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19화
369화
하늘에 올라서 거대한 혼돈의 생 명체와 마주한서준은 그간 쌓아 놓았던 무결의 힘을 무수히 쏟아냈 다.
힘을 아낄 수는 없었다.
‘여태껏 마주했던 것들과는 차원 이 달라.’
대화 자체도 통하지 않는다.
눈앞의 괴물은 그저 파괴만을 바 라는, 혼돈의 깊은 곳에서 태어난
것 같은 끔찍한 존재였다.
실제로도 어설픈 마음으로는 상 처 하나 주기 힘든 거대한 격이 서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콰과광-!
찬란한 금빛이 연달아 터지기 시 작하며 허공을 수놓는다.
얼핏 보기에는 압도하는 듯 보이 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혼돈의 괴수는 터뜨리거나 베어 낼지라도 다시금 재생해냈으며, 내 뿜는 혼돈만으로 서준의 무결의 힘 을 잠식시키곤 했다.
계속되는 공방 속, 서준과 혼돈
의 생명체의 힘이 맞닿으며 세계 곳곳에 균열이 일어난다.
균열들이 벌어지며 세계 자체가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견딜 수 있으려나?’
세계 하나는 가볍게 부숴낼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이 연달아 충돌하 고 있었다.
시공간 자체가 왜곡되고 있다 해 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싸움의 여파로 인해 어느 한 세상의 역사가 바뀌 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흘러간 세상인 서준 의 세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향을 받는 것은 무수히 갈라진 세계선의 흐름 중 어딘가일 것이다.
‘어차피 다른 방도는 없어.’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다.
재빠르게 생각을 정리한서준은 복잡한 가설들에 대한 것을 지워낸 다.
대신하여 눈앞에 있는 괴물과의 싸움에 집중했다.
놈은 너무나 거대하여 하늘 전체 를 뒤덮고 있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행성이 박살 나고 있었으며, 혼돈을 불러일으킨 다.
단순한 혼돈의 집합체는 아니다.
오히려 직관적이라 할 정도의 이 지가 존재했다.
괴로워하고 분노하며 서준을 증 오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안긴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딱 고통을 안기는 수준에
불과했다.
서준이 다루는 무결의 힘은 혼돈 의 생명체의 육체를 터뜨리고, 베 어냈지만 결판을 내지는 못한다.
놈은 몇 번이고 죽었다가 살아나 듯 되돌아오며 자신의 혼돈을 주변 으로 흩뿌리고 서준을 향하여 알 수 없는 힘들을 뿜어낸다.
수천, 수만에 달하는 찬란한 금 빛의 검격이 그 혼돈의 힘에 대항 하기 위해 계속해서 춤을 추고 있었다.
당연히 공격을 위해서도 수만에 달하는 검격들이 연이어 펼쳐지고
있었다.
서준이 주신에 오른 이후 계속해 서 쌓아오고 발전시켜 온 무공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지며, 사방으로 무 결의 힘을 퍼뜨린다.
충돌이 이어질 때마다 서준의 호 흡이 계속해서 거칠어져 간다.
처음에는 안정적이었던 모습과 달리 서준은 이제는 눈에 띌 정도 로 거친 호흡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는 끝이 없어.’
지금껏 쌓아오고 창안해낸 무공 으로는 혼돈의 괴수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이제 남은 내공은 절반 정도.’
서준이 웬만한 행성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양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지만 무한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바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싸움이 지속되어 결 국 내공이 다 떨어지게 된다면?
죽는다.
저 혼돈의 괴수를 감당할 수 없 게 될 것이다.
‘결국…… 완성에 도달하는 방법 밖에 없어.’
평범한 무결의 힘으로 혼돈의 괴 수에게 입힐 수 있는 상처는 미미 한 자상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치명적인 상처,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완성에 이르러야만 한다.
‘무극(武極)……
분명 닿았고, 펼쳐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경지가 너무나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대체 어떻게 펼치는 것이란 말인 가?
