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3화
278화
그 수만 자그마치 수백만.
천사 군단이 발산하는 위압감에 요피엘은 감히 자신할 수 있었다.
‘엘리시움의 최정예 군단이 한자 리에 모였다. 이 전력만 있다 면……
하지만 어째서일까?
아직도 한서준이라는 이름을 떠 올릴 때면 목 뒤로 서늘한 감각이 차오르고 있었다.
요피엘은 이 감각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었다.
‘죽음……
치유의 대신으로서 누구보다도 죽음에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탓에 확언할 수 있었다.
이건 틀림없는 거대한 죽음의 느 낌이 분명했다.
요피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진다.
‘군단을 총동원해도 뛰어넘을 수 없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전장에 나선 것은 최정예 군 단뿐만이 아니다.
대군세가 넘어가기 위해 대군주 셋이 직접 나섰다.
이례적일 정도의 전력이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이 정도의 전력으로도 패배한다 면 엘리시움에 미래는 없다.’
생각해보면, 이 느낌을 천사의 죽음이라고 확정 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어쩌면, 지구, 리벨리온의 인간에 게 죽음을 선사할 것이기에 풍기는 피 냄새일 수도 있었다.
턱-!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천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전장에 나설 준비 를 한다.
최상위 종족으로 손꼽힐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악마라 는 호적수 때문에 우주를 지배하지 못했던 그들이, 이제는 당당히 날 개를 펼치며 우주의 패권을 쥐려 하고 있었다.
“대군주시여, 차원의 문이 열리 려 하고 있습니다.”
숱한 전장을 헤쳐 온 치천사장, 기드엘이 고개를 조아리며 하는 말
에 요피엘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문이 열린다 했느냐?”
아직 약속된 날짜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먼저 연락한 것도 아니 었다.
넘어가야 하는 인원이 많았기에, 그만큼 많은 수의 문이 필요했다.
때문에, 우리엘이 사전에 먼저 문을 열 준비를 하기 위하여 지구 로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무언가 변 수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군주 중 한 명인 우리 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변수 가 말이다.
자연스레 요피엘의 눈이 가늘어 진다.
‘한서준이 개입했나 보군.’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이미 사전에 문을 열 준비는 모두 끝마친 상황이다.
군단이 모두 지구로 넘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요피엘은 말없이 내려놓고 있던 거대한 메이스를 들어 올려 앞으로 나선다.
그 뒤를 따라 기드엘과 같이 치 천사장에 오른 여섯의 천사가 걸음 을 옮긴다.
모두 최전선을 누비며 악마족 혹 은 마왕들과 싸웠던 천사들이다.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
이들 중 몇몇은 이미 어지간한 마왕을 짓밟을 정도의 무력을 갖추 고 있었다.
지배의 대군주, 가브리엘의 절대 적인 지배력이 미치기에 가능한 일.
그릇 이상의 힘을 얻어내게 된 이들의 자신감은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에 요피엘이 가진 치유의 힘 이 더해져 심판의 불꽃을 다루는 우리엘과 함께 합공을 펼쳐낸다면 제아무리 한서준이라 할지라도 막 아낼 수 없을 것이다.
‘섣불리 개입한 것에 대해서 후 회하게 만들어 주지.’
어느덧 요피엘의 입가에는 비릿 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우매한 것들에게 천상의 위엄을 보여주도록.”
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요피엘이 내뱉은 말은 기세가 된다.
뒤를 따라오던 치천사장들이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소리친다.
“위대한 대군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천상의 영광이여 영원하라!”
“위대한 천신님을 위하여!”
기세등등한 치천사장들의 외침에 따라 백만이 넘는 군단이 고함을 내지른다.
포효에 가까운 외침.
그 음성에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두 눈에는 끝없는 전의가 치솟았고, 가슴 한복판에서는 북을 치듯
박동한다.
충 , 충'> '쿵.
