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8화
358화
“무슨 말도 안 되는……!”
당황한 글룬의 음성이 서준을 즐 겁게 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글룬이 다 급히 균열을 일으키며, 껍데기뿐인 분신체들을 회수하려 한다.
‘저 너머의 세계가……
진짜 글룬이라 할 수 있는 존재 다.
인식보다, 육체의 움직임은 더
빨랐다.
서준은 놀란 눈을 한 분신체들을 지나치며 균열 너머의 세계인 글룬 을 마주했다.
그 순간, 5초라는 짧은 시간인 만큼 특수 효과인 무결의 힘의 효 과가 사라졌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길은 확실하게 보았고, 익혀냈다.
동시에 글룬의 본체를 정확하게 인지해냈다.
익히고 보인다면 베어낼 자신이 있었다.
콰과과광-!
때마침, 글룬이 쏟아 낸 부패의 힘이 서준의 전신을 뒤덮었다.
닿는 즉시 부패해버린다.
그것이 설사 세계라 할지라도 말 이다.
허나 부패의 힘이 가진 가능성을 베어낸 서준은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딛는다.
부패의 힘을 발산하고 있는 힘의 근원지를 향해 나아간다.
“부패해라! 하찮은 것이여!”
글룬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에는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힘 을 짜낸 것인지, 서준이 두르고 있 는 무결의 장막이 부패되어가고 있었다.
하나 말했듯 글룬의 부패는 서준 에게 도달할 수 없었다.
서걱-!
회색빛 세상 속, 서준이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른 순간, 부패의 힘이 가진 가능성을 모두 베어낸다.
넘실거리는 부패가 찢어발겨지 며, 글룬의 본체라 할 수 있는 심 연의 바다가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
낸다.
그 순간, 세계가 일렁거리며 글 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꺼져라! 네놈 같은 하찮은 것이 함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뿐인 바 닷속 세상이 뒤흔들린다.
소용돌이 치고 있는 바닷물들에 는 글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부 패의 힘이 넘실거린다.
“드디어 마주했네.”
눈앞의 소용돌이, 가라앉아 있는 거대한 신전뿐만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전부가 글룬의
본체였다.
세계 그 자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였지만 서준은 웃음을 보인다.
‘오히려 좋네.’
세계가 글룬 그 자체라는 것은, 어디를 공격하든 놈의 영혼을 베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글룬 또한 이러한 상황을 눈치챈 것인지 목소리에 다급함이 어려 있었다.
“썩 꺼지지 못할까!”
바닷물이 창의 형태를 이뤄내더 니 앞으로 쏘아진다.
그 목적지에 있었던, 서준의 신 형이 신기루처럼 흩어진다.
흠칫-
세계, 글룬의 몸이 떨린다.
“나가고 말고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지.”
음성은, 느껴지는 고통보다 늦게 전해졌다.
콰직-!
“크아악—!”
날카로운 검날이 영혼을 꿰뚫는 고통에 글룬이 비명을 내질렀다.
“전투 능력을 보니 마법사, 아니
환술사 쪽에 가까운 능력이라 보면 되겠네.”
이번에도 목소리가 더 뒤에 도달 했다.
이미 서준의 검은 세계를 마구잡 이로 찢어발기고 있는 채였다.
“혹시 환술사들의 특징이 뭔 줄 알아?”
“아, 안 돼……!”
글룬이 당황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다들 하나같이 맷집이 약하더라 고, 너는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하네.”
서걱-!
서준이 손을 움직이는 순간, 수 백 번의 검격이 일어난다.
“끄아아-! 그만!”
글룬의 비명이 일대에 울려 퍼진 다.
쿠구궁-!
동시에 세계 역시 뒤흔들리며 붕 괴되기 시작한다.
“그러게 내가 눈치채기 전에 도 망쳤어야지.”
서준은 요동치고 있는 글룬의 모 습에 집중했다.
두 눈동자에는 글룬의 죽음이 확 정되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른 글룬이 절망한 듯 몸을 웅크리며 말한다.
