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23화
298화
지구로 되돌아온 서준이 가장 먼 저 접한 것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기사들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전대미문의 부활, 단 한 명만 이 런 기적을 겪었어도 대문짝만하게 뉴스와 기사에 실릴 것이었다.
그런데 자그마치 수천 명, 천사 들의 침공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사 람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오히 려 운명인 수준이었다.
[이것은 하늘의 마지막 자비인 가……. 천인(天人) 전쟁에서 돌아 온 우리 겨레.]
[연합의장 한서준, 장례식 갑자기 미룬 것에 대한 과거 행각에 의문 가지며 정식 답변 요청.]
[리벨리온 연합, 기적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의장이 벌인 게 맞다 공 식 발표.]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당당히 밝 혔다.
기적을 목도한 사람들이 목소리 를 드높이기 시작했다.
L신은 존재하고 우리는 그를 따 르면 그만이야.
L리벨리온의 이름 아래 모두 합 심해라.
L 연합의장님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지 도 못했는데.
L소문으론 악마도 전부 연합의
장님이 토벌했다 하던데?
L천사와 악마가 없다면 이제부 터는 정말 우리 인간의 시대다!
l아니, 한서준의 시대다!
스마트 폰으로 기사와 그 댓글들을 확인하던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긴 하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낯부끄러운 기 사들이 많았다.
[‘기적’을 행한 한서준 의장.]
[세계종교회, 한서준 의장을 ‘신’ 으로 추존하는 범교(凡敎), 정식 승 인.]
[한서준 의장이 쓴, 그리고 써 내 려갈 새로운 신화.]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기적 을 벌인 것이다.
쉴 새 없는 기사들 덕분인지, 실 시간으로 신도의 숫자가 늘어나며 신성력 스텟이 상승하고 있었다.
띵-!
[신도의 수가 늘고 신앙심이 깊 어져 신성력이 5000 상승합니다.]
[차원 ‘지구, 아니마, 프리실라, 중원, 불카누스’에 한서준의 신명이 뿌리내림에 따라, 성역 선포가 가 능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신성 력이 증가하고 있었다.
상당한 성장이라 할 수 있는 만 큼 서준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
어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준을 기쁘 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L저는 도현이의 엄마입니다. 아 들을 되살려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실시간 랭킹의 상위권에 차지한 되살아난 사람들을 인터뷰 한 기사, 그 안에서 추천을 제일 많이 받은 첫 베스트 댓글은 가족들의 감사가 담긴 내용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에 작성된 댓 글들에도 되살아난 자들의 가족 혹 은 지인들에게로부터 감사하다는 표 현이 가장 많았다.
‘살다 살다 이런 대우를 받게 될 줄은 몰랐네.’
단순히 신으로 찬양받는 것이 아 니었다.
사람들은 서준을 선한 존재로 추 앙해주고 있었다.
천마, 최강이자 최악의 마선까지. 평생 악인으로 불려온 서준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난생처음이었다.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뿌듯한 감 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스마트 폰을 바라보고 있던 서준 의 입가에 호선올 그리고 있던 찰 나, 서연이 물음을 던져온다.
“근데 오빠 정말 이래도 되는 거 야?”
“뭐가?”
“사람들을 이렇게 함부로 살리게 되면 뭐 여파 같은 게 있는 거 아 니야?”
옳은 말이었다.
이렇게 함부로 살릴 수 있었다 면, 다른 대신들도 마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섭리를 거스 르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그에 따른 이유가 있었다.
‘운명을 되돌려 놓는다는 명분 하에 내우주의 존재들이 움직이게 될 테니까’
직접 토르와 맞붙어봤기에 알고 있었다.
내우주의 존재들은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지구가 맞붙게 된다면 필패 (必敗)하게 될 것이다.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서준의 얼굴을 본 서연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무슨 일 있는 거지‘?”
“아주 큰 전쟁이 일어날 거야.”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여 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나 보네.”
“……걱정할 건 없어. 내가 전부 해결할 거니까.”
“그렇게 혼자서 모두 안고 갈 필 요는 없어. 모두가 함께 나누는 게 뭐 어렵다고.”
단순히 빈말로 하는 게 아니었다.
서연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과 말 에서 전해지는 감정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마음이 가슴 에 와닿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짐을 내릴 수 없었다.
지금부터 벌어질 싸움은 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의 재림이다.
가족이 끊임없는 무공 수련으로 강해졌으나, 이 존재들 앞에선 무 용지물, 허무한 죽음만이 있을 뿐
지켜주고 싶은,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가족들을 위험한 전장에 나 서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만 받을게.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
속으로 각오를 다진 서준은 피식 - 미소를 흘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 어난다.
대화를 끝마친 서준은 곧장 발걸 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선 서준은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몸올 기대며 깊은 생 각에 빠진다.
‘머지않아서 우주 협회와 이계의 신격의 침공이 벌어질 거야.’
말 그대로 사활이 걸린 싸움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일전의 엘리시움의 침공 때와 같 은 실수를 벌일 생각은 없었다.
아니, 벌여서는 안 되었다.
‘생사부 수정에도 제한이 있어.’
오시리스의 신격을 강탈하고 알 게 된 정보로, 생사부는 시간상 100년에 한 번만 수정이 가능했다.
영겁의 세월을 살아갈 수 있는 신격에게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인간에게는 매우 긴 시간이었다.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다.
소모전은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그리 많 지 않았다.
‘최선은 나 혼자서 처리하는 거 야.’
우주 협회와 이계의 신격들을 홀 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 야한다.
다행인 것은 서준에게는 성장할 방법이 아직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 다.
가장 먼저 서준의 머릿속에 떠오 른 것은 아티팩트, 흔히들 말하는 템빨이 었다.
