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17화
292화
[말도 안 된다! 분명 혼돈과 하 나가 되었거늘! 어찌 의지를 지니 고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너는 내 혼돈의 일부다. 순종하고, 받아 들이란 말이다!]
“혼돈과 하나가 된 건 맞아, 근 데 내가 너의 일부가 된 게 아니 라, 네가 나의 일부가 된 거겠지.”
[역으로 집어삼켰다고?!]
“직접 보고도 모르겠어?”
비릿한 미소를 흘린 서준이 혼돈 의 힘이 손을 내뻗는다.
촤악-!
수백 개의 눈이 동시에 터지더니 핏물을 흩뿌렸다.
동시에, 세계가 뒤흔들리며 파편 의 의식이 휘청거린다.
터져버린 눈동자로부터 아주 작 은 회색빛이 재빠르게 움직이고는 파편의 내면인 혼돈의 세상을 빠져 나왔다.
때문에 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는 없다! 어찌 내 혼돈 에 집어삼켜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 단 말이냐!]
“그야 내가 너보다 혼돈을 더 잘 다루기 때문이지.”
회색빛 줄기가 허공을 빠르게 가 로 지르며 파편의 의식을 향해 쇄 도해간다.
재빨리 생성된 회색빛의 촉수 무 리가 일제히 쏘아졌지만, 서준에겐 너무나 느린 공격이었다.
결국, 서준의 몸에 닿지도 못하 고 찢기고 갈려 허망하게 집어 삼 켜질 뿐이었다.
가볍게 몸을 움직인 것으로 파편 의 의식이 쏟아낸 다량의 촉수들으 모조리 다 벤 서준이 피식- 미소를 홀린다.
“혼돈은 이런 식으로 쓰는 게 아 니지.”
여유롭게 거리를 좁혀오는 서준 의 모습에 파편의 의식의 눈동자에 당황을 넘어선 분노가 어리기 시작 했다.
[이 어리석은, 그동안의 공을 생 각하여 나름의 자비를 베풀어 주었 건만! 스스로 벌을 받기를 원하는 구나!]
혼돈의 기운이 폭주하듯 사방에서 몰아치기 시작한다.
촉수의 형태로 움직이던 혼돈은 거센 태풍이 되어 세계를 찢어놓을 듯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띠링-!
[혼돈의 파편이 혼천대전(混天對 戰)을 신청하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패배할 경우, 영원 히 혼돈의 일부로 살아가야 합니 다.]
[숭리할 경우 혼돈으로부터 주인
임을 인정받아 혼돈석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Y/N)]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확인 한서준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주 억인다.
애초에 파편의 내부로 들어온 것 은 혼돈석을 만들기 위한 인정을 받기 위함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정을 받는 방법이 명 료해서 좋네.’
주인으로 인정해준다는 조건으로 귀찮은 잡일을 시키면 어쩌나 했는
데, 괜한 기우에 불과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아 할 수는 없었다.
“제법인걸.”
혼돈 그 자체이기 때문일까?
파편의 머리 위로 모이는 회색빛 기운이 광휘가 되어 발하고 있었다.
회색빛이 이처럼 찬란할 수 있다 는 것을 서준은 처음 알았다.
그 모습에 가슴 속 한편이 크게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다.
쿵 쿵!
메시지가 알려주었듯, 이를 모두
모은다면 혼돈석을 제작할 수 있었다.
파편의 내부로 들어와, 혼돈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직접 겪 은 서준은 그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지 어렵지 않게 유추 할 수 있었다.
혼돈의 힘은 마치 천마신공과 같 다.
압도적인 강함으로 눈앞의 적들을 모조리 다 무릎 꿇게 하는 절대 적인 힘.
모든 힘의 가장 위에 있는, 포식 자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때문인지 그만큼 다루기 까다롭 고 방법도 어려웠다.
천무지체라 불린 서준 조차도 그 방법을 제대로 몰라 헤매었을 정도 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서준은 혼돈을 마주했고, 파편이 그 힘을 어찌 사용하는지 확실하게 목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익혔다.
