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권 2화
327화
“그 무식한 괴물 놈이 죽었다 고‘?”
갑작스럽게 전해진 소식에 앙그 라 마이뉴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신에게 당했다더군.”
“예상치 못한 기회야.”
비릿한 미소를 홀린 앙그라 마이 뉴의 시선이 그를 찾아온 신들의 아버지, 오딘을 직시했다.
“우라노스 녀석, 무식한 싸움만
을 고수해 왔지. 아마 간악한 수에 당했을 거다.”
“그렇다기엔 로키도 놈에게 죽었다.”
“놈은 우리가 야훼의 힘을 흡수 할 때 혼자 따로 놀고 있었으니 까……
“그렇다면 감사관의 죽음은 어떻 게 생각하지?”
“아서는 전력을 다하지 못할 상 황이었다. 정복왕의 개입으로 은연 중에 계속해서 압박을 넣고 있었겠 지. 마음 편히 싸울 수 있을 리가 있나.”
“패자의 구구절절한 변명에 불과 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모두 단 한 명, 마신에게 당했다는 것뿐.”
“……둘러서 얘기하지 말고 본론 을 말해라.”
“진은 끝났다.”
앙그라 마이뉴의 선언에 오딘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진다.
“무슨 뜻이지?”
진은 본래 은하에 존재하는 모든 신격을 살해하기 위하여 만든 집단 이었다.
당연하지만, 수많은 적이 존재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함 부로 진을 공격할 수 없던 이유는 가진 힘이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주요 전력인 감사관과 로 키, 그리고 야훼, 우라노스와 같은 드높은 존재들이 순식간에 영멸했 다.
“이제 전력이라 볼 수 있는 것은 너와 나 그리고 제우스와 호루스 정도뿐이지.”
“아직 절반이나 남아있군. 함부 로 끝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아닌가.”
“마신이 우리를 방관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앞서 영멸한 진의 멤버들은 모두 마신, 한서준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짐작할 것 이다.
전쟁을 끝마치기 위해서라도, 한서준은 나머지 진의 멤버들도 사냥 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우리가 물러날 곳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 나!”
우렁찬 음성을 내뱉은 오딘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우리는 그대로 나아가면 그만이 야. 마신에게 많은 멤버를 잃긴 했 지만, 목표를 이루고 주신의 자리 에 오른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 진다.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렵고 겁이 나기만 한다면 네놈은 나가도록 해라. 남은 셋이 서라도 주신의 자리에 올라 보일 테니.”
미간을 찌푸린 오딘이 몸을 돌렸 다.
억지로 설득할 만한 말재주도 없
을뿐더러, 스스로가 전의를 잃었다 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의 우리는 절대 주신에 오 를 수 없다.”
그런데 앙그라 마이뉴는 단순히 ‘탈퇴’에 그치지 않고 진의, 오딘의 미래를 철저히 짓밟고 있었다.
“앙그라 마이뉴여, 정녕 이곳에서 죽고 싶은가 보구나?”
등을 돌린 오딘의 몸에서 기세가 폭발했다.
이 이상 선을 넘는다면 참지 않 겠다는 경고였다.
“주신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숭배자가 존재하고 경외를 받아야 하지. 이제 와 그만큼의 신도를 갑 자기 모으기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남은 진의 멤버는, 셋이 아니다.”
“ 뭐?”
“호루스 또한 영멸했다.”
“앙그라 마이뉴, 네놈 설마……
“그래, 네놈 또한 이 자리에서 영멸할 것이다.”
앙그라 마이뉴의 몸에서 피어오 르는 거대한 어둠이 단숨에 오딘이 두르고 있던 마법들과 충돌한다.
쾅-!
“배신이라, 그야말로 부정한 것 에 어울리는 행동이군.”
격과 기세를 동시에 떨쳐 단숨에 쏘아지던 어둠을 밀어낸 공허했던 오딘의 안광이 번뜩인다.
신들의 아버지.
한쪽 눈을 바쳐 이그드라실 아래 에 있는, 지혜의 샘의 물을 마시는 것으로 수많은 지식과 마법을 얻었다.
북유럽 신화의 최고의 신이자 한 때 가장 주신에 가까웠던 사내의 기운이 폭사하듯 터져 나오며 격을 부풀리자 날카로웠던 어둠의 낫에
단숨에 균열이 일어난다.
