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권 22화
322화
“닥쳐라!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들이는 것이냐!”
우라노스가 호통을 내지르자 푸 른빛 기운이 쏘아지며 서준의 전신 을 억누르려 한다.
당연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런 무형의 압박으로는 서준에 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평생 전 투를 업으로 삼아 온 우라노스가
모르고 있을까?
“큰 힘을 쓰지 않으려 하는 거 네.”
피식- 미소와 함께 서준이 일장 을 내뻗으니 대기가 진동하며 일대 에 퍼져있던 푸른빛 기운들을 또다 시 찢어발겼다.
전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동 작.
덕분에서준은 곧장 발을 놀려, 우라노스가 도주하기 전 그의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과 거대한 덩치 에 푸른빛 기운을 전신에 휘감고
있는 모습은, 처음 그 모습을 놓친 것이 기이할 정도로 눈에 띄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서준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싸우려고 왔지만, 상대는 거친 언사와 다르게 싸울 마음이 없어 보였다.
“입 닥쳐라! 개자식!”
우라노스가 욕설을 내지르며 다 가온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확연히 보 이는 우라노스의 얼굴에 비치고 있 는 초조함은 확신을 준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서준은 지금 우라노스의 행동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편이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나오는 행동인데.’
서준이 지구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라노스 또한 이 차원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아니 감정을 가진 동물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 는 법이었다.
하지만 우라노스는 티탄이다.
제 자식들에게마저 공격을 가할
정도로 진정 싸움밖에 모르는 티탄.
“뭐야, 갑자기 심경에 변화라도 생긴 거야?”
침묵을 지키는 우라노스의 모습 에서준의 눈이 반짝인다.
“ 진짜야?”
“네놈에게 중요한 것은 아닐 텐 데? 난 그저 자식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줄 뿐이다. 사랑도 증오도
우라노스의 시선이 차원의 풍경 을 담았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나에게 사 랑을 베풀었다.”
“……놀랍네.”
서준은 인정했다.
우라노스, 예언이 두려워 자식들 마저 가두고 봉인한 그를 삐뚤어진 아버지의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어, 이 세계에 있어 우라노스는 훌륭한 아 버지이자 신이었다.
‘이거 괜히 내가 나쁜 놈이 된 기분인데.’
작은 혼란이 찾아온다.
하지만 서준은 얼마 가지 않아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신, 한서준은 오히려 악신(惡 神)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가 가진 정의를 내팽개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서준이 머릿속으로 상황 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우라노스는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내보이면 서 말이다.
“결국, 이곳을 지키고 싶단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우라노스는 대답하지 않고 서준 을 노려보기만 하였다.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가?”
“……이 녀석들은 순수하다. 이 런 데서 죽어야 될 이유가 전혀 없 다는 것이지.”
서준의 이어진 질문에 돌아온 대 답은 다소 생뚱맞았다.
하지만 말에 담겨 있는 의미는 분명했다.
“인정해. 나 역시, 내 소중한 것
을 잃고 싶지 않아서 싸우고 있으 니까.”
“소중한 것이라……
잠시 무언가 기묘한 듯 그 말을 되짚은 우라노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을 옮길 수 있겠나?”
“마땅한 곳을 알고 있나 보네?”
서준의 물음에 우라노스가 고개 를 주억인다.
“따라와라.”
짧았지만 분명 안도의 한숨을 내 쉰 우라노스가 푸른빛 기운을 휘감
으며 서준에게 손짓하고는 앞으로 뛰쳐나간다.
자연스레 서준은 뒤를 기꺼이 내 주며 나아가는 우라노스를 바짝 쫓 아갔다.
백색의 평야.
아무런 생기(生氣)가 느껴지지 않는 세상 속에 도착한서준은 흡
족한 표정을 짓는다.
‘마음껏 날뛰어도 아무런 피해가 없겠네.’