[……
주변을 찢어발길 기세로 몰아치 며 서준을 향해 날아오던 혼돈의
태풍이 방향을 돌려 파편의 의식에 게로 향한다.
[어, 어째서?!]
“네가 좋은 걸 가르쳐준 덕분이 지.”
혼돈의 주인을 자처한다면서 지 레 겁을 먹고 밀어내고, 도망치려 했었다.
이보다 어리석은 행동이 어디 있 단 말인가?
그렇기에 처음에는 파편이 내뿜 는 혼돈을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 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당당히 받아들이고, 복종을 받아 혼돈에게 자신이 주인임을 증명했 다.
[어찌…… 혼돈으로부터 태어난 이 몸조차도 수백 년에 걸쳐 노력 하여 얻은 것을, 이리 쉽게 익혔다 고 하는 것이냐!]
“부정하는 건 상관없는데 그래 봤자 결과가 바뀌지는 않아, 이 혼 돈은 네 것이 아니야.”
혼돈의 태풍이 단숨에 파편의 의 식을 향해 쇄도했다.
파편 속의 혼돈이, 서준의 의지 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니, 내 것이다! 혼돈으로부터 태어나 얻어낸 온전한 나의 힘이란 말이다!!]
거센 외침과 함께 부정했지만, 혼돈의 태풍은 서준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며 파편의 의식을 뒤덮는다.
[큭, 크윽.]
혼돈의 태풍에 찢겨 동체가 무너 진 파편의 의식이 비명을 내질렀다.
파편의 내부는 그런 의식을 가만 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쩌억-!
지면이 갈라지고 의식의 거대한
동체를 침식시키듯 잡아먹기 시작 한다.
[이, 이럴 순 없다,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너희들이 삼켜야 할 것은 내가 아니란 말이다! 놔라! 놓아라!]
파편의 의식은 사지가 찢기고 터 지는 와중에도 거친 발악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했 다.
이미 파편의 동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한 혼돈은 멈출 줄을 몰랐다.
[크아악-!]
그사이, 서준은 혼돈에 삼켜지고 있는 파편의 의식의 머리 위로 올 라섰다.
말아 쥐고 있는 손에는 회색빛, 혼돈의 힘이 응집된 한 자루의 검 이 있었다.
마침내 서준의 차가운 시선이 파 편의 의식에게로 향한다.
[멈, 멈추어라! 혼돈의 주인이 되 고 싶은 것이 아니냐?! 나와 하나 가 된다는 것은 진정한 혼돈의 주 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 은 선택을 하지 마라!]
혼돈의 힘이 넘실거리는 개벽의
검에 위협을 느낀 파편의 의식이 애절한 목소리를 홀렸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어떻게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있겠어?”
그 말에 파편의 의식이 체념 섞 인 헛웃음을 흘린다.
[수천 년을 기다려왔거늘……. 이 런 허무한 영멸을 맞이해야 하다니, 너무나도 불공평한 것이 아니 냐…….]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법이야.”
서준은 더 이상 파편의 의식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너머, 출렁이는 혼돈 을 직시했다.
“이건 내 먹이야, 그러니까 물러 서.”
뻗어진 개벽의 검은, 빛의 속도 로 휘둘러진다.
촤악-!
호쾌한 소리와 함께 파편의 의식 의 거대한 동체가 갈라진다.
아니, 혼돈의 세계 전체가 뒤흔 들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쿠궁……. 쿠구궁…….
머물고 있다가는 이 세계와 함께
묻힐 판이었다.
실컷 주인임을 증명해놓고 이런 곳에 죽을 수는 없었다.
서준은 황급히 고개를 두리번거 리며 영혼이 걸어온 길을 되짚었다.
희미하지만 걸어왔던 길의 흔적 을 확인한서준은 곧장 한 줄기의 회색빛이 되어, 혼돈의 세상을 떠 나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침묵만이 남은 파편의 내부, 혼돈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 다.
