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권 22화
347화
권격(奉擊) 하나하나가 말 그대 로 완벽한 무결(無缺)의 힘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무의(武殺)의 극 이 실존한다면, 지금의 권격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토록 강력해 보였던 고대의 존재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 했으니 당연했다.
“어쨌든…… 고맙다. 덕분에 나 라연천이 죽지 않을 수 있었어.”
서준이 테프누트를 바라보며 미 소를 보였다.
“우리도 선의로 나선 것은 아니 야……. 무결의 신, 너에게 한 가지 원하는 게 있다.”
“편하게 말해, 할 수 있는 거라 면 뭐든 들어줄 테니까.”
“우리 케메트, 라 님을 도와다 오……
테프누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 어졌다.
고대 존재들의 움직이고 있는 만 큼 테프누트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 지는 어렵지 않았다.
“고대의 존재들을 제거해 달라 고?”
테프누트가 대답 대신 천천히 고 개를 주억인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하지.”
“……고맙다.”
“감사 인사는 됐어.”
비록 선인과는 거리가 멀었어도 받은 은혜를 잊는 파렴치한은 아니 었다.
케메트의 신들이 도와주지 않았 더라면, 서준 또한 나라연천이라는 충직한 수하를 잃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고대의 존재를 사냥하 는 것은 본래 서준이 바라는 목표 이기도 했다.
“괜찮다면, 우리가 아포피스를 데리고 가서 내우주로 향할 준비를 해놓아도 되겠지?”
“그러면 나야 고맙지.”
서준의 동의가 떨어지기 무섭게 테프누트를 비롯한 케메트의 신들 이 의식을 잃은 채로 쓰러져있는 아포피스를 데리고 단숨에 모습을 감춘다.
당장 쫓아갈 수 있었지만, 아직 서준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어느 정도 주변의 정리를 끝낸 서준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라연 천으로 시선을 향했다.
“ 주군.....♦
“고생했어.”
멀쩡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으 나, 온전하다고는 볼 수 없는 모습 이었다.
전투 중 동상을 입은 것인지 팔 과 다리가 검게 괴사되어 있는 것 부터 심각했다.
서준은 황급히 기운을 돌려 몸을 살펴본 결과, 내상 또한 적지 않게 입은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시선을 읽은 것인지 나라연천 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해야 할 일.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왕이자 신으로, 이런 충직한 신 하에게 합당한 치하를 챙겨주지 않 을 수 없었다.
푸근한 미소를 보인 서준이 손을
내뻗는다.
그러자 무결의 기운이 나라연천 의 체내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묵묵히 서준의 기운을 받아들인 나라연천의 피부는 생기가 돋아났 고, 내상 또한 빠르게 회복되어갔 다.
당연하지만, 회복은 가장 기본에 불과했다.
사도 노릇을 도맡은 나라연천에 게 서준이 기운, 힘을 불어넣는다 는 것은 힘을 하사한다는 것과 같 았다.
실제로도 두 눈을 감고 있는 나 라연천의 몸에서 찬란한 금빛의 기 운이 홀러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우주가 요동치며 진동한다.
무결의 주신의 첫 번째 사도가 탄생하고 있었다.
*
빛 한 점 제대로 들지 않는, 아 주 깊은 심연의 바닷속.
주신이라 불리는 이들이 숭배받 는 것보다 더욱더 거대한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휘황찬란한 외관과 달리 아주 깊은 바다에 있는 탓에 신앙 이라 할 것도 없었으며 왠지 모를 으스스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 지 않는 곳에 회색빛 균열이 일어 나기 시작하더니 녹색의 구체와 강 철 가시가 돋아나있는 거대한 민달 팽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느긋하게 신전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두 존재의 모습에 신전 내부 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홀러나 온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거지?”
어둠뿐인 신전 내부에서 반인반 수(半人半獸), 민달팽이의 하체와 인간의 상체, 그리고 미남이라 불 려도 될 정도의 얼굴을 가진 사내 가 월계관을 쓴 채로 유영하며 나 오고 있었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된 세 마리의 괴생명체 중 강철 가시를
두르고 있는 민달팽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주샤콘이 소멸했다……
반인반수, 심해 속 신전 주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동료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거나,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은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대의 존재들은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고, 싸워온 만큼 동 족이 소멸하는 것을 이따금씩 지켜 봐 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전의 주인
이 놀람을 표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주샤콘은 외우주로 가, 문을 제 거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고대의 존재들과 필적할 만한 힘 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같은 신격이 아니라면, 수많은 생명체에게 찬양, 경외를 받는 주신(主神), 그중에서 도 강자라 불리는 이들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주신들은 모두 동 족에 의해 압박받아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파괴하기 위
해 나다녔던 주샤콘이 소멸한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결의 주신이라는 존재에게 당 했더군.”
강철 가시를 두르고 있는 민달팽 이의 말에 신전의 주인이 헛웃음을 홀린다.
“그 풋내기가?”
“주샤콘을 소멸시킨 시점에서는 더 이상 풋내기가 아니지.”
“그래, 굳이 따지자면 라에 필적 하는 주신이겠군.”
“정말 말도 안 되는 성장이 지……. 아마 어떠한 절대적인 법
칙의 총애를 받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민달팽이의 말에 신전 주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귀찮은 놈이 섞여 있었군.”
“허나……. 아직 그는 미약하고, 시간도 얼마 없지.”
총애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성장 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미 고대 존재들의 침공이 시작 된 시점에서 무결의 주신이 마음 놓고 힘을 증폭시킬 만한 시간은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제거해두 는 게 좋지 않을까?”