일대를 뒤덮을 정도로 퍼져나가 던 어둠이 밀려나기 시작한다.
짧은 순간, 거칠게 쏘아진 마법 은 어둠의 중심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 냈다.
상상을 뛰어넘는 오딘의 파괴력 에 앙그라 마이뉴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오딘……. 과연 대단하군.’
야훼를 영멸시키는 것으로 진의 멤버들은 그가 품고 있던 광명의 힘을 빼앗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른 신들과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
흩어진 광명을 다섯이서 균등하게 홉수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를 소화하는 방식은 모 두 달랐다.
당연한 것이다.
영약(S藥)이라는 것을 먹어도, 누군가는 절반조차 소화하지 못하 는 이가 있는 반면, 절반의 힘을 얻는 이도 존재했다.
그리고 재능이 특출 난 존재는 큰 훼손 없이 대부분의 기운을 순 수하게 흡수하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야훼의 광명을 흡수하는 것도 그 와 비슷했다.
그런 의미에 있어 오딘의 재능은 특출 났다.
‘역시 힘을 숨기고 있었군.’
세간 여러 신이 오딘을 평가할 때는, 대부분 치졸, 졸렬, 하찮을 정도로 약한 주제에 오만한 존재라 는 수식어가 무조건 붙었었다.
그러나 그건 모두 오딘의 진정 어린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주신의 자리에 근접할 수 있었던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빛에서 태어났기에 야훼의 광명 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흡 수한 앙그라 마이뉴보다도 광명을 더 훌륭하게 흡수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앙그라 마 이뉴를 비롯한 제우스나 호루스 등 은 느끼고 있었다.
야훼의 광명을 빼앗은 이후 진의 최강자의 자리는 오딘의 것이 되었 음을.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이 그 나마 엇비슷하게 힘을 홉수한 앙그 라 마이뉴뿐이었다.
그 정도로 오딘의 힘은 야훼의 광명을 삼키기 전과 차이가 컸다.
그렇기에 진의 주요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앙그라 마이뉴 없이 단 셋 이서라도 주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던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하군. 역시 호루스의 힘을 흡수하고 오길 잘했어.’
만약 처음부터 앙그라 마이뉴가 오딘을 노렸다면 필시 패배했을 것 이다.
앙그라 마이뉴는 곧장 뿌려 놓았
던 진한 어둠과 하나가 되어간다.
오딘은 그 풍경을 여유롭게 지켜 보았다.
“날뛰거라. 어차피 네놈의 얄팍 한 힘과 지혜로는 나를 뛰어넘을 수 없을 테니.”
숨 한 번을 내뱉을 짧은 시간, 어둠은 검은 머리카락에, 묵색의 장포를 두른 사내가 되었다.
“기다려 줘서 고맙군.”
“나야말로 고맙지, 어둠의 본체 를 죽여내지 않고는 네놈을 소멸시 킬 수 없어서 곤란했는데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주다니 말일세!”
피식 미소를 홀린 오딘의 손에 한 자루의 창이 쥐어진다.
동시에 오딘의 신형이 신기루처 럼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앙그 라 마이뉴의 신형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콰앙-!
폭음이 퍼진다.
주변의 대기가 일그러지고 충돌 의 영향으로 오딘의 긴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날뛰듯 홑날렸다.
“쯧, 언제 보아도 귀찮은 능력이
군.”
지상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오딘이 마법으로 몸을 부유시켰다.
“아무리 그래도 궁니르보다 까다 롭지는 않지.”
앙그라 마이뉴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분명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며 완 전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볼 가에 긴 흉터가 생기더니 핏물이 솟구쳤 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창의 능력 은 어둠에 몸을 숨기는 것으로도 완벽히 막아설 수 없다는 것을 다
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래서는 너무 불리한걸.’
애초에 오딘은 앙그라 마이뉴와 같이 반쪽짜리가 아닌 완벽한 신화 를 가진 존재였다.
힘의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비단 이번 싸움뿐만이 아 니었다.
