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권 19화
394화
-어쨌든 혼돈제에 오른 것을 진 심으로 축하해, 바깥 은하의 존재 가 내 두 번째 사제가 될 줄은 정 말 상상도 못 했어, 혼돈에서 오래 토록 살아온 이들도 견뎌내지 못한 시험인데…….
“오히려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유리했을 수도 있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이제 의문들은 모두 해결된 거지?
M O M
흐.
이미 두려움을 떨쳐낸 만큼 전설 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집착하며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남은 의문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찾아나가면 된다.
-그러면 나가는 길을 열어 줄게.
입가에 미소를 그린 크라후의 촉 수가 움직이자 서준의 바로 앞에 회색빛 균열이 일어난다.
“이 너머로 넘어가면, 혼돈의 세 계로 돌아가는 거야?”
—맞아.
“혹시 여기서 바로 바깥 은하로 넘어갈 문을 열 수는 없어?”
-가능할 것 같아?
“그냥 혹시 해서 물어 본 거지.”
피식 웃은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 며 균열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또 보자, 크라후.”
언젠가 또 볼 수 있다고 직감이 있었기에, 인사는 그리 길게 나누 지 않았다.
서준이 혼돈의 시련장에 들어간 후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 연스레 카터의 걱정이 커져갔다.
‘설마 죽어버린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는 행동 자체가 선을 넘은 행동이라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카 터의 눈앞에는 혼돈의 영주가 달려 들고 있었다.
허나 카터의 몸 주변에 띄워진 수많은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회
색빛 바람들이 매서운 기세로 달려 들던 혼돈의 영주의 육신을 찢어발 긴다.
손 하나 까딱이지 않고 엄청난 일을 해낸 카터의 미간이 찌푸려져 간다.
“곤란하군……. 파멸자들의 세력 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데…… 도움을 청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니.”
심지어 근래 들어 파멸자, 혼돈 제를 따르는 세력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그중에는 파멸자들의 수장인 혼
돈제와 엇비슷한 힘을 가진 녀석들 도 존재했다.
수호자로서 많은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카터는 대충 상황이 짐 작이 갔다.
‘또 다른 혼돈의 세계와 손을 잡
은 것 같은데……
바깥 은하만큼이나 혼돈의 세계 또한 드넓었다.
당연하지만 수많은 차원, 세계가 존재했다.
그리고 혼돈제가 다른 혼돈의 세 계에서 다른 존재들을 끌어들인 것 이다.
‘근데 대체 어떻게 문을 연 거 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카터의 손 짓 한 번에 혼돈의 영주 두 명이 한꺼번에 소멸한다.
순식간에 셋이나 되는 혼돈의 영 주를 처치해내었지만 몰려들고 있 는 적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더 드높은 함성을 내 지르며 밀려든다.
당연하지만, 전장의 광기에 미쳐 버린 것이 아니었다.
쿵—!
묵직한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 낸 것은 다름 아닌 혼돈왕이다.
카터의 손에서 회색빛 기운이 미 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육망성의 마 법진의 형태를 이루어 내며 그 혼 돈왕마저 순식간에 불태워 버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만반의 준비 를 해둘걸 그랬군.’
자고로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준비되지 않은 싸움과 준비된 싸 움.
그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 는 카터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채로 또 다른 혼돈왕을 향해 마법
을 발현한다.
끝도 없는 싸움.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밀려드는 군세를 상대함으로써 지쳐가는 카 터는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중얼 거린다.
“ 최악이군……
더군다나 지금 전장은 카터의 영 토라 볼 수 있는 땅을 수비하는 상 황이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압도적 인 화력으로 제압을 해내는 마법사 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수비라는 상황은 카터의 입
장에서 너무나 힘든 일이다.
특히, 단순한 군세가 아닌 마법 진을 구축하는 틈을 노려오는 혼돈 왕급의 강자들까지 섞여 있었기에 더욱 감당하기 버거웠다.
‘저장해놓은 마법들도 서서히 바 닥을 보이는군.’
