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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319화 (319/517)

- 14권 1화

326화

서준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 했다.

[이렇게는 죽을 수 없다……!]

혼돈의 음성이 사방을 때렸고, 그와 동시에 흩어지던 회색빛 기운 들이 하나의 구체로 변해 간다.

본인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힘을 자주 사용하곤 했기에, 서준은 저 구체가 응축하고 폭발하는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위험해.’

긴장감에 팔 위로 닭살이 돋는 다.

혼돈이 스스로를 제물 삼아서 만 들어 낸 힘의 폭발.

입 아프게 그 위력을 설명할 필 요도 없었다.

[죽음마저 함께하는 것이다-!]

혼돈의 목소리가 사방을 때렸다.

이어지는 힘의 폭발에 계속된 격 돌에도 꿈쩍하지 않던 세계에 균열 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막아야 한다.

‘내면의 세계가 무너지면 끝이 야.’

하지만 어떻게?

정면으로 막아내려 했다가는 순 식간에 휩쓸려 혼돈의 의도대로 함께 죽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잘 하는 일……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패도(W 道)였지만, 그걸로 때려 부수는 것 은 불가능했다.

파괴에 파괴를 더하는 것인 만 큼, 오히려 얼마 남지 않은 폭발 시간을 당기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술 수도 없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흡수.’

눈을 빛낸 서준은 유일한 타개책 에 도달했다.

혼돈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피워 낸 혼돈의 힘을 집어삼키는 것이다.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허나 고민을 이어가는 시간조차 도 사치였다.

우웅, 우웅-

계속해서 덩치를 키워가던 혼돈 의 구체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기세 를 보이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 없이 몸이 곧장 움 직였다.

양손을 뻗어 폭발하기 직전인 혼 돈의 구체를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이 구체 역시 혼돈의 일부였기에 그를 빨아들이는 것은 어렵지만은 않았다.

[무슨……’?]

당황한 혼돈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보면 몰라……? 내가 너의 주인 이 될 거다.”

인상을 찌푸린 채, 힘겹게 답한서준에게로 혼돈의 구체가 폭풍처 럼 빨려들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힘에 노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준의 입가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나온다.

혼돈에 삼켜지며 존재 자체가 희 미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근육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두뇌가 쪼개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당장에라도 의식이 날아갈 듯했

지만, 서준은 억지로 두 다리를 부 여잡아 눈앞의 구체를 모두 집어삼 키는 데 집중했다.

‘할 수 있어. 아니, 반드시 해내 야 해.’

혼돈 그 자체가 스스로를 제물 삼아서 쏟아낸 혼돈의 힘을 삼키는 것은 애초부터 위험한 일이라는 것 은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끄으으읍-!”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아랫입술 올 질끈- 깨무는 것으로 억지로 막

아낸 서준은 이내 거대한 혼돈의 구체를 집어삼켰다.

[무슨……!]

이제는 혼돈의 음성이 몸속에서 들려왔다.

근육이 부풀다 못해 터지고, 찢 어져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온몸이 혼돈에 휩싸여 들짐승에 게 산 채로 잡아 뜯기는 듯한 고통 이 밀려온다.

굳은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 고 서준은 당장에라도 스스로의 존재를 잊고 안식을 취하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였다.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 서준은 억지로 입을 열고는 소리쳤다.

“하아아-!!”

고함이 사방을 때리다 못해 쩌렁 쩌렁 울려 퍼진다.

‘포기하지 마. 할 수 있어!’

내면에서도 서준은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몸속에 홉수해낸 혼돈을 계속해 서 짓눌렀다.

‘조아리고, 굴복해라, 내가 너의 주인이다!’

끝없는 고통이 밀려오며 정신이

흐릿해져 간다.

그러나 육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 리는 것은 아니다.

이성은 사라졌지만, 서준의 본능 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열한 기세 싸움이 이어졌다.

쉽게 끝날 줄로만 알았던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혼돈 역시 공포 를 느꼈다.

서준의 안에서 피어오르는 지독 한 투쟁 (H爭)에 욕이 안 나올 도 리가 없을 정도였다.

[반드시 함께 죽을 것이다……

떨리는 음성 속, 혼돈의 역시 최 후의 힘을 짜내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아무런 소득 없이 떠날 수는 없겠다는 혼돈의 의지 역시 강력했다.

이내 서준의 손끝 역시 회색빛 기운이 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시작된 균열은 손끝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종국에는 세계마저 집어삼켜 간다.

이윽고 세계가 완전히 회색빛으로 물들며 더 이상 비명조차 내뱉 을 수 없게 된 순간이었다.

벌컥-!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만 같은 풍경 너머, 익숙한 신형 이 눈에 들어온다.

흩어져가는 의식 속, 서준은 자 신의 몸을 다급하게 끌어안는 온기 를 느꼈다.

“서준!”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음성이다.

‘정복왕……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면의 세계에 들어오다니 어떻 게 된 것일까?

방법을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정복왕의 목소리가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것을 잊어가기 시작하던 혼 돈의 세상 속, 의식이 짧게나마 되 돌아왔다.

의식이 되돌아오자 흐릿해져 가 던 존재를 잊어가는 속도가 이전에 비해 현저히 느려지는 게 느껴졌고 무너져 가던 육체가 조금씩 수복되 기 시작한다.

그저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투쟁에 갇히며 스스로의 존재를 잊 어가던 끔찍한 상황을 가까스로 탈 출한 덕이었다.

“살아 돌아온다면서! 왜 거짓말 을 해! 정신! 정신 차리라고!”

흐릿한 의식 너머, 정복왕의 눈 물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무언가 변명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되지 않았다.

