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3화
353화
손익 계산, 그건 비단 사람들만 이 보이는 행동이 아니었다.
신격에 오른 존재들조차도 스스 로의 안위와 이득을 따져가며 행동 을 한다.
아니, 영겁을 살아가야 하는 만 큼 신격들은 오히려 인간들보다 더 욱더 손익 계산에 민감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로 꼽히는 것은 올림푸스, 제우스였다.
이런 제우스의 장기는 이번 고대 의 존재들과의 싸움에서도 발현되 었다.
‘고대의 존재들과의 싸움에 승산 은 없다.’
사전에 손을 써서 균형을 유지해 내는 것이 아닌 이상 고대의 존재 들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정해진 파멸이라고 봐도 무방했 다.
계산이 빠른 제우스가 승산 없는 싸움을 할 리가 만무했다.
스스로의 안위와 이득에 대한 계 산을 끝마친 제우스는 곧장 고대의
존재들을 찾아가 충성을 맹세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대의 존재들에게 충성을 맹세 하는 대신에 안전을 약속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승리를 만끽하는 것뿐이었다.
황금빛 갑옷들로 무장을 한 병사 들, 그 위용 넘치는 병사들의 가장 선두에 선 제우스는 등을 돌리며 소리쳤다.
“드디어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우주에 거대한 혼란과 파멸이 찾 아왔다.
충돌, 전쟁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기존 내우주의 강대한 세력들은 빠 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거대했던 신화체를 구성하고 있 던 세력들은 하루 만에 역사의 뒤 안길로 사라진다.
강력했던 신들 또한 하루아침 만 에 영멸을 맞이한다.
말 그대로 혼돈의 세상이라 불려 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제 우스가 이를 놓칠 리가 만무했다.
‘몰락한 정복왕과 케메트의 세력 을 몰아내고 내우주의 패권을 잡아 낸다.’
등 뒤에 고대의 존재들이 존재하 는 이상 패배는 생각지 않는다.
“다들 출전을 준비해라, 우리 올 림푸스가 새로운 역사의 주인으로 서……
한껏 들뜬 목소리의 제우스가 이 야기를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쾅-!
병사들이 모여 있는 연무장의 중 심에 작은 게이트가 열리는가 싶더 니, 이내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누구냐!”
예고치 않은 불청객의 등장에 연 설을 내뱉던 제우스의 미간이 찌푸 려진다.
불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지만, 구태여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다.
“저희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제우스의 주변을 연무장 에 모여 있던 병사들이 호위하듯 둘러싸며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들 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폭음에 이어진 침묵 탓일까?
주변의 공기가 유달리도 무겁게 느껴졌다.
눈매를 가늘게 뜬 제우스가 폭발 이 일어난 중심지를 바라보았다.
포털 너머로 꽤나 낯설면서도, 또 어딘가 익숙한 기운이 흘러나오 는 것이 느껴진다.
‘ 이건......!’
제우스의 눈이 가늘어지는 순간, 기운이 종적을 완전히 감추었다.
열렸던 포털 역시 빠른 속도로 닫혔다.
하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 아아……. 처음이라 제대로 왔는지 확인이 필요했는데. 꼴을 보아하니 다행히도 제대로 온 것 같군.”
구름 위에 놓인 연무장,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인형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상대를 향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건방진 것……
처음 제우스가 보인 것과 비슷한 반응을 한 병사들이 각자의 병장기
를 말아 쥐며 눈을 날카롭게 떴다.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존재이나, 여기는 성역이라 부를 수 있는 올 림푸스였다.
제우스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곳 에서 여유를 부리거나 오만할 수는 없어야만 했다.
“다들 무기를 거둬라-!”
한데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제우스가 말을 내뱉었다.
의문 섞인 시선이 또 한 번 흘렀 지만, 병사들은 일제히 무기를 거 두어들이기 시작한다.
그의 말은 이 올림푸스에 있어
절대적이었다.
“역시 가장 영리한 개군.”
허공에 뜬 이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한다.
번개의 신 제우스.
