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2화
277화
화륵-!
불꽃을 머금은 우리엘의 검이 서준을 향해 내리꽂힌다.
우리엘이 다루는 힘은 불, 상성 상 물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은 바다, 물이 많은 곳이었다.
뒤로 한 걸음, 딱 그 정도의 움 직임으로 물러난 서준이 손바닥을 아래로 내려친다.
촤아악-
바닷물이 승천하듯이 역류해 우 리엘이 피운 불꽃을 뒤덮었다.
그러나 겨우 바닷물 따위로 대신 인 우리엘의 불꽃을 막을 순 없었다.
하지만, 솟구친 바닷물에는 치천마역천지공의 내력이 실려 있었다.
비록 불꽃을 완전히 사그라들게 할 순 없었을지라도, 위력을 줄이 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건방진!”
열기를 식히는 물길에 기분이 상
했는지 이를 악문 우리엘이 다시금 검을 내뻗었다.
그리고 다시 분신체는 그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마찬가지로 고작 한 걸음.
비록, 그 능력은 우리엘보다 부 족했으나 서준 본신의 천무지체와 수많은 무공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이런 조잡한 공격에 당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팔경성보, 지수(止水).
웃음을 보인 분신체의 신형이 칠 흑과 같은 어둠에 뒤덮인다.
빠르게 내뻗던 검을 회수하여 공 격을 막은 우리엘의 신형이 뒤로 밀려난다.
“이따위 잔재주……!”
분한 듯 말을 내뱉던 우리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힘을 다루는 것을 실수한 것이 아니다.
갑자기 완전히 바람이 멎더니 불 꽃이 일어날 수가 없는 환경이 되 어 버린 것이다.
아니, 불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대의 모든 공기가 통제 아래 놓인 것이다.
자랑스럽게 여기던 불꽃이 완전 히 사라지자 우리엘은 호통쳤다.
“감히!”
우리엘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경고했음에도 혼돈의 힘을 사용 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분신체이기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를 알 방도 가 없는 우리엘은 크게 분노했다.
“더 이상은 기다리지 못하겠구 나, 허무한 죽음을 맞이해라.”
분노한 우리엘이 검을 잡은 양손 을 모았다.
마치 기도하듯 자세를 취한 그의 온몸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서준을 향해 쏘아진다.
“이 몸은 위대한 천신의 대행자, 대리자, 심판을 내리는 대군주.”
콰과광-!
피어나는 불꽃에 바닷물이 증발 하기 시작한다.
우리엘을 바라보고 있던 분신체 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천사들의 군주요, 날개 달린 이
들을 통솔하는 자이니.”
이어서 우리엘의 신형이 사라졌 다.
이번에야말로, 그 기척을 완전히 놓쳤다.
분신체가 빠르게 의념강기를 피 워 올려 바닷물을 끌어 올려 장막 을 만들었다.
펑-!
대포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막이 깨지고 분신체의 신형이 휘 청인다.
어느덧 분신체의 등 뒤에서 창을 크게 휘두른 우리엘이 조소를 머금
“그릇된 세상에 불꽃으로써 심판 을 내리니.”
부름과 같은 우리엘의 주문에 대 기가 타오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 진다.
일어난 불꽃이 일대를 휘감는다.
휘오오-!
통제 아래 있던 일대의 공기가 우리엘이 일으킨 불꽃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한 탓이다.
팡!
바람이 몰아치며 우리엘이 일으
킨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 다.
불꽃을 휘감은 우리엘의 검이 분 신체를 향해 직선으로 뻗어져 나왔 다.
아니, 단순한 불꽃이 아니다.
신염(神炎), 오직 신만이 빚고 피 워낼 수 있는 불꽃이다.
그 신염으로 일으킨 화염의 폭풍 이 분신체를 노리고 날아든다.
빠져나갈 틈은 없다.
“..r
분신체가 놀란 눈을 했다.
수막을 만들어 불꽃에 대항하려 했지만, 우리엘의 돌진을 막아내기 에는 역부족이다.
어느덧, 사방에는 우리엘이 일으 킨 불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죽어라, 이것이 대군주이자 심 판의 천사가 가진 힘이다.”
지척 거리, 검을 내뻗고 있는 우 리엘이 차갑게 선언한다.
콰앙-!