하데스의 수련장.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연무장 위 에 홀로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던 서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파하.…”!”
이어서 토하듯 뱉어진 숨결은 무 겁게 연무장에 내려앉는다.
“제대로 도착했네.”
이곳은 영혼, 의식의 세계가 아 닌 현실이다.
무너지는 혼돈의 세계 속을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길을 헷갈릴 뻔 했지만, 다행히도 본래의 육체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수확은 확실하네.’
서준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피어 난다.
동시에, 서준의 눈앞에 초록빛 홀로그램 창의 메시지들이 떠오르 기 시작했다.
띵-!
[축하합니다! 혼돈의 파편으로부 터 주인의 자격을 증명했습니다.]
[12개의 혼돈의 파편을 혼돈석으로 합쳐 제작할 수 있습니다.]
[혼돈석을 소유하게 될 경우 사 용자 ‘한서준’은 내우주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가 사용자 ‘한서준’의 권한 레벨을 8로 상승시킵니 다.]
[이제부터 내우주에 관한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이 외로도 메시지가 무수히 많이 떠오른다.
하지만 중요도를 보자면 처음 메 시지보다는 떨어지는 것이었다.
‘내우주?’
난생 처음 보는 단어였음에도 불 구하고,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준은 이미 현 우주가 실험장이라는 불리는 것과 우주협회의 존재를 알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 대뜸 새로운 우주가 발 견되었다고 해서 놀랄 이유가 없다 는 것이다.
그렇기에서준은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진한 미소를 피우 고 있었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지.’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괜 히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서준은 지금 이계의 신격 과 우주 협회와의 싸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곧 힘이 된다는 것이다.
‘미룰 이유가 없지.’
서준은 곧장 아카식 레코드를 불 렀다.
[사용자 ‘한서준’의 이름으로 아 카식 레코드에 접속합니다.]
[권한 레벨 8로 접속합니다.]
이미 질문을 정해둔 만큼, 메시 지가 떠오르기 무섭게 서준은 곧장 입술을 달싹였다.
‘내우주에 대한 정보를 열람하겠 어.’
띠링-!
[사용자 ‘한서준’。] 요청한 ‘내우 주’에 대한 정보 열람을 시작합니 다.]
[거주하고 있는 은하에는 수많은 우주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최초로 탄생한 우주가 바로 가장 중심지에 있는 내우주이며 최초로 탄생한 최 초 생명체들과 신격은 그곳을 ‘진짜 우주’라 칭하며 활동 중입니다.]
[※외우주에 거주하고 있던 존재 가 내우주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이 른바 ‘열쇠’라 불리는 혼돈석 혹은
운명의 뿌리에 닿아 자격 조건을 충족한 상태로 통칭 ‘문’을 넘어서 야 합니다.]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단편 적인 정보뿐이었지만 서준에게는 충분한 정보가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이 강할 수 있겠네.’
가장 최초로 생명체가 탄생한 우 주인 만큼, 그 안의 신격들은 헤아 릴 수 없을 정도의 영겁의 세월을 살았을 것이기에 상당한 내력과 신 성력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는 말이
차라리 그 정도라면 그나마 양호 한 편이었다.
‘만약 문을 열고 들어간 거라 면……
열쇠라 불리는 혼돈석을 가졌다 는 것은, 혼돈을 이해했다는 말이 다.
‘쉽게 생각할 수는 없겠네.’
마신의 힘을 얻은 것으로 스스로 가 강자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아카식 레코드를 통 하여 확인한 정보에 따른다면 내우
주에 존재하는 이계의 신격들은 쉽 사리 볼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준은 절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그렸고, 심장은 거세게 날뛰기 시작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싸울 상대가 많다는 거잖아.’
무인에게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확인해보길 잘했어.’
아카식 레코드가 준 정보를 통하
여 내우주에 존재하는 우주 협회와 신격들의 힘을 조금 더 실감할 수 있게 됐다.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서준의 눈에는 야망 이 차오른다.
이어, 서준은 곧장 혼돈석의 제 작 방법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