‘아니, 애초에 무극이 대체 뭐 지?’
무의 끝이라는 설명을 제외하고 는 진정한 무극에 대해서 확정 지 을 수 없었다.
알 듯하면서도 모를 듯한, 마치 미궁 속에 빠진 듯한 기분에 갇힌 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민에 빠져간다.
그렇게 고심에 빠져 계속해서 생 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 너 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것만 같 던 혼돈의 생명체의 목소리가 서준 의 뇌리에 울려 퍼진다.
“이성이 아예 없는 줄 알았더니
만, 제대로 된 언사도 구사할 줄 아네.”
서준의 조롱에, 혼돈의 생명체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 나알…… 방해하지 마 라!
이어서 혼돈의 생명체가 커다란 눈을 번쩍 뜬 순간이었다.
회색빛 섬광이 단숨에 세계를 집 어삼키며 서준의 앞으로 쇄도해온 다.
‘ 빌어먹을.’
극한에 다다른 정신이 1초라는 시간을 극한으로 나누어 쪼개내며
생각한다.
‘ 역전.’
다급히 개연성을 역전시켜내는 검술을 펼쳐내려 하고 있었지만 서준의 얼굴에는 진한 그늘이 어려 있었다.
‘……불가능해.’
단순해 보이는 회색빛 광선에 담 긴 힘의 규모가 생각보다 어마어마 하다.
쇄도해오는 힘을 받아낼 방법이 없었다.
‘절대 방어를 펼쳐내어 막아낸다 할지라도……
뒤이어 쏘아질 공격을 막아내거 나 받아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당장의 위기는 피할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패배하게 될 것이다.
‘다른 방법이……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키고 있던 때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온 섬광이 혼돈의 생명체를 타격한다.
콰과광-!
치명상이라 부를 만한 상처는 없 겠지만 혼돈의 생명체의 커다란 눈 이 돌아간다.
쏘아지던 광선의 궤도가 뒤틀리 며 서준을 스쳐 지나간다.
“누구?”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다랗게 뻗은 촉수 너머, 익숙 한 얼굴을 한 두 사람이 보인다.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 었습니다.”
“뒤를 부탁하네.”
나라연천과 옥황, 두 신격이 쏘 아낸 힘이 혼돈의 생명체의 공격을 비틀어내 준 것이다.
허나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방금 전 공격이 전력을 쏟아낸 것인지 둘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 력 했다.
그 순간, 서준의 뇌리에 다시금 혼돈의 생명체의 목소리가 울려 퍼 졌다.
-방해하지 마아라-!
나라연천과 옥황 쪽으로 고개를 돌린 혼돈의 생명체가 회색빛 광선 을 쏘아낸다.
‘안 돼.’
전쟁을 결심할 때부터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할 생각이었다.
허나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굳 게 먹었던 마음이 뒤흔들린다.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볼 수는 없 었다.
‘내가 지켜야 해.’
망설임은 없었다.
절대방어는 혼자, 개인의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쏘아지는 공격을 베어내는 수밖 에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더,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수투의 힘을 빌려서라도 완성(完 成)에 이른 공격을 펼쳐내야 한다.
생각이 닿는 순간, 서준은 그 즉 시 수투의 능력인 ‘무결의 힘’을 발 동시킨다.
손에 감겨져있던 수투에서 찬란 한 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뿐만이 아니라 남은 내공을 모두 쏟아내며 쇄도해오는 회색빛 광선 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무결검, 완전무결.”
알고 있었다.
미친 짓이다.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확실한 기 회를 노리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으로 무결의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된 다.
하지만 눈앞의 죽어가는 나라연 천과 옥황을 본 순간, 서준의 몸은 제멋대로 움직여 전력을 쏟아붓더 라도 눈앞의 회색빛 광선을 베어내 는 쪽을 선택했다.
이유?
단순히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 때 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잃고 싶지 않았다.
