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권 2화
402화
자연스레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 진다.
‘대체 균열 너머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있는 거야.’
골렘으로 짓밟고, 혼돈의 무구들 로 쉴 새 없이 찢어발겨도 아리안 투가 이끄는 군세들의 숫자는 조금 도 줄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욱더 늘어나고 있었다.
아리안투가 열어 낸 균열을 통하
여 혼돈왕 혹은 영주급들이 지속적 으로 쏟아져 나오며 골렘들을 부숴 내는 상황이 잦아지고 있었다.
재빨리 다시 혼돈기를 운용하여 새로운 골렘을 소환해내고 있었지만, 그사이 균열을 넘어 온 아리안 투의 군세는 더욱더 늘어나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답 은 한 가지뿐이다.
‘아리안투를 제거해야 해.’
병력들을 아무리 잡아 봐야 끝이 없을 것이다.
수장, 아리안투를 제거해야 하는 데 그 접근이 쉽지가 않았다.
우선 아리안투 또한 혼돈구를 다 섯 개 가지고 있었다.
서준보다 상위 혼돈제라는 것이 며, 실제로 공격들의 위력 또한 상 당했다.
콰과광-!
내뻗는 손짓, 발짓 한 번에 혼돈 의 세계의 지형 자체가 변화한다.
저런 무식한 공격에 직격당하게 된다면 서준이라고 해도 중상을 면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그걸로 모자라 주변으로 는 현재 혼돈왕에 오른 존재들이 다섯이나 아리안투를 호위하듯 지
켜서고 있다.
오랫동안 아리안투의 옆을 지켜 온 정예 중의 정예인 것인지 일반 적인 혼돈왕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 힐 정도로 강했다.
어지간한 골렘들은 열 합도 견디 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다.
‘저걸 뚫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아무리 힘의 차가 확연하다 할지 라도 갑작스레 쏟아지는 대량의 골 렘들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을 것 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혼돈인
들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 빈틈이 생기게 된다.
이로 인해 생길 문제점은 간단했 다.
‘카터 님의 전투에 변수들이 개 입되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그 변수는, 카리안에게 기회를 쥐어주며 서준의 목숨마저 위협할 것이다.
‘골렘을 소환하여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혼돈제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혼돈기의 양이 무한해진 것은 아니 었다.
총량은 정해져 있다.
‘이제 남은 혼돈구의 숫자는 셋.’
아직은 여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 보자면 벌써 한 개 를 모두 소모한 것이다.
이전처럼 신명의 힘에 기대어 새 로운 혼돈구가 생기는 것을 바라기 에는 주변의 환경이 좋지 않다.
결국 무결기만 남게 되는 순간, 더 이상 혼돈의 골렘들을 소환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어쩔 수 없어.’
이대로라면 패배가 확정된다.
다소 도박수를 던져서라도 판도 를 바꿔내야 한다.
서준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 며 전략을 짜내어 가고 있을 때였 다.
쿠궁-!
전장 아니, 혼돈의 세계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며 갑작스럽게 주변이 뒤흔들린다.
오죽했으면 한창 전투에 집중을 하고 있던 모든 혼돈제들이 한 몸
이라도 된 듯 고개를 동시에 하늘 로 돌렸을 정도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시 선 중, 하나인 서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하늘에서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이가 내려오고 있었다.
회백색의 하늘 높은 곳을 양 갈 래로 쪼개듯이 커다란 게이트를 열 고 혼돈의 세계로 익숙한 신형이 넘어온다.
검은색 긴 머릿결을 흩날리며 양 손을 휘둘러 찢어내 균열로 서준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던 혼돈인들을 단숨에 집어삼켜 내며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세계로 날려 보냈 다.
너무나도 짧고 간결한 동작과 속 도와 군단을 삽시간에 집어삼켜 버 리는 엄청난 위력에 끊임없이 군세 를 쏟아내던 아리안투마저 잠시 넋 을 잃었다.