이렇게 황폐한 차원이 존재하고,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신기한 것은 우 라노스의 이동법이었다.
그는 서준을 인적이 거의 느껴지 지 않는 위치로 안내했고, 주먹에 무언가를 쥔 채로 기운을 방출시켰 다.
이후 놀랍게도 세계에 균열이 일 어냈다.
‘게이트를 강제로 열어 내다 니……
이동 장치보다 과정 또한 더 간 결했다.
게다가 특정 장치의 조작도 보이 지 않았고, 즉시 개방한 것이었다.
지구의 게이트 개발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나라연천도 이와 같은 방식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었다.
“방금 게이트를 연 건 어떻게 한 거지?”
서준의 질문에 우라노스가 조심 스레 입을 열었다.
“세계의 균열을 만들어내고, 그 곳에 도달할 곳의 위치를 찍어내어 강제로 문을 열어낸 거다.”
“균열 속에서 강제로 문을 만들 었다고?”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리고 내가 갔었던 우주 중에는 고대의 존재가 살았던 곳이 있었고, 그중 하나의 편린이 담긴 물건을 얻을 수 있었지.”
“고대의 존재가 가진 힘이 깃든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거야?”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검지를 길게 뻗더니 반짝이는 녹
빛 반지를 가리킨, 우라노스가 다 시금 입을 열었다.
“이건 내우주의 신격 중 오직 나 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런 귀한 정보를 적인 나한테 알려줘도 되는 거야?”
“빚을 지고 사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아서 말이야.”
“좋네......
이번 전투에 승리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아졌다.
우라노스를 바라보는 서준의 탐 욕이 넘실거린다.
“무엇보다도, 어차피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이 힘의 존재를 아는 것은 다시 나밖에 없게 될 텐데 괜 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않겠 나‘?”
비릿한 미소를 홀린 우라노스의 몸에서 기세가 부풀어 오른다.
치직, 치지직-
기운이 끓어오른 것만으로 스파 크가 일어난다.
동시에 천둥이 내려쳐 하늘과 땅 을 잇고는 굉음을 토한다.
세계가 뒤흔들리고 비명을 질렀 다.
그를 바라보는 서준의 눈동자가 꿈틀거린다.
‘이건......
정복왕이 감사관의 앞을 가로막 기 위해 강림했었던 그 순간.
세계는 이와 비슷한 풍경을 보였 다.
어느덧, 거대한 티탄은 푸른빛 기운을 휘감은 채로 서준의 눈앞에 섰다.
서준은 한참이나 시선을 들어, 하늘 너머에 있는 푸른빛 눈동자를 당당히 마주했다.
“인정하지. 마신……. 확실히 너 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인간 중에서도 굉장히 특별한 존재야.”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다 못해 대지를 가르고 있었다.
“네가 감사관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나도 경악을 금치 못했지. 아무리 가능성이 뛰어난 인간이라지만 어찌 그토록 빨리 성 장할 수 있지?”
서준은 답 없이 우라노스의 거대 한 신형을 천천히 홅어보았다.
‘덩치가 큰 것은 아무 의미 없 어.’
이미 덩치가 큰 적과는 무수히도 많이 싸워봤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 특징은 한결 같았다.
크고, 무식하고, 때릴 곳이 많다 는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내가 야훼의 일부를 삼키기 전에 찾아왔다면 이 싸움의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비릿한 미소를 흘리는 우라노스 를 향해 서준은 망설임 없이 거리 를 좁힌다.
이어서 광속으로 뻗어지는 일권
(—S).
굳이 표적을 정확하게 조준할 필 요가 없었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맞출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서준의 주먹 은 애꿎은 허공을 때리고 있었다.
거대한 신형의 우라노스가 서준 의 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애들처럼 느리지는 않네.’
하늘을 뚫을 정도의 거대한 덩치 로 광속의 주먹을 피해냈다.
