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권 9화
334화
“어차피 네놈의 그릇은 거기까지 다. 헛된 희망이거든 품지 마라. 아 니지, 그 업보를 생각하면 발버둥 쳐야 하려나?”
“닥쳐라!”
두 눈을 붉힌 앙그라 마이뉴가 비웃음을 짓고 있는 엔델레우스의 팔과 다리를 절단했다.
“크홉……! 현실을 부정하려 하 지 마라, 네놈도 느끼고 있지 않나.
이 우주에 새로운 주신이 탄생했다 는 것을.”
문득, 머릿속에 우주 협회가 계 속해서 감시하고 있었던 서준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 다만……
이토록 빠른 시간에 주신의 자리 에 오른 존재는 없었다.
주신의 운명이란 그야말로 타고 나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우주 협회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해왔던 과업 중 한 가지를 서준은 100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도
달해버렸다.
사실상 지금 찾아오고 있는 죽음 보다, 그 현실이 엔델레우스를 더 욱 괴롭게 만들었다.
‘대체 그는 어떤 특별함을 가지 고 있기에……
직접 만나 보고 싶다.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감사관의 행동 때문에 원한을 사 게 된 만큼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 겠지만 상관없었다.
한서준이 가진 그 특별함이 새로 운 지식으로 전달되고 하나의 성과 가 될 수 있다면 만족스러운 죽음
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실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본부는 불에 타 사라졌고, 육신 은 완전히 넝마가 되었다.
자연스레 엔델레우스의 두 눈동 자가 이 모든 원흉을 향해 광기를 폭산했다.
“반쪽짜리 어둠……. 앙그라 마 이뉴여 너는 주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
“반쪽뿐이라면 절대 오를 수 없 겠지, 하지만 그래서 직접 찾으러 온 것이다.”
앙그라 마이뉴의 어둠이 계속해 서 주변을 훑었다.
“희망을 품지 말아라, 앙그라 마 이뉴, 이곳엔 무엇도 없다……
“아니, 엔델레우스.”
앙그라 마이뉴가 일대를 휘감고 있던 어둠을 거두어들인다.
동시에 휘몰아치던 어둠이 단숨 에 엔델레우스의 몸을 허공으로 높 게 띄웠다.
강제로 일으켜진 엔델레우스에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자연스레 맞 부딪혔다.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 다.”
“여전히 멍청하군, 분명 무엇도 없다고 말했거늘.”
“숨기려 해봤자 소용없다. 난 은 하에 있는 우주 협회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불태울 것이다. 하면 결국 에는 찾을 수 있겠지, 내 반쪽인 아 후라 마즈다가 남긴 빛의 조각.”
“무슨 헛소리를……
정말 찰나와 같았다.
무덤덤한 목소리를 흘리고 있던 엔델레우스의 눈빛이 아주 짧은 떨 림을 토했다.
“역시 가지고 있었구나! 크하하 하!”
짧은 변화를 놓치지 않은 앙그라 마이뉴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온 다.
‘이놈이 어떻게 그걸……:
엔델레우스의 머릿속이 크게 흔 들렸다.
주신(主神)이라 불렸던 아후라 마즈다는 소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약해진 틈을 타 우주 협회가 소멸시켰다.
그리고 실험을 하기 위하여 아후
라 마즈다의 안에서 강제로 뽑아낸 것이 바로 앙그라 마이뉴였다.
실제로도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간 풀지 못했던 협회에서도 비 밀들과 매력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만큼 계속해서 앙그라 마이 뉴를 성장시켰다.
때문에, 본부에서의 명령이었던 ‘아후라 마즈다가 품고 있던 빛의 폐기’를 거부하고 훗날의 실험을 위하여 혼자만의 장소에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후라 마즈다라는 주신이 남긴 조
각의 매력은 그런 당연한 사실조차 도 잊게 만들 정도였다.