혼돈을 다루어 한군데 뭉쳐두려 했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오던 혼돈의 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 겠다는 듯, 지속적으로 서준의 육 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너무 자만했나?’

처음으로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니, 과거로 돌아간다고 할지라 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당시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서준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했다.

‘적어도 아무것도 못 하고 허무 하게 죽고 싶지 않으니까.’

물론, 이렇게 끔찍한 최후를 맞 이하는 미래 따위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사라져가려는 기억들을 떠올리며, 느릿하게나마 폭사하는 혼돈을 스스로의 것으로 녹여간다.

“......다를 거라……

옆에서 정복왕이 계속해서 소리 치는 듯하였으나 아쉽게도 더 이상 음성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달리 내면에서는 선 명하게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만, 그만…… 크아악!]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혼돈. 서준은 그의 비명에 귀를 기울였

다.

‘절대 지지 않을 거야……

지금 육체를 갉아 먹고 있는 것 은 혼돈의 힘, 만약 혼돈의 의식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서준 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줄다 리기.

서준은 그 속에서 조금씩 혼돈의 목소리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이긴다. 이기고 있어.’

마주한 승리에 절로 심장이 뛰었지만, 서준은 침착하려 했다.

지금까지처럼 다소 느긋할 정도 로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삽시간에 무너질 것 같았던 의식 과 육체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지 탱되고 있었다.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여유를 가지면 된다.

이윽고 찾아온 마음의 평안은 더 손쉽게 문제를 해결해주기 시작했 다.

그리고 마침내.

[말도…… 안 돼…….]

체내에 남아 있던 혼돈의 의식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존재를 갉아 먹던 혼돈의 힘 역 시 빠르게 안정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이겼어!’

입가에 미소를 띤 서준이 의식을 깨우고는 천천히 육신의 눈을 떴다.

‘ 어?’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는 기묘한 것들이 두 가지나 존재했다.

첫째는 눈앞에서 눈물과 콧물을 잔뜩 쏟으며 울고 있는 정복왕의 모습이었다.

‘왜 계속 우는 거야?’

물으려 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입이 열리지 않는다.

서준은 그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육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혼돈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부풀었던 혼돈을 완전히 굴복시 킨 것이다.

본래라면 서준은 자신의 손으로 이룬 혼돈의 지배에 전율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분명, 그렇게 끝났어야만 했다.

‘그런데 왜……

내면의 세계에서 붕괴되었던 상 처가 수복되지 않고 있었다.

정복왕이 그를 회복시키려는 듯 계속해서 회색빛 기운을 내뿜으며 서준의 전신을 몇 번이고 휘감았다.

얼핏 보기에는 회색빛 기운이 서준의 육신을 휘감는 순간, 붕괴한 상처가 수복되는 듯도 했다.

그러나 미봉책에 불과했다.

‘결국 회복되지는 않네.’

서준은 다소 담담하게 자신의 상

황을 직시했다.

내면의 세계에서 입은 상처로 인 하여 현실 세계의 육체가 붕괴되었다.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나.’

어쩌면 혼돈과의 싸움에서 ‘승리’ 를 쟁취해낼 수 있었던 것 또한 착 각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 나간다.

실제로도 싸움의 끝에 달할수록 서준은 자신과 혼돈의 줄다리기가 생각보다 본인에게 여유롭게 진행 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정복왕의 도움이

있었던 덕이 아닐까?

‘아, 이거 곤란하네……. 서연이 의 수련도 부탁하고 진 (Gene)의 남 은 신격들도 처치해서 균형을 맞춰 야 하는데……

난감했다.

최대한 담담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슴 한편 어딘가가 우그러 지듯 아파 왔다.

‘그래도 심장은 남아 있나, 가슴 아픈 거는 확실히 느껴지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던, 서준의 시선이 울고 있는 정복왕에게로 향 한다.

‘대체 넌 왜 그렇게까지 슬픈 건 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사과를 건 네 오는 그녀를 보니 억지로 담담 함을 가장하려 했던 감정이 계속해 서 요동친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나를 도와왔고, 지금 도 도와주고 있잖아, 근데 대체 네 가 뭘 잘못했는데?’

그저 한계였을 뿐이다.

정복왕의 탓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애초에 권하지를 않았으 면…… 조금 더 좋은 방법을 찾아 냈더라면……1”

정복왕은 이런 상황이 된 모든 연유를 자신에게서 찾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비웃고 놀리며, 정이라도 떨어트리고 싶지만 붕괴 한 육체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 가 있을 뿐이다.

이런 생각조차도 끝에 달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렇게 의식 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겹게 느껴 지고 있었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릇인 육체가 무너졌는데 정신 이 온전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오히려 이만큼이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죽 게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 그 러니까…….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알았지? 포기만 안 하면, 내가 반드시 살려낼 테니까, 믿어줘.”

정복왕이 억지로 울음을 삼키며 서준을 향해 말했다.

‘정말……. 그래 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

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삶을 이어 나가고 싶다.

무릇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생 존 본능이 서준의 뇌리를 가득 채 워간다.

동시에 지구에 남아있는 가족들 과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저도 모르게 슬픔과 미안한 감정

이 복받쳐 오른다.

반드시 행복하게 하고 지켜주겠 다고 했는데, 내뱉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운명조차 모르고 제멋대 로 말을 내뱉은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죽어가는 이 순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진실 되 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들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이어지는 참회 속, 볼 가로 뜨거 운 물기가 흐르는 감각이 느껴진 그 순간이었다.

툭-!

마치 하늘의 노을이 져가며 어둠 이 찾아오는 것처럼 서준의 의식이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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