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13화
288화
티탄, 크리오스.
그 이름엔 별들의 신이라는 의미 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빛보다 밝게 빛나는 별의 은광(恩光)은 제아무리 퀴네에의 은신 능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본 신을 숨길 수 없게 했다.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이라고 생각했나?”
과거 티타노 마키아에서 퀴네에
의 능력에 호되게 당했었기에, 수 없이 연구해 확실한 대비를 해두었다.
단 한 번의 패배였지만, 그로 인 한 대가는 매우 컸다.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해 패배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올림포스의 신 들을 몰아내고 과거의 영광과 위엄 을 되찾을 것이었다.
“올림포스는 본래 우리 티탄의 것이다-!”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 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온다.
그러나 틈을 보이는 실수조차 용 납되지 않았다.
별의 은광을 이용해 신중하면서 도 확실하게 하데스의 위치를 추적 했다.
“거기 숨어 있었구나.”
“볼 수 있다고 해서 닿을 수 있 는 것은 아니지.”
퀴네에의 능력이 실로 대단하긴 하나, 그것이 하데스가 가진 능력 의 전부는 아니었다.
무구의 힘을 빌려 우위에 섰을 뿐, 하데스 또한 대신에 오른 존재 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패배는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오랜 세월, 나도 놀고 있던 것만 은 아니다.’
봉인이 언제 풀릴지 알 수 없었 기에 타르타로스에 가장 가까운 위 치의 차원을 다스리고 있던 하데스 는 오랜 시간 끝없이 수련하고 단 련해 왔다.
일곱 티탄이 모두 모인 것도 아 닌 이런 일대일 전투에서 패배할 이유가 없었다.
알기로는, 크리오스는 일곱 티탄 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였다.
‘크리오스보다는 히페리온 쪽이 문제다……
히페리온은 가장 거대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티탄이다.
신화 속 일곱 티탄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강자란 말이다.
실제로도 히페리온은 올림포스의 신들도 합공을 펼쳐내서야 봉인해 낼 수 있었다.
그 힘을 홀로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러한 사실을 크리오스 또한 정 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 굴리고 있을 시간 이 있을까? 곧 있으면 히페리온이 네놈의 동료를 물리치고 이곳에 합 류할 텐데 말이야.”
최악의 경우, 2:1의 상황을 맞이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런 상황이 만들어 진다면 패배는 확실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크리오스를 처리하고 지원 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한 하데 스가 몸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퍼억-!
푸른빛에 휘감겨 있던 히페리온 의 육신이 별안간 벽면에 처박혔다.
‘이게 무슨?’
히페리온이 밀려났다는 사실도 놀라운 것이었다.
공방을 주고받거나, 대처하지 못 했다는 그런 허접한 변명이 통하지 않았다.
힘 싸움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한 것이다.
실제로도 히페리온의 입가에서는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하데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히페리온이 밀렸다고?’
과거에 수많은 올림포스의 신들 이 히페리온과 맞서 싸웠었지만, 홀로 그를 밀어붙였던 이는 단 한 명도 존재치 않았다.
올림포스 신 중에서도 가장 위대 하다는 제우스조차도 이루지 못했 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눈앞의 현실을 더 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시선을 돌리자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한서준의 모습이 들어온 다.
주변은 고요했다.
퍼져 나오는 기운은 일절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놀라웠다.
아무런 기운의 발산이 없다는 것 은 마신의 힘을 육신에 모두 담아 냈다는 것이다.
‘마신의 힘을 완벽히 다루고 있 다고?’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비
단, 하데스뿐만이 아니었다.
크리오스도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존재를 불러들인 거 지?”
처음으로 당황하는 크리오스를 보며 하데스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 린다.
“당황만 하고 있어서 되겠냐? 위대한 마신님께서 히페리온을 처 리하고 곧 이곳에 당도할 텐데 말 이야.”
쾅-! 쾅-!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듯이 쏟아 져 오는 맹공에 히페리온의 미간이 찌푸려져 간다.
받아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뼈저리게 느꼈기에 확신하 는 것이다.
단순히 힘 싸움으로 간다면 필패 다.
남은 선택지는 기술로써 놈을 꺾 는 것뿐, 그러나 그마저도 불가능 했다.
어떠한 수를 쓰든 간에 순식간에 간파되어 도리어 역공을 당했다.