그 광경에서준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흐른다.
물론, 단순히 든든한 아군이 왔 기 때문은 아니었다.
눈앞에 나타난 이들은 서준이 오 래토록 보고 싶어 했고 그리워했던 존재였다.
“서연......
짧은 부름에 화답하듯, 고속으로 지면으로 떨어져 내린 서연이 선을 긋듯 팔을 휘두르자 분노한 아리안 투가 휘두른 공격이 회색빛 촉수들 에 휘감겨 사라진다.
‘저건 뭐지?’
충격 자체가 없었다.
공격을 막아냈다는 느낌아 아니 었다.
마치 공격을 다른 공간으로 흘려 보낸 듯한 신비한 능력에서준의 눈이 반짝이고 있을 때였다.
짧은 시간 여유를 얻은 서연이 고개를 돌리어 서준을 바라본다.
“상태를 보아하니 다친 데는 없 네.”
“다행히 네가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서 도와줬잖아.”
“고마우면 치맥으로 갚아.”
짧은 대화를 이어갈수록 처음 반 가움으로 맞이했던 표정은 온데간 데없어졌고, 서연의 표정이 빠른 속도로 굳어진다.
“제멋대로 사고나 치고 있고, 집 에 돌아가서 보자.”
“원래 각자 개인의 사정이 있는 거지.”
코웃음을 치는 서준의 모습에 입 가에 피식- 미소를 흘린 서연이 고 개를 돌린다.
“일단 이것들을 정리하고 애기하 자.”
앞뒤 상황은 자세히 알 수 없었
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눈앞의 기괴한 생명체들은 서준 을 차갑게 노려본 채로 살의를 발 산하고 있었다.
명백한 적이라는 것이었다.
“쓰레기 같은 것들이, 감히……
친오빠를 저런 얼굴로 바라보고, 때릴 수 있는 것은 본인뿐이다.
서연에게서 막대한 양의 공허의 힘이 피어오른다.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서연의 기세에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지?’
한서준, 본인도 혼돈의 세계에서 적지 않은 성장을 이루었다.
때문에 다시 돌아간다면 서연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크게 놀래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소 착각이었던 듯했다.
‘방금 전 말도 안 될 정도의 공 간 조율 능력도 이해하기 어려운 데……
서연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혼돈 구는 분명 혼돈제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그 수가 자그마치 네 개.’
같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지금의 서준과 동등한 힘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 는 상황이었으나, 그보다 먼저 궁 금한 것이 있었다.
“부모님은?”
“아닌 척하시면서 엄청 걱정하고 계시지.”
“……건강하시지?”
“육체적으로만 보자면……. 근데 마음은 말 안 해도 알지?”
정복왕과 계속 수련을 이어가고
있을 당시에도 서연은 매일같이 부 모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구를 오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란 할 것이다.
“……미안해.”
“나한테 사과할 거 없고, 정말 미안하면 돌아가서 효도해.”
애초에서준의 사과 또한 서연을 향한 것이 아닌, 계속 마음 졸이며 걱정했을 부모님을 향한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
어.”
“지켜볼 거야.”
서준이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이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의 회포를 방해하고 싶지 않긴 한데, 이제 슬 슬 전장에 합류하는 것이 어떤가?”
서준과 서연, 두 사람에게 공격 이 닿지 않자 화가 잔뜩 난 아리안 투와 그 군세는 공격의 방향을 틀 어내어 카터에게로 쏟아내고 있던 것이었다.
“ 죄송해요.”
오랜만에 다시 만나 따뜻한 대화
를 나누고, 그간 궁금했었던 안부 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어서였을 까?
저도 모르게 전장의 한복판에 있 었단 사실을 짧게나마 잊고 있던 서준이 민망한 표정으로 웃으며 다 시금 기세를 일으키려 할 때였다.
다시 한번 하늘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서연이 등장했을 때보 다는 굉음이 작았으며, 하늘의 갈 라짐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 너머에서 나타난 존재는 회색 빛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푸른빛
기운을 휘감은 독특한 인물이다.
