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12화
287화
‘……대신급의 존재?’
아니, 평범한 대신이 아니었다.
‘그릇을 깼군……
가해진 제약을 부수고 한계를 돌 파한 티탄들이 차원, 레테로 넘어 오려 하고 있었다.
서준의 가늘어진 눈매가 청동문, 타르타로스의 입구로 향하는 순간 이었다.
콰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청동문이 완 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활짝 열린 입구 너머로 일곱의 티탄들이 넘어왔다.
생김새는, 전의 티탄과 크게 다 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차원이 다른 거대한 덩치였다.
그야말로 티탄(Titan), 하늘 바깥 으로 뻗을 정도의 거대한 육신은 그만큼의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뭣들 하는 거지?”
“티탄의 피를 이었음에도 이런
하찮은 것들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가?”
대기 중에 울려 퍼지는 티탄들의 중후한 목소리에서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여태껏 보았던 티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이게 바로 신화 속의 존재들.’
천사와 악마들이 그랬듯, 티탄 또한 얽혀있는 신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신화가 대단할수록, 널리 퍼질수록 가진 힘은 강해진다.
눈앞에서 있는 일곱 티탄의 기 세와 위엄을 보아서는 신화 속에
이름을 남긴 티탄이 틀림없었다.
‘쉽지 않겠는데.’
티탄은 용족과 마찬가지로 종의 힘만으로도 웬만한 신격에 필적하 는 힘을 가진 존재다.
그중에서도 신화를 쌓은 존재라 면, 강함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 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 수가 하나도 아닌 자 그마치 일곱이었다.
단순히 싸우는 상황이라면 모를 까, 레테를 지키며 싸워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버거운 상황임은 틀림 없었다.
심지어 아직 마신의 힘에 대한 적응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변수가 너무 많아……
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려 던 찰나였다.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이런 조무래기들 따위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라, 나는 제우스, 제 우스 그놈만 찢어 죽이면 된다!”
“닥쳐라, 제우스의 목은 내 것이 다!”
“이아페토스, 오케아노스 너희 둘이 다투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곳
에 있는 하데스는 이 몸, 크리오스 님의 것이다.”
“그딴 게 어디 있지? 먼저 취하 는 놈이 임자인 법이다.”
“코이오스, 네놈의 말이 가장 좋 은 방법 같다, 먼저 취하는 놈.이 갖는 걸로 하자.”
“그러면 각자 할 일을 끝내고, 나중에 올림포스에서 모이는 게 어 떤가?”
“너희들 마음대로 해, 내 목적은 올림포스의 모든 신을 멸하는 것이 니까.”
일곱 티탄 중 경쟁이 붙은 다섯
티탄은 황급히 공간을 찢어발겨 다 른 차원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고 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신화 속의 일곱 티탄을 모두 상 대해야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여기서 티탄을 놓아준다 고 나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좋지.’
이이제이(以M制M), 적으로 적 을 잡는다.
티탄들의 표적은 올림포스였다.
그리고 하데스와 나눈 대화로 미 루어 어차피 올림포스는 적이 될
곳이다.
더군다나 당장에 상대해야 할 티 탄의 수도 줄어드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일석이조의 상황이었다.
“오른쪽, 크리오스를 빠르게 처 리한 후에 지원 가도록 하겠습니 다.”
모습을 숨기고 있는 하데스의 목 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지원은 필요 없고, 맡은 티탄만 잘 처리해줘.”
읊조리듯이 작게 말한 것이었지만, 하데스가 그리 멀리 있지는 않
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도 크리오스라고 불렸던 티탄이 비명과 함께 요란한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어, 서준도 곧장 땅을 박차 가 장 거대한 덩치를 가진 티탄에게로 향한다.
타닥-
거대한 기운을 느껴서일까? 자연 스레 티탄의 시선도 서준을 향한다.
서준을 목격한 눈동자에 호기심 이 가득 피어난다.
“인간? 아니 악마인가?”
“그게 중요한가?”
말을 내뱉던 서준이 입꼬리를 한 쪽만 비틀어 올린다.
“어차피 여기서 죽을 건데 말이 야.”
차가운 표정을 가진 티탄의 입가 에서 호쾌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온 다.
“크하하! 재미있군, 재미있어. 감 히 가장 거대한 티탄이라 불리는 이 히페리온 님에게 이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니 말이야.”
이죽거리는 말에는 느긋한 여유 가 담겨 있었다.
어떠한 종족이라 한들, 티탄의 힘 앞에서는 보잘것없기 때문이었다.
히페리온이 거대한 손을 들어올 린다.
쿠우웅-!
히페리온의 손바닥이 서준을 내 려치는 소리였다.
서준의 자그마한 육신이 순식간 에 땅에 처박힌다.
‘강해.’
분명,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었음 에도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피하는 것 이 쉽지 않았다.
범위가 너무 큰 탓이었다.
동시에 히페리온은 하늘을 뚫고 있을 정도의 거대한 덩치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입었던 상처는 가이사 의 특수 효과로 빠른 속도로 재생 됐다.
서준은 치켜뜬 눈동자로 오만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히페리온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우주 협회의 감사관은 이것보다 강했어.’
직접 붙어보지 않았지만, 존재감 만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손짓이 아닌, 존재만으로도 차원을 뒤흔들 정도의 강력한 이계 의 신격들 앞에서도 두 다리로 당 당히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서준은 스스로가 그 감사관과 필적할 힘을 가졌다고 자 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고작 이런 티탄에게 패배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양팔의 손목을 돌려 몸을 풀더니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어느덧,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고마워, 덕분에 정신이 좀 들었 어.”
