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20화
370화
‘계약하겠어.’
의지를 전달하는 순간이었다.
전신에 난생처음 느껴보는 강렬 한 힘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콰과과광-!
쏟아지는 회색빛 파괴 광선이 커 다란 보랏빛 기운의 벽에 막혀 사 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세상 전체를 뒤덮는 듯한 장막을 세운 서준의 눈은 정작 코앞을 보
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 더 멀리, 아주 먼 우주의 너머까지 보이는 끝없는 세계의 끝 을 바라보며 전율한다.
‘아아......!’
아주 오랜 과거, 근본적인 고대 의 힘을 마주하게 된 서준은 자신 이 지금 끝에 도달해있음을 본능적 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무의 끝:
눈빛이 되돌아온 서준의 등 뒤로 는 마치 악마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한 보랏빛 날개가 솟아 있었다.
이 날개는 넓게 펼쳐져, 벽이 되
어 그토록 강대하던 회색빛 광선마 저도 손쉽게 부숴낸다.
이성을 찾은 서준은 지금 자신이 다루고 있는 힘을 인지하고는 헛웃 음을 홀렸다.
‘파괴의 힘.’
그렇게 서준은 다시 한번 무결의 디멘션 워커의 힘을 통하여 무극의 영역에 이르게 되었다.
서준은 지금 자신이 바라보고 있 는 세상의 모습에 묘한 기분을 느 꼈다.
‘이게 무의 끝……
참으로 멀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니 그리 멀어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지금 닿은 무극은 한계가 명확한 힘이었다.
‘내 본래의 힘은 아니야……:
찰나의 꿈과 같다 할지라도 상관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동료들을 잃지 않 는 것, 이 순간을 지킬 힘을 얻어 냈다.
‘신하도, 동료도, 이 은하도……
서준은 욕심꾸러기이기에 모두 지켜 낼 것이다.
설사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일시적이라지만, 결과적으로 간 절한 외침으로써 이루어진 계약으로 인해 무극에 달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서준의 입가로는 만족의 웃음이 흘렀다.
‘지금이라면 모두 지킬 수 있어.’
일반적인 날개라고 보기에는 너 무 거대했으며 심지어 그 구성 성 분은 순수한 파괴의 힘이다.
때문일까, 천사와 악마의 날개처 럼 형태가 아름답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대신하여 얻은 것은 광활할 정도 로 넓은 범위와 무시무시한 파괴력 이다.
고작 한쪽 날개를 접어 회색빛 광선을 가벼이 소멸시킨 서준은 연 이어지는 촉수 공격들도 덤덤한 표 정으로써 파괴해나간다.
두 장의 날개를 접어 세상을 감 싸듯 거대한 혼돈의 생명체의 앞길 을 막아내자, 무시무시했던 녀석도 공포에 떨며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 다.
-치워, 치우란 말이다-! 왜 매번
방해만 하는 것이냐!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것은……
머릿속을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 에 피식 웃은 서준의 눈에서 보랏 빛 기운이 흘러나온다.
“감히 나의 것들을 위협했으며, 이제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거야.”
파괴의 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모 든 것을 파괴해내는 힘을 가졌으며, 실제로 지금 펼쳐진 파괴의 날개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파괴의 힘으로 이루어진 날개 가 보일 수 있는 위력은 눈앞의 혼 돈의 생명체를 가벼이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준은 한쪽 날개를 우주 바깥까 지 펼쳐질 정도로 크게 펼친 이후 날개를 뻗어낸다.
순수한 파괴의 힘으로 응집된 날 개, 심지어 그 크기는 수십 개의 행성을 연이어 붙인 것보다도 거대 하다.
“부숴.”
서준의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커다란 힘이 우주를 진동시키며 쏘
아지며 혼돈의 생명체의 커다란 육 신을 관통한다.
파지직-!
혼돈의 생명체가 장막을 펼쳐내 며 필사적으로 발악해 보았지만 무 의미한 발악에 불과했다.