그 즐거운 소리를 만끽하며 요피 엘이 앞으로 걸어 나가자, 눈앞의 차원의 문들이 천천히 열리고 휘광 을 뿜는다.
마침내 요피엘이 수많은 문 중에서 중심에 있는 것에 당도하는 순 간, 지구의 풍경을 조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열린 문틈 너머로 익숙한 사내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서준!’
예상했던 대로 개입한 변수는 한
서준이었다.
허나,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지금 시야에 보이는 것은 한서준 하나뿐이다.
지금 여기 있는 주요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가브리엘의 지배를 받 고 있는 치천사장들과 우리엘의 힘 이 더해진다면 필시 승리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매한 인간들에게 천상의 위엄 을 보여주어라!”
요피엘의 외침을 따라 환호성을 내지른 천사들이 날개를 활짝 펼치 며 당당히 날아오른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차원의 문 이 환히 열리고 지구의 풍경이 적 나라하게 드러난다.
군단이 기다렸다는 듯이 포효를 내지르며 문을 넘어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전 력인 대군주와 치천사장들은 넘어 서자마자 쉽게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다.
“우, 우리엘?”
요피엘의 두 눈이 거세게 흔들린 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함께 최전선에서서, 합공을 펼쳐야
할 존재가 비참한 몰골이 되어 널 브러져 있던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늦었네.”
그리고 그 앞에서 있는 한서준.
아니, 사신(死神)이 비릿한 미소 를 홀리고 있었다.
서준이 리벨리온 연합을 창설한
이후, 자연스럽게 지구는 다양한 차원의 중심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리벨리온의 연합본부 가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 경기도 지역은 그야말로 차원 중심 도시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많 은 이종족이 오가며 새로운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중 으뜸을 뽑자면 역시 중원 대륙의 무공에 대한 열풍이었다.
엘프의 정령술은 인간이 부리기 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상위 차원인 남도의 특이한 기술 역시, 상위 종족의 육체 능력에 기
반한 것인 만큼 달리 배울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무공은 달랐다.
애초부터 인간을 위해 개발되었 고, 연구해온 것이다.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닌 서준이 바로 ‘무공’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구의 무공 열풍은 훨 씬 더 심해졌다.
많은 각성자들은 중원 대륙에서 넘어온 무인에게 돈을 주고 무공을 구매하거나, 유능한 문파 혹은 스
승의 제자가 되기를 스스로 원하며 무공을 익혀 나갔다.
중원 대륙의 무인들은 그렇게 지 구인들에게 번 돈으로 지구의 과학 문물을 즐겼다.
작게는 스포츠, 크게는 게임, 두 인간 문화가 화합되며 개방이 이루 어질 때쯤, 세계에 또 하나의 변화 가 일었다.
불카누스 차원 대장간의 개방.
오랜 세월 대장간 일에만 몰두하 고 있던 드워프의 눈이 트인 것이 었다.
그러고는 큰 변혁을 맞이했다.
오직 대장간 일만이 삶이었던 드 워프에게도 새로운 삶의 낙이 생겼 다.
지구의 음식과 술, 그리고 수많 은 즐길 거리들은 드워프들의 취향 에 적합했으며 그들의 굳게 닫혀있 던 마음을 열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더불어 드워프들의 왕인 휘노소프가 선봉에서 문호(門戶) 개방에 힘을 썼다.
결국, 무공과 아티팩트라는 장비 의 힘이 더해져 지구의 전력이 날 이 갈수록 급상승했다.
자연스레 각성자들의 게이트 클
리어 이후 생존 확률 역시 기하급 수적으로 올라갔으며, 천사와 악마 를 비롯한 상위 종족들의 침공마저 두렵지 않다는 자신만만한 목소리 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서준이 창설한 리벨리 온 연합은 대업적을 기록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 의 땅이라 불렸던 북한의 영토를 완전히 수복해냈다.
심지어, 사망자 0명, 중상자 0명, 경상자 13명에 불과한 무혈 정복이 었다.
