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21화
296화
토르와 서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고조되기 시작했다.
공방에 화려한 기교 따위는 필요 없었다.
광속을 뛰어넘는 초광속의 세계 에서 서로를 향해 전력으로 부딪힌 다.
서준이 닿아있는 영역을, 토르 역시 도달해 있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토르 역시 내우주에서 신격으로 자리 잡은 존재……
심지어 그 신격 중에서도 위대한 전사라 칭송받고 있는 자였다.
그런 토르와의 싸움이다.
실제로 방금까지의 서준은 토르 의 몸에 이렇다 할 상처를 내지 못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전과는 다를 것이다.
저 두꺼운 근육과 갑주를 뚫어내 고 토르의 심장을 부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여전히 토르는 강력한 적수였다.
당장 공방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있었다.
‘역시 강해.’
물론, 질 거 같아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긴박하고 초조해했던 심마를 물 리치고 새롭게 눈을 뜬 서준이었다.
비록, 그 경지를 완벽히 이해하 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아니었
때문에, 토르와의 싸움에서도 쉽 게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었다.
아니, 서준은 사실 이 싸움을 끝 내고 싶지 않았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아주 빠르고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 진다.
희미하게 감지되기만 했던 모든 것이, 전투를 이어나가면 나갈수록 선명하게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영역을 벗어나 본능 처럼 뇌와 육체에 새겨지기 시작했
‘ 닿는다.’
기껏 떠올렸지만, 소화하지 못했 던 것들을 하나씩 완성시킨다.
처음부터, 공수(攻守)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토르의 최대 실수이자 서준에게 있어서는 행운이었다.
토르는 서준의 성장이라는 화분 에 자양분이 되고 있을 뿐이었다.
서준의 입가에 피어나고 있는 미 소에 토르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놈……. 감히 이 몸을 수련 상대로 쓰고 있는 것이냐!”
서준의 얼굴에 비치는 감정을 놓 치지 않고 잡아챈 것이다.
‘들켰네.’
하지만 이미 충분한 연습을 끝마 쳤다.
서준의 몸에 회색빛 기운이 일렁 였다.
이제부터는 토르가 미친 듯이 달 려들어 맹공을 퍼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토르가 쥐고 있던 묠니르에서 푸른빛 뇌전이 강 렬하게 터져 나온다.
콰쾅-!
터져 나오는 푸른빛 뇌전, 벼락 무리가 서준의 사방을 엄습한다.
그사이, 정면에서는 토르의 묠니 르가 날아오고 있었다.
묵직하다.
거리를 좁혀오는 묠니르의 기세 는 이미 서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서준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 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 혼돈의 힘 이, 쏘아지던 푸른빛 뇌전을 단숨 에 집어삼킨다.
남은 것은 이제 하나, 정면에서 다가오는 토르의 묠니르다.
그러나 이마저도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지금 서준은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자신의 근본을 확실히 알았다.
‘무공.’
막강한 힘을 통하여 찍어 누르는 것만이 승리를 점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상대의 공격을 읽어내는 것으로 흘리고, 피하고 혹은 힘을 역으로 이용하여 되돌려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토르처럼 무식한 공 격을 쏟아내는 이에게 최고로 좋은 것은 바로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주 는 것이었다.
물론, 저 무식한 힘을 곧이곧대 로 받아낼 수는 없었다.
“ 후우......
호흡을 가다듬자 내지르자 서준 의 전신에서부터 혼돈의 힘이 폭발 하듯이 용솟음친다.
매섭게 다가오던 토르의 묠니르 의 기세가 조금이나마 꺾이는 듯했 다.
그 순간, 서준의 손이 기다렸다
는 듯이 묠니르와 맞닿는다.
손바닥에서부터 아찔한 전류가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체내를 옭아매거나 폭발 하지는 않는다.
‘됐어.’
체내를 회전한 힘을 그대로 토르 에게 되돌려주려던 서준은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웃어?’
