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권 7화
307화
‘과연……
기껏해야 칼집 하나의 이상향에서 받는 가호였다면, 수많은 내우 주의 신과 싸움을 벌일 생각도 하 지 못했을 터였다.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 정도의 실력이라……
감사관이 받는 가호의 정체가 무 엇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답을 찾을
순 없었다.
서준은 머릿속을 비우고 다시금 자세를 취했다.
감사관 역시 몸을 낮추며 검을 서준에게로 겨누었다.
대화는 충분하다.
공방이 오갈 것이라 생각하던 중, 감사관이 물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한 가지 묻 고 싶은데. 대체 혼돈의 힘을 언제 부터 다룰 수 있던 거지?”
“……지구에서 돌아온 뒤, 위대 한 존재의 조각을 얻은 뒤로 다룰 수 있게 됐지.”
서준의 짧은 답에 감사관의 입가 에 헛웃음이 흐른다.
“위대한 존재의 조각……? 설마 했는데 그들이 개입된 일이었 군……
아주 먼 과거부터 이른바 ‘고대 의 존재’라 일컫는 자들이 외우주 에 살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외 부의 신, 아우터 갓(Outer God)> 도 존재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였지 만,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 다.
비록 전부를 읽지 못했지만, 우 주 협회에 봉인된 아주 오래전의 기록을 읽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협회가 보관해놓은 서적에 적힌 내용을 부 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강한 힘을 열망하던 감 사관은 아우터 갓이라는 존재와 계 약을 하기 위해 수많은 우주를 뒤 져왔지만 애석하게도 찾아내지 못 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지금 눈앞에 한서준이 그들의 조각을 가지고 있
었다.
‘분명, 어둠 속에서 이곳을 지켜 보고 있겠군.’
그토록 찾아 헤맨 아우터 갓에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전장이라는 것이다.
둘도 없을, 다시없는 기회였다.
티끌만 한 관심이라도 받기 위해 서, 그에 걸맞은 능력을 보이고 가 치를 증명해야만 한다.
엑스칼리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의 형태가 변한다.
특별한 변화는 없었지만, 서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감사관의 주변, 세계가 접히고 일그러진다.
눈앞에 있지만 닿지 못할 것처럼 멀어졌으며, 닿지 않을 것 같았지 만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기이한 일렁임이 번져나간다.
“나는 태초의 우주, 진짜 지구의 거주자 아서 펜드래곤 (Arthur Pendragon), 네놈을 죽일 검사이자 위대한 왕이다, 똑똑히 기억하도록 하라.”
“아서……
서준은 다시금 인정했다.
눈앞의 감사관, 아서왕은 강적이
다.
망해가는 나라, 죽어가는 일족을 구한 구원자이자 영웅이자 중세의 아홉 위인 중 하나로 칭송받는 가 장 위대한 왕.
정복왕의 도움이 없었다면 감히 손속을 나누어 볼 수 없었을 만큼 격이 다른 존재다.
“하지만 내가 이겨.”
서준은 아까 전부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정복왕의 시선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처음부터 지금 까지, 단 한 번도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정복왕이 잘못 보았을 리 없어.’
아서는 뛰어난 검사이자 위대한 왕이다.
하나, 서준의 무공은 그조차 뛰 어넘는다.
‘개벽의 검 최대 출력 전개.’
한계를 넘어선 혼돈의 힘에 육신 이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는다.
아서왕과 싸움을 통하여 몸으로 체득한 깨달음과 경험, 투쟁으로 이루어진 심검이 미증유의 혼돈으
로 이루어진 개벽의 검의 형태를 유지해주고 있는 것이다.
파지지직-!
개벽의 검에서부터 흘러나온 혼 돈의 힘이 일렁거리는 세계를 집어 삼키려 해 방전을 일으켰다.
그사이 다시 한번 세계가 일그러 졌고, 혼돈의 장막이 펼쳐진다.
촤악-!
장막 너머로 검을 휘둘러 서준의 어깨를 벤 아서왕이 웃었다.
“힘을 파악한 것은 네놈만이 아 니다.”
혼돈의 장막은 무엇으로도 꿰뚫 어낼 수 없다.