준비하지 않은 싸움은 약한 만큼 항시 마법을 저장하여 드워프 주신 에게 부탁하여 만들어 둔 지팡이에 담아둔다.
덕분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싸 움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강함 을 보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지팡이에 저장해두 었던 수만 가지에 달하던 마법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라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 치는 수준이었지만, 말 그대로 숨 쉴 틈도 없이 달려드는 군세를 상 대하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 황이었다.
‘어쩔 수 없나.’
드워프 대신이 제작했다고는 하 나, 지팡이에 담겨진 마법들은 한 발, 한 발이 웬만한 주신들조차 쉽 사리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제작자의 역량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카터의 마법과 혼돈기로 강화를 시켰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드넓은 우주를 뒤져 보아도 손에 꼽히는 무기라 할 수 있는 것 은 분명했다.
‘잠시 숨이라도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만……
그리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24시간, 단 하루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지팡이에 저장된 마법을 절반 이상 복구해낼 수 있었다.
허나 애석하게도 눈앞에 달려드 는 파멸자, 혼돈인들의 숫자는 끝
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카터가 지키고 있는 철벽의 보루에 모인 모든 평화자, 혼돈인 들을 합친 숫자보다 최소 열 배는 많은 수준이었다.
‘이래서는 큰 희생이 나올 수밖 에 없다……
좋지 않았다.
이렇게 무식한 공격을 감행하면 서까지 파멸자에 속한 혼돈인들이 평화파들을 죽이려는 이유는 간단 했다.
‘이 혼돈의 세계에 평화자, 혼돈 인들의 숫자가 일정 수 이상으로
줄어들게 된다면……
혼돈의 세계의 의지가 파멸로 기 울게 된다.
세계의 의지가 기울게 되면 파멸 자들이 더 이상 어떤 제재나 규약 에 얽매이지 않고 바깥 은하를 침 공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혼돈의 세계에는 이미 균 열이 열려있는 상황이다.
백 프로의 전력, 아무런 힘의 손 실도 없이 혼돈이라는 재앙이 바깥 은하에 떨어지는 것이다.
우주를 수호하고 있는 카터로서 는 가장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때문에서준이 혼돈의 시련을 받 으러 들어간 지난 3년에 가까운 시 간.
카터는 누구보다도 바삐 움직이 며 평화자 혼돈인들을 모아, 철벽 의 보루에서 방어를 해왔지만 이제 는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만이 넘었었는데.’
이제 남은 평화자 혼돈인들의 숫 자는 간신히 천에 달한다.
반면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파멸 자들의 공세는 끝나지 않는다.
“이럴 때 그 친구라도 있었으면
지금쯤 상당한 전력으로 활약을 해 주었을 텐데……
혼돈의 시련장에 들어간 만큼 살 아만 온다면 크나큰 성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돌아올 때까지 지켜낼 수 있을 지 모르겠군……
씁쓸한 미소를 홀린 카터가 또 하나의 혼돈의 영주를 쓰러트린다.
몸은 자연스레 곧장 이어질 다음 공격에 대비를 한다.
여태껏 혼돈의 영주를 먹이로 던
지고 다른 영주 혹은 혼돈왕이 재 빠르게 공격을 가해왔다.
헌데 기이하게도 이어지는 공격 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몰려들던 혼돈인들 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문을 느낀 카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순 간이었다.
콰과광-!
진영을 이루고 있는 파멸자 혼돈 인들 후미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느껴지는 것은 폭발적인 혼돈기
‘ 원군?’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세계에 남아 있는 평화자, 혼 돈인들은 없었다.
‘설사 있다고 할지라도……
군세를 이루고 있는 파멸자, 혼 돈인들이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 지르며 후퇴를 하게 만들 정도의 강자는 없었다.
하지만 카터는 눈앞의 현실을 부 정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설 ..|”
머릿속에 문득,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때마침 혼돈기가 해일이 되어 몰 아치고 파멸자들을 쓸어내고, 그 길목에서는 거대한 기운에 비하자 면 왜소한 체구를 가진 인간이 수 십 자루의 회색빛 검들로 적들을 베어내며 걸어오고 있다.
