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권 11화
336화
그도 그럴 것이 현 연합의 모든 관리를 맡은 강석호조차도 서연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물게 당황스러워하는 서준의 모습에 식탁에 앉아있던 양친의 시 선이 쏠렸다.
“판데모니움 쪽에서도 군대를 이 끌고 출전한 이후에 단 한 번도 돌 아온 적이 없다고 해요.”
부모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져 갈 때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직접 가 볼게요. 판데모니움에 들러서 서연 이를 찾아야죠.”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렇다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만한 일도 아니었다.
“미안하구나, 쉬고 싶을 텐
데……
그 탓에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으 나 서준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내 저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죠. 저도
휴가를 반납하는 대신에 어머니, 아버지께 부탁드릴 게 하나 있거든 요.”
본래는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 여 있을 때 권하려고 했던 사안이 었다.
그러나 서연의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되자 조금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허공에 손을 뻗은 서준의 손에서 기운이 폭산한다.
실내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어둠 에 둘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한석훈의 얼굴에 당황이 어린다.
“새로 얻은 힘이에요, 무결(無缺) 의 어둠이라고 하더라고요.”
본래 같은 속성인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제각기 다른 강점, 약점 들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에 무결, 흠이 없다는 것 은 어떠한 힘에도 자연스레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힘을 강제로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강요를 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받아들이신다면 더 욱 강해질 수 있으실 거예요.”
서준이 귀환 이후 세웠던 목표인 가족의 불로장생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양친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아플지도 몰라요. 하지 만, 결과는 만족스러울 거라고 장 담할 수 있어요.”
말을 끝낸 서준은 손바닥에서 흘 러나온 어둠의 기운을 양친의 몸 안으로 흘려보냈다.
지잉…….
공명음과 함께 부모님들의 두 눈 이 부릅 뜨인다.
이어 찾아온 고통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지만, 그만둬 달라는 생각 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강해지기 위해서 끊임없 이 수련해온 것은 서연뿐만이 아니 었다.
곧, 거실에는 깊은 침묵이 내려 앉았다.
한석훈과 양정화는 일종의 봉인 상태에 들어갔다.
‘무결의 어둠을 나눠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주신에 오른 서준이 직접 빚어낸 어둠이었기에 흡수할 수만 있다면 성장은 보장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무결의 어둠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 다른 만 큼 성장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잘만 된다면, 단숨에 그릇을 깨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추게 될 것이고, 실수한다면 그다지 눈
에 띌 만한 성장을 느끼지 못할 수 도 있었다.
결과에 따라 극명한 차이가 있었지만 서준은 크게 염려치 않았다.
집안의 내력, 무골의 기질을 믿 는 것이었다.
아니, 가족이기에 믿는다.
‘내 재능과 성격 모두 부모님에 게서 비롯된 거니까.’
양친도 결코 쉽게 꺾이지 않고 흘러들어온 어둠을 모두 홉수할 수 있을 터였다.
실제로 둘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어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때문에, 가지고 있던 어둠의 힘 이 꽤나 소모되었지만 크게 아깝지 도 않았다.
‘이 정도야 뭐……
힘이 소진된 것은 곧. 흠이 생겼 다는 것.
당연하지만, 무결이라는 신격이 이를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리 가 없었다.
소모된 힘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돌아오게 될 것이다.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 이었다.
미소를 지은 서준은 그렇게 부모 가 봉인된 집 근처에 결계를 둘러 둔 채 판데모니움으로 향했다.
‘서 연이./
동생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앞서 서연이 보였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어째서 이런 무모한 강행군을 걸어 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강한 힘에 대한 갈망이겠지.’
한번 제동을 걸어두긴 했지만, 욕망 자체를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 했을 것이다.
목숨을 잃을 정도의 무모함을 보 이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물론, 급하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날뛸 생각은 없었다.
머리를 차갑게 식힌 서준은 최대 한 침착하게 행동했다.
‘지구에서 알아볼 수 없다면.’
서준은 곧장 판데모니움의 가장 깊은 지하인 무저갱으로 향했다.
“위대한 마신님을 뵙습니다.”
“쓸데없는 예의 차릴 거 없어, 서연이의 행방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이 있지?”
판데모니움이 리벨리온 연합에 소속되어 있다고 했지만, 그건 어 디까지나 마신, 한서준이라는 존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오만했던 악마 종족이 인간을 중심으로 모인 연합을 진정한 동맹 으로 생각해줄 리가 만무했다.
“마몬과 함께 만마전의 군단을 이끌고 수호룡을 사냥하러 떠났습 니다.”
문책하기에도 모호했다.
지구로 보낸 짧은 답신과 달리 내뱉는 목소리에는 충성심이 가득
하다.
과거에도 비슷했지만, 지금은 더 경외심이 넘치는 듯하다.
가진 힘이 커진 탓이 가장 클 터 였다.
‘종족의 특성상 어쩔 수 없 나……
그래도 원활한 업무를 위해서는 한번 경고를 해두긴 해야 할 것 같 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서연이를 찾아서 돌아가 는 것이 급선무다.
“안내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개를 주억인 서준은 묵묵히 무 저갱의 마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보이지 않는 방벽, 우주를 둘러 싸고 있던 그 벽에 거대한 흉터와 같은, 흔적이 생겨난다.
세상이 흔들리고, 땅이 무너졌으 며 바다가 솟구쳤다.
자연스럽게 차원은 흔적도 남기 지 못한 채 소멸했다.
그렇게 몇 개나 되는 차원을 부 쉈을까?
갈라지는 균열 속 회색빛 기운을 바라보고 있는 앙그라 마이뉴가 광 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이리 오너라! 모두 외 부의 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회색빛 기운이 넘실거리는 세상, 그 너머에서 건너온 존재들을 본 앙그라 마이뉴의 미간이 찌푸려진 다.
