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18화
268화
“크읍-!”
입에서 붉은 선혈을 내뿜는 마몬 은 전력, 아니 속이 진탕될 정도로 사력(死方)을 다하여 미친 듯 움직 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공격은커녕, 가면의 사내, 감사관이 제자리에서 쏘아내는 푸른빛 기운들을 피해 다 니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평범하게 기운을 응축시켜 일자
로 뻗어내는 공격이었지만, 보잘것 없어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그 파 괴력은 어마어마했다.
고작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마몬 의 날개를 꿰뚫어낸 것이 그 증거 다.
‘빌어먹을..
마몬은 점점 더 벅차오르는 숨을 느끼며 눈앞의 사내, 팔짱을 낀 감 사관을 응시한다.
기존의 계획이었던 판데모니움의 핵을 취하여 마신에 오른다는 목적 을 잊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자리를
벗어나 판데모니움의 핵을 취해낼 것이다.
문제는 감사관에게는 마몬이 가 진 힘 전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는 것이었다.
‘기껏 탐해낸 물건은 놈의 성역 이라 내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다.’
탐욕의 힘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성역과 다를 바 없는 검집이 마 몬이 힘을 끌어 쓰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탓이다.
탐욕의 힘을 끌어올리면 불가능 하지는 않겠지만, 상황이 그리 좋 지 못했다.
눈앞에는 그 관리국의 감사관이 라 불리는 사내가 계속 압박을 해 오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선택지는 한 개뿐 이다.’
탐욕의 권능, ‘바닥 없는 탐욕’을 발동시켜 놈의 육신을 탐하는 것.
하지만 만약 격(格)의 문제로 실 패하게 된다면?
마몬은 문득 곳곳에 크고작은 자상들이 난 몸을 바라본다.
‘내가……. 무저갱의 마왕인 이 몸이 언제부터 이렇게 재면서 싸웠 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당당히 맞부 딪혀 탐한 것을 뺏어왔다.
지금처럼 뒤에서 견주거나 계략 같은 것을 짠 적은 없다.
마몬은 생각을 거둔다.
애초부터 마왕은 파괴와 전투를 업(業)으로 삼는 존재.
‘하물며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드 래코니안의 피를 이은 내가?’
전투 중 생각에 잠기고, 전략을 계산하는 것은 마몬이 아니었다.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
“죽여 주마.”
뿌득, 뿌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마몬의 등 뒤에서 들려온다.
뿔과 날개는 악마의 힘을 상징하 는 증표.
그리고 지금 마몬의 등 뒤에서는 검은 악마의 날개가 꾸득거리며 튀 어나오고 있었다.
다섯 쌍에서 여섯 쌍이 된 날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마기를 단 숨에 갈무리한 마몬의 시선이 감사 관을 응시한다.
“어리석군, 발버둥 쳐 봤자 고통
만 오래갈 뿐, 결과는 변하지 않을 거다.”
“닥쳐라!”
고함을 내지른 마몬은 날아오는 푸른빛 섬광을 피하면서도 계속해 서 힘을 증폭시켰다.
어느덧, 마몬의 머리 위에는 한 쌍의 뿔이 더 돋아난다.
한계를 깬 그릇의 힘을 모조리 다 쏟아낸다.
계속해서 진화하고, 성장하고, 나 아간다.
‘아직 부족하다.’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전투 종족, 드래코니안의 피에 흐르고 있는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더 강해져야 한다.’
마몬은 감사관의 육신을 바라보 았다.
그리고 승리를 향한 탐욕을 선보 인다.
분명, 완벽한 승리를 거머쥘 수 는 없을 것이다.
아주 일부분만이라도 놈에게 상 처를 입힐 수 있다면 망가져도 좋
원한다, 바란다, 승리를 탐할 것 이다.
“크아아아-!”
푸른빛 기운이 스파크를 일으키 며 마몬의 탐욕을 막아선다.
“주인이 허락도 하지 않은 것을 탐하려 하다니, 무례를 보이다 못 해 경박하고 어리석군, 쯧.”
혀를 차는 감사관은 여전히 자세 를 다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다.
