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권 5화
330화
때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놈들이 왔다.”
티아마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갖가지 마법으로 방비가 되어있 었지만, 이미 수많은 수호룡을 죽 이고 온 만마전의 군단의 앞길을 막아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티아마트가 승리
를 점했던 것도 레어의 방어 마법 을 신뢰해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무식하게 침공을 해오다 니, 주제를 모르는 오만한 것들.”
가늘어진 눈을 뜬 티아마트는 거 대한 입을 쩌억- 벌린다.
우웅-!
대기가 진동하고는 일대의 마나 가 모여든다.
그 기운의 격류를 느끼며 마나를 응집시킨 티아마트의 입에서 불길, 용의 숨결이 뿜어져 나온다.
“죽어라.”
우매한 침공자들에게 죽음의 선 고가 내려지려던 순간이었다.
일대를 뒤덮었어야 할 불꽃이 사 그라진다.
격류를 타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흐르던 마나의 흐름마저 갑작스레 끊겨 버렸다.
“응?”
난생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티 아마트가 의문의 신음을 흘렸다.
‘용의 숨결이 사라졌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용의 숨결은 용족이 보일 수 있
는 가장 파괴적인 힘이다.
이리 허무하게 사라질 공격이 아 니란 말이다.
티아마트의 주변을 지키고 있던 사도와 가디언의 얼굴에도 의문스 러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 역시 티아마트가 내뱉은 용 의 숨결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이유가 있어 용의 숨 결을 중단했다고만 여기고 있는 것 이다.
‘대체 무슨 일이지?’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실수한 건가?’
이를 제외한다면 도저히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이 현상을 단순히 ‘실수’ 로 단정 짓고는 다시 마나를 끌어 모아 용의 숨결을 발동했다.
“죽어라!”
두 번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고 확실하게 용의 숨결을 뿜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쏘아지는 용의 숨결은 없었다.
입가로 모여들고 있던 마나의 흐
름도, 피어나던 불꽃도 보이지 않 는다.
“이게 무슨……
당황한 티아마트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터트릴 때였다.
쿠구구궁-!
티아마트가 창조한 가디언들이 레어의 입구를 향해 괴성을 내지르 며 무기를 치켜들었다.
길게 뻗어진 어두운 동공 너머로 요란한 걸음걸이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레 티아마트를 비롯한 그 를 따르는 사도들의 시선 역시 어 둠 너머로 향했다.
마치 어둠에서 태어난 듯한, 묵 색의 긴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시선 을 사로잡는다.
“누구냐?”
티아마트의 첫 번째 사도, 룽겐 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 인간?’
반면 티아마트는 기묘한 위화감 에 휩싸여 있었다.
어둠과 함께 다가오고 있는 존재 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가냘파 보였다.
기운이 강대하지도 않았으며, 딱
히 눈에 뜨이는 무언가도 없었다.
때문에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티아마트 역시 제대로 감지를 하지 못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지 않았었다.
집 안을 기어 다니고 있는 개미 의 움직임까지 모두 알 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 다가오고 있는 여인은 그 런 하찮은 존재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여인에게서 알 수 없는 위협이 느껴지고 있었다.
“질문에 답조차 하지 않다니, 네
놈이 보인 무례는 죽음으로써 속죄 하도록……
먼저 나선 룽겐이 자신의 검을 뽑아 들어 무슨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이었다.
콰직-!
갑작스럽게 뻗어진 어둠이 룽겐 의 신형을 집어삼켰다.
잡아먹혔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죽음에 티아마트의 눈 이 동그랗게 뜨였다.
‘분명, 마력의 흐름이 없었거 늘……?!’
그러나 눈앞에 벌어진 일은 빙산 의 일각에 불과했다.
여인이 앞으로 다가올수록, 티아 마트가 창조한 가디언들이 빠르게 사라져 간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어둠에 잡아먹히고 있는 것이었다.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던 사도들 역 시 별다르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방금까지 티아마트를 따 르고 있던 수하들로 가득하던 동공 이 쓸쓸할 정도로 비어버린 순간,
어둠을 몰고 온 여인이 완전히 모 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본 것과 다름없는 모습.
특이한 점을 굳이 뽑자면, 수호 룡의 2좌로서 군림해온 용의 위엄 에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있는 당당한 표정이었다.
“대, 대체 정체가 뭐냐?”
티아마트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 듬고 있었다.
여인은 여전히 존재감이 있는 듯 없는 듯 미약했다.
하나 그런 눈에 보이는 것만 믿 기에는 이미 티아마트의 주변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이 벌 어졌다.
‘최소 그릇을 깬 존재……
그것도 기이한 능력을 다루고 있 는 존재였다.
티아마트가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이미 알고 있잖아?”
처음으로 답변이 돌아왔다.
자연스레 애써 침착하려 했던 티 아마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서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
만,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육체의 감각 역시 빠르게 홑어져 갔다.
‘서, 설마 나도?’
티아마트가 다급히 마나를 불러 모은다.
그러나 그렇게 모여든 마나마저 도 어둠에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허망하게 어둠 속에 파묻혀 가는 티아마트의 눈앞에 당도한 여인이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으며 드래곤 의 가슴을 가볍게 꿰뚫었다.
촤악-!
서연은 뽑혀 나온 심장을 아주 탐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가 싶 더니, 이내 입안으로 직행했다.
수호룡의 2좌라 칭송받았던 티아 마트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 지금 서연에게는 눈앞의 용 이 누구인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 았다.
