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권 21화
321 화
쾅-!
곧장 문을 닫자, 바깥으로 뿜어 져 나오던 찬란한 광명들이 방 안 에 갇혔다.
동시에서준이 느끼던 압박감은 한층 더 강해졌다.
‘이게 무슨……
처음 느껴보는 힘에 당황했지만, 숱한 고난의 전장을 헤쳐 온 서준 이 광명에 적응할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멎을 것 같았던 호흡이 다시 차 분하게 돌아왔고 시선은 찬란한 광 명을 직시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자, 위압적으로만 느껴졌던 눈앞의 광명이 생각 보다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본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광명을 내뿜고 있었지만, 근간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얼 마 가지 않아서 허망하게 흩어져 버릴 것이다.
시선이 자연스레 광명의 너머에 앉은 정복왕을 향했다.
회색빛 균열의 앞에 앉아 있는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해야 정상이었지만, 마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 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 는 수십 가지의 감정들이 스쳐 지 나는 듯했다.
마침내 정복왕의 눈이 뜨이는 순 간, 회색빛 균열이 사라졌다.
“하아......
짧게 숨을 가다듬은 정복왕이 힘 겹게 몸을 일으킨다.
버거워하는 정복왕,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에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무슨 일이야?”
정복왕은 자연스레 손을 내저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찬란한 광명들을 흩어내며 답했다.
“야훼가 죽었어.”
이제야 찬란한 광명에게 위협을 느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금, 문밖으로 뻗어나온 광명은 야훼가 소멸함으로써 퍼진 편린이 라 볼 수 있었다.
애초에 지금 서준의 경지를 생각 한다면 고작 빛만으로 그런 위협을 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대체 누가……?”
고작 몸의 파편쯤이라 할 수 있 는 빛만으로도 위협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찬란한 광명을 품고 있던 야훼가 소멸했다는 것이었다.
야훼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가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서준의 의문은 오
래가지 않았다.
“같은 편이라 믿고 있던, 진
(Gene)의 신격들에게.”
처음에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곧 납득했다.
진이 추구하는 목표는 신격을 살 해하고 주신(主神)에 오르는 것이 었다.
그들이 살해하는 신격에 같은 진 의 멤버들이 속해 있지 않는다는 말은 없었다.
진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본다면,
소속된 집단에 유대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구성원이 소중하지 않은 만큼 튼튼한 결속력을 가졌을 리가 없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진의 내 부 사정 따위가 아니었다.
“균형은?”
“깨졌어.”
....
당황한서준이 무언가 대답을 내 뱉기도 전이었다.
정복왕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서
준을 바라보며 다시 입술을 달싹였 다.
“고대의 존재들이 개입할 거야.”
침묵이 감돈다.
존재에 실려 있는 무게가 방 안 을 짓누른다.
서준은 조심스레 입을 열어 질문 을 던진다.
“지금 바로‘?”
서준의 물음에 정복왕은 고개를 내저었다.
“거래를 해뒀어……. 덕분에 지 구로 치자면 유예 기간 같은 걸 얻
을 수 있었지.”
우주와의 거래,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말해준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을뿐더 러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았어?”
이어진 질문에 정복왕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진한 갈등, 그 안에 담겨 있는 고민에서준의 고개가 갸웃 젖혀진 다.
서준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던
정복왕이 씁쓸한 표정으로 답해온 다.
“찾았어……. 정확히 말하자면 생겼어……
“생겼다고? 무슨 말, 아……. 야 훼의 소멸 때문인가?”
연유를 물으려는 순간, 머릿속으로 방금 전 정복왕이 했던 야훼의 소멸에 관한 소식들이 스쳐지나갔 다.
“맞아……. 네가 처음에 말했던 방식이랑 비슷한 거야……
3할의 전력을 자신이 채워 균형 을 메꾸는 것.
균형이 깨지기 전, 고속으로 성 장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럼 좋은 일인데……. 어째서 근심이 가득한 거야?”
“너무 위험해.”
“ 뭐가?”
“성장을 위해서는 흩어진 야훼의 힘을 거둬야 해……. 우선 그 빛을 거두어 간 존재들, 진에 소속된 신 격들을 사냥해야 한다는 거야.”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
분명, 진에 속한 신격들은 강했 다.
상위 신격인 로키의 힘만 봐도, 특히 최상위의 신격으로 분류된 존재들은 지금까지완 비교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서준으로도 우라노스, 앙 그라 마이뉴, 오딘과 같은 최상위 의 신격을 상대한다면 목숨을 걸어 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패배를 생 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난,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그 이유를 여전히 말하지 않는 정복왕이었다.
과거에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지 금에서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우주와의 거래.’
그로 인해 제약이 걸렸을 것이 다.
정복왕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흐른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
“지금 바로 출발할 거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허나 다급한서준과 달리 정복왕 은 다소 느긋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급하지만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돼. 최대한 승률이 높은 적부터 차 근차근 제거해.”
비록 직접 전투에 참여할 수 없 었지만, 정복왕은 서준을 향해 자 신이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보인다.
“우라노스.”
말은 짧았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서준은 정복왕이 내뱉는 말 한마 디 한마디를 머리에 새긴다.
“빛을 품은 거인, 놈이 힘에 적 응하기 전에 막아야만 해.”
서준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 다.
“좋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하게 알았어.”
정복왕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흐른다.
“혹시 위치를 알아?”
“아벨에게 물어보면 될 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서준의 시선이 정복왕의 눈동자 를 응시한다.
이어, 서준이 짧게 고개를 숙였
다.
“다녀올게. 매번 고마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지금 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우라노스를 잡 아야 했다.