과분한 것을 탐하려던 마몬은 도
리어 큰 상처를 입고, 움직임이 다 소 더뎌져 있었다.
실제로 마몬은 전력을 다해 힘을 이끌었으나, 솟아난 마왕의 힘을 단 한 번도 폭발시키지 못했다.
‘아직……!’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조금 더 거리를 좁혀야만 한다.
마음과 달리 애석할 정도로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막대한 출혈 과 아찔한 고통에 머리가 핑 돌았다.
두 다리가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린다.
날아오는 푸른빛 기운을 더 이상 피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 그 시점.
마몬은 탐욕의 힘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그 잠깐의 순간, 한계를 돌파해낸 그릇은 초월한다.
파앗-!
빛줄기가 그어지는 것도, 그가 지나간 뒤였다.
초광속(超光速), 이런 곳에서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
에 도달한 공격이다.
팔짱을 낀 채 푸른빛 기운을 다 루던 감사관은 다급한 표정으로 양 손을 벌려 정면으로 내뻗는다.
파앙-!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감사관의 신형이 뒤로 밀려난다.
자신했던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된 감사관이 불타 버린 자신의 옷소매 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숨겨 놓은 힘이 이거였나.”
“크으읍-!”
바닥에 널브러져 피 칠갑이 된 몸을 부르르 떠는 마몬의 눈에는 여전히 탐욕이 가득했다.
죽이겠다.
감사관을 어떻게 해서든 죽여 놈 의 영혼을 씹어 삼키며 승리를 탐 할 것이다.
그 지독한 모습을 보며 감사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위험한 놈이군……
감사관은 고개를 들어 밀려난 거 리를 확인한다.
인간의 걸음 기준으로 약 백 보
정도로,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다.
하지만, 고작 이런 폐기물 따위 가 보일 위력은 아니다.
“어째서 네놈을 제거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군.”
얼마 가지 않아서 감사관은 고개 를 내젓는다.
상부의 명령은 절대적인 운명이 다.
당장 의문을 품어봤자 해결될 것 은 없다.
어차피 시간이 흐른다면 그 이유 를 알게 될 것이다.
“우선 아발론은 다시 돌려받도록 하지.”
“내…… 것, 나……의 것……
더 이상 제대로 된 말도 내뱉을 수 없는지, 눈이 감겨가는 마몬을 보며 감사관이 등을 돌린다.
“주제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려 하지 마라.”
허공에 떠오른 아발론이 감사관 의 손을 향해 날아든다.
탁-!
마침내 아발론을 되찾아 낸 감사 관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한다.
“흠……
제법 홀륭한 기운이 연달아 부딪 히고 있었다.
당장 힘의 크기는 백중지세(伯仲 之勢)처럼 보였지만, 사실 싸움의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악마 쪽과 달리 인간 쪽은 싸우 면서도 계속 성장을 해나가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군.”
단박에 상부에서 직접 손을 쓰려 고 하려는 이유가 이해가 된다.
“이럴 시간이 없군.”
인간의 성장이 악마의 힘을 뛰어 넘으려 하고 있었다.
내려진 두 번째 명령을 수행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감사관은 곧장 발걸음을 옮겨 두 개의 힘이 격돌하고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마몬과 감사관의 싸움이 끝이 났
을 무렵.
서준과 사탄의 격돌 역시 승패가 갈리기 시작했다.
“크읍......!”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던 사탄 의 미간이 찌푸려지기 시작한다.
반면 서준의 눈동자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채가 어려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 방을 이어갈수록 격차가 빠른 속도 로 좁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정말 시간문제군.’
아직 남은 수가 없는 것은 아니
지만 이 싸움은 분명, 사탄 본인의 패배로 끝이 날 것이다.
마황의 자리를 넘어서 마신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 바알과 치 열한 싸움을 벌이고 몰아낸 결과로 얻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허망할 정 도의 최후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운명을 뒤바 꿀 방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 된 서준의 공세는 한쪽 팔이 없음 에도 불구하고, 공방을 주고받을수 록 더욱더 날카로워진다.
단 한 순간도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지독한 집념을 가진 채 이 싸움 에 임하고 있었다.
