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권 7화
382화
‘일격으로 끝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시간을 더 끌게 된 다면 필패(必敗)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파괴력이 부족했다.
‘무결의 힘이 갉아먹히고 있어.’
고리에 들어간 혼돈기가 많아지 자마자, 자신이 가진 포악함을 드 러내며 무결의 힘을 갉아먹고 있었
이래서는 혼돈왕을 일격에 쓰러 뜨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혼돈기를 배제 시킨다면 그 또한 파괴력이 부족해 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답함에서준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며 답 을 도출해낸다.
‘혼돈기를 바꿔내야 해.’
정의할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혼돈이 었다.
그렇기에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 도 혼돈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이걸 다르게 해석한다면……
어떠한 것,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는 말이었다.
물론, 지금의 서준에게는 그 정 도로 혼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재주는 없었다.
하지만 서준은 혼돈기가 만들어 낸 것이자, 나아갈 방향성들에 대 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파괴, 공허, 광기, 망각, 고대의 힘으로 분류되는, 혼돈에서 파생된 태초의 힘.
혼돈기에서 가장 근간적이면서도
쉽게 변환해낼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서준은 혼돈을 자유자재로 다룰 능 력이 없었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 봤으면서, 가장 익숙한 힘이라면 이야기가 달 라진다.
‘파괴의 힘이라면 다룰 수 있어.’
다뤄봤던 기운인 만큼 그 성질과 형태를 몸이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심장에 자리 잡고 있던 고리가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파지직-!
황금빛, 개벽의 검에 둘러진 회 색빛 기운이 보랏빛으로 변한다.
‘됐어.’
서준은 망설임 없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내질러 혼돈왕의 이마를 꿰뚫는다.
동시에 검에 담겨있던 두 가지의 힘이 공명음을 토해내며 폭발하기 시작한다.
콰광-!
눈앞에서 보랏빛 기운이 커다랗 게 폭발하며 소용돌이치듯 솟아났
폭발에 휘말려 커다란 부상을 입 은 채로 한참이나 허공을 날아다니 게 된 서준은 생각했다.
‘해냈어!’
지상, 전신이 터져나가는 것으로 단숨에 죽음을 맞이한 혼돈왕의 흔 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말이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너무나도 마 음에 들었다.
‘혼돈을 변환시켰어.’
비록 파생된 힘이고 이미 다뤄본 적 있는 것이라지만 혼돈기를 통하여 그 힘을 이끌어냈다.
서준에게 있어서 혼돈기가 가진 성장 가능성은 말 그대로 무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당장 방금 전과 같은 초집중 상 태로 돌입해야지만 다룰 수 있는 힘이었지만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 으로도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다.
실제로도 서준의 입가에서는 웃 음이 계속해서 홀러나오고 있었다.
그 상태로 지면으로 떨어져, 정 신을 잃은 서준의 앞에 빛을 뿜어
내며 나타난 카터가 혀를 내둘렀다.
“혼돈이 가진 무질서를 가능성으로 해석하다니, 대단하군.”
본래 모든 기운이란 사용하는 자 의 의지, 생각이 가장 중요했다.
특히나 정의를 내릴 수 없는 혼 돈의 경우에는 더욱더 말이다.
물론, 혼돈처럼 난폭한 힘을 자 신의 색깔대로 바꾸어 낸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이나 강한 신념과 믿음을 가져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로서도 수백 년이 걸린 일이 거늘……
서준은 불과 몇 개월 만에 해내 었다.
“자네에게 수호자의 힘을 넘겨주 게 되면 대체 어떤 힘이 될지 궁금 하군.”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 를 상황에 대해서 잠시 생각한 카 터는 미소를 그린 채로 고개를 주 억인다.
뒤이어, 의식을 잃은 서준을 허 공으로 떠올린 채로 통신 마법을 펼쳐 구로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치료 준비를 해주게나.”