“어째서?”
분명 혼돈을 일으켜 방벽을 부수 고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회색빛 세상 너머에서 넘 어오는 고대의 존재들은 단 한 명 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넘어온 것은 그들의 편 린, 고대의 찌꺼기들뿐이었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단 말인 가……
빛과 어둠, 모든 것을 집어삼켜 본래의 힘을 되찾은 앙그라 마이뉴 는 주신에 달하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존재
하나조차 넘어올 수 있는 균열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단 한 명만 넘어오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차원이 공 포 혹은 광기로 물들 것이다.
그렇게 빚어진 혼란으로 더욱 많 은 고대의 존재들을 불러낸다.
이후, 종국에는 아우터 갓들을 불러낼 생각이었다.
‘빌어먹을 정복왕 놈.’
정복왕이 어떤 존재와 무슨 계약 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고대의 존재
들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문을 열 어낼 수 없도록 제약이 가해졌다.
처음에는 다소 까다로운 제약이 긴 했지만, 직접 문을 열어내어 고 대의 존재들을 불러낸다면 문제가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참혹했다.
“지금 내가 가진 힘으로는 고대 의 존재들이 넘어올 통로조차 만들 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더욱 강한 힘이 필요했 다.
내우주에는 수많은 사냥감이 있
었지만, 고대의 존재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조무래기들의 힘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확실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필요했다.
‘무조건 주신을 먹어치워야 한 다.’
생각이 닿자 당장 떠오르는 신격 들이 몇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라를 집어삼 키면……
고민을 이어가던 앙그라 마이뉴 는 얼마 가지 않아서 고개를 내젓
는다.
라는 혼자가 아니다.
수많은 케메트의 신들이 그를 비 호하려 할 것이다.
주신에 달했으면서 강력한 세력 을 거느리지 않은 신격.
순간 머릿속을 강렬하게 스쳐 지 나가는 존재가 있었다.
“마신 놈이라면.”
세력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리 강 력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세력을 끌고 다니 거나 방패막이로 쓰지 않는다.
그간 보았던 마신은 대부분 홀로 짊어지고, 돌아다녔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앙그라 마이 뉴의 시선이 검은 우주 너머 먼 곳 의 어딘가를 바라본다.
우주 너머의 회색빛 세상에서 당 장에라도 앙그라 마이뉴를 집어삼 킬 듯 차가운 경고를 발하고 있다.
“강력한 것은 인정한다만, 계약 으로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 은가?”
싱긋 웃은 앙그라 마이뉴가 손짓 하자 어둠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꿈틀거리던 회색빛 일부를 단숨에
물린다.
이후 다시 마신과의 싸움에서 얻 을 손익을 계산한다.
‘주신급이지만 아직 힘을 다루는 것이 미숙하고, 거기에 후환까지 확실히 제거해둘 수 있다.’
최적의 사냥감이자 사냥 시기라 는 것이었다.
“즐거운 식사가 되겠군.”
혀로 입술을 핥은 앙그라 마이뉴 가 등을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서연을 찾아 나서는 것은 생각보 다 어려운 일이었다.
마왕의 인도에 따라 차원에 도착 하자 들은 소식은 서연이 다른 차 원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 차원으로 가자 또다시 다른 차원으로 갔다는 말뿐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차원을 정복한 것인지 이미 건넌 차원만도 수십 개가 될 지경이었다.
기동성이 뒤처지는 무저갱의 마 왕을 모두 돌려보내고 혼자 추적을 이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서연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 했다.
괜히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에서준의 얼굴에 절로 그늘이 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 됐네.’
고민에 빠진 서준이 손을 턱에 괴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 음이구나.”
어딘가에서 갑작스러운 음성이
끼어들었다.
“……‘?!”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인기척이 없었다.
다만, 빛을 삼켜낸 어둠이 서준 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 이건......?”
다소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 어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곧장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둠은 자연스레 사람의 형태, 앙그라 마이뉴로 변모했다.
어둠 속에 반짝이는 안광이 서준
을 빠른 속도로 훑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의 말에 담 긴 의중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허나 사내의 몸에서 피어나고 있 는 것은 완벽한 살의였다.
눈을 흘긴 서준은 곧장 기세를 일으키며 앞으로 쏘아진다.
어둠을 몰아내고, 허공을 가로지 른 서준은 단숨에 앙그라 마이뉴의 앞에 당도한다.
쌔액-!
“들었던 대로 성격이 급하구나.”
“막았어‘?”
서준의 눈이 가늘어진다.
다소 가벼이 날린 공격이라지만 평범한 신격 따위가 막을 만한 것 은 아니었다.
눈앞의 어둠 또한 주신에 오른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어둠을 다뤄낼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살의 를 품고 찾아올 이는 더더욱 적었다.
아니, 한 명이라고 봐도 무방했
다.
“앙그라 마이뉴.”
“머리는 비상한 편인 것 같은데, 처음이라 그런지 아직 힘을 다루는 게 확실히 미숙하군.”
서준은 대답 대신 비릿한 미소를 홀리며 몸을 날린다.
그 순간 주변으로 생성된 무결의 어둠이 서준이 내뻗고 있는 주먹으로 모여든다.
응집된 힘이 앙그라 마이뉴를 향 해 내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미 도착했다.
제대로 된 방어를 펼치기도 전, 칠흑의 어둠들을 갈라내며,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앙그라 마이뉴의 목덜미를 붙잡아 바닥으로 내던졌 다.
쾅-!
폭음과 함께 세계가 뒤흔들렸다.
쿠구구궁-!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 조소가 피어난다.
“이래도 미숙한 것 같아?”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