비록 아직 주신의 자리에는 오르 지 못했다고 하나, 그가 가진 존재 감과 올림푸스라는 거대한 신화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주신 에 오를 수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긴장하고 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침입자 를 어찌할지 모르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다, 계약으로 맺어진 만큼 우리는 너를 죽일 수가 없거든, 그냥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들른 것뿐이다.”
심지어 침입자는 올림푸스 자체 를 업신여기며 허공에서 연무장의 중심으로 내려온다.
이윽고는 뒷짐마저 쥔 채 마치 제집처럼 주변을 노닐었다.
“이야, 내우주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제법 그 럴싸한 세력을 갖췄네, 제우스의 수완이 좋긴 한가 보네, 뭐 그래 봤자 하찮은 것이라는 건 변함없지
만 말이야.”
이어진 침입자의 말에 병사들의 얼굴이 붉게 물들거나 딱딱하게 굳 어졌다.
당연한 것이다.
제우스의 손을 잡고 그의 병사가 되었지만, 여기 있는 병사들 대다 수는 신격에 오른 존재들이다.
모욕적인 침입자의 언사에 자존 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몇몇은 양손에 힘을 쥔 채 기세를 피워 올리기도 했다.
하나 감히 침입자를 향해 뛰어들 거나 덤벼드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올림푸스의 최강이자 동맹의 수 장이라 할 수 있는 제우스마저도 침입자를 향해 다른 말을 하지 않 은 채 딱딱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당장 느껴지는 침입자의 기운이 잔잔해 보인다고 하여 함부로 덤벼 들었다가 못 볼 꼴을 보게 된다면 본인만 손해였다.
“다들 눈치 보느라 눈알만 굴리 고 있다니, 역시 하찮은 것들답군, 크하하!”
폭소를 터뜨린 사내는 그렇게 느 긋이 걸음을 옮겨 자연스레 연회장
의 가장 높은 곳, 제우스의 자리라 할 수 있는 구름 의자에 당도한다.
이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자리인 것마냥 엉덩이를 붙여버린 다.
“저, 저......!”
누군가 참지 못하고 당황스러운 음성을 내뱉었다.
구름 의자가 무엇을 상징하는 자 리란 말인가?
올림푸스의 최고신인 제우스만이 앉을 수 있는, 그야말로 왕좌(王座) 였다.
한데 어찌 침입자 따위가 그 위
에 함부로 앉고, 제우스에게 충성 을 맹세한 병사들이 그 꼴을 보며 입을 닫고 있단 말인가?
당사자인 제우스마저도 마른침을 삼킬 뿐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않 는다.
“긴장할 거 없다니까, 자리를 뺏 거나 파괴하러 온 게 아니야, 그냥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거라 니까, 제우스.”
눈웃음을 그린 침입자의 말에 제 우스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무…… 무엇을 묻고 싶은 거 냐?”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드디어 제우스는 힘겹게나마 입을 열 수 있었다.
“제우스, 네가 복사된 지구가 있 는 외우주에서 문을 통해 내우주로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 에 관련된 거라면 저보다는 우주 협회 쪽이……
“당연히 가장 먼저 찾아가 봤는 데, 전부 영멸을 당했더라고, 앞선 이야기들은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갈게, 문의 위치 알고 있지?”
제우스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
렀다.
눈앞의 고대의 존재, 글룬이 왜 외우주로 향하려는 것인지 이유를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부터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종족……
외우주 하나를 더 파멸시킨다고 해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알고 있나 보네, 어디야?”
“내우주에서 외우주로 가는 방법 은 저도 모릅니다, 그저 우주 협회 소속의 수호룡, 1좌의 아포피스가 관리하고 있는 만큼 위치는 매번 변합니다.”
제우스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대답했다.
문을 통해서 넘어오긴 했지만, 외우주로 돌아갔던 적은 없었다.
자세한 내막이나 위치에 대해서 는 알 수 없었다.
“방법도 모르고, 위치도 모른다 면 아무것도 알고 있는 게 없다는 거군.”
