
그가 준비한 것은 일반적인 몬스 터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뛰쳐나오는 몬스터들의 몸에는 갖가지 기계장치들이 부착 되어 있었다.
네 다리가 모두 기계로 이루어져 있거나, 등에 날개 혹은 포신의 형 태로 부착된 기계들이 푸른빛을 발 산해낸다.
료가 내비친 자신감의 근원을 짐 작한서준이 비릿한 미소를 홀린다.
“나름 머리를 썼네.”
마공학이 접목된 신체 개조를 통 해 몬스터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몬스터들은 저마다 장단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마공학을 이용한 신체 개 조를 통하여 그 단점을 메꿔내고 강화시켰다.
‘몇몇은 핵을 동력으로 삼고 있 네.’
고출력의 핵에너지를 이용한 움 직임은 웬만한 반신급의 강자라 할 지라도 쫓아가기가 벅찰 것이다.
심지어 쏘아내는 광선 한 발, 한 발의 파괴력 또한 지구상의 지도를
바꿔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 지고 있었다.
나름대로 서준을 잡기 위해 연구 하고 발전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의 서준 에게는 너무나도 부질없는 공격일 뿐이었다.
‘고작 이 따위로……
최선을 다하여 대비하고 연구한 거였겠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애초에 욕심에 눈이 멀어 서준을 적대하는 쪽으로 생각이 흐른 것부 터가 문제였다.
“어떻게 할까.”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혼돈기를 폭사시켜 달려들던 몬스 터들을 찢어발겨 버린다.
이어, 감옥과 같은 형태로 펼쳐 진 결계를 부숴낸다.
위협적이지는 않았으나 어찌 되 었든 밀실에 갇혀 있고 싶지는 않 았으니 말이다.
모든 위협이 사라진 이후, 서준 은 잠시 손을 턱에 괸 채로 생각에 잠겼다.
‘국가적으로 위협적인 행동을 취 한 것도 모자라서 기껏 대화를 위 해 찾아온 귀빈을 몬스터들로 위협
을 했다라.’
비릿한 미소를 그린 서준이 고개 를 주억인다.
“명분은 마련됐네.”
먼저 시비를 걸어왔고, 목숨을 위협했다.
일말의 양심조차도 문제될 것이 없어진 것이다.
서준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도 반짝이고 있었다.
사토시의 집무실 내부.
“축하드립니다, 천황 폐하. 역사 에 길이 남을 신화를 쓰신 것이십 니다.”
“한서준 의장을 잃은 대한민국은 우리 일본, 천황 폐하의 위대함에 무릎을 꿇게 되며 리벨리온의 본거 지를 넘기게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일본 제국의 위업을 이루실 수 있게 되 신 겁니다.”
“다시 한번 한국 놈들에게 복종 하는 법을 가르쳐줘야겠군요.”
욕심으로 똘똘 뭉친 사토시의 측 근들이 물개박수를 쳐가며 쉴 새 없이 아부를 퍼붓고 있었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 배를 불 리기 위하여 아부를 하고 있는 간 신의 모습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훌륭한 모습이군.’
애초에 욕심에 눈이 먼 간신이라 는 것을 알고 뽑았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고위 관직자라는 것이다.
이는 즉,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 의 뜻대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충실한 수하 라는 것이었다.
사토시는 연신 아부를 쏟아내는 측근들을 흡족한 미소를 띤 채로 바라본다.
“경하드립니다, 외교 장관 그 무 식한 놈도 이제는 천황 폐하의 혜 안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 다.”
사토시의 입장에서는 가장 훌륭 한 충견이라 할 수 있는 요시다가 곁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보고는 들었네, 한서준 놈이 사 라진 뒤로도 계속해서 같은 자세로 있다 했었나?”
“예. 아직까지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크하하……! 곧 들려올 소식에 스스로의 무지함에 붉어질 얼굴을 볼 수 있겠군, 지 혼자 현명하고 똑똑하다 생각했던 놈이 처참히 무 너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겁구 나.”
“본격적으로 전쟁을 하기에 앞서 가지를 쳐내실 생각이시겠지요?”
“당연한 거 아니겠나, 내부의 적
이 외부의 적보다 두려운 법이지, 정비를 끝낸 우리는 대일본 제국으로서 똘똘 뭉쳐 세계, 아니 모든 차원들을 정복해나갈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사토시의 선언에 요시다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 태껏 얼마나 갑갑한 생활을 해왔단 말인가?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거 머쥐게 된 힘이 있음에도 리벨리온 의 눈치를 보느라 야망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한서준 의장이 죽음
으로써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이 다.
‘한국을 시작으로 중국과 남미 대륙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까지 모 조리 다 정복해내 주마.’
오랜 과거에도 미처 이루지 못했 던 위업을 일구어내며 당당하게 역 사의 한편을 장식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전신에 짜릿- 하는 전류가 일어나며 요시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흐르고 있을 때였다.
똑똑-!
갑작스레 들려온 노크 소리에 요 시다가 황급히 눈을 돌려 사토시를
바라본다.
사토시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로 요시다를 노려보고 있었다.
온갖 아양을 떨어가며 힘들게 따 놓은 점수가 깎인 것이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요시다 가 호통을 내질렀다.
“누구냐!”
“정보부 소속, 미나미 요시야입 니다.”
“내가 분명 이 시간에 회의실 근 처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고 명 령하지 않았느냐! 이 일은 필히 문
책하도록 하겠다!”
요시다의 노기 어린 목소리에 겁 을 집어먹을 만도 했거늘, 문 너머 의 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내 뱉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천황 폐하 께서 반드시 아셔야 할 소식이 있 어서 전하러 왔습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