“그만, 제발 그만해……
하나 서준은 글룬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고대의 존재, 영겁에 달하는 시 간을 살아오며 수많은 은하를 파멸 시킨 넌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에 게 같은 말을 들었을까?”
무너지고 있는 세계 속을 향하여 쥐고 있던 검을 찔러 넣는다.
세계가 뒤흔들리며 글룬의 간절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발…… 부탁이니……
그대로 박혀있던 검을 비틀어내 며, 그어낸다.
파지직-!
순간적으로 전류가 흐르며 세계 가 본능적인 방어에 나선다.
일어난 균열 속에 검을 박아 넣 은, 서준은 그를 보며 웃었다.
“남들의 파멸을 볼 때는 즐거웠 는데, 스스로의 파멸은 두려운가 봐‘?”
고대의 존재이자 하나의 세계라 고는 하나 결국 글룬 또한 생명과 형상을 가진 존재였다.
단전과 같이 힘을 발산하는 근원 지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세계 그 자체인 만큼 일반 적인 존재들과는 달리 아주 거대할 것이다.
그렇기에 글룬을 타격하는 순간 마다 그의 힘의 근원지를 계속해서 헤집었다.
힘을 발산하는 근원지가 파괴된 다면 글룬은 더 이상 고대의 존재
라고 불릴 수도 없는 나약한 존재 가 될 터였다.
“꾜으으…… 이 빌어먹을 것이!”
거친 욕을 하며 기세를 일으키는 글룬의 주변으로는 회색빛 부패의 힘이 피어올라 분신체를 형성했다.
이후 검을 그어내고 있는 서준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허나 구태여 직접 손을 쓸 필요 도 없었다.
나약해진 글룬의 힘으로는 서준 이 두르고 있는 무결의 장막을 부 숴낼 수 없었다.
쿵-!
장막에 가로막혀 허망하게 소멸 한 분신체를 확인한서준은 쥐고 있던 검을 아래로 내리긋는다.
“크아악-!”
파지지지직-!
전류가 마구잡이로 일어나며 서준이라는 존재 자체를 세계에서 밀 어내려 하지만 의미 없는 발악에 불과했다.
“그만 포기해. 넌 결코 나를 이 길 수 없어.”
“그럴 리가 없다. 고작 하찮은 것 따위가…… 기껏해야 주신에 오 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애송이 주제
에...
글룬이 거칠게 외쳤다.
콰지지지지직-!
피어오르는 전류는 이제 사방 곳 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중심, 태풍의 눈과 다름없는 곳에 자리 잡은 둘의 싸움은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운명은 정해졌어, 네놈의 파멸 또한 정해진 순리가 되었어.”
서준은 단언했다.
이미 생각한 바 있듯, 글룬은 결 코 그를 이기지 못한다.
“내가 하찮게 여기는 존재가 너 보다 강해.”
콰득-!
결국 세계가 무너지고, 글룬의 영혼 자체에 균열이 번지기 시작한 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손끝에 전해지는 기묘한 감촉과 함께 절규 가 들려온다.
“끄어아아아악-!”
세계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마 냥 마구잡이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 글룬이…… 고작 이런 우주 에서……!”
단말마를 남긴 글룬의 음성이 사 라졌다.
콰과광-!
글룬의 영혼이 허공으로 흩날려 사라진다.
띠링-!
[고대의 존재, 글룬을 처치했습니 다.]
[칭호, 패황의 효과로 고대의 존재, 글룬의 힘을 홉수해냅니다.]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글룬이 소 멸한 순간이었다.
세계에 거대한 기운이 소용돌이 치며, 폭발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글룬의 힘!’
서준은 깜짝 놀랐다.
세계와 함께 서준을 소멸시키려 는 것이다.
일종의 마지막 발악.
예상치 못한 공격에 조금 당황스 럽긴 했지만, 서준은 곧 침착하게 폭빌하려는 기운을 향해 조율을 시
작했다.
‘글룬이 가진 부패의 힘 또한 파 괴의 일부.’
