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19화
294화
‘신들의 아버지가 말한 존재는 언제쯤 문을 넘어올 수 있는 거 지……?’
이런 궁금증을 가지는 것조차 사 치였다.
쌔액-!
빛의 속도로 이동한서준의 신형 이 지척에 닿았다.
이어서 가슴팍에서부터 아찔한 고통이 밀려온다.
.....
움직임조차 쫓을 수 없는 압도적 인 차이였다.
단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한 것이 었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래 버틸 수 없다.’
비록 힘을 소진한 상태였으나, 최소한 신들의 아버지가 보낸 지원 군이 문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혼돈의 힘을 다루고, 마신의 근 원을 취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성역 내에서 싸
운다면 어느 정도 맞서 싸울 수 있 을 거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적대감을 유 감없이 드러내 한서준을 위협한 것 이었다.
하지만 한서준의 힘은 예상을 아 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심지어 이것조차도 전력이 아니 라니……
척 보아도, 눈앞의 괴물은 여유 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재롱을 지켜보 는 것마냥 피식- 미소를 흘리며 내 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승산 이 존재치 않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마신이여. 자네는 이 우주 내에서 그 누구보 다도 뛰어난 존재일세.”
제약이 가해져 있음에도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한서준은 그 누구 보다도 뛰어난 무인이었다.
사실, 단 100명밖에 존재할 수 없는 대신들조차도 문을 넘어서 내 우주에 가게 된다면, 그저 평범한 축에 속했다.
애초에 내우주에 있는 존재들은 모두 외우주에서 대신에 올랐던 존
재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달랐다.
단순히 대신에서 그치지 않고 제 약을, 한계를 부수고 마신의 근원 까지 품었다.
내우주의 신격들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대신과 비교하는 것 자체 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외우주에서 갈고닦은 힘으로 내 우주의 신격들과 맞서 싸우고, 종 국에는 그들을 넘어선 힘을 가지게 된 가이사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허공에 부유해있는 서준을 바라 보는 오시리스의 눈동자에는 옅은 경외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와 내 쪽에 붙으 려고?”
“그럴 리가 있나, 자네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긴 하나 결국 이 작은 우주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지, 내 우주의 존재들과는 맞서 싸울 수 없네.”
“구차하게 시간 끌려 하지 말고, 본론부터 말해.”
“여기서 날 죽이게 된다면 생사 부를 수정할 수 없다는 점도 알았
으면 하는군.”
“그걸 지금 협박이라고 하는 거 야?”
헛웃음을 홀린 서준이 자세를 다 잡는다.
그러자 회색빛 기운이 솟구치며 서준의 주먹을 감싸온다.
“목적을, 망자의 부활을 포기할 셈이냐?”
“그럴 리가.”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 어난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거지.”
서준은 처치한 대상의 신격을 강 탈하는 패자(W者)의 칭호를 가지 고 있었다.
앞서 하데스와는 대화가 통했고, 함께할 만한 가치가 있기에 손을 잡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시리스는 아니다.
내우주의 편에 붙어서 지금 가족 과 동료가 있는 현 우주에 위협을 가하려 하고 있었다.
명백하게 적으로 분류된 존재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사자(死者)의 신이 된다.”
무릎 꿇게 하고, 찬탈하고 군림 한다.
애초에 이것이 서준이 그간 걸어 온 길이자, 투쟁이자, 패도였다.
서준의 눈동자에 피어난 진의를 읽은 오시리스가 목울대로 마른침 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얼굴, 오른쪽 볼에서 주먹이 강 렬하게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가 이윽고, 꺾일 수 없는 각 도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밀려오는 고통에 오시리스의 얼
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잠깐......!”
다급하게 말을 내뱉으려 하였지 만, 찰나의 틈도 없이 무자비한 폭 력이 오시리스의 전신을 두들긴다.
콰직-!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계 속되는 아찔한 고통 속에서 오시리 스의 마음 한구석에서 원망이 피어 난다.
