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권 4화
329화
이제야 부랴부랴 동맹을 청하기 위해 찾아오는 승냥이 같은 신격들 은 필요 없었다.
사사로운 이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넓은 시야와 큰 꿈, 마지막으로 그를 실천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필요했다.
‘역시 정복왕이 최고의 파트너인 데……
마음 같아서는 곧장 찾아가서 동
맹을 제안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 도 수개월째 자취를 감추고 있는 그녀의 위치를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골치 아프군.’
자취조차 찾을 수 없는 정복왕과 달리, 고대의 존재들은 지금 이 순 간에도 오랜 동면을 끝내고 움직임 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다.
‘하다못해 외우주의 마신과 연락 을 취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혼란의 중심, 새로 탄생한 마신
한서준을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다.
외우주의 존재이면서도 수많은 내우주의 강자를 쓰러뜨린,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의 강함!
마치, 처음 내우주에 들어섰을 때의 본인을 보는 것 같은 활약상 이었다.
아직은 완전하다고 할 순 없었으 나, 서준의 성장세를 보면 곧 찾아 올 대혼란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은 확실했다.
때문에, 라는 서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신, 한서준도 수개월
전부터 전혀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가장 아끼는 공기의 신, 슈를 시 켜 조사를 해보라 했지만, 서준이 마지막으로 우라노스를 쓰러트렸다 는 소식 이후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 같은 실종.
‘단순한 실종이 아니야.’
신격의 통찰이 말하고 있었다.
정복왕과 마신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그 탓에 단순히 명령내리는 것에
서 그치지 않고 몸소 정복왕과 마 신의 행방을 찾으려 했었다.
정말 오랜만에 열정적으로 힘을 쓰며 돌아다녔었다.
하지만 접할 수 있는 소식은 없 었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오히려 오기가 생기어 더욱 열정적으로 조 사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식 을 듣지 못했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토록 완벽할 정도의 은폐를 보
인다는 것은 분명 정복왕이 고의적 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녀가 작정하고 숨었다면 그를 찾아낼 방도가 없었다.
어차피 찾을 수 없다면 굳이 고 생하여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찾아올 혼란을 홀로 대비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무의미한 발버둥이 될 것 같다만.’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나름 머릿속에 그럴싸한 계획들
을 세워 마무리 고민에 들어가던 중이었으니 말이다.
황금빛 모래알들이 내리깔린 사 막 너머로 세찬 바람이 라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
“무슨 일이지?”
공기의 신, 슈는 일대의 바람을 완전히 통제하고 제어하고 있었다.
이렇게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은 누군가가 슈의 힘을 억눌러냈 다는 것이다.
“정, 정복왕이 왔습니다.”
“정복왕?!”
슈의 말에 라의 눈이 휘둥그레진 다.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라의 얼굴을 바라보던 슈가 조심 스럽게 입을 열었다.
“……본체가 온 것은 아닙니다, 한 통의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동시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반응 한 라가 허공을 날아온 공기를 받 아들였다.
서신을 받은 본인에게만 들리는
소리.
그를 확인한 라의 눈에서는 그야 말로 불꽃이 튀었다.
“무슨 소식이야?”
고개를 갸웃거린 테프누스가 슈 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슈는 어깨 를 으쓱했다.
애초에 슈의 통제를 벗어난 공기 인 만큼 어떠한 서신이 담겨있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테프누스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라의 행동을 살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차하면 우주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서신을 든 라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가정했던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무슨 소식이죠? 정복왕은 왜 이 제 와서 연락해온 거죠……?”
“흐흐…… 흐하하!”
하나 테프누스가 물음을 전부 내 뱉기도 전, 라는 그야말로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적어도 슈와 테프누스가 보기에 는 최근에 본 라의 미소 중 가장 환했다.
자연스레 연회장에 모인 신격들 의 시선도 미소를 짓고 있는 라를 향했다.
“크하하하! 도와 달라니, 어떠한 부탁이라도 들어줄 테니 한 번만 도와 달라니!”
“정복왕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고 요?”
날 선 경계를 보이던 테프누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정복왕이 누구란 말인가?
내우주의 패권을 쥐고 있다는 패 자라 불리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케메트를 견제하기 위하여 선전포 고나 경고를 해온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서신에 적혀있던 것은 그 런 강압적인 태도가 아닌 순종적인 태도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정복왕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자 차갑고 냉철한 이성이 순식간에 돌 아온다.
“기회입니다.”
입술로 혀를 핥고 있는 테프누스 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정복왕은 패자라 불릴 정도로 강 력한 존재다.
이렇게 완만한 태도를 보이며 도 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다면 큰 빚을 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많다 못해 넘쳤다.
하지만 테프누스가 머릿속으로 협상안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도와줘야지! 아무렴 내가 아니 면 누가 정복왕을 돕고 동료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라가 외친 다.
“아버지! 그래도 합당한 대가는
받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은 회의를 통해 가장 필요한 것들을 걸러낸 다음에 움직이는 것 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제 곧 동 료고 친구가 될 이에게 대가를 받 다니! 태양신 라님이 가겠다, 길을 열어라!”
테프누스의 조언이 다 끝나기도 전 태양의 의자를 떠난 라의 신형 이 불꽃이 되어 연회장을 벗어났다.
“아버......
허망하게 비어버린 태양의 의자 를 향해, 차마 말을 완성하지 못한
테프누스가 이마를 짚었다.
“여보, 부탁이 있는데......
“쫓아가 보도록 할게.”
“고마워.”