‘천마의 보구를 모아야 하나?’
보구 중 하나인 금룡흑포를 회수 했지만, 아직 남은 보구는 2개나
더 있었다.
천년 간 사용해왔기에 가장 익숙 하면서도, 쉽게 다룰 수 있는, 곧장 전투에 적용시킬 수 있는 물건이라 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얼마나 걸릴지 몰라.’
알고 있는 것은 차원의 위치뿐이 었다.
정확하게 누가 어떤 형태로 가지 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보구를 건네받은 존재가 다른 차원으로 떠났을 수
있었다.
“너무 불확실해.”
두 번째로 서준의 시선이 향한 곳은 토르에게서 얻은 묠니르였다.
[봉인된 묠니르]
등급 : 금기(봉인)
분류 : 영구 아이템
사용자가 바뀌어 ‘오딘’의 저주가 발동된 상태입니다.
봉인된 상태로 본래의 힘을 끌어 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특이사항.
1. 저주를 해지하고 봉인을 풀어 내야 능력이 발현됩니다.
설명을 읽어가던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영악한 놈 이란 말이지.”
혹여나 묠니르가 적군의 손에 넘 어갈 것을 염두에 두어 저주까지 걸어두었다.
이런 저주를 해지하는 가장 확실 한 방법은 저주를 건 대상이 풀어
주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신들의 아버지, 오딘 이 이 저주를 풀어줄 리가 없었다.
‘공격이나 안 해오면 다행인 수 준이지.’
아티팩트의 힘을 이용한 성장은 무리였다.
하지만, 성장 방법은 아티팩트를 활용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수가 없네.’
서준의 눈동자가 자신의 손바닥 으로 향한다.
주먹을 말아쥐고 있는 손에서는
회색빛 기운이 넘실거린다.
‘혼돈의 힘을 성장시키는 수밖 에.’
정확히 말하자면, 순수한 혼돈의 힘으로 무공을 만들어내는 것뿐이 었다.
확신하긴 힘들었지만, 다른 방도 가 없었다.
서준은 곧장 가부좌를 틀어 ‘가 이사의 환상’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순수하게 혼돈의 힘만을 이용하 는 무공을 만든다.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 서준은 처음으로 재능의 벽이라는 것을 느꼈다.
가이사의 황상 속, 끊임없는 실 험과 수련을 반복했지만, 혼돈의 힘을 다루는 능력은 크게 발전이 없었다.
기존에 다루고 있던 혼돈의 힘과 혼돈석이 내어준 힘, 그 이상을 벗
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었다.
“빌어먹을……
처음으로 수련을 하다 답답한 마 음에 욕을 내뱉은 서준이 이마를 짚었다.
‘지금이라도 보구를 찾는 거로 목표를 바꿔야 하나?’
조금씩 자신이 없어진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포기하 느냐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나아가야 할 방법 조차 모를 정도로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이런 막막한 일이 서준에겐
처음이었다.
‘대체 혼돈의 힘이 뭐지?’
서준의 생각은 결국 기본으로 돌 아가야만 했다.
혼돈의 힘이라는 것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것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여태까지 다뤄낸 혼돈의 힘은 내 력처럼 활용해 사용하던 무공에 덧 씌워 다뤄내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효용 능력 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혼돈의 힘이 정확히 무 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빛과 어둠, 극 상성의 힘이 뒤섞 인 거……?’
고작 이 정도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혼돈이라는 단어의 표현 역시 그런 듯했다.
‘마치 무도(武道)와 같네.’
무수히 많은 길이 존재했기에, 감히 어떠한 형태로 빚어낼 자신이 없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고 정말 포기할 수는 없었다.
“ 흐음.
턱에 손을 괸 채로 고민하던 서준이 다시금 자세를 다 잡는다.
정복왕의 수투를 바라보며 정신 을 집중한다.
‘길이 있다면 계속 부딪치고 부 딪치다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 겠지.’
한 줄기 아니, 한 점보다도 작은 빛이어도 괜찮다.
방향성만 잡는다면 계속 걸어 나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노력한다.
‘애초에 노력 없이 무언가를 바 랄 수는 없으니까.’
다급했지만, 조급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한숨을 푹 내쉬는 순간, 서준의 눈앞에 갑 작스럽게 시스템 창과 함께 메시지 가 떠올랐다.
[위대한 정복왕 가이사가 당신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초대에 응하시 겠습니까? Y/N.]
“어?”
정복왕의 초대, 어쩌면 이는 함 정일 수도 있었다.
내우주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힘 을 가진 정복왕이 얼마나 강할지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정복왕이 만남을 요청하며 초대를 보냈다.
자연스레 메시지 창을 바라보고 있는 서준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런 게 가능했었어?’
잠시 의문이 피어났지만, 완벽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아예 추측이 가지 않는 것
은 아니다.
이 또한 우주의 변화 중 한 가지 일 수도 있었다.
아니, 애초에 지금 중요한 것은 메시지 전달 여부 따위가 아니었다.
‘ 어쩌지?’
정복왕, 가이사는 분명 서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한동안 메시지를 보내는 것조차 힘들 것이라고 하였다.
한데 이번에 갑작스럽게 초대를 보내왔다.
분명 그에 따른 이유가 있을 것 이다.
‘가보자. 아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서준의 직감이 가이사와의 만남 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주 만약 직감이 틀렸다 한들 여차하면 정복왕을 상대로도 도주 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도 갖추었 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서 만약 정복왕이 진심 으로 호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라면,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결심을 세운 서준이 눈앞에 보이 는 메시지 창을 향해 고개를 끄덕 였다.
‘예스.’
동의와 동시에, 지면으로부터 홀 러나온 회색빛 힘이 서준의 육신을 단숨에 휘감았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