서준을 향한 것은 아니다.
도움의 손길과 함께 우주를 제패 할 권한을 주겠다고 구슬렸던 신들 의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다.
‘이렇게 될 거면 도움을 준다고 하지 말 것이지!’
선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지금 오시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말을 믿었던 과거와 스스로 의 능력에 대한 무기력함에 빠져 단념하고 있는 사이, 서준의 선고 가 내려진다.
“이제 죽어.”
서준의 주먹이 오시리스의 심장 을 향해 쇄도한다.
허나, 끝까지 내뻗지는 못했다.
콰쾅-!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기묘한 불안감을 느낀 서준은 황급히 내뻗 은 주먹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일찍 넘어왔네.”
말을 내뱉는 서준의 시선이 하늘 로 향한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에서 굵은 빗 방울들과 벼락들이 쉴 새 없이 내 리치고 있었다.
‘우주협회? 이계의 신격?’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아직까지 정확한 적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 엄청난, 적이 이곳 차원, 아비도스에 당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위대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는 하찮은 미물이 네놈인가?]
서준이 코웃음을 친다.
“그놈의 위대한은……
너무나도 지겹게 들어왔다.
물론, 눈앞의 존재가 우스운 것 은 아니었다.
당장 느껴지는 기세만 보더라도
여태껏 만나본 적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강자였으니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눈앞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다른 존재의 기척 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리석고 오만한 인간이여, 지금 이라도 속죄할 방법이 한 가지 있 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서준을 향해 경고한다.
[위대한 아버지께서는 자애롭고 관대하시기에 어리석고 오만한 너 에게 특별히 기회를 주셨다. 만약 스스로 심장을 내놓게 된다면 네놈
의 죄를 사할 것이라고 하셨다.]
거만함이 넘치는 음성에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그럼 나도 특별히 기회를 줄게,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자비를 베푼 다면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해주도 록 하마.”
[..크하하하!]
음성이 하늘을 뒤흔들고, 땅을 갈랐다.
차가운 눈동자를 한서준은 고개 를 들어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온다.’
생각이 닿기 무섭게, 폭풍우를 쏟아내고 있는 검은 구름 사이로 한 줄기의 섬광이 쏘아졌다.
콰쾅-!
이어진 벼락과 함께 일대에 울려 퍼지던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 러냈다.
황무지와 다름없는 아비도스.
서준의 차가운 시선은 그 중심에 생겨난 거대한 크레이터를 향한다.
정확하게는 크레이터의 중심에서 두터운 갑주를 걸친 채, 오연한 표 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거구의 사내를 향한 것이었다.
“ 너는……?”
“나를 알고 있나 보군.”
“예상 정도는 되네.”
신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재를 따르고, 천둥을 다루는 신격은 단 한 명뿐이었기에 그 정체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싸움을 벌여 봤자 무 의미한 발악이라는 걸 알겠군, 괜 히 힘을 빼지 말고 순순히 목을 내 놓는 것이 어떤가?”
푸른빛 뇌전을 휘감은 사내의 음 성은 더 이상 울려 퍼지지 않았다.
땅을 갈라놓지도 않았으며, 일전 에 느껴지던 거친 위협 또한 느껴 지지 않는다.
그러나 목소리에 담겨있는 살의 는 전보다 더욱 강렬해져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레 겁을 먹을 서준이 아니었다.
“개소리를 참 길게도 하네.”
“……기어이 고통을 선택하겠다 는 건가.”
코웃음을 치고 있는 서준의 모습 에 사내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진다.
“네가 선택한 벌이니 달게 받도 록 하여라.”
“입으로 싸울 생각은 아니지?”
말을 끝맺은 서준이 가볍게 손가 락을 튕겼다.
그러자, 날카롭게 쏘아진 회색빛 기운이 사내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 다.
쉭-!
짧은 순간 볼에서 피가 흘러나왔 지만, 순식간에 치유된다.
“두 번은 없을 거야.”
