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17화
367화
무결의 주신.
혼돈의 시기가 다가오기 전, 주 신의 자리에 오른 그 놀라운 존재 의 등장에 솔릭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당연하지만, 무결의 주신은 절대 쉽사리 생각할 수 없는 존재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카세 롯 차원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현신, 그가
등 뒤에 업고 있는 고대의 존재들 이 가진 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강력한 존재 둘이 갑작스레 카세롯 차원을 방문해왔다?
이상하다.
‘정세가 변하고 있다.’
가슴 한편이 답답해졌지만, 가진 정보가 없는 만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신중해야 한다.
한 번의 선택으로 차원 자체가 파멸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압박감에 뇌제와 그를 따르는
수호대 또한 판단을 내리지 못 한 것이다.
실제로 솔릭도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정보를 접하지 못했을 뿐 이지 판세가 기울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무결의 주신과 고대의 존재, 둘 중 한쪽은 패배했다.
카세롯 차원에 있는 문을 이용하여 퇴각을 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채로 깊 은 고민을 이어가던, 솔릭은 얼마
가지 않아서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 한다.
‘ 역시......
단기간에 주신(主神)의 자리에 오른 것이 대단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허나, 결국 주변의 도움을 받아 오른 가짜 신이기도 했다.
그런 어설픈 힘으로 파멸이라 불 리는 고대의 존재들을 뛰어넘을 수 는 없었다.
더 이상의 계산은 무의미했다.
계산을 끝마친 솔릭이 결단을 끝 마친다.
“하비르 님 혹시 고대의 존재님 들과 연락을 취하실 수 있으십니 까……?”
갑작스러운 솔릭의 질문에 하비 르의 고개가 갸웃 젖혀진다.
“무슨 속셈이지?”
“단순히 구원을 받는 것에서 만 족하실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에게 저희 모두가 고대의 존재님 들의 사도가 될 정보가 들어왔습니 다.”
“뭐라고?”
하비르가 푸른빛 기운이 일렁거 리는 눈동자로써 솔릭의 얼굴을 응
시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현신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매 순간마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 왔고, 그로 인해 신위의 자리에 까 지 오를 수 있었기에 감히 현신이 라는 호칭을 얻어낼 수 있던 것이 다.
이런 신화를 쌓을 수 있었던 건 거짓과 진실을 구별해내는 눈인 ‘간파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간파안’의 능력 이 솔릭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하비르를 보며 너털웃음을 흘린 솔릭이 말했다.
“제 말의 진위 여부는 직접 파악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찌하시 겠습니까? 저와 함께 고대의 존재 님들의 총애를 받는 사도가 되시겠 습니까?”
함께 고대의 존재의 사도가 되자 고?
‘말도 안 되지.’
솔릭은 아직 알고 있지 못했지 만, 하비르는 벌써 수많은 공로들 올 인정받아 고대의 존재들의 선택
을 받은 사도가 된 상태였다.
아마 이번 일에 대한 공로까지 인정받는다면 첫 번째 사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문의 가동과 귀중한 정보까지, 높은 공로들이 모두 솔릭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솔릭을 우군으로 만들지 못하고 간다면 사도의 자리 도 박탈당하겠지.’
아니,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곧장 고대의 존재님들에게
연락을 취하겠네.”
목소리에는 강한 욕망이 어려 있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무슨 일이지?’
서준은 혼자서 의문을 느끼며 응 접실로 추정되는 방 안에 놓인 소
파에 앉아 있었다.
‘대화를 해주겠다면서 벌써 한 시간이 넘게 방치해놓다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바쁘다고만 생각할 수도 있다.
‘주신인 나를 이렇게 방치해 놓 는다고?’
오만함이나 허세 같은 것이 아니 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강자는 사실 시한폭탄과 다를 바 없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는 이유로 무력을 행사하며 차원을 파괴할 수도 있었다.
그런 존재를 차원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곳에 그냥 방비해뒀다.
‘자신감인가 아니면 무슨 꿍꿍이 가 있나?’
서준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의 문에 대한 답은 머지않아 찾을 수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무결의 주 신님, 저는 카세롯 차원의 뇌신, 솔 릭이라고 합니다.”
“동맹 차원인 크롯의 현신, 하비 르라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반갑게 인사 를 하는 솔릭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무결의 주신, 한서준입니 다.”
인사를 나누고 있는 서준의 시선 은 솔릭을 지나쳐 그 뒤를 따라 들 어오고 있는 검은 로브를 뒤덮어 쓴 하비르에게로 향한다.
‘이 느낌은……?’
서준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검 은 로브 속에 숨겨진 하비르의 회 색빛 눈동자를 직시한다.
‘틀림없는 혼돈의 힘이다.’
꽁꽁 싸매어 숨겨 둔 상태였지만 혼돈의 힘을 다뤄보았던 서준의 눈 을 속일 수는 없었다.
고대의 존재들이 다루고 있는 것 과 똑 닮아있었다.
‘사도 같은 건가?’
확실한 것은 하비르는 우군이 아 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섣부르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
고대의 존재들이 눈치채지 못하 도록 은밀하게 제거해내야 한다.
‘……확실하게 기회를 노려야
해.’
반면 그런 서준의 속내를 눈치채 지 못한 하비르는 로브 속에 얼굴 을 숨긴 채로 비릿한 미소를 흘리 고 있었다.
‘무결의 주신만 묶어 둔다면 더 욱더 강한 혼돈을 주입받을 수 있 다.’
평소라면 방금 전, 서준의 눈매 를 읽어냈을 것이다.
