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25화
375화
혼돈의 세계.
내부에는 일전에 상대했던 혼돈 의 생명체와 같은 괴수들의 기운이 끊임없이 느껴진다.
끔찍한 지옥과 같은 광경에서준 은 본능적으로 정복왕 떠올린다.
‘말하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힘이 들었겠지.’
지키겠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싸 움을 벌여왔고 균형을 무너뜨렸다.
호기뿐인 풋내기 시절의 언행들 로 정복왕에게 이런 끔찍한 괴물들 뿐인 세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무거운 짐을 안겨주었다.
‘미안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 어린 사과였다.
물론, 비단 과거의 잘못 때문만 은 아니었다.
멋대로 행동하고 대신 혼돈의 세 계로 간 걸 알게 된다면, 그때의 정복왕이 얼마나 슬퍼하게 될까?
허나 다른 길은 없었다.
스스로가 보인 언행에 대한 속죄 였다.
‘그리고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 금은 희생을 보일 때다.
이걸로 내우주의 안전은 확실하게 확보될 것이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아니, 그런 시간조차 사치였다.
원반 너머, 시선을 가득 매우고 있는 수많은 혼돈의 괴물들.
‘하나하나가 주신과 비등한 존재
들..
저런 괴물이 혼돈의 세계에는 꽤 나 많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목숨을 걸어야겠네.’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 있는 서준 의 몸이 회색빛 기운에 휘감긴다.
동시에 강력한 흡입력이 서준을 집어삼켜 혼돈의 세계로 이끌고 들 어간다.
위험한 일이지만 죽을 생각은 없 다.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저 너머에서..’
무수히 많은 강자들과 싸우고 혼 돈을 정복해낸다.
그리고 무극을 완성할 것이다.
마지막 의지를 남긴 서준의 몸은 혼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 다.
조용하고 아늑한 방 안.
포근한 침대 위에서 정신을 번쩍 차린 정복왕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 보았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주변을 지키 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보이지를 않고 있었다.
“......서준?”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하들의 모 습에 정복왕의 동공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게, 기억을 더듬어가며 기억을 잃기 전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혼돈과의 접촉, 그 내부에서 나 눈 대화, 계약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된 서준의 모습까지.
모두 기억해 낸 정복왕은 다급히 스스로의 몸을 관조한다.
‘안 돼!’
계약으로 인해 육신을 갉아먹던 공허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연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계 약이 해지됐을 리가 만무했다.
지켜주어야 할 사람에게 도리어 보호를 받아버린 것이다.
정복왕은 분한 마음에 울음이 터 져 나올 것 같았지만 감정을 빠르 게 추슬렀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지?”
“일주일 정도 의식을 잃고 계셨 습니다.”
예상 외로 많이 흘러간 시간에 정복왕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이 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현실을 인지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 나가야 한
“상황은?”
“정복왕님께서 돌아오신 이후, 갑작스레 실종되신 한서준 님을 찾 기 위해 라 님과 한서연 사도께서 수색대를 꾸리려 했지만 물러났던 고대의 존재들이 돌아와 다시 전선 으로 나가셨습니다.”
하나하나가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조급함에 잡아먹혀서는 안 되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빠르게 머 릿속으로 생각해낸다.
‘일단은 몸을 회복하고 전쟁을
종식시킨다.’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 다.
그러나 최선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서준이라면 그곳에서도 충분히 버텨낼 거야.’
세계의 균열에 존재하는 혼돈의 세계.
본래의 힘을 되찾아낸 이후에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균열을 넘어 혼돈의 세계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조금만 버텨 줘, 내가 갈 테니 까.’
굳은 다짐을 하는 정복왕의 주변 으로는 회색빛 기운이 차갑게 몰아 치고 있었다.
혼돈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사실 서준은 어떠한 신격들도 알 고 싶어 하지 않는 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다루던 힘이니까.’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힘이었다.
회색빛 기운, 혼돈의 힘은 어떠 한 힘보다도 난폭하면서도 포악한 힘이었다.
혼돈의 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며, 강력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괴물과 같은 존재였다.
‘내가 다룰 수 있는 기운의 종류 중 가장 난폭하고 포악하다고 말할 수 있지.’
실제로도 웬만한 기운들은 그저 맞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집어삼켜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은 은연 중에 혼돈의 힘의 사용을 자제해왔 다.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너무나 도 강력한 힘이었지만, 그만큼 위 험하다고 생각했기에 최대한 자중 하고 구석 편에 숨겨 놓고 있었다.
과거 혼돈의 힘을 잘못 다루어 잡아먹히거나, 정신이 나가버릴 뻔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괜히 모든 고대의 힘의 시초가 아니라는 거지.’
파괴, 공허, 광기, 망각, 이 모든
힘들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혼 돈의 힘이었다.
물론, 파생되었다고 해서 혼돈보 다 약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실제로도 강함을 꼽자면 다른 순 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순수한 파괴력만 보자면 역시 파괴가 최고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돈이 분명 히 강력한 힘이라 볼 수 있는 이유 는 대부분의 고대의 힘을 집어삼킬 수 있는 포악한 습성 때문이었다.
이는 서준이 본인이 시험을 해서 깨닫게 된 사실로서,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었다.
‘파괴의 힘과 혼돈의 힘을 동시 에 운용하면……
일단 몸 내부에서 발현되던 파괴 의 위력이 줄어든다.
표출되는 기운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두 힘을 양손에 하 나씩 만들어 강제로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파괴가 완전히 잡아먹히게 되 지.’