-바로 준비에 들어갈게요!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카터는 시 선을 돌리어 엉망진창이 된 서준의 상태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흘린다.
‘……치료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군.’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을 것이 상 당했다.
고개를 주억인 카터는 지팡이를 휘둘러 서준과 함께 자신의 은신처 로 되돌아갔다.
* *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의식하지 않는 순간 정말 쏜살같이도 홀러가기 마련이 다.
이건 비단 주신에 오른 존재라 할지라도 바꿀 수 없는 현상이었다.
자그마치 1년.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서준은 끊임없이 혼돈기의 수 련과, 실전 대련을 해왔다.
수련을 시작했던 초기에 만났던 혼돈왕 정도의 강자를 만날 일은 없었지만, 주신의 격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영주들은 드물게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투들을 통하여 서준 은 자신이 혼돈왕을 이겼다는 것이 상당히 운이 좋았던 덕분이라는 것 을 알게 됐다.
‘놈이 나를 얕잡아봐서 방심해서 당했던 거였다니.’
비춰지는 기세도 보잘 것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 제대로 통제조차 하 지 못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
라 볼 수 있었다.
현실을 알게 되니 입안이 씁쓸해 진다.
‘만약 혼돈왕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나왔다면……
지지는 않았겠지만 이겼다고 장 담할 수도 없고, 전투의 승패가 어 찌 되었을지 알 수 없게 되었을 것 이다.
고작 반탄력으로 인한 부상 정도 로 승리를 거머쥔 것이 천만다행이 라 볼수 있었다.
실제로도 근래 싸워 온 주신과 비슷한 격을 갖춘 영주급에 이른
혼돈의 영주들 몇몇과 싸우며 큰 부상을 입거나, 심할 경우 죽을 뻔 한 위기를 넘긴 적도 있었다.
물론, 서준은 항상 승리했고 더 욱더 강해졌다.
목숨만 붙어있다면 카터의 마법 과 구로그의 치료를 통해 빠른 속 도로 회복할 수 있으니 성장 속도 도 상당히 빨랐다.
“지금의 자네라면 처음 만났었던 혼돈왕 정도는 방심하지 않았더라 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걸세.”
“그래 봤자, 혼돈왕 중에서도 서 열이 가장 낮은 놈이었다면서요.”
씁쓸한 미소를 보이는 서준을 향 해 카터가 고개를 내젓는다.
“서열이 낮다고는 하나 혼돈왕, 열 이상의 영주들을 이길 수 있는 존재네, 자네는 혼돈의 세계에 들 어왔던 초기에 비해서 상당히 강해 졌단 말이지.”
“……이 정도로는 부족해요.”
지난 1년간 말 그대로 피나는 노 력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너 무나도 멀었다.
“이런 성장 속도로 대체 언제 상 위의 혼돈왕들과 싸울 수 있게 되
는 거고, 혼돈제를 죽일 수 있는 거죠?”
“혼돈제는 저번에도 말했듯이 자 네 실력으론 한참이나 멀었네. 상 위 서열 수준의 혼돈왕들과 싸우는 것은…… 지금과 같은 성장 속도라 면 50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는 것을 확인한 카터가 다시 한번 입 을 열었다.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된다고 하 지 않았나, 고작 50년일세, 우주의 어떤 주신도 10년 만에 수위에 꼽 히는 강자가 된 적은 없네, 최소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의 수련을
거쳐 온 것이네, 그러니 자네는 충 분히 빠르다고 할 수 있지.”
“너무 위험해요.”
카터의 긍정적인 말에도 서준은 고개를 내젓는다.
“혹시 그 혼돈제를 사냥하기 전 에, 잠시 본래의 우주에 들렀다 와 도 될까요?”