이후 엔델레우스는 본부의 명령 조차 무시한 채, 누구에게도 알리 지 않고 연구를 진행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구성과 형태에 큰 발전은 없었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자그마치 주신에 올랐던 존재의 조각을 연구하는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전 은하에 흩뿌 려진 모든 우주 협회가 머리를 싸 매고 연구하여도 도달하지 못했던 이상향이었다.
처음부터 쉽게 이루어 낼 수 있 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때가 흐르고 흘러 만약에라도 연 구의 성과를 낸다면, 그 이후의 일 은 상상만으로 짜릿했다.
엔델레우스는 그 먼 곳만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아후라 마 즈다의 조각에 대해 발설하지 않았 으며, 보인 적도 없었다.
한데 자신이 탄생시키고 키워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앙그라 마 이뉴가 어찌 그 사실을 알고 있단 말인가?
전 우주를 통틀어서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단 한 명, 본인뿐 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네놈도 알고 있지 않나? 항상 전 은하를 감시하고 있던 존재들과 신이 있다는 것을.”
“..!!”
엔델레우스는 더 이상 감정의 동 요를 감추지 못했다.
앙그라 마이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고대의 존재들이 섬기는 신들께 서는 수만 년에 달하는 시간을 숨죽 이고 있었다. 때가 오기를 말이다.”
“맙소사……
엔델레우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욕심에 눈이 멀어 망각한 것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분들이 바라던 때가 찾아왔다, 이제 이 은하는 끝 없는 혼란에 빠지고 광기에 물들어 파멸해갈 것이다.”
한번 일어난 균열은 다시 메꿔지 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틈을 키워 은하 전체에 거대한 파멸을 만들어낼 것 이다.
머지않아 수만 년간 숨을 죽여 온 고대의 존재들이 섬기는 신이 넘어올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진다 는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자격을 갖추어 그분 들을 숭배하거나 아니면 함께 광기 에 물들어 죽어가거나.”
“앙그라…… 마이뉴……
엔델레우스의 몸이 파르르 떨리 기 시작했다.
눈앞의 악의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과 같은 광기가 넘실거리고 있다.
“진심으로 고맙다, 네놈의 욕심 덕에 그분들을 섬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겠구나.”
“이 미X…… 악의 덩어리여……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거 냐?”
“난 이곳에서 아후라 마즈다의 조 각을 품고 주신이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끝없는 혼란 이 찾아오게 된다면 고대의 존재들 께서 섬기는 신, 아우터 갓께서 넘 어올 수 있는 통로가 열리겠지.”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
이다!”
엔델레우스의 눈에 공포심이 차 올랐다.
고대의 존재, 그들이 섬기는 신 에 관련된 정보들을 알고 있다면 이 심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우터 갓, 외부의 신이라 불리 는 그 신격들은 세상을 광기로 물 들이고 파멸로 이끌, 끝에 도달한 존재였다.
그들을 마주하는 것은 죽음을 초 월한다.
영멸(永滅)을 뛰어넘는 공포였다.
영원한 공포와 광기에 잠기게 될
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엔델레우스 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온다.
“그게 바로 내가 추구하는 악의 다. 아니라면 평생을 증오해온 엔 델레우스, 네놈을 아직까지 살려둘 이유가 없잖아? 크하하하!”
광소를 터트린 앙그라 마이뉴의 눈이 그가 쳐들어오기 전까지 앉아 있던 엔델레우스의 책상을 향했다.
“네놈이 보인 감정의 동요 덕분 에, 애꿎은 곳을 뒤지지 않아도 되 었구나.”
쾅-!
폭음과 함께 책상이 터져나가며
그 아래에 감춰져 있던 비밀 공간 이 드러났다.
“아아, 앙그라 마이뉴……. 이 어 리석은 악이여!”
“실컷 발버둥 쳐라. 어차피 찾아 올 공포와 광기에 미쳐버릴 테니 말이야.”