서준이 우라노스를 사냥하기 위
해 움직이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균형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야훼의 빛을 흡수하여 괄목할 만 한 큰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방 안에 느꼈던 광명의 힘을 내 가 품을 수 있다면……
공백으로 남게 될 3할의 전력을 자신이 메꾸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눈앞에 닥친 문제들은 빨리 처리할수록 좋은 법 이다.
야훼의 힘을 흡수한다면 균형을
유지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때문에서준은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였다.
‘일올 미뤄둬서 좋은 게 없지.’
그리고 두 번째.
우라노스라는 신격을 제거한다는 목적 역시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진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 는 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거슬렸던 적을 제 거해냄과 동시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라는 것이다.
물론, 그 외로도 이유는 더 있었다.
정복왕이 한가해진다면 서연에 대한 수련을 부탁할 수 있을뿐더러, 더불어 막대한 양의 신성력 획득도 할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계속해서 싸워왔던 오딘의 종적을 찾을 수 있을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이유들은 많았지만 가 장 중요하고도 확실한 이유는 분명 위에 말한 두 가지였다.
다행히도 우라노스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복왕의 말대로 아벨에게 물음 을 던지자, 곧장 그가 군림하고 있 는 차원의 좌표를 획득할 수 있었다.
‘차원, 카일루스.’
정보를 얻은 서준은 곧장 지구로 귀환해 휘노소프에게 부탁하여 게 이트를 여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당도한 카일루스는 생각 했던 것과 달리 자연 친화적 풍경 이 반겨주고 있었다.
거대한 숲, 원시적인 모습이라고 는 하나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조 화롭게 살고 있었다.
홉사 지구의 원시시대를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모든 것이 거대하다는 것이었다.
숲속의 나무들 중 대다수가 하늘 의 구름이라도 찌를 기세로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었다.
바위나 물줄기 같은 자연의 티끌 조차 모두 작은 것을 찾기가 힘들 었다.
큼직한 것은 거의 돌산이었고, 강 또한 거의 바다와 같을 정도로 크고 널찍했다.
물론, 그에 맞춰 동식물도 징그
러울 정도로 거대했다.
지구의 기준으로 보자면 몬스터 라고까지 느껴질 수 있을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2배 이상은 큰 것 같고, 특이한 경우 10배까지도 더 거대한 것 같은데……
비단 동물뿐만이 아니었다.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예외 가 아니었다.
원시적인 풍경답게, 지성을 갖춘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다소 본 눙에 의지하는 동물과 같은 모습이 었다.
지옥과 마찬가지로 투쟁은 하루
가 멀다 하고 벌어지지만 싸움은 어떤 진취성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 는 것뿐이다.
거인국(巨人國)과 같은 세계의 중심, 아무리 거대한 동물이라 할 지라도 올라올 수 없을 정도로 드 높은 산의 정상에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남자가 벼랑의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청년은 앞선 사람들에 비해서도 매우 튼튼한 체격, 정확히 말하자 면 태산과 같은 굳건함이 있었다.
척 보기에도 가장 강력한 존재였
다.
애초에 저 청년은 이 세계에 유 일신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존재이 자, 가장 위대한 티탄이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서준의 눈매 가 가늘어진다.
‘우라노스.’
시간도 없고, 목적도 분명하다.
서준은 갈무리하고 있던 기운의 일부를 거칠게 일으켰다.
그에 반응하듯, 앉아 있던 우라 노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직후 삽시간에 솟아난 투기가 우
라노스의 전신에서 솟구친다.
“감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 몸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다니.”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 다.
파앗-!
뻗어져 나온 기운이 허공에 떠있 던 서준과 충돌하며 신형을 밀어낸 다.
“어떤 개자식인가 했더니……
서준을 알아본 것일까?
기운을 두른 우라노스의 푸른 눈 이 반달처럼 휘어진다.
“정복왕의 총애를 받는 인간이었 군.”
서준은 답을 하는 대신 공격에 나섰다.
단숨에 거리를 압축시키며 뻗어 진 주먹에서부터 퍼져 나온 기파가 우라노스의 가슴을 강하게 때렸다.
‘ 맞았다고?’
놀란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당장 우라노스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사실상 지금의 서준 이상이다.
야훼의 빛을 일부 삼켰으니 당연 한 일이었다.
때문에, 지금 내지른 공격은 간 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보기 좋게 공격이 적중한 것이었다.
“이런 무례한!”
그러나 피해는 입지 않았는지, 호통친 우라노스가 허공에 기운을 흩뿌렸다.
푸른빛 기운들이 공명하더니 단 숨에서준을 향해 달려든다.
“이런 공격 따위……
서준은 양 손바닥에 혼돈의 힘을 응집시키고, 앞으로 내뻗는다.
콰쾅-!
굉음과 함께 하늘이 두 쪽으로 찢어진다.
우웅-
공명하던 푸른빛 기운들이 단숨 에 찢어발겨지고 순식간에 소멸한 다.
직후 서준은 반격을 위해 우라노 스의 움직임을 좇았다.
‘어디지?’
우라노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단순히 시야뿐만이 아니었다.
어떠한 감각에도 우라노스의 기 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흔적 자체가 없어졌다.
전장을 벗어났다는 말이었다.
‘ 도망쳤다고?’
당황한서준이 재빨리 기감을 넓 게 퍼뜨리며 우라노스를 추적해낸 다.
다행히도 우라노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내자 우라노 스가 다급하게 몸을 회전시키며 서준을 마주하고 움직임을 가다듬었
다.
그의 등 뒤에 펼쳐진 광활한 대 지와 짧게 떨리는 시선, 어떻게든 앞길을 막아서려는 우라노스의 모 습에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