혼돈의 힘이 가진 진실로 무서운 힘은 바로 이 포악함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혼돈조차도 파괴와 정면에서 맞부딪치면 위력에 못 이 겨 무너지고 만다.
이 또한 실험으로 깨달은 사실이 었지만, 의문점이 하나 존재했다.
‘그냥 단순히 내가 다루게 된 파 괴의 힘이, 다뤄내던 혼돈의 힘보 다 강력한 걸 수도 있잖아?’
마냥 어느 힘이 앞선다기보다는, 서준이 제대로 혼돈의 힘을 못 다 룬다는 결론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정확한 정답을 알기 위해서 는 본인, 서준이 혼돈의 힘을 끝까
지 수련해보는 방법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혼돈의 힘을 어떻게 단 련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였지.’
스테이터스에 등록된 파괴의 힘 은 보너스 포인트를 투자한다면, 그 힘을 늘려낼 수 있었다.
반면 혼돈의 힘은 스테이터스에 등록되지 않은 만큼 강제적으로 증 가시킬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수련을 통하여 스스로 늘려 가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기에 엄청난 위력을 낼 수
있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다는 기준에서는 무 결기가 더 편했으니까.’
어떻게든 목숨을 걸고 힘을 짜내 다 보면 방법이 있긴 했을 것이다.
말했듯 서준의 주요 관심은 무극 즉, 무공에 기울어 있었다.
때문에 혼돈의 힘을 크게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
오히려 완성기를 더욱 강화시켜 무극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 에 가까운 상황.
그런 때에 있어 서준이 알고 있
는 기운 중 수위에 꼽히는 위력을 가진 혼돈의 생명체들과 계속해서 맞부딪칠 수 있다면 어떤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혼돈의 힘을 몇 번씩 연구해봤 지만 제대로 목숨을 걸고 대해본 적은 손에 꼽히니까.’
그런데 때마침 이렇게 다소 어쩔 수 없이, 서준은 혼돈의 세계에 떨 어졌다.
시작점은 틀림없는 분노였다.
부족한 힘으로 보인 언행 때문에 정복왕에게 큰 짐을 안겨버렸고,
상의 없이 제멋대로 행동해버렸다.
기분이 좋을 도리가 없었다.
때문에서준은 최대한 혼돈의 세 계로부터 빨리 탈출하는 방법을 찾 아내고자 했다.
‘우선 혼돈의 세계로 넘어가자마 자 주변에 있는 녀석들을 잡아서 캐묻다보면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 겠지.’
심지어 서준은 혼돈의 세계로 넘 어올 때 거대한 균열을 일으켜 둔 상태였다.
계속해서 캐묻다보면 어렵지 않 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점 때문에서준은 곧장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서준이 떨어진 곳은 주 변에 혼돈의 생명체가 가득하지 않 았다.
‘뭐야, 분명 넘어오기 전 봤던 풍 경과 느껴졌던 기운상으로는 엄청 나게 많은 적이 존재할 것 같았는 데……
헌데 정작 지금 주변에는 아무것 도 없었다.
그야말로 황량한 평야.
심지어 하늘마저도 마냥 파랗기 만 했다.
미쳐 날뛰고 있는 혼돈의 생명체 들이 주변에 가득할 줄로만 알았는 데, 막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서준을 당황시켰고 계획에 차질을 주 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긴 문제는 바로 서준의 신격이었다.
‘신격이 많이 사라졌어.’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이라고 생 각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해본 결과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신격이 많이 소실된 상태 였다.
‘우주가 아닌 세계의 틈새로 넘 어온 탓인가?’
서준은 단숨에 주신에서 하급까 지 신위까지 폭락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을 하는 것도 잠시, 서준은 빠르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신격이 떨어져 신명의 힘을 사 용하는 건 다소 위력이 떨어지긴 했다만……
불행 중 다행히도 무결의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점은 무공의 경지는 그대로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좋은 점만 있는 것 은 아니었다.
‘시스템이 먹통이 돼버렸네.’
신물을 통해 사용하던 사기적인 능력들이 모두 봉인되었다는 것이 다.
아쉬운 상황이지만 마냥 나쁘지 만도 않다.
오히려 순수하게 무공을 단련하 고자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상황 은 없었다.
“오랜만에 무공으로만 상황을 헤 쳐 나가게 됐네.”
이렇다 보니 빠르게 본래의 우주 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은 다소 희 석될 수밖에 없었다.
신격, 신물이 아닌 오롯이 무공 의 힘만으로 혼돈의 세계에서 원래 서준이 살던 은하로 넘어갈 가능성 은 희박했으니 말이다.
‘바깥에서의 구조를 기다리거 나…… 이 안에서 주신의 격을 다 시 찾는 수밖에 없나?’
주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찢 어둔 균열의 위치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더욱더 벌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즉, 바깥의 세계인 우주 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다소 무리해서 공간을 헤집 어야겠지만…… 힘을 되찾는다면 충분히 할 만하겠지.’
결론을 내린 서준은 곧장 발걸음 을 옮기어 여정을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서는 어느 쪽이든 답 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당 연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꽤나 여러 종류의 혼돈의 생명체들 과 마주칠 수 있었다.
‘네발로 뛰는 짐승이라……
구태여 설명을 하자면 늑대와 비 슷한 생김새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온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 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형태가 일그러지고, 소용돌이치는 회색빛 기운들이 존재했다.
심지어 덩치 또한 웬만한 늑대들 보다 몇 배는 거대했다.
제법 위협적이긴 했으나 위기라 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비록 많은 힘을 잃었다고는 하 나, 서준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 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