폭발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태평양의 깊은 바다가 움푹 파이 고 크레이터와 같은 형태를 일순
만들었다.
폭풍을 일으킨 불꽃들은 모두 신 의 힘이었다.
아무리 호신강기로 온몸을 갑주 처럼 둘러싸도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다.
실제로도 근방에서 생명체의 기 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승리를 확신한 우리엘의 날개에서 불이 꺼졌다.
빚어냈던 검은 자취를 감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약하 군. 어리석은지고.”
우리엘이 코웃음을 치는 순간이 었다.
“확실히 생각보다 강하긴 하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우리 엘은 심장이 섬뜩해지는 감각을 느 꼈다.
재빨리 기운을 다시 일으키며 자 세를 다잡으려 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쌔액-!
회색빛 빛줄기가 우리엘의 오른 팔을 강타해 절단시켰다.
‘감지조차 못했다고?’
경악 섞인 의문과 함께, 고통이 밀려왔다.
“크윽-!”
우리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 과 함께 사방으로 불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퍼버버멍-!
일대를 삭제할 듯한 기세의 공격 이었지만, 회색빛 빛줄기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모든 불꽃을 피했다.
마침내 우리엘의 앞에 안착한 서준이 우리엘을 향해 조소를 보인다.
“아니다, 생각한 것보다 더 약한
가‘?”
굴욕감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우리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분, 분명 죽였거늘, 대체 어떻 게?”
불꽃에 타오르는 서준의 생명의 반응이 꺼진 것까지 확인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있는 자 는 틀림없는 한서준이었다.
“뭐, 죽이긴 했지, 근데 그건 내 가 아니라 분신체였거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는 서준과 달리 우리엘의 두 눈동자는 지진이
라도 난 듯 흔들렸다.
본신의 힘의 절반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분신체 따위가, 권능을 개 방한 우리엘과의 싸움에서도 밀리 지 않는 힘을 보여주고 있던 것이 었다.
“지금의 내 자신이 얼마나 강해 졌는지, 궁금했거든.”
웃음을 흘린 서준은 확신했다.
“대군주, 우리엘.”
심판의 천사이자 엘리시움에 열 둘밖에 존재하지 않는 대신(大神).
모두가 우러러봐 왔던 존재이지 만, 지금 서준에게는 아무런 감정
조차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내가 너보다 압도적으로 강해.”
“헛소리-!”
여유를 보이는 서준을 보며, 눈 을 부라린 우리엘이 괴성을 내질렀 다.
그의 찢어진 팔이 다시 빛무리로 뭉쳐지고는 형태를 이룬다.
“세 치 혀로 나불거리는 헛소리 를 믿어줄 것 같으냐!”
거친 외침에 우리엘의 신형이 쏘 아진다.
한서준이 강한 것은 인정한다.
아주 많이, 여태껏 만나왔던 그 어떠한 존재보다 강하다.
하지만 우리엘, 본인 또한 모든 힘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권능, 즉결심판(卽決審判).’
우리엘이 불꽃이 휘감긴 장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불꽃이 마치 유성처럼 허 공으로 쏘아져 서준의 코앞을 아슬 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하늘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지구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굉음을 토해내는 파괴의 여파로 인 하여 바다가 출렁이기 시작한다.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권능으로 빚어진 신염.’
속도 또한 광속에 달해 있었다.
심지어 방출을 위한 어떤 준비 나, 동작, 모든 단계가 생략되어 있었다.
틀림없는 대신의 힘이다.
서준의 눈에 탐욕이 일렁거린다.
“너 같은 놈이 둘이나 더 온다는 거지?”
사실 우리엘을 보며 많이 실망했
저런 신격을 집어삼킨다 해서, 그리 큰 성장을 거둘 수 없다고 생 각한 탓이었다.
‘너무 나약하면, 신격을 강탈해도 취할 이득이 없어.’
쓰러뜨릴 가치도 없다.
아니, 리벨리온 연합이 공들여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우습다고 여 겼다.
하나, 권능을 개방해갈수록 강력 해지는 우리엘의 힘을 본 순간 마 음이 바뀌었다.
집어삼킬 만한, 쓰러뜨릴 가치를
가진 존재였다.
서준의 광대뼈가 씰룩인다.
‘이 정도는 되어야 쓰러뜨리는 맛이 나지.’