함께 웃고 싸워온 동료이자 신하
들을 지켜 내고 싶었다.
지켜 낼 것이다.
‘그게 내가 싸우는 이유니까.’
다짐을 끝낸 서준은 5초라는 제 한된 시간 동안 완성에 도달한 검 술을 펼쳐낸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서준의 눈앞에서 회색빛 광선이 갈 라지고, 분해되어 사라진다.
모두 지켜냈다.
-매애애번……!
혼돈의 생명체의 커다란 눈이 찡 그러진다.
동시에서준의 앞으로 거대한 회 색빛 촉수들이 뱀처럼 쏘아진다.
아직은 무너지지 않는다.
서걱-!
완전무결의 힘은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촉수들을 모조리 다 갈 라낸다.
허나 이제는 그 시간의 끝이 보 이기 시작했다.
쉬익-!
가벼이 눈으로 좇을 수 있었던 촉수의 속도가 점점 더 빠르게 느
껴진다.
그 와중에 혼돈의 생명체의 커다 란 눈에 다시 한번 회색빛 기운이 응어리지기 시작했다.
‘안 돼......
간절한 마음과 달리 현실은 잔혹 했다.
더 이상 막을 방도가 없었다.
5초라는 시간은 끝이 났다.
바닥난 체력과 내공으로 펼치는 검술은 혼돈의 생명체의 말도 안 되는 재생 속도에는 무의미한 발악 에 불과했다.
‘분명 지켜낼 것이라고 약속했는 데.’
모두 함께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 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발버둥 쳤고, 성장을 해왔다.
헌데 이 꼴은 대체 무엇이란 말 인가?
소중한 동료이자 신하조차 지키 지 못하고 있었다.
달리 변명할 말이 없었다.
‘내가 부족한 탓이야.’
강력한 힘을 얻고, 무결의 주신
이라고 칭송받고 있었지만 서준, 제 자신은 알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무결의 주신은 결 코 완벽에 이르지 못했고, 허점이 많은 인간이었다.
무결이라는 신명을 얻었지만, 서준은 여전히 어설프고 부족한 사람 이다.
어느덧 거의 완성이 된 회색빛 기운을 보며 서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난 정말 반푼이였네.’
부정할 수 없었다.
무결한 듯 보였지만, 결국 사람
인 이상 완벽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기에 부 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 뿐이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현실 을 인지하게 되었다.
부족한 인간, 한서준이라는 존재 를 채워줄 수 있는 주변의 사람들 의 소중함이 와닿는다.
때문에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싶 지 않았다.
지키고 싶다.
눈앞의 혼돈의 생명체를 쓰러뜨 리고 싶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 할지라 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각오를 다지는 순간, 그의 강렬한 의지에 화답하듯 세계가 아니, 일 대의 우주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커다란 떨림에 혼돈의 생명체의 찡그러져 있던 눈동자에마저 의문 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준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보랏빛 반지
와 자신의 기운이 공유되듯 요동치 는 것을 느꼈다.
‘ 이건.…”?’
본래 무결의 디멘션 워커는 망각 에 당했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헌데 그 어떤 때보다도 화려한 보랏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띵-!
[주신의 강렬한 의지가 우주에 널리 퍼집니다.]
[소유한 ‘무결의 디멘션 워커’가 침묵 상태에서 깨어납니다.]
[‘무결의 디멘션 워커’의 창조주 가 사용자 ‘한서준’과 계약을 하길 원합니다. (Y/N)]
떠오른 ‘계약’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아무런 대가 없이 힘 을 빌려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조건인지도 알 수 없었다.
허나 지금 지켜야 할 것들을 지 키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는 것보다 백배는 나을 것이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니, 고민하는 시간조차 사치였 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준의 코앞 으로 회색빛이 번쩍이며 쏟아져 내 리고 있었다.
의문에 뒤이어, 불안감을 느낀 혼돈의 생명체가 갑작스러운 기습 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회색빛 섬 광은 서준에게 닿을 수 없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