비릿한 미소를 홀린 앙그라 마이 뉴가 만신창이가 된 엔델레우스를 아무렇게나 내던지고서 느긋한 걸 음으로 숨겨져 있던 비밀 공간으로 향한다.
그 안에 감춰진 아후라 마즈다의 조각으로부터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힘만으로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며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
‘이곳에서 나는 주신이 된다. 그리고 고대의 존재들을 숭배하는 사 도가 되어……
탄생의 이유이자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악의를 모든 은하에 뿌린다.
공포와 광기, 그리고 악의로 점 철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 이다.
‘그곳이 악의로 탄생한 내가 살 아갈 이상향.’
어떠한 긍정적인 감정도 남지 않
은 어두운 세계만이 앙그라 마이뉴 가 바라는 진정한 목표였다.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서준은 정복왕의 성역을 떠났다.
정복왕과 함께 지구로 되돌아가 는 서준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본 라가 크게 기지개를 펼친다.
“나도 이만 돌아가 봐야겠군, 전 해야 할 소식들도 많으니 말이야.”
라의 말에 고개를 주억인 정복왕 이 입을 연다.
“어디까지나 임시 동맹일 뿐이 야.”
“임시라고 해도 일단은 동맹이 지.”
“고대의 존재들을 밀어내고서도 계속 세력을 모으려 한다면……. 그때는 방관하지 않을 거야.”
“더 이상 모을 필요가 없어졌는 걸. 든든하게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인 정복왕님이 계시는데 왜 쓸
데없는 짓거리를 하겠어?”
“분명 임시라 했을 텐데?”
“미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 나‘?”
능글맞은 라의 미소에 정복왕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만 돌아가.”
“이게 말로만 듣던 토사구팽이라 는 건가!?”
“약속했던 계약은 지켰잖아.”
“쌀쌀맞기 그지없군, 그래도 지 금은 동료인데 마신을 대할 때의 반만큼이라도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것이……
라의 말은 듣지도 않겠다는 듯 등을 돌린 정복왕이 자신의 성역의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아예 가치가 없는 이야기 취급받 은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저 어린 마신이 대체 어디가 그리 좋 은지 모르겠군.”
잠시 걸음을 멈춘 정복왕이 등을 돌리어 라의 얼굴을 응시한다.
비난하면 당장이라도 찢어죽일 것 같은 살기다.
“아니, 내 말은 관계 자체가 도
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런 거 네.”
“ 뭐가?”
“아무런 인연도 없는데, 어느 날 부터 계속해서 호의를 주고 있지 않나?”
“있어……. 인연.”
씁쓸한 미소를 보인 정복왕이 다 시 등을 돌린다.
“네가 신경 쓸 만한 이야기는 아 니니까, 관심 꺼, 그리고 지금 나랑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슈랑 테프투스에게 동맹에 관한 이야기 를 전하기나 해.”
이후 그녀의 모습이 허상처럼 사 라졌다.
대화 자체를 완전히 근절한 것이 다.
“인연이 있다니,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군.”
라는 그 뒷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비록 한서준, 마신을 지켜본 것 은 근래 들어서였지만 홍미가 동했 고 동맹의 후보로 점찍은 상태였기 에 과거에 대해 낱낱이 조사를 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정
복왕이 사용하던 수투를 사용한다 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마신을 바라보는 정복왕의 시선 은 단순히 후계를 바라본다고 생각 하는 것과는 엄연히 달랐다.
‘굳이 치자면……
사랑.
심지어 아주 깊은 사랑을 품고 있었다.
오랜 시간 지켜봐 왔던 정복왕의 모습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의문이 남긴 했지만, 꼬치꼬치
캐물어봤자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 것 같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역시 마신은 특별하단 말이야.”
입가에 환한 미소를 그린 라의 머릿속에는 전날 벌였던 서준과의 싸움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고대 존재들의 침공이 생각만큼 두렵지는 않겠어, 후후……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든든한 동 료의 모습에 라의 입가에서는 계속 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