날이 서 있는 전장에서 있는 덕 분일까?
계속해서 폭발하듯이 솟구치던 힘에 다소 당황스러워하던 육신이 빠른 속도로 익숙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허세를 부리는군.”
코웃음을 친 히페리온이 다시 손 을 움직인다.
전과 같은 공격,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빠른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던 히 페리온의 손동작이 서서히 눈에 들 어오고 있었다.
“느려.”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 같았던 히페리온의 거대한 손바닥이 애꿎 은 허공만을 두들겼다.
“ 호오.”
히페리온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홀러나온다.
단순히 공격을 피해냈다는 것에서 놀란 것이 아니다.
오른편, 얼굴에서 거대한 힘을 휘감고 달려오는 서준의 모습이 보 였기 때문이었다.
히페리온이 곧장 손을 들어 올리 며 막아섰지만, 서준은 그마저도 가볍게 제쳐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속도는 제법이구나.”
히페리온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그는 자신의 공격들을 피하면서 계속 앞으로 전진해오는 서준을 보
며 환히 미소 지었다.
히페리온의 얼굴에 다다른 서준 은 속도를 더 가속해 돌진했다.
서준의 손에 응집되어 있는 힘 은,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순수한 마기만을 담아서 내지르 는 주먹, 마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일격이 히페리온에게로 쏘아 졌다.
‘어차피 하찮은 존재의 재롱에 불과한 공격이다.’
직접 타격을 받는다고 해도 별문
제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자 오만함 이었다.
히페리온이 코웃음을 치며 손을 활짝 펼쳐 얼굴을 그저 덮는 것으로 공격을 막을 때였다.
콰앙-!
서준의 주먹이 폭발하고는 동시 에 히페리온의 거대한 육신이 휘청 거리더니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엉덩 방아를 찧는다.
“..r
히페리온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 린다.
재롱과 같다고 생각한 공격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진 결과는 어떠 한가?
막았던 손은 꿰뚫려 거대한 구멍 이 생겼고, 위용 있던 자태는 민망 하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벌어진 현실이 히페리온의 얼굴 을 딱딱하게 굳게 만들었다.
지잉-
푸른빛, 티탄을 상징하는 순수한 기운이 뿜어졌다.
공간 전체를 뒤덮는 그 압도적인 힘이 서준을 압박한다.
허나, 서준은 무릎 꿇지 않는다.
당당한 자세로 히페리온을 마주 한다.
“내가 착각을 했군, 네놈은 하찮 은 것이 아니었구나.”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온 것이지 만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인간은 이 우주 내에서도 손꼽힐 만한 강자라고.
힘을 과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 다.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격에 맞는 방법을 사용해
야 한다.
“영광으로 알거라, 인간 종이 이 육신을 보는 것은 네가 처음이니까 말이다.”
히페리온의 몸이 신기루처럼 눈 앞에서 사라진다.
물론,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그저 워낙 거대한 몸뚱이였기에 작아지는 것만으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 거다.
작아지긴 했지만, 아직 커다랗다 고 볼 수 있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육
신이 3M 정도로 줄었을 뿐이다.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다.”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일대를 뒤덮었던 푸른빛 기운이 저 작아진 몸에 응축되어 있었다.
힘을 최대한 응축하고 압축하는 것으로 집중시킨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 은 것은 이런 식의 전투는 힘으로 압도를 하는 티탄 족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앞의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가 없었다.
‘좋네.’
서준은 작아진 몸으로 쇄도해오 는 히페리온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린다.
“훨씬 편해졌잖아.”
무인으로 살아왔기에 행성만 한 괴물과 싸우는 것보다는 이런 인간 의 형태를 한 적과 싸우는 것이 훨 씬 편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오스와 싸움을 이어가고 있 는 하데스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역시 쉽지 않군……
대신에 오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하데스였지만, 눈앞의 크리오스 또한 티탄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다.
웬만한 대신들은 가볍게 쓰러뜨 릴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라는 말이었다.
제아무리 하데스라 할지라도 크리오스를 상대하는 것이 마냥 순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나약하군, 나약해, 그 오랜 시간 동안 신으로 군림해 놓고 아무런 수련조차 하지 않았구나.”
크리오스는 여유롭다 못해 만용 이 묻어나는 미소를 흘린다.
당연한 것이다.
크고작은 자상들을 입은 하데스 와 달리 크리오스의 몸에는 자그마 한 상처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다.
이런 싸움이 계속된다면 누가 승 자가 될지는 어떤 이라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데스의 기세는 조금도 줄지 않고 있었다.
“과거 힘만 믿고 날뛰던 너희 티 탄들이 패배한 이유를 잊었나?”
단순히 힘과 힘의 격돌이었다면 과거 티타노 마키아에서도 티탄이 승리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승자는 올림포스의 신들 이었다.
그 이유는 각 신을 상징하는 무 구의 힘에 있었다.
“퀴네에.”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하데스의
육신이 삽시간에 자취를 감춘다.
어디에도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 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사라 졌다.
하지만 크리오스의 입가에는 조 금의 당황도 보이지 않는다.
“어리석은 것, 우리 티탄들이 타 르타로스에 봉인되어 있던 동안 단 순히 힘만을 길렀다고 생각하는 것 이냐.”
말을 내뱉는 크리오스는 손바닥 주변에 푸른빛 기운을 둘러내며 하 늘올 향해 손을 내뻗기 시작했다.
이윽고, 다시금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크리오스의 손바닥, 그 안 에 쥐어진 별의 자태에 하데스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