‘무슨 이런 괴물이……
거대한 육신을 압축하여 모든 힘 을 한 점에 모아낸, 이 육신으로는 단 한 번이라도 일대일 싸움에 밀 려났던 적이 없었다.
‘이게 무슨……
가늘어진 눈매, 잔뜩 경계한 표 정으로 서준을 살피던 히페리온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분명, 생김새는 틀림없는 인간이 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힘은 도저히 인 간의 것이라 볼 수 없었다.
‘진짜 정체가 무엇이지?’
히페리온은 가장 거대한 티탄이 자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신화 속의 존재였다.
당연하지만, 우주의 수많은 이야 기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자이기 도 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인간이 다루 는 힘은 기나긴 우주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강력한 것이었다.
“어째서 한낱 인간 따위가 마신 의 힘을 다루고 있는 것이냐.”
과거, 전 우주를 공포로 물들였 다가 돌연 자취를 감춘 전설적인 존재.
그가 남겨놓은 근원의 힘이 지금 히페리온의 눈앞에 다시 한번 모습 을 드러냈다.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히페리온은 당황을 숨길 수 없었다.
“수호룡, 아니 마기를 품고 있는 걸 봐서는 우주협회 놈들이냐?!”
“뭘까? 한번 맞춰 봐.”
비릿한 미소를 흘린 서준은 눈동 자를 굴리며 히페리온의 빈틈을 찾 았다.
던진 말은 단순한 미끼일 뿐이 다.
고민을 이어가던 히페리온의 미 간이 좁혀지며, 찰나의 틈이 벌어 진다.
그 순간, 서준은 곧장 히페리온 을 향해 뛰어든다.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은 없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신의 힘을 완벽하게 복종시켰고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그렇기에서준은 망설임 없이 마 신의 힘을 폭발시킨다.
쌔액-!
광속에 다다른 서준의 육신이 또 다시 가속한다.
파앗-!
서준의 움직임 뒤에 빛줄기가 그 어진다.
초광속(超光速)의 영역에 도달한 공격이 펼쳐진 것이다.
“ 네놈……
히페리온은 다급한 표정으로 양 손을 벌려 정면으로 내뻗는다.
파앙-!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히페리온 의 신형이 벽면에 처박힌다.
입가에 흐르는 붉은 선혈을 닦아 내는 히페리온의 눈에는 후회가 가 득했다.
‘첫 일격에 확실히 죽였어야 했 다.’
당장 처음에 조우할 때만 해도 눈앞의 인간은 이렇게 자유자재로 마신의 힘을 다뤄내지 못했다.
중구난방으로 뻗어져 나오며, 제 어를 벗어난 힘들이 엉성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니, 대놓고 말하자면 이건 실 수라 볼 수도 없었다.
‘고작 몇 분 지난 것 가지고 마 신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것도 모자라 초광속의 영역에 도달 하는 게 가능하다니.’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없다면 제대 로 다루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티탄 중에서도 강하기로는 손에 꼽히는 자신도, 마신의 근원과 같 은 아주 강하고 반발력이 센 힘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수백 년에 달하는 시간이 필요
그저 눈앞의 인간이 규격 외의 적응력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괴물 같은 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부정 하는 시간조차도 사치였다.
한 줄기 빛이 그어지기도 전에, 서준의 신형이 눈앞에서 모습을 드 러낸다.
히페리온은 황급히 자세를 다잡 으며 서준의 공격에 대비한다.
푸욱-
뻗어진 서준의 주먹이 히페리온
의 신형을 꿰뚫으려는 순간이었다.
분명, 눈앞에 있던 히페리온의 육신이 흐릿해져 간다.
“네놈만 초광속의 영역에 닿아있 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서준의 둥 뒤에서 나타난 히페리온이 푸른빛이 응어리진 주 먹을 뻗었다.
그러나 서준에겐 자그마한 당황 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영역에 있다는 것은 그 속 도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서준은 애초에 히페리온의 움직임을 놓친 적이 없다는 말이었
서준은 몸을 회전시켜 말아 쥐고 있던 손을 활짝- 펼쳤다.
그 손바닥에서 검은 기운이 터져 나온다.
쾅-!
일어난 폭발에 뒤로 밀려난 히페 리온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른다.