콰광-!
요란한 굉음과 함께 육신에 거대 한 구멍이 뚫린 혼돈의 생명체가 휘청이며 쓰러진다.
-끄아악, 아파-! 아프다고!
당연히 아플 것이다.
죽이기 위해서 공격한 것이니까.
문제는 그런 공격임에도 불구하 고, 혼돈의 생명체는 무지막지한 재생력으로 회복을 해내고 있었다.
‘백번 정도 꿰뚫어서 형태조차 남기지 않으며 재생 못 하려나?’
고민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 해도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힘을 다뤄 서는 혼돈의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따지자면 방금 전 날개를 쏘아낸 것은 일종의 시험에 가까운 것이다.
‘이제 진짜 끝을 내볼까.’
파괴의 날개는 위력은 굉장했지 만, 대신 그에 따른 힘의 소모가 엄청나다.
계약을 맺은 무결의 디멘션 워커 가 계속해서 파괴의 힘을 빌려주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단숨에 끝낸다.’
그러기 위해서 서준은 이번에는 두 장의 날개를 동시에 펼쳐냈다.
혼돈의 생명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회색빛 광선을 마구잡이로 쏘 아내며, 수천에 달하는 모든 촉수 를 움직인다.
서준은 그 모습을 보며 손가락에 끼워진 보랏빛 반지를 앞으로 내민 다.
콰직-!
쇄도해오던 공격들이 공간과 함께 부서지고, 파괴되어버린다.
그렇게 혼돈의 생명체가 쏟아낸 모든 공격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이걸로 끝.’
준비를 끝마친 서준의 두 날개가 공허 생명체를 휘감듯이 감싸 안는 다.
‘기본적으론 날개 형태지만.’
실제 파괴의 날개는 형태에 제약 을 받지 않는다.
때문에 혼돈의 생명체를 감싼 파 괴의 날개는 거대한 구체가 되어 허공으로 떠오른다.
-풀어라! 풀란 말이다-!
내부에 갇혀 발악하는 혼돈의 생 명체의 힘에 보랏빛 구체가 계속해 서 뒤틀리고 있었지만 서준은 개의 치 않았다.
‘일반적인 힘으론 네놈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지만.’
저 파괴의 힘을 일순간 폭발시킨 다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서준은 피식 웃으며 파괴의 힘으로 만들어 낸 보랏빛 원형 구체를 머나먼 우주,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내던진다.
그렇게 서준의 시야에서도 보랏 빛 구체가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이었다.
저 멀리 우주를 배회하고 있는 구체를 감지한서준은 끼고 있던 반지를 앞으로 내밀어낸다.
“터뜨려.”
반지가 한 차례 섬광을 토해내더 니 보랏빛 광선을 쏘아낸다.
서준은 의식을 집중하여 머나먼
우주를 바라보았다.
새카만 어둠으로 가득한 우주가 순간적으로 보랏빛으로 물들어 버 린다.
드높은 신격이라 할지라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잃을 만한 강렬한 빛.
그 이후, 콰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우주 전체가 뒤흔들린다.
곧이어 눈앞에 펼쳐진, 먼지 한 톨 남지 않은 우주의 빈 공간을 바 라본 서준은 만족한 듯 웃으며 짧 은 감탄을 토했다.
“끝내주네.”
파괴의 힘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력했다.
덕분에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었 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었지만 서준은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모두 계약으로 받아낸 힘.’
대가 없는 계약은 존재치 않는 다.
이렇게 강한 힘을 빌려주는 만큼 치러야 하는 대가 또한 엄청날 것 이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서준이 허 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파지직-!
회색빛, 혼돈의 균열이 일어나며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일대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혼돈이 자리 잡는다.
뒤이어, 황색의 로브를 뒤덮은, 상체는 인간의 형상을 한 듯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과 같은 모습 이었지만, 뿜어지는 혼돈과 로브의 아래로 삐져나온 수많은 촉수들은 그가 혼돈의 존재임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 있
었다.