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토르의 입가는 틀림없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위험해.’
저도 모르게 움직인 본능적인 위 협을 느낀 서준은 황급히 손바닥에 대고 있던 묠니르와 거리를 벌리고 는 몸을 뺐다.
파지직-!
몸을 휘감고 있던 회색빛 기운이 흐트러지며, 체내에 흡수해내었던 푸른빛 뇌전이 폭발한다.
쾅-!
끔찍한 고통과 함께, 입가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온다.
‘흡수를 못 했나?’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당황을 금치 못하는 건 서준뿐만이 아니었다.
묠니르를 말아 쥔 채로 선 토르 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준이 공 격을 피한 것에 꽤나 놀란 듯했다.
‘아니, 완벽히 받았어. 다루는 것 도 성공했고.’
만약 힘을 받아내지 못했다면, 육신이 한 번에 터져버렸을지도 모 른다.
‘ 뭐지?’
단순히 강하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다시금 달려드는 토르를 보며 서준은 눈을 부릅뜨고는 움직임 하나 하나를 주시한다.
특별히 관찰하는 능력을 지닌 것 은 아니다.
그러나 무를 읽어내는 눈썰미만 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덕분일까?
‘ 설마?’
두 번째 공격을 다시 받은 서준 은 문제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유 추할 수 있었다.
파지직-!
흐릿했던 생각이 확신이 되는 순 간이었다.
다시 몸을 뺀 서준은 홉수한 푸 른빛 뇌전이 폭발하는 것을 떨쳐낸 후 웃음을 흘렸다.
화려하게 주변으로 퍼져나간 뇌 전의 힘은 속임수다.
“무공 같기도, 권능 같기도 한 것 같은데……. 상당히 특이한 능 력이네.”
감탄 섞인 서준의 물음에 눈을 반짝인 토르의 입가로 미소가 흐른 다.
“눈치가 빠른 편이군, 그래서, 정 체가 중요한가?”
“그냥 궁금해서……. 방금, 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린 거잖아.”
시공간에 간섭하는 것은 일반적 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토르는 그런 시공간 중, 공간에 개입하는 능력을 온전히 본 인의 힘으로 이뤘다고 말하고 있었다.
순수한 무력으로써 혼돈의 힘과
대등한 위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었다.
“대단하긴 하네, 대체 그 스킬의 정체가 뭐지?”
“51번째 죽음의 세계. 영광으로 생각해도 좋다. 이 기술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내우주에서 도 몇 되지 않으니 말이다.”
눈을 차갑게 반짝인 토르의 입가 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충분히 이해할 법도 했다.
51번째 죽음의 세계, 단순히 외 면에 있는 세계를 부숴내는 게 아 닌 우주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붕괴시키는 파괴.
당연하지만, 공간이 부서진다면 닿으려 해도 닿을 수 없었다.
되돌려주려 한다 해도 되돌려줄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일부분이라지만 우주 그 자체를 부수는 스킬이라……
우주의 법칙을 뒤틀거나, 새로이 정립하는 권능을 뛰어넘을 정도로 극에 다른 파괴, 파극(破極)이라 불 려도 손색이 없는 힘이다.
“이해한다고 해서 따라 할 수 있 을 것 같으냐?”
토르는 입가에 호선을 그린다.
서준 역시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 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완벽히 이해 된 것도 아니거든.”
자그마치 공간 자체를 부수는 일 이었다.
그것을 위해 토르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련을 거쳐 왔을까?
또, 실제로 공간을 부수기 위해 얼마나 방대한 양의 힘이 필요할 까?
서준이 가진 가장 강력한 파괴적 인 혼돈의 힘을 사용한다고 하여도 우주 그 자체인 공간과 부딪힌다면
육신이 남아나지를 못할 것이다.
애초에 토르처럼 공간 자체를 부 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묠니르라는 무구를 통해 완성시 켰나 보네.”