“대단하군, 설마 내가 나오자마 자 이런 고전을 맞이할 거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다.”
아마 눈앞의 존재, 한서준에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결국 반쪽 짜리 힘을 쓰는 반푼이에 불과했다.
“마신의 힘만으로는 결국 우주의 패자가 될 수 없다.”
“인정해, 마신의 힘만으로는 힘 들겠지.”
서준의 시선이 히페리온을 향한 다.
히페리온의 몸에 둘려 있던 찬란 했던 푸른빛 주변에 돌연 어두운 기운이 피어나더니, 종국에는 회색 빛으로 물들었다.
‘혼돈의 힘.’
티탄, 히페리온이 다루는 푸른빛 기운은 강력하긴 하나, 포악하다고 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떠한 힘도 삼켜낼 수 있는 혼돈의 힘은 달랐다.
그럴싸하게 흉내만 내는 게 아 닌, 그것을 상당히 완성도 있게 조 율하는 것으로 혼돈의 힘을 응집하 고 있었다.
‘제법이네.’
홀륭하긴 하나, 명백한 실수였다.
혼돈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것은 비단 히페리온뿐만이 아니었다.
서준은 이미 앞서 수없이 혼돈의 힘을 다뤘다.
그저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가능하다면, 마신의 힘에 대한 적응을 완벽히 끝낸 후에 사용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더는 그런 여유를 부 릴 수는 없었다.
서준은 곧장, 위대한 존재의 조 각을 발동시켜 기존의 마기에 신성 력을 더했다.
한계를 넘어선 육신과 마신의 힘 을 담아낸 그릇이 스스로 정해두었 던 제한을 부숴내고 더욱더 강력한
혼돈을 이끌어낸다.
부풀어 올랐던 검은 기운이 회색 빛으로 변해가더니 자그마치 14갑 자에 달하는 내력이 혼돈의 힘으로 완벽히 변환되었다.
허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보유하고 있는 6개의 혼돈의 파 편의 힘을 이끌어낸다.
‘20갑자.’
도합 1,200년.
서준으로서도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막대한 양의 내력이 전신을 내달린다.
심지어 일반적인 힘도 아니다.
가장 포악하다는 혼돈의 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너무나도 포악한 힘이기에 마신 의 근원을 취한 이 몸으로도 더 이 상 품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용솟음치는 그 힘을 서준은 망설 임 없이 밖으로 방출한다.
이윽고, 뿜어진 기운을 응집하고, 응축시켜 한 자루의 검을 빚어낸다.
“어, 어떻게!?”
서준의 손에 쥐어진 개벽의 검에 히페리온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네놈 대체 혼돈의 파편을 몇 개 나 가지고 있는 것이냐?!”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히페 리온의 모습에서준의 입가에 비릿 한 미소가 흐른다.
“숫자가 중요한가?”
지금 중요한 것은, 서준이 신화 속 티탄인 히페리온을 영멸시킬 힘 을 다룬다는 것이었다.
“과연, 한낱 인간 따위가 아니었 군.”
본능이 소리친다.
만약 가진 혼돈의 파편이 눈앞의
존재에게 넘어가게 된다면, 머지않 아서 티탄을 영멸에 들게 하고 우 주의 패권을 마침내 손에 쥘 것이 다.
‘절대로 파편을 그냥 빼앗겨서는 안 된다.’
승리를 바라는 것은 오만이다.
굳이 맞붙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막대한 양의 혼돈의 힘을 받 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허무하게 죽을 생각은 없었다.
‘일격을 주고받고 공멸(共滅)하여
파편을 홉수해내지 못하게 한다.’
히페리온의 주변으로 회색빛 기 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서준은 그에 반발하듯 개벽의 검 으로 히페리온의 육신을 겨눈다.
두두두두-!
허공에서 맞부딪친 두 개의 혼돈 의 힘에 공간이 비명을 내지르더니 무자비하게 찢겨져 나간다.
“반드시 죽여주마.”
히페리온이 내뻗은 주먹을 서준 을 향해 겨눈다.
그런 히페리온을 마주한 채로 천
천히 걸음을 내딛던 서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른다.
“뜻대로 안 될걸.”
마침내, 말을 끝맺는 순간.
서준과 히페리온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몸을 앞으로 쏘았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