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권 7화
407화
강석호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 피를 내리고 있던 와중, 서준은 시 선을 분주히 움직이며 주변을 두리 번거 렸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정말 여러모 로 많이 변했네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도 기존 서준이 알고 있던 많은 것
들이 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창문 밖, 연합 본부에 위치한 높은 탑이었다.
“마법과 공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워프 장치, 사람들에게는 공 간이동소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외로도 마공학 자동차, 캠핑장치, 화기 등 갖가지 분야에서 큰 성장 을 이루어 냈죠. 이 모든 게 의장 님께서 개척하신 신세계라고 볼 수 있죠.”
“저 혼자 이뤘다고 보기에는 너 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죠, 그러 니까 이건 모두가 노력하고 발전한
결과죠.”
강석호와 대화를 나누며 계속해 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준의 시 선이 탁상 위에 놓인 서류들에 고 정된다.
“발전한 만큼이나 어두운 면도 많이 생겼네요.”
뭐든 밝은 면만 존재할 수는 없 는 법이었다.
악행을 일삼는 범죄자들은 진보 한 기술을 이용해가며 더욱더 악랄 하면서도 흉악한 범죄들을 일으키 고 있었다.
때마침, 진한 꽃향기가 풍겨져
나오는 커피를 서준의 앞에 놓인 탁상에 내려놓은 강석호의 입이 열 린다.
“현재 저희 지구, 리벨리온 연합 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이자 업보이기도 하지요.”
“제가 맡아줬으면 하는 업무가 있으신가 보네요.”
강석호는 서랍 안에 넣어 놓은 서류를 꺼내어 조심스레 서준의 앞 에 내밀었다.
“전쟁으로 그렇게 많은 피를 흘 렸으면서도……
보고서를 읽어가던 서준의 얼굴
에 씁쓸함이 어린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옆 나라 일본에서 자그마치 전쟁을 준 비하고 있다는 징조들이 파악되고 있다는 보고서였다.
“고조 사토시라는 새로운 천황이 군대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무공과 마법을 익힌 용병들을 대거 고용하 고 있을 뿐더러 고도의 마공학으로 만들어진 화기들을 수집하며 힘을 비축한 채로 저희 한국을 향해 포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죠.”
어째서 이런 상황까지 방치했냐 고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의장의 자리가 비었음에도 오랜 기간 리벨리온을 유지, 결속시켜낸 만큼 강석호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 가 없었다.
이런 사건을 아무런 연유 없이 방관하고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놈들이 무슨 술수를 부린 거 죠?”
무공, 마법, 마공학, 각성자들까 지. 지금 리벨리온은 은하계 최강 의 차원 연합이라 볼 수 있었다.
비록 서준이 없었다 할지라도 강 석호는 리1켈리온이라는 차원 연합
의 부의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다.
평화를 위협하려 한다면 곧장 병 력들을 움직여 제압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서준의 질문에 강석호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린다.
“사토시의 세력은 표면적으로 저 희 리벨리온을 지지하고 있으며 군 사 배치는 명분상 훈련으로 포장해 내고 있습니다.”
리벨리온 연합은 기본적으로 평 화 화합을 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 리
벨리온의 군대를 직접 움직여 압박 을 가한다면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오도록 미리 준비를 해놨을 것이다.
“이런......
강석호에게 험한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서준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욕 설을 꾹 누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정치를 하고 있네요.”
“맞습니다, 혹여나 정치와 연관 되어 불편하실 일이 생기실 것 같 으시면 편히 말씀해주십쇼, 이런
일들은 나라연천 님이나 하데스 님 에게 비밀리에 처리를 부탁해도 됩 니다.”
서준은 비릿한 미소를 홀리며 고 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차라리 잘됐어요.”
이건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관측이 되지 않아 보고되지 않았 을 뿐이지 많은 국가에서 이렇게 이빨을 들이밀려 할 수도 있었다.
“저라는 존재가 돌아왔음을 확실 히 알려야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심어놓은 존재감과 공포를 잊었 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을 어떤 방법으로 알릴까 고민했었는 데 마침 이렇게 적절한 것이 있다 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망각했다면 다시 머리에 새겨줘 야지.’
본심을 숨긴 채로 계산적이면서 도 정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것이다.
서준은 항상 절대자로서 군림해 왔다
여론 혹은 외부의 목소리를 생각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신경 쓴 적도 없었지.’
비단 본인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니 었다.
일본 놈들이 포문을 겨냥하고 있 는 것이 한국 땅이었다.
가족들과의 행복이 위협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암암리에 귀환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만큼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하 겠지만 자그마한 가능성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었다.
“이참에 신문물인 공간이동소를 저도 한번 이용해봐야겠네요.”
“바로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서준의 선언에 강석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일본, 도쿄.
“천황님께서는 지금 자리를 비우
셨습니다.”
거대한 문을 지키고 있는 뻔뻔한 사내의 말에 요시자와 료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천황님이 방 안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온 거다!”
“자리에 안 계신다고 했습니다, 외교 장관.”
“지금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요시다 대장!”
료의 분노 섞인 음성에 요시다라 불린 사내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그저 천황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드린 것뿐입니다.”
“한국, 한국만은 안 됩니다! 제발 작전을 철회해 주십시오!”
“천황님의 의지는 하늘의 뜻과 같네.”