오로지 심장에 자리 잡은 강대한 마력만을 탐할 뿐이었다.
그런 서연의 옆에 조심스레 다가 온 마몬이 입을 열었다.
“그릇을 깬 것도 모두가 놀랄 일 이었습니다만……. 설마 폭식의 힘
까지 이토록 완벽히 다루게 되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을 내뱉고 있는 마몬의 얼굴에 는 조금이지만 공포마저 엿보였다.
서연은 더 이상 단순히 인간이라 고 형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폭식의 마왕, 포식의 정점이 된 것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내 탐욕의 자 리가 위험했겠군.’
지금 서연의 힘에 대한 갈망과 성장은 마몬조차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실제로도 만약 탐욕이라는 죄악 이 강한 힘을 탐하는 것만으로 정 해졌다면 서연은 폭식이 아닌 탐욕 의 마왕 자리에 앉게 되었을 것이 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강해진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힘으로는 절대 목 표에 도달할 수 없었다.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아직 부족해.”
고개를 내저은 서연은 티탄이 숨 어있는 차원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패자(S者), 정복왕의 성역의 일 부가 크게 일그러지며 커다란 게이 트가 열렸다.
그 게이트의 주변으로는 쉴 새 없이 붉은 불꽃이 피어나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마저 사 방으로 퍼져 나오고 있었다.
서준이라 할지라도 이런 게이트 의 규모를 보았다면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게이트를 넘어오고 있다는 것 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게이트 너머로 모습을 드 러낸 이는 현재 우주에서 정복왕과 비견되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설마 내가 정복왕의 성역에 오 게 될 줄은 몰랐군.”
여유롭게 게이트를 넘어온 존재 는 전신에 황금빛 외투를 걸치고, 매의 머리를 하고 있는 신, 라였다.
그는 여전히 게이트와 자신의 주 변에 머물고 있는 회색빛 기운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넘어왔음에 도 혼돈의 힘은 가진 포악함을 숨 기지 않는구나.”
애초에 완벽히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도 없었다.
혼돈의 힘은 순간의 틈을 보이면 평생을 모셔온 주인마저도 집어삼 킬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혼돈의 힘의 공격을 맞아주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찌꺼기에 불과한 것 드..’
정복왕이 다뤄내는 혼돈의 힘이 아닌 만큼, 딱히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충분히 불태워버릴 수도 있었다.
라가 격을 발산한 순간, 그의 전 신에 들러붙던 회색빛 기운의 아지 랑이들이 타오르며 자취를 감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약해져 있군.’
혀를 쯧쯧, 찬 라가 황급히 주변 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위대한 태양신 라,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을 뵙습니다. 저는 정 복왕 님을 모시고 있는 아벨이라고 합니다.”
회색빛 세상이 갈라지고 아벨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복왕은 어디 있지?”
라는 아벨이 내뿜는 강대한 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방문의 목 적인 정복왕만을 찾고 있었다.
“주인님께서는 현재 자리를 비우 실 수 없는 상태라 제가 이렇게 모 시러 오게 되었습니다.”
“마신의 상태가 많이 안 좋나 보 지? 이렇게 서 있을 때가 아니었
군. 빠르게 이동하지.”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보이던 라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린다.
라가 정복왕의 성역까지 찾아오 게 된 이유가 무엇이던가?
단순히 정복왕과의 동맹 때문만 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던 외우주 에서 온 마신.
동맹의 후보로 점찍어두었던 서준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에 어 떻게든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바로 모시겠습니다.”
아벨 역시 다급함을 느꼈는지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으며 곧장 걸음을 옮기었다.
빠른 걸음을 보이는 아벨 뒤를 쫓는 라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듯했으나 거리는 전혀 벌어지지 않 는다.
“저기로군.”
그리고 머지않아, 무언가를 발견 한 듯 혼잣말을 읊조린 라의 신형 이 타오르며 종적을 감추었다.
위치를 알고 있는 아벨의 입장에서도 정확한 모습을 확인할 수도 없는 먼 거리였지만, 라는 그를 단
숨에 뛰어넘은 것이다.
“흐읍......
라가 은연중에 흩날리는 불꽃의 잔재들에 억눌려 숨조차 제대로 못 쉬던 아벨은 그때가 되어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주인님의 뜻이 이루어지 길……
이어서 아벨은 간절히, 정복왕의 목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 를 올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 리를 주파하여 목적지에 도달한 라 의 시선이 눈을 감은 채 서준의 손 을 꼬옥- 잡고 있는 정복왕의 뒷모 즙을 향했다.
‘혼돈을 계속해서 주입하고 있는 건가?’
보통의 경우였다면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혼돈의 힘을 다뤘었고,
혼돈에게 잡아먹힌 서준의 육신을 유지시키기에는 이만한 방법이 없 었을 것이다.
‘적어도 죽지는 않게 할 수 있겠 지.’
계속해서 회복과 붕괴를 반복하 는 서준의 육체를 바라보고 있던 라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뭐지?’
분명히 마신, 한서준은 혼돈에 집어삼켜진 상태다.
당장 영멸하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서준의 몸에
서 흘러나오는 존재감, 격(格)의 힘 은 압도적이었다.
혼돈에 삼켜진 것이라고 믿어지 지 않을 정도였다.
‘정복왕, 대체 뭔 짓을 하려는 것 이냐……
라의 의문이 다시 그녀에게로 흐 를 무렵이었다.
“ 후우......
혼돈의 주입을 끝낸 정복왕은 창 백한 표정으로 천천히 뒤로 돌아섰 다.
늦었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