눈앞의 존재는 디멘션 워커의 본 래 주인, 계약을 통하여 힘을 빌려 준 존재였다.
-계약을 이행하여라.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어떠 한 계약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허나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가 내뱉은 말이자, 자의로 써 맺은 약속이다.
심지어 빌려준 힘 덕분에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제 와서 계약을 무르는 건 너
무 양심이 없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를 수 가 없었다.
직접 힘을 다뤄봤기에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가 가진 힘은 어떠한 것보다도 강력하면서도 파괴적이다.
만전의 상태라 할지라도 대항하 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물며 연이은 전투로 지친 지금 의 상태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행하겠어.”
굳은 다짐과 함께 고개를 주억였 지만, 마음 한편에 차오른 공포를 모두 몰아낼 수는 없었다.
곧이어 치러야 할 영문 모를 대 가에 저도 모르게 목울대로 마른침 이 꿀꺽- 삼켜진다.
이윽고, 황색의 로브를 뒤덮고 있던 존재가 손을 앞으로 내뻗는다.
쉬익-!
몰아친 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나 간다.
등골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전신 을 짜르르- 울릴 때였다.
뇌리를 강타하는 목소리와 함께 손가락에 끼워진 보랏빛 반지가 맹 렬하게 공명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우웅-!
검지에 끼워져 있던 디멘션 워커 가 아주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빠져 나가더니 황색의 로브를 뒤덮고 있 는 존재의 손바닥에 안착한다.
-계약은 이루어졌다.
마지막 말과 함께 일대를 뒤덮고 있던 혼돈은 균열 안으로 되돌아가 며, 삽시간에 자취를 감춘다.
오’T1 r꺼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준은 당 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허나 기이하게도 더 이상의 변화 는 찾아오지 않았다.
거대 혼돈의 생명체를 계약으로 써 빌려온 힘을 통하여 단숨에 격 살한서준은 곧장 나라연천과 옥황
을 데리고 리벨리온 연합군 우주선 의 흔적을 뒤쫓아, 워프한 위치로 이동했다.
“주군……. 무사하셔서 다행입니 다!”
싸움의 여파들로 인해 의식을 잃 었던 나라연천은 정신을 차리기 무 섭게 안도한 표정이 된다.
“덕분이지.”
환한 미소 띤 채로 내뱉는 서준 의 말에도 나라연천은 입을 열지 못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공격의 궤도를 비틀어준 것이 전 부였다.
이후에는 맞부딪히는 공격이 내 뿜는 충격의 여파들로 인하여 정신 을 잃었다.
도움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 준이다.
짐짝이나 되지 않았다면 다행이 었다.
그늘진 나라연천의 표정에서준 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정말로 도 움이 되었으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나라연천이 아니었다면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다가 자멸 했을 수도 있었다.
허나 나라연천의 행동은 계기를 주었고, 변화를 불러왔다.
다소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나라연천이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기회조차 잡지 못했을 것 이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근데 한 가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 니까?”
“ 뭔데?”
“마지막 그 힘은 대체 무엇이었 죠‘?”
서준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 어난다.
분명 완성의 검격과 혼돈의 힘이 충돌하는 순간, 나라연천은 의식을 잃었다.
때문에 추후의 싸움은 나라연천 의 기억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 았어야 했다.
남아있다 할지라도 본능적인, 그 저 어떤 거대한 힘이 충돌한 것이 전부였을 터였다.
서준은 딱 그 정도가 전부일 거 라고 생각했다.
“마치……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날개이자 상당히 근본적인 힘 같았 습니다……
그런데 나라연천이 말하는 묘사 가 꽤나 정확하다.
직접적인 두 눈으로 파괴의 힘을 보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느꼈 다고?”
“예, 아득히도 멀다는 생각이 들 었지만…… 느끼긴 했습니다.”
나라연천의 아리송한 표정을 바 라보고 있는 서준은 묘한 기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