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권 24화
324화
“살려주시게……
우라노스는 전투를 업(業)으로 삼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도 호전적인 성향에 맞게 불굴의 투지를 보여줄 줄 알았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와서 서준이 목 도한 것은 간절한 눈빛으로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볼품없는 사내일 뿐 이었다.
“아프고, 괴롭더라도, 살고 싶 네……. 하, 한 번만 더 자비를 내 려주게나.”
간절한 우라노스의 부탁에도 서준은 세차게 고개를 내젓는다.
“그럴 순 없어.”
우라노스의 차원에서 전투를 치 르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었기에 최소한의 배려를 보인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적으로 전장에 선 상황이었다.
당장은 서준이 승자로서 앞에 설 수 있었지만, 추후, 어떠한 경우에
서도 승리를 점할 수 있다는 확신 을 할 수 없었다.
아니, 당장 우라노스를 살려둔 채로 우주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까?
동정과 연민으로 후환을 남길 생 각은 없었다.
“제발…… 제발……. 크첩-!”
간절히 애원하고 있는 우라노스 의 입가로 핏물이 터져 나온다.
“……두려웠다. 내 자식들에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란 예언이 너무 나도 두려웠단 말이네. 지금도 크 게 다르지 않지. 죽음의 예언으로
부터 비롯된 내면의 공포가 뿌리처 럼 내려있네. 못난 모습이라는 것 을 알고 있었지만, 자식들을 짓밟 고, 억눌러서라도……. 이보다 더한 방법을 써서라도……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우라노스 의 눈동자가 서준을 응시한다.
“그저 오랫동안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네.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당연한 감정이지 않은가?”
“나는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네, 그러니까…… 부디 한 번만 더 자 비를 내려주게, 살려만 준다면 자
네가 시키는 뭐든 할수있으 니……
힘없는 두 팔이 서준을 향해 뻗 어진다.
“절대로 죽고 싶지 않네, 카일루 스의 이들은 내가 없으면 안 된……
우라노스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뻗어진 서준의 엑스칼리버가 그의 목을 꿰뚫었다.
“끄르륵-!”
피 끓는 소리를 낸 우라노스의 눈빛이 뒤틀어졌다.
“젠…… 장……
그것이 우라노스가 남긴 마지막 단말마였다.
애초에서준은 그의 간절한 부탁 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자비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 어.”
카일루스에서 우라노스가 그 세 계의 생물들을 아끼는 모습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그들을 지키고자 했고, 희생한 것도 모두 기억한다.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전투를 업으로 삼아온 존재인 우
라노스가 벌인 것이라고는 생각지 도 못한 모습이었다.
그로 인해 전투 중 어떤 망설임 을 느꼈음도 사실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면모를 보고 마지 막 순간 손속에 저도 모르게 사정 을 두었다는 우라노스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라노스 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살려달라고, 카일루스의 생명을 언급하고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
라노스의 두 눈동자에는 감출 수 없는 투지가 폭발하고 있었다.
결단코 목숨을 구걸하는 이의 눈 빛이 아니었다.
훗날 일어날 전투를 기대하고,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승 리를 쟁취해내겠다는 수라(修羅)의 눈빛이었다.
오직 전투만을 생각하는 우라노 스, 그 자체의 시선이었다.
티탄, 전투를 일삼아 온 종족의 본능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스스로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 었음이 분명한데도, 우라노스는 서
준을 향해 간절하게 부탁했다.
“빌어먹을.”
거친 욕설과 함께, 서준은 발끝 부터 치밀어 오르는 불쾌한 기분을 떨쳐냈다.
애초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야말로 우라노스가 건 마지막 싸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마침 우라노스의 시체가 하얀 재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푸른빛 기운과 새하얀 광 명이 아지랑이와 같이 피어오르며 서준에게로 홀러든다.
“으음……
난폭한 티탄의 기운과 야훼가 품 고 있던 광명의 빛을 강제로 집어 삼키고, 묶어내어 혼돈의 힘을 품 고 있는 단전의 가장 깊은 곳에 웅 집시켰다.
‘야훼의 광명을 집어삼켜 괴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건가?’
모를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 필요가 없 었다.
결국 서준에게 있어 야훼의 광명 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단 하나 였다.
‘빛의 힘.’
우라노스가 가지고 있던 티탄의 힘과 야훼의 근간, 그 힘이 서준의 단전에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 우라노스와의 싸움을 통 해 더 많은 이득을 보았다.
첫째는 단전 가장 깊숙한 곳에 정제되지 않은 형태로 뭉쳐놓은 야
훼의 광명이다.
사실 이는 본래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서준의 근간인 치 천마역천지공은 어둠의 힘이다.
그에 비해 야훼의 광명은 백색, 상극인 이 두 힘이 서로를 잡아먹 기 위하여 끊임없이 맞부딪힌다.
하지만 다행히도 서준이 다루는 혼돈의 힘은 따지자면 회색이었다.
검게 물들어 있으면서도 하얀, 혼돈의 힘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 게 야훼의 광명을 품고 있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라노스의 죽 음이 확실해져 얻게 된 막대한 양 의 신성력과 더불어 많은 숫자의 신도들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신도가 생겼기 때문일까?
과거와 달리 단순히 내력이 강대 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변화가 느껴지기 시 작했다.
아직 직접 떠오른 메시지 창이 없기에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서준은 자신이 다루는 힘에 압도적인 위엄(威嚴)이 서린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근본적인 힘 자체가 애초에 뛰어 난 혼돈의 힘과는 달랐다.
오로지 힘으로만 이 위엄을 부수 고자 한다면 말 그대로 압도적인 파괴력이 필요할 터였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유 추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주신(主神)의 격.’