공간 자체를 부수는 것은 우주 그 자체와 싸움을 벌이겠다는 것이 다.
토르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 고 있는 자였고, 만들었지만 활용 하지 못하는 51번째 죽음의 세계를 다루기 위해서는 묠니르가 반드시 필요했다.
본인의 힘과 묠니르의 단단함이
더해지면 충분히 스킬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터였 다.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렸다.”
토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스킬을 펼치기 위해서 묠니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묠니르가 단단하긴 하나 특별한 능력이나 권능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단단하다 할지라도 결국 우주에 비하자면 보잘것없었다.
실제로도 아무리 해도 일부를 부 수는 것에 그쳤으니 할 말 없었다.
“51번째 죽음의 세계는 아직 완 성되지 않았다.”
당당한 토르의 대답에서준의 입 가에 피식- 미소가 흐른다.
‘ 과연......
고작 공간의 일부를 부수는 것으로 만족할 이였다면, 감히 가장 위 대한 전사라고 불리지도 못했을 터 였다.
‘우주, 공간 자체를 부수겠다는 건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힘을 갈망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진정 토르가 바라는 경지가 어디 일까?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서준은 머릿속을 비우고 다시금 자세를 취 했다.
애초에 토르의 목표 따위, 굳이 알 바가 아니었다.
토르 역시 묠니르를 꽈악- 말아 쥐며 서준을 향해 겨누었다.
압도적인 힘에,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정말 강하다.’
서준은 다시금 인정했다.
토르는 강적이다.
한편으로는 존경할 만한 전사이 자 무인이었다.
끊임없이 수련하고 자신을 절차 탁마하는 진정 위대한 전사라 불릴 수 있는 존재.
“하지만 내가 이겨.”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준은 토 르와의 힘의 격차를 여실히 느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눈빛이 흔들 리지 않았다.
‘결국, 기술은 존재하지 않아.’
토르의 힘은 강력하다.
그러나 올곧고 정직할 뿐이었다.
파고들 틈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 이다.
‘전력으로 간다.’
쾅-!
체내에서 홀러나오는 혼돈의 힘 이 토르가 내뿜는 뇌전의 힘과 마 주해 부딪히며 충돌한다.
그사이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토 르가 서준을 향하여 묠니르를 휘두 르고 있었다.
파지직-!
공간을 삭제하고 서준의 신형을
가격한 토르가 웃었다.
“네놈만이 내 기술을 파악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지.”
분명, 공격이 적중했음에도 타격 을 크게 입지 않았다.
마치 놈의 손으로 힘이 빨려 들 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 이런 상황을 목도했을 때 토르 역시 당황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겪었으니, 약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받고 흡수할 수 없을 만큼 더욱 강한 힘을 보여주면 될 뿐.’
휘두른 묠니르가 서준의 손에 닿 는 순간, 토르가 웃어 보이며 체내 의 모든 힘을 끌어낸다.
“공간과 함께 으깨져라!”
압도적인 힘, 파괴가 토르의 손 에서 이루어진다.
꽈드드득-!
묠니르가 서준의 손바닥을 천천 히 밀어내며 압박을 가해온다.
그러나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우웅, 우웅.
회색빛으로 전신을 물들인 서준 은 토르의 막강한 힘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두 힘이 맞부딪히고 있는 중심, 서준의 눈동자에서린 꺾이 지 않는 투지를 마주한 토르의 몸 이 흠칫 떨렸다.
분명 놈의 방어가 부서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리 불안하단 말인 가?
토르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 럼 흔들리고 있던 찰나였다.
“확실히. 난 네 말대로 공간을 부수는 것은 못 해. 애초에 그렇게 무식한 힘이 없거든.”
하지만 싸움의 승패를 갈라내는 것은 무식한 힘이 아니다.
묠니르와 맞닿은 손바닥이 뜨겁 게 타오르는 느낌 속에서 서준은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