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14화
264화
“제법 끌리는 제안이긴 하지만 일단은 거절하지.”
예상과 다르게 마몬은 고개를 내 저었다.
두 눈에 가득 차오른 탐욕이 감 출 수 없을 정도로 넘치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말이다.
서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네. 가장
맛있는 만찬은, 제일 마지막에 먹 고 싶은 것뿐이니…… 그리고, 자 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도 한 가 지 있고 말이야.”
“제안?”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우리 잠 시 손을 잡아 보는 게 어떤가?”
이어진 마몬의 제안에서준이 코 웃음을 친다.
“헛소리.”
이미 비슷한 제안은 수도 없이 들어왔고, 그 모든 것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어진 마몬의 제안은, 분명 서준의 입장에서도 다소 당황
스러운 제안이었다.
“내 목표는 자네와 같네. 우리 함께 판데모니움을 무너뜨리는 것 이 어떤가?”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뭐?”
의심할 여지 없이 진심이었다.
마몬이 흘리는 말 속에는 숨겨지 지 않는 강한 욕망이 느껴지고 있었다.
“대체 이유가 뭐지?”
때문에, 서준은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탐욕의 마왕인 마몬이 판데모니 움을 파괴하려 한단 말인가?
“지금 판데모니움은 아주 지겨 워, 예전 같지가 않지. 새로 황제에 오른 사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계 약 때문인 게 가장 커. 하아……. 그런데 탐욕적인 나는 늘 무언가를 원하고 갈망할 수밖에 없어, 상대 의 것을 빼앗고 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이지. 예를 들자면 다른 마왕의 영혼들조차도……. 이렇게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면 파괴를 해버리는 것 이 옳은 법 아니겠나?”
“미쳤군……
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른다.
‘빼앗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걸 부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만, 의중 이 이해는 되었다.
마몬은 악마 중에서도 거대한 탐 욕을 가진 존재.
지금처럼 탐욕이라는 감정을 마 구잡이로 분출하지 못하게 하는 판 데모니움에 대한 답답함이 가득 쌓 여버렸고, 뒤틀린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들 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나머지 마왕 중에서도 마몬급의 강자가 있다는 거겠지.’
마몬 역시 그들을 모두 처리하기 가 부담스러워 참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때마침 서준이라는 존재 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훗날의 일은 훗날에 묻어 두 고……. 지금 당장의 목표가 같은 데 굳이 싸울 필요는 없지 않나?”
“반대로 생각하면 굳이 손을 잡 을 필요도 없지.”
“허세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라 생각하네. 판데모니움의 가장 지하, 무저갱에 있는 마왕 무리는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혼자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야.”
“그렇다고 등 뒤에 적을 둘 수는 없잖아? 내가 뭘 믿고 마왕인 너와 손을 잡지?”
“계약을 하도록 하지, 판데모니 움을 파괴할 때까지는 자네에게 어 떠한 해도 입히지 않으며, 전심전 력으로 돕겠다고 말이야.”
계약, 악마족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규율이자, 일종의 강력한 제 약이었다.
만약 계약의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 악마로서의 존재가 부정되어
소멸하게 된다. 그것이 설사 마왕 이라고 말이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네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부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마몬의 제안은 달콤한 꿀 과도 같았다.
그야말로 악마가 내미는 계약.
서준은 그 이야기에 짧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지 않은 제안 같으니, 일단 들어는 볼게.”
서로 최종 목표는 같다.
이 판데모니움이라는 차원을 파 괴하는 것이다.
서준이 여태껏 본 강자 중 누구
보다도 압도적인 기운을 가진 마몬 마저도 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마왕들을 힘을 합쳐서 처단하는 방 식은 꽤나 효율적이었다.
‘악마들은 어차피 싸워야 할 적 이야.’
비록 이상향은 다를지 몰라도 1 차 목표는 완전히 같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못 어울릴 것도 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 악마들을 정리해 둬서 손해 볼 것은 없었으니 말이 다.
물론, 마몬이 아무 꿍꿍이 없이
이런 제안을 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서준은 이 싸움의 끝에서 게 된다면,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판데모니움이 파괴된다면 놈은 혼자가 된다.’
1:1의 상황이 된다면, 마몬이 제 법 강하다 할지라도 패배할 것이라 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허세 따위가 아니다.
나름대로 숨겨둔 수가 하나 더 있기도 했다.
‘대권능(大權能).’
대신에 올라 얻은 특권 중 하나, 세계의 법칙을 새로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속내 모를 마몬과의 계 약이 두렵지 않았다.
꿍꿍이가 숨어있는 마몬의 제안 을 받아들인 것도 이러한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서준이 생각을 갈무리하고 있던 찰나, 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악마들이 휘황찬란한 금빛의 식탁 위에 수백 가지의 만찬을 선사했다.