한 치의 방심도, 실수도 용납하 지 않겠다는 강렬한 집착.
‘결국, 놈들이 정한 운명을 벗어 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한들 쉽게 목숨을 포기 할 생각은 없었다.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 놈들이 정한 운명을 조금이라도 뒤틀어 주 마.’
속으로 한숨을 삼킨, 사탄의 눈 이 차갑게 빛을 발했다.
당장의 힘은 엇비슷하다.
아니, 엄연히 따지자면 지금은 사탄이 조금 더 위였다.
물론, 지금처럼 공방을 주고받다 보면 격차가 줄어들다 못해 역전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전에 숨겨둔 수를 사용하여 결판을 낸다.’
사탄이 가진 분노의 권능과 마황 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던 힘.
[터져라.]
위대한 존재들만이 다룰 수 있는 언령(言令), 모든 인과와 법칙을 무
시하고 강행되는 그 힘이 판데모니 움의 지배자인 사탄의 입을 빌어 발현된다.
극한의 집중력에 다다른 서준은 한순간도 사탄의 움직임, 눈빛, 기 운, 그리고 숨결까지 놓치지 않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대비할 틈도 없이 어깨에 광폭이 일기 시작한다.
아주 찰나의 틈이었지만, 그 순 간 사탄의 대검은 뻗어진 서준의 어깨를 베고 지나가기에 충분했다.
촤악-!
하지만, 폭발의 순간, 서준의 몸
을 휘감고 있던 금룡흑포가 갑옷의 형태로 변모해 어깨를 감쌌다.
“……
툭.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공격이 실패로 되돌아간 사탄의 미간이 찌 푸려졌다.
그러나 무의미했던 공격은 아니 다.
대검이 주는 충격으로 인해, 균 형을 잃은 서준의 몸이 휘청이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사탄은 곧장 몸을 날리고, 대검 을 내리쳐 서준의 목을 노렸다.
촤악-!
그러나 이것도 허공에서 빚어진 개벽의 검이 자유자재로 사탄의 대 검을 받아 쳐내 실패했다.
‘이기어검!’
평범한 이기어검이 아니다.
그 난폭하다는 혼돈의 힘으로 검 을 빚어낸 것도 모자라,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다뤄내고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기행(奇行), 이 순간에마저도 성장
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고 있을 틈조차 없었다.
서준의 몸 역시 허공을 돌아 발 끝에 응집시킨 회색빛 기운을 사탄 의 심장을 꿰뚫겠다는 마음으로 쏘 아냈다.
이어진 서준의 기습.
[터져라-!]
그 순간 다시 한번 언령이 발동 된다.
발차기를 내뻗던 서준이 폭발로 인해 밀려났고, 그 순간 다시 움직 이기 시작한 사탄이 삽시간에 거리 를 벌려 안전을 확보한다.
“귀찮은 공격이네……
과정이나 전조 따위는 없다.
판데모니움이라는 세계가 사탄의 말을 받들고 따른다.
터지라는 짧은 말, 빛의 속도로 이어지는 공방에서 떨어지는 음성 은 느렸으나, 광속의 영역에 도달 해 있는 사탄의 입장에서 단어를 완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터다.
그 단어 한마디로 서준의 노림수 들이 모두 파훼된다.
심지어 자칫 잘못하면 목이 날아 갈 수도 있었다.
둘의 공방은 그 정도로 빨랐으니 말이다.
사실 사탄이 바랐던 것도 목을 칠 수 있는 거리였다.
하나 체술을 펼치는 서준은 너무 나 가까웠다.
원하는 만큼 거리를 벌린 후 언 령을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무리해서 거리를 벌리려 했다면 내가 먼저 당했을 거다.’
사탄은 속내로 쓴웃음을 흘렸지 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음성을 이 어갔다.
“내 분노는 마황의 힘을 취하여 대신을 넘어 너머의 뿌리에 닿아있 다. 내가 마황으로 존재하는 한 판 데모니움이라는 차원 전체는 나를 받들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탄의 말에서준이 여유로운 미 소를 홀리며 입을 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