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권 9화
309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고 대의 존재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정복왕이 손을 휘젓자 허공 위로 거대한 빛들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우 리 은하의 중심인 내우주, 그리고 주변을 수십에 달하는 외우주가 감 싸고 있어.”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
인한 정복왕이 내우주의 주변에서 빛을 내는 외우주 무리를 가리켰다.
“알고 있겠지만 내우주의 신격들 은 매우 강해, 외우주의 존재들과 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 야, 근데도 외우주를 지배하에 놓 지 못하고 있어. 그 이유가 뭐일 것 같아?”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여태껏 만났던 내우주의 신격 들은 탐욕이 그득한 존재들이었다.
지배할 능력이 있는데도 지배하 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활동에 제약 혹은 감당할
수 없는 강자가 있다?”
“둘 다 정답이야.”
이후 정복왕은 제약에 대한 설명 을 이어갔다.
“우선 제약은 아주 특이한 케이 스를 제외하고는 일정 이상의 힘이 나 보구, 또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 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해. 하지만 이 정도였다면 내우주의 신격들을 막지는 못했을 거야.”
“고대의 존재.”
입가에 미소를 홀린 정복왕이 고 개를 주억인다.
“개체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들
은 모두가 혼돈에서 태어나고 살아 남은 존재야.”
“혼돈에서 태어났다고?”
서준의 고개가 갸웃 젖힌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혼돈의 일 부일 뿐이야.”
진짜 혼돈은 막을 수 없는 재해 (災害)이자 종말이다.
그런 강대한 힘에서 태어난 존재 였기에 그들의 강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우주의 신격, 그중에서도 주 신(主神)급에 오른 존재마저도 두 려워할 정도야.”
쉽게 말하자면, 지금 내우주의 신격들과 외우주에 숨어있는 고대 의 존재들은 아슬아슬하게 힘의 균 형을 유지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해를 끝마친 서준을 향해 정복 왕이 물음을 던져왔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신들의 아 버지가 소멸한다면 어떻게 될까?”
“높은 확률로 숨어있던 고대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겠지.”
“맞아, 호시탐탐 노리던 기회가 온 거니까.”
“결국, 신들의 아버지가 영멸해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재앙이 찾아
온다는 거잖아.”
서준이 짧게 설명하자 정복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백 점 만점에 백 점 줄 게.”
서준은 정복왕의 강함을 보았다.
무의 극에 달해 있다 느껴질 정 도로 강력하다.
심지어 하늘에서 응시하던 내우 주의 신격들 또한 본 적이 있었다.
그들 또한 한 명, 한 명이 이번 에 싸운 감사관에 준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강함을 가진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고대의 존재들이 그토록 강력 해? 너도 있고, 다른 신격들도 있 잖아, 힘을 합치면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불가능해.”
하지만 정복왕은 단호히 고개를 내젓는다.
“고대의 존재들은 영악함 그 자 체야.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찾아오지 않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하겠지. 만약 패색 을 느낀다면 곧장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이곳에 불러낼 거야.”
“그들의 신……?”
정복왕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 다.
“아우터 갓.”
쿠구궁-!
진명(眞名)을 부른 것도 아닌, 단 순히 그들을 부르는 호칭만으로 세 계가 뒤흔들린다.
“강림하는 순간 우주가 광기에 물들어 버릴 거야. 설사 살아남는 다고 할지라도 평범한 생명체는 모 두 미쳐 죽어버린 공허의 세상이 되어버리겠지.”
정복왕의 손이 허공에 띄운 별들 로 향한다.
그러자 빛을 뿜어내던 별들이 하 나둘씩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다.
종국에는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 던 별들은 모두 죽어, 혼돈을 상징 하는 회색빛으로 가득 찬다.
“어쨌든 네 결론은, 그래서 신들 의 아버지를 죽이면 안 된다는 거 잖아.”
“......맞아.”
어느덧 방 안을 메우고 있던 회 색빛 기운들은 모두 사라진 지 오 래 였다.
고개를 숙인 정복왕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 차 있었지만 서준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냥 신들의 아버지를 대체할 수 있는 신격이 만들어지면 되는 것 아니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은 고대 의 존재에게만 기회가 되는 게 아 니야……. 내우주에는 우주 협회와 진, 그리고 수많은 집단이 존재하 고 서로 대립하고 있어. 한쪽의 세 력이 약해졌다면 필시 그 틈을 놓 치지 않고 전쟁을 일으킬 거야.”
“고대의 존재들을 신경 쓰지 않 고?”
“대부분의 신격은 욕심이 많으면 서도 상당히 이기적인 존재야, 모 두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라는 생 각을 하며 움직일 거야.”
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민 을 이어간다.
무거운 침묵이 방 안에 내려앉아 가려던 찰나, 서준의 입이 다시 한 번 열렸다.
“그러면 정복왕 네가 가진 세력 의 힘은 내우주에서 얼마나 강력한 수준인데?”
“삼십삼 퍼센트.”
서준은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 에 없었다.
정복왕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강자가 있고, 연 합을 꾸리고 있는 내우주 내에서도 단연 독보적일 정도로 일개 개인이 거대한 세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연합을 꾸려 탐욕을 보이는 신 격들과 중립 혹은 평화를 바라는 신격들은?”
“모두 삼십삼 퍼센트야.”
괜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허나 서준은 개의치 않았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네.”
“......응?”