같은 파괴라 할지라도 모두 같은 근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미 스스로가 어느 정도 그를 납득하고 있기 때문일까?
글룬이 남긴 파괴의 힘이 이해되 었다.
또 한편으로는 무결의 디멘션 워 커가 보여주었던 ‘파괴’와 뭐가 다 른지도 알 수 있었다.
‘무결의 디멘션 워커에 담긴 파 괴는 이보다 조금 더 근본적이
야……
앙그라 마이뉴가 가진 망각의 힘 에 봉인되어 버렸지만, 무결의 디 멘션 워커가 일순간 보여준 파괴의 힘은 제대로 다뤄낼 수만 있었다면 시공간의 일부마저 부술 만큼 굉장 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 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글룬의 파괴는 그저 소멸에 만 중점을 두었다.
똑같은 고대의 힘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른 방 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덕분일까?
글룬이 남기고 간 마지막 발악은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위협적이게 느껴지지 않는다.
‘폭발만 시키지 않도록 조심하 자.’
폭발하면, 세계와 함께 사라지게 된다.
하나 이미 한 번 무결의 디멘션 워커를 통하여 파괴의 힘을 겪어본 경험이 있는 서준은 담담하게 글룬 의 힘을 받아들여냈다.
마침내 대기 중에 떠다니던 모든 기운을 받아들여내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금룡흑포에 보관해둔 무결의 디 멘션 워커가 아공간에서 제멋대로 뛰쳐나온다.
띵-!
[무결의 디멘션 워커가 주샤콘이 품고 있던 고대의 힘을 홉수합니 다.]
뒤이어, 서준이 받아들인 파괴의 힘을 홉수해내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주샤콘을 처치했을 당시에도 힘 을 흡수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 데, 이제는 제멋대로 모습을 드러 내며 파괴의 힘을 흡수해내고 있었다.
‘완전히 깨어난 건가……?’
아니, 아직 완벽하게 의식을 찾 은 것은 아니었다.
분명 앙그라 마이뉴가 발산한 망 각의 힘에 당하기 전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희미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과 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무결의 디멘션 워커는 공명음을 토해내며, 기쁨을 표현해 내고 있었다.
고대의 존재들이 가진 힘을 집어 삼키는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한 호재라고 볼 수 있었다.
‘무결의 디멘션 워커의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
대신 그만큼 위험한 힘이긴 했지 만, 그래도 주인의 목숨마저 노리 지는 않았다.
고대의 존재들과 맞서 싸우기 위 하여 강한 힘이 필요한서준의 입 장에서는 상당한 전력이 될 수 있 는 무구였다.
무결의 디멘션 워커가 힘을 되찾 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이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먹어 치워.”
파앗-!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무결 의 디멘션 워커는 강렬한 보랏빛 광채를 발산한다.
무결의 디멘션 워커가 흡수한 것 은 비단 서준이 흡수한 파괴의 힘 뿐만이 아니었다.
미처 흡수해내지 못하고 대기 중 으로 흩어졌던 글룬의 힘마저 모두 홉수해낸다.
동시에 무결의 디멘션 워커의 내 부에 어떠한 기운이 맹렬하게 꿈틀 거리기 시작했다.
“와..”
감탄이 홀러나왔다.
서준은 이렇게 강렬한 기운을 난 생처음 보았다.
“이게 진짜 파괴의 힘이란 건 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얼마 가지 않 아서 강렬한 기운이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침묵에 잠긴다.
다소 아쉽긴 했지만, 가능성을 보았고 방식 또한 익혔다.
이렇게 길을 알고 있다면 찾아가 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더불어, 일부라고는 하지 만 침묵만을 지켜오던 무결의 디멘 션 워커가 힘을 되찾아냈다.
“수확이 상당하네.”
당장이라도 무결의 디멘션 워커 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알바론 차원, 리벨리온 연합군은 아직 전투를 벌이고 있을 수도 있었다.
승리를 단언할 수 있다지만 피해 는 적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확실하게 정리해내야지.’
서준은 곧장 등을 돌리며 알바론 차원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