입가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서준 의 모습에 놀란 사내가 서준을 새 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 앞에서 이리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는 존재를 마주한 게 얼마 만 인지 모르겠군, 어리석긴 하나 용 맹한 전사였구나. 그에 따른 예우 를 취해 주지.”
서준의 당돌한 모습에 입가에 호 선을 그린 사내가 허공에 손을 내 뻗는다.
쿠구궁...
천둥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에 푸 른빛 뇌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내의 몸에서 일어난 푸른빛 뇌 전은 빠른 속도로 부풀어가며 가장 포악하다는 혼돈의 힘과 맞부딪히 며 다투기 시작했다.
서준도 이에 맞춰 기세를 일으켰 다.
어느덧 회색빛 기운을 둘러싼 서준의 주변으로는 혼돈의 힘이 홀러 나와 사내가 뿜어내던 푸른빛 뇌전 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혼돈의 힘이라…… 과연, 위험
한 전사구나. 아버지께서 직접 명 령을 내리신 것이 납득이 가는군, 기억하라. 네게 영멸을 선사해줄 이름을……
음성과 함께 푸른빛 뇌전들이 혼 돈에 지지 않겠다는 듯 규모를 키 워가기 시작했다.
구구구…….
푸른빛 뇌전들과 혼돈의 충돌이 강렬해진 전장의 한복판.
돌무더기는 튀어 오르고 중력이 역행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위대한 전사이자 천둥의 신, 토르다!”
휘두른 주먹에서 흘러나온 푸른 뇌전이 혼돈의 힘을 단숨에 가르고 서준의 육신을 가격한다.
가늘어진 눈매를 한서준이 허공 을 향해 손을 내뻗는다.
사방에서 흘러들어 온 혼돈의 힘 으로 이루어진 개벽의 검이 서준의 손아귀에 쥐어진다.
눈앞에 당도한 토르의 주먹을 향 해 서준이 개벽의 검을 휘둘렀다.
콰콰앙-!
굉음과 함께 순수한 힘의 싸움이 계속된다.
하지만,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한쪽의 기세가 밀려나기 시작한 다.
쾅! 쾅! 쾅!
이어, 폭음과 함께 서준의 신형 이 뒤로 밀려난다.
동시에 뻗어져 나온 충격파로 인 하여 대지의 일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 낸 서준이 놀란 눈으로 토르를 바라본다.
“제법이네.”
괜히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위 대한 전사라고 불린 것이 아니다.
순수한 힘, 위력으로만 보자면 지금의 서준이라 할지라도 넘어설 수 없었다.
실제로도 서준이 쏘아내는 혼돈 의 힘은 쇄도해오는 토르를 막아내 지 못하고 있었다.
포악함을 자랑하던 혼돈의 힘은 푸른빛 뇌전에 오히려 역으로 집어 삼켜지고 있었다.
“네 공격은 내가 가진 천둥의 힘 에 비한다면 가당치 않은 발악일 뿐이다.”
토르가 비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내 뻗었다.
쩡-!
세계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서준 의 육신이 뒤로 밀려나며 입가에서 는 피가 쏟아진다.
“생각보다 하찮구나. 마신이여!”
토르의 입가로 승리의 미소가 진 해질 때였다.
“……먹어 치워.”
작게 읊조린 서준의 양손이 토르 가 내뿜고 있는 푸른빛 뇌전들을 휘어잡았다.
화악……
회색빛 기운이 푸른빛 뇌전들을 잠식한다.
말 그대로 찰나와 같은 시간.
토르를 수호하는 것만 같던 푸른 빛 뇌전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 어 간다.
어느덧 푸른빛 뇌전을 반 이상 집어삼킨 혼돈의 힘이 개벽의 검의 모습으로 변형되고는 토르의 육신 을 베고 지나간 것 역시 그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촤악-!
날카롭게 베이는 소리와 함께 핏 물이 튀어 올랐다.
....
눈을 휘둥그레 뜬 토르의 한쪽 팔이 초라한 모습으로 허공을 노닐 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