인간이 걸음을 거니는 길마다 혼 돈인들의 육신이 도륙되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쓰러져나가는 모습에 카터는 입가에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 자네......
얼굴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혼돈의 세계에 인간은 그 리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익숙한 기운의 성질 은 카터의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어 준다.
“한서준-!”
목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단숨 에 수십의 혼돈인들을 베고 카터의 앞에 당도한서준이 활짝 웃는 얼굴로 답했다.
“카터 님.”
시련을 극복해낸 수행자가 화려 하게 돌아온 순간이었다.
높게 솟은 성채 내부.
마치 지구 중세시대와 같은 건물 양식의 집들이 모여 있는 건물로 들어선 서준을 향해 양팔을 활짝 벌린 카터가 말한다.
“철벽의 보루, 바깥 은하의 최후 의 방어선에 온 것을 환영하네.”
주변으로는 구르고와 비슷한, 다
소 맑은 눈망울을 가진 혼돈인들이 눈빛을 빛내며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이들이 많 네요.”
“자네의 추측이 맞네, 대부분의 성인 평화자들은 전장에서 명예로 운 죽음을 맞이했네.”
씁쓸한 미소를 지은 카터가 서준 에게 현재의 상황을 빠르게 설명해 준다.
불어난 파멸자 혼돈인들의 군세.
철벽의 보루의 상황과, 균형이 깨지게 되었을 때 찾아올 최악의
상황까지.
꽤나 무겁고 긴 이야기를 들은 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은하의 마지막 희망 같은 곳이 네요.”
“비슷하네, 실제로 철벽의 보루 가 무너진다면 무수히 많은 은하,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여럿 이 사라질 테니까.”
고개를 주억인 카터의 등 뒤로 꽤나 아기자기하고 둥글둥글한 인 상을 가진 혼돈인 하나가 뒤뚱거리 며 다가와 말을 건다.
[이번에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카
터 님.]
그 모습을 본 서준의 눈빛이 반 짝인다.
상대가 혼돈왕급의 기운을 가지 고 있는 것과 별개로, 홍미로운 점 이 하나 더 있었던 탓이다.
“얼굴이 크라후랑 상당히 닮으셨 네요?”
[카터 님께서 늘 말씀하셨던 혼 돈의 시련을 받으러 갔다는 내우주 의 인간이시군요…….]
“한서준이라고 합니다.”
[제 이름은 크로고. 크라후 님은 저의 선조라고 보실 수 있는 분이
십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 다, 한서준 님.]
“혼돈인들 사이에도 혈통 같은 게 있나?”
놀란 서준의 물음에 크로고가 피 식- 미소를 흘린다.
[사실상 여기에 있는 모든 혼돈 인들이 위대하신 크라후 님의 형제 자매이자, 후손들이죠.]
“……이해됐네요.”
그러니까 이 세계에 태초로 존재 했던 혼돈인은 바로 크라후다.
나머지는 그 뒤를 이어 태어나 마치 혈통을 이어가듯 서로의 존재
를 인지하고 가족이 된다.
마음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크라 후를 닮은 혼돈인은 처음 보네요.”
[저와 같은 혼돈인에게는 상당히 영광된 칭찬이군요. 이번 위기에서 도 도움을 주신 듯한데, 평화자들 의 수장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 겠습니다.]
“역시 평화자들의 수장이셨군요.”
[어쩔 수 없이 앉게 된 직책이죠, 저보다 훌륭하셨던 분들이 모 두…….]
쓴웃음을 짓던 크로고가 황급히 고개를 내젓는다.
이제는 혼돈인들을 지적 생명체 로 인지하게 된 서준은 다소 미안 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아닙니다. 저 또한 나가서 싸우 다 영광되게 죽어야 하는데…… 최 악의 상황에 대비해 아이들을 지키 려다 보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게. 크로 고 자네가 자리를 비워 아이들이 죽게 된다면, 그간 우리의 모든 노 력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걸세.”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카터 님.]
카터의 타박에 머쓱한 웃음을 지 은 크로고가 길게 뻗은 촉수로 자 신의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