글룬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능하군.”
“죄, 죄송합니다.”
얼굴이 붉어진 제우스의 이야기
에 한숨을 푹 내쉰 글룬이 뒷머리 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죽여 버리 고 싶은데 계약이 걸리는군.”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모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됐다, 너희 같은 하찮은 것들에 게 맡기느니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게 백배는 더 빠를 테니.”
“가시는 겁니까?”
이어진 제우스의 물음에 글룬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피어난다.
“다들 날 싫어하잖아. 아, 무서워 해야 한다고 옳겠군, 이렇게 겁에
질려 있는 꼴을 보고 있으면 전부 죽여 버리고 싶거든.”
글룬의 시선이 제우스를 지나쳐 연무장에 모여 있는 병사들을 향한 다.
“계약 때문에 지금 당장은 죽이 지 못하는 거 알고 있잖아? 그러니 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일단 다 음은 어디가 좋으려나……
가볍게 손을 휘저은 글룬은 당장 에라도 사라질 듯하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돌린다.
이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 나더니 제우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놈도 느꼈겠지?”
“……예.”
멀지 않은 거리, 주신들만이 내 뿜을 수 있는 거대한 존재감이 갑 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주신에 오르거나 오를 만한 존재감을 가진 이들은 모두 고대의 존재들과 그들에게 충성한 맹세한 신격들이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태 였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 낼 수 있는 주신은 단 한 명, 한서준뿐이라는 것이었다.
“상상도 못 했군, 설마 제 죽을
자리를 찾아 들어올 줄이야……
한서준, 범우주적인 이레귤러가 내우주에 당도했다.
확정된 승리에 이레귤러라는 예 기치 못한 변수가 끼어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 제우스의 입장에서 절대로 반가운 존재라고 할 수 없었다.
변수가 생기기 전 제거해둬야만 했다.
“괜찮다면 글룬 님을 돕고 싶습 니다.”
“한서준은 손대지 마라, 내가 도 착하기 전에 옆에 붙어있는 나머지
조무래기들만 정리해놓도록. ”
“명을 받들겠습니다.”
글룬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무 릎을 꿇어 충성을 보인 제우스가 등을 돌리며 소리친다.
“모두 출전을 준비하도록 해라-! 목표는 한서준과 그를 따르는 세력 들의 영멸이다!”
내우주의 한편.
주변으로 떠다니는 소행성 몇 개 가 전부인 어둠의 일부가 마치 종 이 우그러지듯 뭉쳐졌다가, 이내 활짝 펼쳐지며 무언가를 토해낸다.
마치 화이트홀이 폭발하는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 우주의 어둠을 뚫고 뛰어나온 것은 꽤나 거대한 형체의 우주선이었다.
꽤나 길면서도, 검은빛을 띠는 두터운 철갑으로 둘러싸여 있었으 며 뿜어져 나오는 기운들은 쉼 없 이 사방을 경계한다.
파지직-!
이어서 주변의 경계를 끝마친 순 간이었다.
우주선의 중심에 솟은 탑, 그곳 에 위치한 사령실에서 사람들의 눈 동자가 반짝인다.
리벨리온 연합군, 그들은 모두 각기 다른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강자라 불릴 정도의 존재 감을 내뿜고 있었다.
연합군은 방금 전 우주선과 같이 사방에 기운을 내뿜어내며 경계하 고는 이내 뒤를 돌아보며 보고를 했다.
“주변의 생명체 반응은 전혀 없
군.”
나라연천의 말에 옥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설마 내우주에 도달하지 못 한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수호룡의 명예를 걸고 단언하 지,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이곳은 틀림없는 내우주다, 생명체 반응이 없는 것은 너무 변방이거나 아니면 위치해 있었던 행성이 고대의 존재 들로 인해 파괴되었을 뿐이겠지
아포피스가 씁쓸한 얼굴로 주변
을 둘러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서준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동쪽.”
서준이 검은 눈을 빛내며 꽤나 먼 곳을 바라보았다.
“고대의 존재가 있어.”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