아서왕이 받는 세계의 가호에도 제어받지 않으며, 그가 내뻗은 검 의 길을 막아섰다.
처음 이 힘을 마주했을 때 아서 왕 역시 당황했다.
하지만 혼돈의 장막이라는 존재 를 인식하자 그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혼돈의 장막이 펼쳐지기 전 베 어내면 될 뿐.”
세계를 접어내고 펼쳐내는 것으로 서준을 베어낸 아서왕이 비릿한
미소를 홀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며 죽어가라.”
서걱-!
엑스칼리버가 서준의 전신을 크 게 베는 소리였다.
아니, 정확하게 모든 것을 벤 것 은 아니었다.
오른손, 정확히 말하자면 개벽의 검.
최대 출력의 혼돈의 힘이 터져 나오는 개벽의 검 주변만큼은 감사 관이 자랑하는 가호의 힘이 닿지 못했다.
피 칠갑이 된 서준, 그의 눈동자 에서린 귀기를 마주한 아서왕의 몸이 흠칫 떨렸다.
분명 승기는 자기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선 계속 본능적인 불안감이 피어나고 있었다.
다급해진 아서왕이 전력을 다하여 검을 휘둘러 서준의 목을 베어 내려던 찰나였다.
“드디어 사거리로 들어왔네.”
피부가 저릿하다 못해 전신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는 와중, 서준은 웃으며 몸에 힘을 주었다.
단전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들끓 어 오른 혼돈의 힘이 빛보다 더 빠 르게 서준의 전신을 회전하며 쇄도 해오는 아서왕의 검을 밀어냈다.
몸을 떤 아서왕이 검을 거두고는 뒷걸음질 쳤다.
“늦었어.”
서준의 몸이 그 움직임을 따라 무섭게 쫓아왔다.
도망칠 수가 없다.
아서왕의 움직임보다, 서준이 그 뒤를 쫓는 것이 빨랐으니 말이다.
접은 공간을 펼치면 방법이 있을
지도 몰랐으나,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일이 풀리지 않았다.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세계의 가 호마저 혼돈의 힘에 잡아먹히고 있 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 이놈……
서준이 지레 겁을 먹고 소리를 치는 아서왕에게로 개벽의 검을 내 뻗는다.
콰아아-!
포악한 혼돈의 힘이 아서왕을 향 해 다가온다.
“비록 너처럼 세계의 가호를 받 을 수는 없지만, 난 너보다 빨리
움직이고, 강하게 때릴 수 있어.”
끼긱- 키기직-!
세계의 가호와 혼돈이 부딪히며 일그러진 세계 너머에서 다소 기괴 해진 서준의 얼굴이 비친다.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혼돈의 힘 의 포악함에 아서왕이 마른침을 꿀 꺽- 삼킨다.
“그리고 세상은 내가 걷는 길을, 내가 쓰는 힘을 이렇게 정의하더라 고.”
패도 (® 道).
일그러진 세계 너머, 서준의 개 벽의 검이 길게 펼쳐진 공간들을
전부 찢어발기고는 아서왕을 향해 쇄도했다.
푸욱-
뻗어진 개벽의 검이 심장에 꽂히 며 아서왕의 입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온다.
단순히 찌르는 것에서 멈추지 않 았다.
개벽의 검에서 타고 흐른 혼돈의 힘이 아서왕의 내부를 마구잡이로 헤집고,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혼돈의 포식은 단순한 육체의 손 실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부서......진다......!’
여태 쌓은 마나와 신화도 모자랐 는지 혼돈은 육신을 타고 넘어 구 축해놓은 이상향마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아서왕이라는 존재로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진다.
상실감이 주는 충격에 아서왕의 입에서 광인(狂人)의 비명이 흘러 나온다.
“끄윽, 끄으으윽-!”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침내 모든 것을 집어삼킨 혼돈 이 마지막으로 눈독을 들이는 것은 아서왕, 존재 그 자체였다.
회색빛 기운이 발작하며 아서왕 의 전신을 뒤덮는다.
“커적, 커어억……
영멸(永滅), 만족을 모르는 혼돈 의 힘은 발끝에서부터 시작하여 아 서왕의 육신을 완전히 잠식했다.