가족만큼은 아니었지만 서준에게 있어 상당히 반가운 얼굴이었다.
“나라연천!”
서준의 반가운 인사에 푸른빛 기 운을 거세게 발산하고 있던 나라연 천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사도, 나라연천 위대하신 무결 의 신을 뵙습니다.”
뒤이어, 시선은 서준을 향해 살 의를 발산하고 있는 혼돈인을 향한 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고개를 뻣 뻣이 세우고 있다니.”
이어서 푸른빛 기운을 휘감은 나 라연천이 하늘로 높게 날아오른다.
직후, 바닥을 향하여 활짝 펼친 손바닥을 내뻗는다.
“쳐라.”
콰과광-!
한 줄기의 벼락이 되어 아리안투 가 이끄는 군단의 머리 위로 내리 치기 시작한다.
크에에엑-!
뇌전에 휩싸인 회색빛 군대는 한 줌의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영멸을 맞이한다.
당장 몰려드는 군세에 난감해하 던 카터의 입장에서는 급한 불을 끄게 된 것이었다.
서준은 그 놀라운 모습을 보며 또다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 뭐야......?”
나라연천에게는 혼돈구가 보이지 않는다.
즉, 혼돈제의 영역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돈왕과 영 주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의 파괴 적인 힘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바깥 은하에서 가지고 있 던 신격의 힘마저 유지되고 있었다.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의문을 표하는 서준의 모습에서연이 답했 다.
“정복왕님께서 축복을 걸어주셨 어.”
“축복……? 아니, 정복왕은 무사 한 거 맞지?”
“오빠 덕분에 엄청나게 건강하시 고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해지 셨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강력했던 정복왕이 더욱더 강해졌다.
그 말에서준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진다.
‘두 사람 모두 정복왕에게 수련 받았구나!’
또한 나라연천은 혼돈의 세계로 오기 위해 어떤 축복을 받았고, 그 로 인해 신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이다.
새삼스럽게 정복왕이란 존재에 대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우주의 패자(W者)……
사실, 정복왕은 강해진 것이 아 닐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득한 격차로 인해 눈치채지 못했지만 주신에 오 르고 힘이 강해지면 강해져 갈수록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정복왕은 그 저 힘을 숨기고 봉인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지금의 나라면 정복왕과 견주어 볼 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는데……
아직은 다소 헛된 바람인 듯했 다.
허나 절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준의 눈빛에 다시금 의
지가 불타올랐다.
‘조급하지 말자. 아직 성장할 방 향은 많아.’
이제 막 혼돈기를 다루기 시작했 을 뿐이다.
무공은 무극에 이르지 못했으며, 정복왕이 넘겨준 공허의 힘은 아직 도 몸에 잠들어 있다.
많은 길을 걸어온 듯했지만, 아 직도 갈 길이 멀고 방향성도 명확 하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전쟁의 승패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이미 승기는 기울어졌다.
그렇다면 처음 계획대로 가장 성 장에 도움이 되는 상대와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전으로 성장하기 위한 최고의 상황이 마련되었다.
차려진 밥상을 거부할 이유가 없 었다.
‘저 혼돈제……
혼돈인 중 놀라울 만큼 인간의 모습을 닮은 카리안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이 빛난다.
“눈빛을 보아하니 저놈이랑 싸우 고 싶은가 보네.”
그런 서준의 시선을 읽은 서연이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 가능할까?”
“편하게 가 봐. 어차피 저 덩치 도 나한테 화가 잔뜩 난 것 같으니 까.”
비록 혼돈구의 숫자가 적긴 했지 만, 군세를 다루는 저 혼돈제는 공 간을 완벽히 다루는 서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잘 부탁할게.”
“치맥 일주일 동안 사.”
가볍게 서로를 향해 미소를 보인 뒤, 두 사람은 각자 카리안, 그리고 아리안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