‘최소 광속, 아니 그 이상으로 빠
른 것 같은데.’
헛웃음을 홀린 서준은 고개를 돌 려 뒤로 이동한 채 오만하게 내려 다보고 있는 우라노스를 직시한다.
“힘의 차가 느껴지는가? 지금의 네놈은 나에게 닿을 수 없다. 그렇 다고 낙담하지 말게. 그저 나와 싸 우는 타이밍이 좋지 못했을 뿐이 니.”
조소를 홀린 우라노스의 주먹이 서준의 눈앞에 번쩍였다.
광속을 넘어서는 움직임을 가지 고 있다는 예상은 적중했다.
콰앙-!
폭음과 함께 지면의 일부가 완전 히 내려앉았다.
서준은 코앞에서 크레이터가 생 겨난 지면을 바라며 입가로 흐르는 핏물을 훔쳤다.
직접 타격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퍼진 파장만으로 이 정도의 충 격이라니.’
내부가 진탕되고 머리가 띵하고 울려온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빛을 품 은 티탄이지.’
덩치가 크다고 느리다면 가장 위 대한 티탄이라는 수식언과 야훼가 품고 있던 빛의 힘이 우스웠을 터 였다.
더는 야훼가 가지고 있던 빛의 힘을 탐내지도 않았을 터다.
그러나 아니었다.
빛의 힘을 품은 덕분인지, 우라 노스는 커다란 덩치로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의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었다.
쾅-!
또 한 번 우라노스의 주먹질이 이어진다.
보법으로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이번에는 서준의 코에서 핏물이 홀렀다.
여전히 강렬하다.
심지어 이 힘은 우라노스의 전력 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저 무식하게 주먹을 휘두른 것 에 불과했다.
‘나와 같은 패도인가.’
놀라울 정도로 강하긴 했지만, 같은 패도라면 서준이 질 이유는 없었다.
이어져 뻗어져 오는 주먹을 지긋
이 바라보던 서준의 전신에서 회색 빛 혼돈의 힘이 폭발한다.
‘혼천마공 전반부 제1식, 종겁.’
초광속을 넘어 공간을 찢어발기 는 듯한 움직임으로 우라노스가 내 뻗은 팔을 타고 오른다.
우라노스가 반응할 틈새는 없었다.
쿠르릉-!
천둥이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우라노스의 푸른 눈동자가 분주히 움직인다.
뒤이어, 우라노스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어느덧, 개벽의 기운이 우라노스 의 몸 곳곳에 크고작은 자상들을 남겨놓았다.
‘빠르긴 하지만 아직 초광속을 넘어서지는 못했어.’
그리고 서준의 패도는 결코 물러 서는 법을 몰랐다.
“이놈-!!”
화를 내며 내뻗어지는 우라노스 의 주먹을 서준은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혼천마공 전반부 제2식, 종억.’
개벽의 기운으로 인해 일어난 세 계의 균열 속으로 혼돈의 힘이 쏟 아지고, 휘저어지고 하나로 엮인다.
서준은 망설임 없이 그 혼돈의 힘을 손아귀로 당겨내며 우라노스 의 주먹과 맞부딪힌다.
두 힘의 충돌에 세계의 일부가 완전히 깨어지며 작은 균열이 생겨 났다.
콰아아아一J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아귀와 같 은 균열이 우라노스의 팔을 집어삼 킨다.
“끄으읍-!”
세계의 균열이 빨아들이는 힘으로부터 저항해낸 우라노스가 자신 의 한 손을 바라보았다.
푸른빛 기운이 모두 부서지고 깨 지다 못해, 두툼하고 질긴 근육의 곳곳에 자상이 생겨나 있었다.
“ 후우......
반면 서준은 보다 먼 거리로 떨 어져서 우라노스를 여유롭게 바라 보고 있었다.
우라노스의 머리가 비상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 이 결과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내가 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당황을 금치 못한 우라노스의 두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