과거 정복왕과 대화를 나누었을 당시부터, 본능적으로 느끼고 감지 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를 우라노스가 모아놓은 힘과
야훼의 광명을 빼앗음으로써 확실 히 체감하게 됐다.
‘이게 주신의 격……
사실 생각해보면 격이라고 칭할 수 있는 힘을 아주 오래전부터 인 지하고 있었다.
평범한 지구의 청년이던 시절, 또는 중원 대륙 시절, 단순히 무공 밖에 모르던 때에도 격을 어렴풋이 느끼고 알고 있었다.
굳이 콕 집어서 말하자면, 아무 런 힘도 무엇도 없는 황제가 오롯 이 위엄만으로 무인으로 대성해야 지만 오를 수 있는 대장군을 무릎
꿇리는 것은 단순한 권력의 힘 때 문이 아니다.
품고 있는 격에서 흘러나오는 존재감이다.
그 수준이 인간의 그릇을 벗어나 기 시작해 물리적인 힘으로 발현시 킬 수 있고, 주신(主神)에 이르게 된다면 그 위엄만으로도 존재를 증 명할 수 있는 완벽한 힘이 되는 것 이다.
‘재미있네.’
이를 어렴풋이 인지하던 때와 이 렇게 이해하게 된 것은 완전히 달 랐다.
격이 가진 힘을 알고 나자 자연 스레 서준의 탐심이 더욱 커졌다.
때문일까?
정복왕의 성역에 도달한서준의 발걸음은 다소 조급했다.
일전에 보았던 고풍스러운 문, 그 너머에 있는 정복왕의 모습을 떠올린 서준은 곧장 방 안으로 들 어섰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그를 확인한 정복왕의 입가에 환 한 미소가 어린다.
“시간이 없잖아, 인사보다는 다
음 사냥해야 할 신격은 누구지?”
“아직 안 돼.”
“위치를 모르는 거야?”
서준의 질문에 고개를 내젓고 있 는 정복왕의 얼굴에는 진한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응시하고 있는 두 눈동자는 거세 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이제부터가…… 진짜야.”
정복왕이 손을 내젓자 서준의 단 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티 탄의 힘과 야훼의 광명이 자연스럽
게 빠져나왔다.
마음먹는다면 뿌리칠 수 있었지만, 굳이 막아서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정복왕은 틀림없는 조력자였다.
아니, 애초에 정복왕이 가진 무 력으로 뺏고자 한다면 그를 지켜낼 방도가 없었다.
서준은 자연스레 정복왕의 힘을 받아들였다.
순식간에 방 안에 푸른빛 티탄의 힘과 야훼의 광명이 자리 잡는다.
압박감에 어깨가 무겁게 짓눌리 며, 눈이 멀 것 같은 빛이 터져 나
온다.
“3할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건 진 (Gene)의 신격들이 가진 힘을 모두 품겠다는 말과 같은 거야.”
정복왕의 말은 갑작스러웠지만, 서준은 고개를 주억이며 이야기를 경청한다.
“지금 방 안에 있는 이 힘을 모 두 자신의 것으로 품어야 한다는 거라고.”
“그럼, 그 자격을 이 자리에서 증명하라는 거야?”
묵묵히 고개를 주억인 정복왕의 입이 다시 열렸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자신 있 어?”
회색빛 눈동자 안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한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여태 정복왕의 말로 미루어 보아 서는, 정말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 야 할 것이다.
신격에 올랐지만, 인간의 감정을 가진 서준 또한 죽음이 두려웠다.
그러나 두렵다고 해서 현실을 방 관할 수는 없었다.
“만약……. 못한다 해도 다른 길 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피식- 미소를 지은 서준의 시선 이 정복왕을 향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채로 서준의 시선을 바라보지 못하는 정복 왕의 얼굴에 씁쓸함이 묻어난다.
“지금으로써는 딱히 없어, 하지 만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긴 할 거 야.”
서준은 차분히 고개를 내저은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내가 전부 품어낼 거니까 말이야.”
“힘이 폭주해서 죽을 수도 있 어.”
“가만히 있어도 죽는 것은 변하 지 않잖아.”
“다른 방법이 생길 수도 있는 거 잖아.”
“만에 하나라도, 생기지 않는다 면?”
정복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알겠어.”
이어서 서준을 바라보며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라노스의 힘과 야훼의 광명을
네 혼돈에 담아낼 거야, 그렇지 않 아도 덩치가 커진 혼돈에 새로운 힘을 더해준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 고도 볼 수 있는 행동이야, 하지만 시간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이 방도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
“미안해할 거 없어,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으니까.”
굳건한서준의 의지를 확인한 정 복왕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인다.
동시에 뻗었던 팔을 서준을 향해 내민다.
티탄의 힘과 야훼의 광명을 향해 탐심(貪心)을 드러낸 혼돈의 힘은
단숨에 정복왕의 손 위에 있던 구 체를 집어삼킨다.
슈와악-!
빨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서준 의 몸 안으로 티탄의 힘과 야훼의 광명이 빨려 들어왔다.
쿠 쿵!
내부에서 폭음이 들려오는 순간, 서준의 몸 주변으로 회색빛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끄읍……
당장이라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억눌러 낸 서준이 정복왕을 웅시한 채로 입가에
미소를 그려냈다.
“이따 보자.”
마찬가지로 정복왕이 서준을 향 해 환한 미소를 그려주었다.
“꼭 견뎌야 해.”
정복왕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돌아올 수가 없 었다.
억지로 부여잡고 있던 두 다리가 무너져 내리며, 서준의 신형이 바 닥으로 쓰러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