전투 인원을 비롯하여 보조 인원
까지 총 수백여 명의 공략이었지만 성과 자체가 위대하다는 표현마저 부족할 정도였다.
당장 몇 년 전만 해도 과거 북한 의 영토는, 지구 최대의 전력인 크 라운즈 나이트가 뛰어들어도 사망 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일컬어지던 위험한 장소였으니 말이다.
마침내 매스컴은 물론, 세계적으로 서준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가 없게 됐다.
독립한 지구는 생각 이상으로 강 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 어떤 종
족과 싸울지 몰라 강해져야만 했기 에 계속 나아간 것이다.
때문에, 하늘에 갑작스럽게 백색 의 차원 문이 열리고 많은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두려워하는 이 도 없었다.
고고하게 선 치천사와 시선을 마 주한 한 검은 눈의 여인이 먼저 입 올 열었다.
“꺼져, 여긴 너희 같은 위선자들 이 넘볼 땅 아니야.”
최고이자 최강의 일족이라 일컬 어지는 한씨 가문의 장녀이자, 현 재 서준을 제외한 지구인 중 최강
을 거론하면 늘 거론되는 서연의 선고였다.
본래였다면 무례하다고 경고하며 날뛰었을 천사들이 그 음성에 침묵 을 지킨다.
“공주마마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죽고 싶지 않다면 물러나 라.”
이어진 두 번째 음성.
중원 대륙 최강자로 늘 입에 오 르내리는 무명신의가 서연의 옆에서며 낮은 살기를 토한다.
치천사 몇몇의 눈살이 크게 찌푸 려졌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들 이 자신들을 위협할 정도라는 것이 느껴지는 탓이다.
“건방진 놈들이, 이곳이 어디라 고.”
그리고 투신, 나라연천.
상격의 투신, 그중에서도 가히 대신에 가까이 도달해있는 나라연 천의 등장에 대부분의 치천사들이 침묵을 지켰다.
가슴이 서늘하다.
언제까지나 호적수는 악마들뿐이 리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지구를 비롯한 리벨리온 연합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대군주님들과 치천사장님들께서 합세해주신다면 다르겠지만……
현재 대군주와 치천사장들은 모 두 한서준을 사냥하기 위해 나섰다.
어떠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현재 모여 있는 전력들은 엘리시움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 었다.
지금 군단의 핵심전력이 모두 투 입된 만큼 아마 머잖아 한서준이라 는 인간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놈들의 기세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증오와 분노를 불태운다.
“우매한 너희 연합에게 우리 천 상의 위엄을 보여주도록 하마.”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살기가 리 벨리온 연합의 전신을 따갑게 찌른 다.
“기어이 피를 보고 싶나 보네.”
말을 내뱉은 서연이 치천사의 모 즙을 응시한다.
그 시선 안에는 치천사, 에미엘
로서도 견디기 힘든 기운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웃는다.
에미엘은 그저 웃었다.
“지배의 군단은 들어라! 인간들 의 시체로써 곧 당도하실 천상의 대군주님들을 맞이할 최소한의 준 비를 해두도록 한다.”
“너희들만의 힘으로는 무리일걸.”
서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 공으로 날아오른 나라연천의 일격 이 내뻗어졌다.
놀란 에미엘이 재빨리 빛의 방패 를 들어 올렸지만, 이미 그의 어깻
죽지에서는 핏물이 솟아오르고 있 는 채였다.
“비둘기들이 주제를 모르는군.”
“크아아아-!”
비명을 내지른 에미엘이 뒤를 돌 아보았다.
“지배의 군단이여 돌격하라!”
물론, 눈앞의 몇몇 강자들은 지 금 천사들의 힘으로 감당하기 버거 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일대의 모든 생명체가 천 사들이 위협을 느낄 정도의 강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약하다 못해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나약한 기운을 가진 인간들이 더욱 많았다.
군단의 천사들도 이를 감지했는 지, 기운이 나약한 인간들이 뭉쳐 있는 곳을 향하여 쏘아졌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