“고귀한 혈통으로서 모든 시민들 의 존경을 받는 것은 당연하신 일 이지만 한국을 타격하는 것으로 리 벨리온 연합 본부를 점거하여 세계 를 지배하겠다는 행동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것이네!”
“한국을 공격한다니요! 무슨 말 씀이신지 전혀 모르겠군요. 저희 또한 리벨리온 연합처럼 평화와 화
합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이만 물러가시지요.”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요시다가 강하게 손을 내뻗으며 료를 밀어내 려 한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손길로는 료 를 조금도 밀어낼 수 없었다.
애초에 요시자와 료, 외교 장관 에 괜히 오른 것이 아니었다.
비상한 두뇌는 당연했고, 육체 능력 또한 A급 각성자라 칭송받던 인재 였다.
그에 비해 요시다는 각종 비리를 통해 낙하산으로 장군의 직위를 거
머쥔 거머리와 같은 자였다.
료가 이런 힘 싸움에서 밀릴 리 가 없었다.
오히려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친 료가 눈앞의 문을 바라보며 외친다.
“요시다 장군!”
기운을 한껏 담은 료의 음성이 거대한 문 너머 넓은 방 내부까지 울려 퍼진다.
“예의가 없군!”
분노한 표정의 요시다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진정 피를 보려 하는 것인가,
외교 장관!”
“네놈과 천황이야말로 정녕 피를 보기 싫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두어 야 한다! 대체 리벨리온의 의장인 한서준이 있는 대한민국에 선제공 격을 하여 무슨 꼴을 당하려고 이 런 어리석은 짓을 행한단 말이냐!”
료의 우렁찬 외침에 요시다가 미 간을 찌푸린 채로 소리를 내질렀다.
“한서준! 한서준! 지겹지도 않은 가?! 리벨리온 연합을 등에 업고 있다는 이유로 과거에 한번 지배했 던 나라 따위가 무서워서 이렇게 움츠러들어 있으니 우리 일본이 전 과 같은 위세를 가지지 못하는 걸
세!”
“자네가 리벨리온 연합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해보지 않았기에 그 딴 말을 지껄일 수 있는 걸세.”
비릿한 미소를 지은 료가 요시다 를 응시한 채로 입을 열었다.
“한서준 의장님은……. 우리 일 본이 아무리 강한 힘을 비축한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바꾸실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시 네.”
살기 어린 요시다의 말에 료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어째서
벌써 8년이란 시간 동안 단 한 번 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거 지?”
“그저 나설 필요가 없기에 지켜 보고 계셨을 뿐이겠지.”
“말도 안 되는. 아마 큰 부상을 입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이거 나 그도 아니라면 전쟁 중에 사망 을 한 것이겠지, 크하하하!”
“직접 보고 들었음에도 의장님의 힘을 우습게 여기다니, 기어이 욕 심에 뇌가 절여졌군, 조금만 생각 해 보아도 현실을 깨달을 수 있을 텐데.”
“한서준 의장이 굉장한 강자라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겠지. 헌데 기 술의 발전력은 그를 뛰어넘고 있네, 마공학이 시대를 주도하고 있네! 외교 장관. 자네는 이렇게 너무나 당연한 현실도 모르고 있는 건가?”
“멍청한 것, 마공학 화기들이 아 무리 뛰어나 보인다 할지라도 의장 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골동품이 될 걸세.”
료의 확신 어린 음성에 요시다가 잠시 몸을 움찔- 떨었지만, 얼마가 지 않아서 고개를 내저었다.
“어리석었군, 진화와 발전을 받
아들이지 못한 이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인 것을……. 이만 물러가게나, 천황님께서는 현 재 공석이시니.”
“후회하게 될 걸세, 만약 의장님 께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시게 된 다면……
“발전된 기술과 과학의 힘을 체 감할 것이고, 결국 무릎을 꿇게 되 겠지.”
요시다가 어깨를 펴 자신감 있게 말하는 모습에, 혀를 찬 료가 고개 를 내저었다.
‘기어이 우리 일본은 또다시 쇠
퇴의 길로 접어들려 하는군……
강렬한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각성자 생활과 고된 정치 생활들 도 이 직감으로써 버텨왔기에 확신 할 수 있었다.
‘한서준 의장이 지구로 돌아왔 다.’
머지않아 일본에 방문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한서준 의장이 일본 에 방문하게 된다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가며 양쪽 의 의견을 듣고 조율해내는 자리의 직무를 다하지 못한 만큼 외교 장
관인 자신의 책임이 완전히 없다고 는 볼수 없었다.
어떠한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욕심에 눈먼 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흘러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저 바랄 뿐이었다.
천황이 한시라도 빨리 정신을 차 리기를, 부디 이 일본이란 땅의 멸 망을 부르지 않기를 말이다.
“이따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괜한 헛걸음할 거 없네.”
뒤돌아선 걸음을 옮기려던 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근 래 계속 염두하고 주시했던 인물이 걸어오고 있었다.
“당, 당신은!”
불길한 예감들은 어째서 빗나가 지 않는 것일까?
제발 일본에 모습을 보이지 않기 를 바라던 한서준 의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행이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리를 비 웠기에 얼굴을 잊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눈앞의 남자는 자신을 알아 보고 있는 눈치였다.
“대체 언제 일본으로 오신 거 죠?”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지.”
무심한 검은 눈동자가 주변을 훑 는다.
서준이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마 주쳤었던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찰 나의 시간이었는데도 숨이 턱- 하 고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