“마음 같아서는 갔다 오라고 말 하고 싶네만 자네가 만들어 냈던 균열의 위치는 혼돈제의 영토였네. 즉, 외부에서 몰래 들어오는 것이 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내부에서 외 부로 나가려 한다면 혼돈제의 시선
을 피할 수 없네. 이제 자네가 빠 져나가기 위해서라도 평화자들의 세력을 모아서 한 번에 파멸자 놈 들을 쳐야 하네.”
그리고 혼돈제를 죽이고 균열을 탈환한다.
카터의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영생을 살아가는 주신의 기 준에 있어서만 보자면, 50년의 시 간은 그리 길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준의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부모님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 지 못하고 왔습니다.”
“돌아가서 사정을 설명한다면, 충분히 이해해주시지 않겠나?”
“사정을 설명할 수 있다면 말이 죠.”
무공을 익혀 건강한 육신을 얻었 다고는 하나 부모님들 모두 신격에 오르지는 못했다.
영원에 가까운 수명을 가지지 못 했다는 말이었다.
부모님들이 갑작스레 행방불명이 된 아들의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50년은 너무 길어요, 아무리 길 어도 10년 이내에는 여길 나가야
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혼돈의 세계에 당도했을 때도 최대 시간을 5년 정도로 잡았던 서준이었다.
하지만 혼돈제란 존재를 알게 되 고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니 10년까지 시간을 2배로 늘렸다.
그 이상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 었다.
서준의 어두워진 얼굴에 카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네. 만약 자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애써 맞춰진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평화자들이 패배하게 된다면 수많 은 은하계가 파멸을 맞이할 걸세, 어쩌면 자네의 부모님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도 사라지게 된다는 말이 지.”
미래를 위한 인내, 어쩔 수 없다 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은 카터의 말을 납득 할 수가 없었다.
이미 같은 불효를 저지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들이 똑같은 슬픔을 절대 로 느끼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처음 지구로 귀환했을 때 가족, 부모님들의 걱정과 안도의 시선들 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절대로 같은 아픔을 겪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리석은 생각 하지 말게, 큰 힘에는 마땅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 네, 자네에게 내려진 재능은 한 사 람으로서 살아가라고 준 것이 아니 란 말일세.”
침음을 흘린 카터가 해결책을 찾 기 위하여 손으로 이마를 감싼 채 로 고민에 빠져 있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없는 거라면 혼돈의 시
련을 치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구로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동시에서준이 시선을 황급히 돌 려 구로그를 바라본다.
“혼돈의 시련?”
-네! 제가 아는 강한 혼돈인들은 모두 이 시험을 통과하고 나왔어 요!
구르고의 알 수 없는 말에서준 의 시선이 카터를 향한다.
이마를 감싸고 있던 그는 고개를 내젓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 입을
열었다.
“위험하네, 혼돈왕들조차도 그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는 곳일세.”
“하지만 전 혼돈왕을 꺾어낼 수 있을 만큼 강해졌죠.”
“어디까지나 하위 서열에 불과하 네, 혼돈의 시련은 상위 서열의 혼 돈왕들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곳일 세.”
“괜찮습니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쳇바퀴처 럼 살아가면서 슬퍼하고 있을 부모 님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보다는 나
을 것 이다.
결단을 내린 서준이 구로그에게 로 시선을 돌린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수 있을 까, 구로그?”
_그건…….
“침착하게 생각하게나!”
크게 소리를 친 카터가 다급하게 발을 놀리며 서준의 앞을 막아선다.
“한때는 인간이었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네, 하지만 우 주를 위해서라도 참아 줄 수 없겠 나‘?”
알고 있었다.
대의라는 것.
하지만 서준은 의와 협을 중시해 온 이가 아니다.
오히려 악인이라 불리는 천마로 서 살아온 존재였다.
“죄송합니다.”
카터 또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었고, 그로 인해 수호 자로서 선택받았다.
지금 서준의 결심이 얼마나 무거 운 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맹세하 고 약속했던 거를 지키기 위해서라 도 전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거니 까요.”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