자칫하면, 무의미한 싸움을 할 뻔했다.
“언제까지 그리 여유롭게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하군.”
“내 예상에는 계속 이럴 것 같은 데.”
공격을 잠시 멈춘, 우리엘이 서준을 바라보며 노골적인 살기를 흘 린다.
“역시나 오만한 성격이군.”
그리고 이런 성격이 곧 패인이 될 것이다.
사방에 흩뿌려진 신염을 확인한 우리엘의 입가에 조소가 피어난다.
눈을 가늘게 뜬 서준이 기운의 흐름을 읽으며 우리엘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대권능(大權能), 유죄판결(有罪 判決), 사형(死刑).”
바로 눈앞, 우리엘의 전신으로 흩뿌려진 신염이 모여든다.
“이게 바로, 대신에 오른 존재만
의 특권이자 진정한 힘이다.”
흩어져 있던 신염이 우리엘의 몸 으로 달라붙더니, 이내 머리까지 뒤덮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만들었다.
짙은 적갈색의 플레이트. 심판관 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주어진 거대한 대검에는 엄청난 신 성력이 담겨있었다.
마치 불길을 뒤덮은 것 같은 모 습, 무장을 마친 우리엘이 검을 치 켜세우며 서준에게로 달려든다.
“심판을 내려주마.”
서준이 양손을 앞으로 뻗어 사각
방패 형태의 혼돈의 힘을 피워 올 렸다.
사각 방패의 형태로 겹쳐진 혼돈 의 힘과 우리엘의 대검에서 흘러나 온 신성력이 격돌하며 거대한 파장 을 일으켰다.
콰지지직-!
매우 엄청난 두 힘이 부딪힌 탓 에 대기가 비명을 토해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막을 만한데……?’
서준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피어날 무렵, 비릿한 미소를 홀린 우리엘의 등 뒤로 다시금 불꽃이
일어난다.
불꽃이 빚어낸 것은 네 자루의 검이다.
척 보아도 하나, 하나가 엄청난 양의 신성력을 머금은 신검.
“대권능의 힘이 오직 나한테만 적용된다고 생각한 것이냐?”
농락 섞인 우리엘의 음성과 함께 네 자루의 검이 허공을 날아 서준 의 사방을 노리며 쏘아졌다.
강력한 우리엘의 신성력을 막기 위해 전면으로 대다수의 혼돈의 힘 을 쏟고 있는 서준의 미간이 찌푸 려졌다.
급한 마음에 허공에 기운을 조율 하여 방어막을 형성해보지만, 우리 엘의 신검은 서준의 생각 이상이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굳이 기존의 법칙 자체를 완전히 새로이 정립해 내고 있었다.
“베어라.”
우리엘이 읊조렸고, 그 순간 날 아든 네 자루의 검이 세계의 일부 를 찢고, 공간을 뛰어넘어 서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건 생각 이상이네.”
서준이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자,
차고 있던 정복왕의 수투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지잉-
동시에 허공의 네 자루의 개벽의 검이 빚어지며 쏘아지는 우리엘의 검들과 격돌한다.
콰과광-!
폭음이 연달아 들려오고, 바닷물 이 솟구쳐 오르며 시야를 모두 뒤 덮은 순간.
촤악-!
솟아오른 바닷물을 가르고 뛰쳐 오른 서준의 주먹이 우리엘의 안면 을 가격한다.
....
힘 싸움에서 밀렸다.
그 사실에 놀라기도 전, 회색빛 기운을 휘감은 서준의 주먹이 눈앞 으로 다시 당도한다.
놀라운 점은 방금 부딪혔을 때보 다 훨씬 더 강해져 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패배한다.
한낱 인간 따위라 생각했던 존재 에게 패배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나도 끔찍했다.
‘이런 곳에서 죽는다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한서준을 뛰 어넘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을 할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어.’
조금 준비가 미홉하였지만, 강제 로 개방한다.
이 자리에서 허무하게 죽는 것보 다는 무엇이든 낫다.
엘리시움, 천상의 문을 개방하고 두 명의 대군주들과 군단을 지구로 불러들이는 것뿐이었다.
“개문(開門)! 강림하라!”
다급하고 간절한 우리엘의 외침 과 함께 하늘이 갈라지더니 새하얀 광명의 빛이 쏘아져 내렸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