진짜 우주에서 태어나 가장 오랜 세월 군림해온 위대한 왕이, 한 획 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 고 있는 것이다.
고통에 잠겨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하고 있던 아서왕이 서준을 바라보 며 말한다.
“진 (Gene).”
갈라지는 목소리.
절규에 가까운 끔찍한 음성에서준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라도 너를 결단코 가만히 두지 않 을 것이다, 반드시……
마지막 저주를 퍼붓고 있는 아서 왕의 입마저 집어삼켜진다.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다.
서준이 승리를 거머쥔 것이었다.
태초의 우주인 내우주에서도 가 장 위대한 왕이라 불리는 아서왕이 소멸했다.
형체를 잃고 사라져가는 아서왕 의 앞으로는, 주인을 잃은 엑스칼 리버가 공명음을 발산하며 황금빛 기운을 내뿜고는 허공을 배회했다.
우웅- 우웅-
아서왕이 패배하며, 모든 것을 잃은 후 소멸했지만, 엑스칼리버는 그와는 독립되어 있는 보구.
때문에, 계속해서 힘을 방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힘으로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같이 큰 상처를 남긴 전 투의 여파로 인해 나약해진 세계에 균열을 만들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런 보물을 그냥 놓 아주는 것은 두고 두고 후회할 일 이었다.
“가긴 어딜 가려고.”
허공에서 배회하는 엑스칼리버를 피 칠갑이 된 서준의 손길이 낚아 챘다.
지지잉-
서준을 주인으로 인정하기 싫은 것인지, 엑스칼리버가 계속해서 발 버둥 치려 한다.
그러나 주인을 잃어 본래의 힘을 내지 못하는 엑스칼리버가 발버둥 을 쳐봤자 결과가 변할 리가 없었다.
요란한 움직임을 보이던 엑스칼 리버가 서준의 힘에 완전히 제압되 며 침묵했다.
“……축하해.”
등 뒤에서 들려 온 정복왕의 말 소리에서준의 고개가 돌아간다.
“덕분이야, 고마워.”
정복왕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서 왕을 쓰러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비단 수련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다른 내우주의 신격들이 도망을 치지도 않았을 것 이다.
큰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감사의 인사는 정식으로 다시 하겠어.”
마음 같아서는 곧장 하고 싶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서준의 차가운 눈빛이 수호룡과 천사로 향했다.
모두 전의를 잃고 모두 넋이 나 간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아직 전 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쿠구궁.....
허공을 바라보던 서준이 손아귀 를 꽈악- 말아 쥔다.
화악-!
허공에서 피어난 혼돈의 힘이 수 초룡과 천사를 집어삼킨다.
“커억.”
“끄아악-!”
하늘에서 갖은 비명이 울려 퍼진 다.
그 직후, 위기감을 느낀 수호룡 과 대군주들이 황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적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간다.
워낙 수가 많았고 행동이 재빨랐 기에 모두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대다수가 치명상을 입 은 상태였다.
애초에서준의 힘을 목도한 지 금, 두 번 다시 싸움을 걸어 올 엄 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정말 끝났네.”
“이제부터야.”
정복왕이 고개를 내저으며 뱉는, 단호한 말에서준이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젖힌다.
“여기서는 불가능해.”
의문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전 서준의 눈앞에 갑작스럽게 시스템 창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복왕이 자신의 성역에 사용자
‘한서준’을 초대합니다. Y/N.]
적의가 없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서준은 곧장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수습이 필요할 것 같은데……
크나큰 싸움이 벌어졌기에 그 여 파는 상당했다.
누군가가 주축이 되어 수습해야 만 했다.
그러자 고민하는 서준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직접 손을 쓸 필요는 없겠네.’
익숙한 얼굴, 각 차원의 수장들 이 선봉에서서 전쟁의 상황을 수
습해가고 있었다.
중심이 될 인물이 없기에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봉책 정도는 되어줄 것 이다.
‘대화 정도는 괜찮겠지.’
정복왕이 이렇게 초대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서준도 물어보고 싶 은 것도 있었다.
결정을 끝마친 서준이 눈앞에 보 이는 메시지 창을 향해 고개를 끄 덕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