“계약위반으로 인한 리스크 때문 에 더 이상 전력을 끌어올 수 없 다.”
“그럼 대체 어쩌자는 거지?”
계속해서 빙 둘러 이야기를 하는 강철 가시를 두르고 있는 민달팽이 를 향하여 신전의 주인이 미간을 찌푸린다.
“총공세를 펼쳐, 라를 제거한다.”
“서서히 신격들의 지배력을 갉아 먹는다는 계획을 세운 네놈이 그런 말을 한다고?”
“상황이 변했을 뿐이다,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을 뿐.”
“결국, 계획이 실패했다는 건데, 그에 따른 대가는 어떻게 치를 것 이지?”
신전의 주인을 바라보는 강철 가 시를 두르는 민달팽이의 눈동자에 불쾌함이 피어오른다.
“대가를 치를 일은 없을 것이 다.”
“뭐……?”
“착각하고 있군. 글룬, 지금 네가 내게 대가를 따질 만한 위치가 아 닐 텐데?”
“실패 시 모든 직위를 박탈한다 는, 명령을 잊었나? 글라키.”
“아직 침공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획은 무너졌지.”
글룬의 몸에서 피어나오는 기운 에 주변으로 생명체가 썩어가고, 건물이 와해되어간다.
“내가 지휘관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탐탁지 않은 것은 알겠다만, 지금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어리석 은 행동이라는 것은 알 텐데?”
모시고 있는 신, 아우터 갓의 명 령을 받아 균형이 무너진 은하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어야만 했다.
사사로운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 려 명령을 그르쳐서는 안 되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나 가슴이 따라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순순히 글라키의 계획 을 따라주고 싶지는 않았다.
“주신을 압박하는 것은 지금과 같이 유지하고, 무결의 주신, 그놈 은 내가 제거하겠다.”
“주샤콘을 소멸시킨 놈이다, 혼 자서는 위험할 수 있다.”
글룬의 입가가 크게 비틀린다.
“내 능력을 잊은 건가? 난 주샤 콘 놈처럼 무식하게 싸울 생각이 없다.”
침묵을 지키던 글라키가 고개를 주억 인다.
“좋다, 네놈 뜻대로 해봐라.”
“바라던 대답이군.”
일대로 퍼져나가던 글룬의 기운 이 서서히 사그라들자, 썩어가던 세계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한다.
“굳이 너와 더 나눌 말은 없어 보이니 나는 그럼 곧장 놈을 제거 할 준비를 하도록 하지.”
“마음대로 해라.”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 글룬의 신형이 회색빛 균열에 휘감기며 자 취를 감췄다.
“글룬이 혼자서 감당하기는 힘들 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녹색 구체의 물음에 강철 가시를 두른 민달팽이의 눈가에 짙은 웃음 이 그려졌다.
“무결의 주신, 놈은 불합리하다 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총애 를 받고 있어, 내 눈으로도 미래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헌데 직접 보지 않은 탓인지 그 근원에 대해서 알아낼 수가 없었네.”
분명 강하다.
하지만 지금 가진 정보로는 정확 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한계가 어 느 정도 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 었다.
“글룬을 미끼로 던져 놈의 힘을 관측하려는 것이냐?”
“미끼라니, 그저 놈이 나서고 싶 어 하여 보냈을 뿐이다.”
“마법 지식을 다루는 놈들은 역 시 이해할 수가 없군.”
“이해할 수 없는 것, 혼돈. 그게
바로 우리의 근원이지 않은가.”
“내 앞에서까지 말도 안 되는 변 명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네, 글라 키, 그저 네놈이 보고 들은 바를 들려주기만 하면 된다네, 그렇다면 어차피 나는 눈을 감고 있을 것이 니.”
녹색의 구체의 말에 입가로 비릿 한 미소를 띤 강철 가시를 두른 민 달팽이가 고개를 주억였다.
서준과 나라연천은 다시 지구로 귀환했다.
본래 곧장 테프누트와 합류하여 라를 도우려 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포피스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아 직은 문을 열 수 없었고 우선은 지 구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서연이의 안전을 확인하고, 수적 열세에 몰리고 있는 라를 구해야 하는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지만, 조바심을 느껴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서준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집으로 되돌아왔다.
‘차라리 잘됐어.’
테프누트와 짧은 대화를 나눈 바, 지금 라를 압박하고 있는 고대 의 존재는 자그마치 셋.
서연이 있는 정복왕의 성역 또 한, 주변에 다른 고대의 존재들이 지키고 있을 확률이 농후했다.
마음만 앞서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준비를 하고 가는 게 현명해.’
그리고 지금 서준은 확인해야 할 성장들이 몇 가지 있었다.
‘레벨업과 무결의 디멘션 워커.’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되어서일 까?
레벨 업으로 주어지는 보상이 전 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분명, 보너스 포인트를 획득했다 했어.’
난생 처음 보는 메시지였지만 그 렇게 놀랄 것도 아니었다.
포스 시스템은 한때 많이 즐겼었 던 ‘게임’과 똑 닮아 있었으니 말이 다.
그리고 중원 대륙으로 끌려가기 전 PC게임부터, 스마트폰의 게임들을 즐겨왔던 만큼 서준은 이 보너 스 포인트라는 부분을 쉽사리 이해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택하여 스텟을 올릴 수 있는 포인트.’
자동으로 성장하는 전의 포스 시 스템과 달리 이제는 직접 포인트를 분배하여 스테이터스를 올리는 구 조로 변경이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혼자서 추 측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직접 확인해보면 그만이지.’
고개를 주억인 서준은 업그레이 드된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