허나 마음속에서 치솟는 욕심이 이성의 판단을 뒤로 미루어 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인사는 나눈 것 같으
니 일단 앉으시죠, 우선은 점심때 이기도 하니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요.”
솔릭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갖 가지 만찬들이 응접실 내부의 식탁 에 차려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음식이 차 려진 식탁의 자리에 앉는다.
‘하비르는 확실하게 고대의 존재 들과 손을 잡았는데……. 솔릭 쪽 은 어떤 상황일까?’
서준은 단 한 번도 카세롯 차원 이란 곳에 오지 않았었다.
라를 통해 듣지 못했다면 알지조
차 못하는 곳이었다.
본래 차원의 분위기나 솔릭의 성 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행동할지는……. 일단 둘 의 언행을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 아.’
사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식탁 위에는 계속해서 묘한 기류 가 흐르고 있었다.
하비르가 뿜어내는 혼돈의 힘에 지나쳤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욕 심이 그득한 눈빛이 빠르게 움직이 고 있었다.
‘이미 매수됐을 확률이 높겠네.’
아직 근방에 고대의 존재들이 없 다는 연유로 안일하게 풀어졌던 마 음을 부여잡아낸 서준은 내심으로 상대에 대해서 빠르게 판단을 내렸 다.
‘둘 모두를 확실하게 제거해내야 한다라……
내우주에서 신격에 올라 있는 존재들인 만큼 쉽지는 않았다.
허나 기회만 주어진다면 불가능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래 고대의 존재들과 맞서 싸 우고 있다는 내우주의 영웅을 이렇
게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실로 영광입니다.”
그사이, 조용히 서준을 살펴보는 것만 같던 하비르가 입을 열었다.
서준은 그 말에 대답 대신 고개 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변했다.
애초에 이미 적으로 분류를 한 탓이다.
“성격이 상당히 과묵하신 편인가 보군요. 그렇다면 잡담 없이 단도 직입적으로 여쭤보도록 하죠. 카세 롯 차원에 찾아온 용무가 무엇이십 니까?”
솔릭의 말을 들은 서준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킨다.
‘놈은 아직 정체가 간파된 것을 모른다.’
역시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지 않기를 잘했다.
이렇게 된다면 시간을 벌어서 둘 을 모두 확실하게 제거해낼 수 있 는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외우주로 향하는 문에 용건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용을 하시려는 겁니까?”
“ O »
M...
서준은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모든 것을 말해 주어서 좋을 것 이 없었다.
특히나 저 회색빛 눈동자는 마치 다른 존재와 연결된 것 같은 느낌 을 주고 있었다.
‘당장 저 눈알을 뽑아버린다면 편하겠지만……
섣부른 행동은 고대의 존재들에 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도 있었다.
“우선은 길을 알아두기 위해 들 렀습니다.”
그렇기에서준이 선택한 것은 중 의적인 대답으로써 적을 속이는 것 이었다.
한편, 계속해서 서준을 주시하고 있던 솔릭의 심경은 여러모로 복잡 해져가고 있었다.
‘이거 지금 보니까 줄을 잘못 탄 것 같은데……
무결의 주신, 한서준은 계속해서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생각했던 것과 반대의 상황이 머 릿속을 계속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고대의 존재들이 패배해서 퇴각 하고 있는 것인가……?’
당장 여유로워 보이는 서준 쪽에 붙자니, 변수가 너무 많았다.
우선 이제 와서 서준 쪽에 붙는 다 할지라도 받아줄지가 미지수였 다.
그리고 고대의 존재들이 패배했 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만약 저 여유로운 표정이 모두 거짓이라면?
당연하지만, 고대의 존재들이 배 신자를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대놓고 현 상황에 대해서 묻고 싶었는데 상황 자체가 녹록치 않았다.
의중을 드러내게 된다면 눈치를 보며 줄을 탈 곳을 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가볍게 찔러나 볼까?’
솔릭은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말 문을 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보였다.
“식사는 마음에 드십니까? 무결 의 주신님.”
“아주 맛있네요.”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죄송 합니다.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보가 막혀버려서 무결의 주신님
의 업적에 대해서 자세히 듣지 못 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내우 주의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요?”
“글쎄요. 우선은 나쁘지 않은 상 황이라는 것은 확실해요. 당장 주 샤콘, 글룬, 그로스, 글라키 같은 고대의 존재들이 쓰러졌으니까요.”
“......예?”
자그마치 넷, 심지어 그중에는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있다는 글라 키마저 속해 있었다.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묵묵히 고개를 주억인, 서준이
입가에 호선을 그린다.
“황금 줄인 줄 알고 고대의 존재 들이 내민 손을 잡았는데 실상을 듣고 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겠죠.”
서준의 입에서 거침없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모든 준비를 끝마쳤기 때문이었다.
‘은밀하게 장막을 치려니까 생각 보다 힘드네.’
나름대로 기운을 다루는 것에 있 어서는 자신이 있었는데 눈앞에 감 시자들을 두고서 펼쳐내려니 생각
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어려운 작업인 만큼 효과 또한 확실했다.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던 하비르 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변해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는 하비르 를 향하여 서준이 비릿한 미소를 홀린다.
“ 글쎄......
애초에 적에게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잘난 힘을 차단했을 뿐 이야, 이제 그러면 배신자들을 처 리해볼까.”
무결의 장막이 펼쳐진 이상 이들 의 힘으로 이 영역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처음 노렸던 대로 둘을 확실하게 제거해낼 무대가 만들어졌다는 것 이다.
이윽고, 서준이 등으로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서고 있던 순간이었다.
“저, 저는 아닙니다! 하비르의 협 박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