케메트의 신격 중에서 라를 쫓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신은 공기의 신인 슈뿐이었다.
아버지가 두렵긴 하였지만, 그렇 다고 부인의 부탁을 거절하여 돌아 올 후폭풍을 슈는 감당할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슈의 공기는 빠르게 라의 혼적을 쫓았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적막이 찾아 온 연회장.
황급히 고개를 돌린 테프누스는 얼굴 위로 환한 미소를 띠었다.
“미안해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저희 아버지, 라께서 워낙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계신지라 다소 다급 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신답니다, 다들 신경 쓰지 마시고 연회를 즐 기시면 됩니다. 곧 슈와 함께 돌아 올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이 무수 히 많이 오고 갔지만, 테프누스는 억지로 여유를 보인다.
“괜찮습니다!”
“하하하-! 위대한 태양신인 라의 일에 저희가 어찌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호탕하게 목소리를 높 이거나, 웃는 신들의 기합에 연회 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얼핏 보자면 찰나의 혼란으로 마 무리된 상황이었지만, 속을 보자면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이다.
현재 이 우주의 패권을 쥐고 있 다는 신격들이 엮인 일, 가볍게 넘 어가서는 안 된다.
‘부디 슈가 아버지를 무사히 데
려와야 할 텐데……
간절한 기도를 올린 테프누스가 라와 슈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2개월이라는 시간은 짧다고 말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는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나 짧은 시간에도 끊임없이
성장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크게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서준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서연의 경우가 그랬다.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 서연은 하 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왔다.
전투, 아니 살아남기 투쟁(11爭) 의 일상.
그저 구색만 갖춘 생사결의 싸움 이 아니었다.
마몬은 서준에게 개인적인 원한 을 가졌던 이들에게 몰래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서준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인지한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서연과 그녀가 이끌 고 다니는 악마 군단을 공격해왔다.
개중에는 종의 정점이라 불리는 용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습격자들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마신의 비호가 사라진 지금, 한 낱 인간을 죽이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믿고 움직였지만, 그 생각이 실수였음을 깨닫게 되는 데 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숨을 건 싸움을 거듭해온 서연 은 상식을 벗어난 속도로 강해져 있었다.
오직 강해지겠다는 집념과 집착 을 가진 서연은 악마 군단을 이끌 고 망설임 없이 전장으로 몸을 던 졌고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
그 덕에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은 서연뿐만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목숨을 건 전장을 헤쳐 온 서연의 악마 군단 또한 계속해 서 더 강해졌다.
이제는 만마군(萬魔軍)의 이름을 달고 우주의 가장 파괴적인 군단으
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복수를 다짐했던 이들 중 대다수 는 겁을 먹고 도망갔다.
몇 되지 않는 자존심이 높은 존재는 물러서지 않은 채 싸우며 우 주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유례없는 대전투가 이어져 온 지 반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서연은 외우주에서 종의 정점이 라고 칭송받는 용족,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수초룡들의 날개 를 부러뜨리고 심장을 하나둘씩 뽑 아냈다.
그렇게 연이은 승리를 쟁취한 만
마 군단의 검은 이제 가장 오래도 록 전쟁을 벌여온 수호룡의 2좌 티 아마트에게로 향했다.
차원, 브레슈아드에 위치한 거대 한 산맥 위에 지어놓은 자신의 레 어를 지키고 있는 티아마트는 고민 에 빠져 있었다.
‘지금이라도 자존심을 버리고 도 망가야 하는가……
아니면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며 맞서 싸워야 하는가?
한서연과 만마 군단이 예상을 아 득히 넘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 던 수초룡들을 모두 사냥했으나,
티아마트에게 승산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승산은 충분해 넘칠 지경 이었다.
애초에 2좌의 티아마트는 앞서 다른 수초룡들과 궤를 달리하는 힘 을 가지고 존재였다.
한서연과 만마 군단은 수호룡의 3좌인 하백을 사냥한 지 하루도 지 나지 않아, 차원을 넘어서 티아마 트의 레어를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티아마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상당히 지쳐있을 것이 틀림없을 텐데.’
3좌, 하백은 분명 강력한 수호룡 이었다.
아무리 괴물 같은 성장세를 보이 고 있다 한들, 한서연의 힘으로는 쉬이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보름은 정양해야 하는 상 처를 입었을 것이다.
헌데도 과한 자신감을 보이며 곧 장 티아마트의 레어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이동하는 동안 휴식한다고 해도 길어 봐야 이틀 정도……
그 짧은 시간의 회복이면 충분하 다고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나를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 면……. 스스로의 몸 상태조차 알 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오만한 것인가?’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을 하던 티 아마트는 고개를 내저으며 눈을 가 늘게 뜬다.
생각을 해보면 애초에 인간이란 족속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종족이었다.
‘욕심에 비하여 가진 능력은 한 없이 보잘것없는 종족.’
수천 년에 한 번 상식을 뒤엎어 버리는 이레귤러들이 존재하긴 했 지만, 이미 그 자리는 한서준이라 는 괴물이 차지한 상황이었다.
‘두 번의 기적은 없다.’
방향을 결정한 티아마트가 거구 의 몸을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제 와 도망 가기에는 여러모로 자존심이 상했 다.
무엇보다 고작 ‘인간’, 한낱 인간 따위가 두려워 꼬리를 말고 도망치 는 것은 수호룡의 자존심이 허락하 지 않았다.
“침략자들을 영멸시켜라.”
결심한 티아마트의 선언에 그를 따르는 사도들과 레어를 지키고 있 는 가디언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