반쪽에 불과한 앙그라 마이뉴는 평범한 방식으로는 주신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화는 자신이 만들고 공로는 다 른 나부랭이들이 덥석 취하게 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반쪽이었던 빛을 다시 삼켜 다 른 신화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낸 다면……
그 순간 앙그라 마이뉴는 온전한 신화체가 됨으로써 주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토록 바라왔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꿈을 위해서라도.’
눈앞의 신들의 아버지, 오딘을 처치해내야 한다.
그러나 쏟아지는 궁니르의 공격
을 막아낼 수 없었다.
애초에 반드시 명중하게 되는 공 격을 피할 방법이 존재할 리가 없 었다.
하지만 괜찮다.
지잉-
솟구친 어둠에 광명의 힘이 깃들 더니 회색빛 장막 같은 형태로 변 한다.
펼쳐진 장막은 쇄도해오던 궁니 르의 앞길을 막아선다.
쾅
충돌과 함께 오딘의 얼굴이 일그
러진다.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앙그 라 마이뉴의 몸에서 야훼의 광명의 힘이 뒤섞인다.
빛과 어둠, 상극의 두 힘이 만나 며 자연스럽게 앙그라 마이뉴의 기 운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혼돈? 이래서 가장 먼저 야훼를 사냥하려 했던 것이었군.”
오딘이 헛웃음을 홀린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혼돈의 힘 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존재들뿐이다.
어둠밖에 다루지 못하였기에 잠
시 잊고 있었지만, 앙그라 마이뉴 또한 그 선택받은 존재 중 하나였 다.
앙그라 마이뉴는 빛에서 분리된 존재.
야훼의 광명을 어둠으로써 흡수 하지 않고 빛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써 혼돈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주신에 가까이 있는 존재인 앙그라 마이뉴가 다루는 혼 돈의 힘이 가진 파괴력은 궤를 달 리했다.
때문에 갑작스럽게 혼돈의 장막 이 피어올랐을 때 오딘은 무리하게
정면 돌파를 하기보다는 물러나기 를 택했다.
‘어중간한 힘은 모두 혼돈에 잡 아먹힌다.’
포악하면서도 강력한 힘이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딘이 아직 여유를 보일 수 있는 것은 앙그라 마이뉴가 결국 혼돈의 힘을 방어에 만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혼돈의 힘을 공격적으로 다뤄내 기에는 아직 앙그라 마이뉴의 숙련 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레 겁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오딘에게는 지혜의 샘물에서 얻 은 수많은 지식이 존재했다.
‘혼돈의 힘에도 결국 약점은 존재하는 법이지.’
그 지식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광대한 마법식과 궁니르라는 신화 의 무기까지 오딘에겐 있었다.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오딘의 한쪽 눈이 빛을 뿜으며 더욱 찬란한 안광을 번뜩였다.
가볍게 손을 내뻗자 대기가 종잇 장처럼 우그러졌다.
그리고 눈앞에 앙그라 마이뉴의
얼굴이 나타났다.
‘닿았다.’
궁니르를 내뻗는 순간이었다.
쾅-!
신기루처럼 앙그라 마이뉴의 육 체가 어둠으로 변하여 비산되었다.
‘ 빗나갔다고?’
오딘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어리석긴…… 설마 내가 혼돈의 힘만으로 싸울 거라 생각한 건가?”
이어서 빠른 속도로 앙그라 마이 뉴의 어둠이 퍼져나간다.
그 뒤를 따라 보랏빛 기운이 움 직이며 세상을 뒤덮어간다.
망각(忘却).
‘ 빌어먹을.’
진의 멤버가 힘을 합쳐 야훼를 사냥할 때 나누어 사용했었던 태초 의 힘이 발산되고 있었다.
놀란 오딘이 다급하게 자리를 벗 어나기 위해 마법을 발현하려 할 때였다.
“망각에만 신경을 쓰면 안 되 지.”
어느덧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지척에 다가온 검은 눈과 머리카락 의 앙그라 마이뉴가 손을 내뻗고 있었다.
주먹에 담겨 있는 넘실거리는 혼 돈이 선명하게 보였다.
“제길......
오딘이 내뱉은 말을 끝맺기도 전 이었다.
쌔액-!
“작별이다.”
회색빛으로 기운이 일렁거리는 주먹이 쇄도하여 오딘의 심장을 단 숨에 꿰뚫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