“탐욕을 보이는 3할의 전력을 내 가 메꾸면 그만이잖아.”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미 미증유의 속도로 성장해왔 고, 아직도 그 속도는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
조금만 무게추가 기울어도 균형 이 무너지게 되는 일촉즉발의 상황 이다.
서준이 그 정도의 힘을 기르기 전에 균형은 무너질 것이고, 고대 의 존재가 침공해올 확률이 더 높 았다.
“최대한 빠르게 성장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서준......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신들의 아버지가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드 는데,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거잖 아?”
물론, 신들의 아버지가 아무리 덤벼들어도 나 하나 정도는 어느 정도 몸은 지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서준에겐 가족과 동료가 있었다.
지금의 서준은 그들을 지키기 위 해서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목적과 행복을 잃은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만약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정 말 고대의 존재와의 싸움을 피하고 싶다면……
말끝을 흐린 서준이 검지로 자신
을 가리켰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죽이는 것 뿐이야.”
차가운 선언에, 정복왕의 표정이 여태껏 본 적 없올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극의 경지에 달해 있는 너는 지금의 나보다 틀림없이 강해, 마 음먹는다면 나를 죽일 수 있겠지.”
하지만 서준의 말은 멈추지 않는 다.
“내가 생각한 쉬운 방법을 네가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대 체 무엇이 너를 이렇게 발목 잡게
하는 거지? 너와 나 사이의 인과 관계는 기껏해야 네가 쓰던 건틀렛 을 사용했다는 것 말고는 없을 텐 데, 고작 이 정도 이유로 망설이는 건 납득이 안 되잖아?”
계속되는 서준의 말에도 정복왕 은 조금의 살의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심장이 찢어 질 것같이 애처로운 얼굴, 슬픈 시 선으로 서준을 바라만 볼 뿐이다.
“대체 넌 왜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애정.
서준은 정복왕에게서 그 감정을
느꼈고, 처음에는 안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도를 넘어서 불 안감과 기묘함을 더 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가장 편한 선택이 눈앞에 있음에 도 불구하고 정복왕은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는 정복왕 의 반응 때문에 잠시 뒤로 미뤄뒀 었다.
허나 지금 느껴지는 불안감과 기 묘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반드 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었다.
“네 편애(偏愛)는 상식적으로 말 이 되지 않아.”
차가운 눈을 한서준의 손아귀에 혼돈의 힘이 응집된다.
개벽의 검.
어쩌면 이 행동이 정복왕을 흔들 고, 그녀의 생각을 살의로 채울 수 도 있다.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차라리 그 편이 편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한 관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선택해. 아군인지, 적군인지.’
서준은 정복왕과의 대화에서 그 녀의 대의를 이해했다.
은하의 평화를 위하여 제시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복왕이 원 하는 대로만 행동할 수도 없었다.
서준의 행동에 정복왕이 한숨을 내뱉으며, 강렬한 회백색의 기운을 발산한다.
‘결국, 적이 되는 건가?’
이미 서준은 수많은 대련으로 정
복왕의 힘을 경험했다.
수없이 연습해온 만큼 받아치지 도 못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지 는 않을 것이다.
물론, 대련으로 보았던 것이 정 복왕의 전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 는다.
정복왕이 가진 본신의 힘은 상상 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단 일 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이길 수 있어.’
서준의 가늘어진 눈매가 정복왕 의 몸 곳곳을 홅는다.
시선 속, 정복왕이 얇은 검지 끝
을 앞으로 내뻗는다.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으며, 등줄 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 려던 찰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진짜 바보 멍청이.”
다소 상처받은 표정을 한 정복왕 의 손에서 회색빛 기운이 쏘아졌다.
정복왕이 내뱉은 당황스러운 말 에서준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휘말렸고, 눈을 떴을 때에는 이 미 육신은 혼돈뿐인 회색빛 세상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의 세상 속, 기묘한 감각에 휩싸여 갈 때였다.
[정복왕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볼 테니 시간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초록빛 홀로그램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눈앞에 떠오른 정복왕의 메시지 를 모두 읽고 난 그때.
....
서준은 꽤나 익숙한 곳으로 살포 시 떨어져 내렸다.
익숙한 횐색의 천장과 푹신한 침 대가 편안한 이 공간은 서준이 잘 알고 있는 공간이었다.
“......내 방?”
머리가 다소 복잡해지는 기분이 었다.
침대 위에 걸터앉은 서준은 생각 에 빠졌다.
‘그나마 다행이긴 하네.’
최대한 태연한 척했고, 당장이라 도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서준의 마음은 혹시나 하는 긴장을 품고 있었다.
정복왕은 무극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존재다.
앞서 수련을 통해 수없이 그 강 함을 겪어왔다.
‘지금으로서는 도망치는 것이 한 계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복왕과 싸움이 벌어 지길 바라지 않았고, 다행히 그 뜻 은 이루어진 듯했다.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를 대신하여 다른 고민 거리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겨났다.
다른 은하, 현재 우주의 상황, 고 대의 존재와 아우터 갓까지 심기에 거슬리는 것들은 셀 수가 없었다.
서준은 이 모든 것들을 반드시 정리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고로, 많은 생각은 번뇌를 만 든다.
그리고 번뇌는 심마(心魔)를 가 져온다.
‘일단은 덮어두자.’
당장 궁리를 해봤자 정보들이 단 편적인 만큼 뾰족한 타개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만 마냥 태평하게 놀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우선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나 아간다.’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정복왕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 겠다고 했다.
‘내가 직접 방법을 찾는 것보다 빠르고 훌륭한 타개책을 가져오겠 지.’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