“악마가 이런 미식도 즐기나?”
“탐욕이란 것은 어떠한 형태에도 국한되지 않는 법이지.”
“나는, 이런 음식을 즐기기보다 는 일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다른 마왕들이 엿들을 수 있다는 마몬의 말 때문에 판데모니움의 가 장 바닥에 있는 지하 6층, 무저갱 이라 불리는 곳에 당도할 때까지,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쌓여있는 궁금증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성격이 급한 친구군, 어떤 것이 궁금한 거지?”
“어떤 방식으로 판데모니움을 파
괴할 생각이지?”
계약올 통하여 일시적으로 마몬 이라는 강력한 동맹을 얻긴 했지만, 판데모니움을 파괴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쉬운 일이었다면 마몬이 서준의 힘을 빌릴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서준의 질문을 받은 마몬의 입꼬 리가 호선을 그린다.
“그렇지. 우선 이야기에 앞서 내 계획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 판데 모니움의 형세에 대해 알려주겠네.”
“말해 봐.”
“바알이 악마의 왕이 된 직후 벌 인 갖가지 정치공작은 판데모니움 이 오랜 시간 정체되는 결과를 낳 았네.”
영악한 바알은 권력, 힘을 보존 하기 위하여 마왕들끼리 서로가 서 로를 견제하게 만들어 쉽사리 움직 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서로 함 부로 움직임을 보일 수 없게 되었 고, 무미건조한 평화가 찾아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기본적으로 파괴 와 살육을 바라며 욕심으로 가득
찬 종족이다.
“당연히 이런 통치에 불만을 품 은 마왕이 한둘이 아니었고, 실제 로도 마왕들은 힘을 합쳐 반역을 일으켜 바알을 쫓아냈다네.”
마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과거의 상황들이 하나둘씩 납득 가 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알이 파탈라 대륙에 있었던 거군.’
온전치 못해 보였던 몸 상태 또 한, 앞서 마왕들과의 싸움으로 입 은 부상이었을 것이다.
홍미로운 마몬의 이야기에서준
의 궁금증이 동했다.
“그 이후에는?”
“바알을 쫓아내긴 했지만, 욕심 이 많은 마왕들은 서로가 왕의 자 리, 아니 황제의 자리에 앉고 싶어 했네. 그렇다고 함부로 탐할 수도 없었지.”
자칫 잘못하면 바알처럼 큰 상처 들 입고, 판데모니움에서 쫓겨날 수 있었던 탓이었다.
서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사탄 그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서 황제의 즉위를 양보한
다면 마신전을 열겠다는 말을 자처 하더군.”
서준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 라연천이 말했던 ‘마신’이라는 단어 가 지금 화두에 오른 것이었다.
“마신전?”
“마신(魔神)의 자리를 두고 모든 마왕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열한 싸 움을 벌이는 의식이자 투쟁이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몬의 노림수가 읽혀진다.
서준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빈집을 털겠다는 말이네.”
“ 정답.”
차원의 핵이 부서지면 차원이 붕 괴한다.
이건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그리고 마신전에 정신이 팔려 마 왕들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판데모 니움의 차원의 핵을 지킬 만한 존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계획 자체는 훌륭하다고 볼 수 있지만, 짚이는 점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
“너는 마신이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드나 봐?”
악마족이 패권을 쥐게 된다면 마 몬의 입장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몬은 마신의 탄생을 방해하고, 판데모니움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서준이 의문을 표하고 있었지만, 마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절대적인 지배자가 생기게 되면 함부로 다른 마왕의 것을 탐할 수 없게 되잖아.”
눈동자에 차오르는 어마어마한
마몬이 가진 탐욕이라는 감정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했기에, 이런 일을 계획한 것이었다.
물론, 이외로도 짚이는 점이 한 가지 존재했다.
“그런데 이건 너 혼자서도 해도 되는 일 아니야‘?”
“아쉽지만, 마왕의 직위를 가진 존재들은 마신전에 강제적으로 참 여를 할 수밖에 없거든, 그렇기에 한서준 자네를 동료로서 영입한 거 지.”
기다렸다는 듯이 서술되는 대답
에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너무 순탄한 거 아니야?”
영악한 마왕들이 이리 쉽게 허점 을 드러낼 리가 없었다.
“물론, 이게 전부였다면 자네를 영입하지도 않았겠지, 강제적으로 소집되는 것은 마왕들뿐이다. 마황 인 사탄은 제외가 된다는 거지.”
“내가 사탄을 죽이고 핵을 부수 길 바라는 건가?”
“정확해.”
탐욕이 어린 마몬의 눈매가 기묘 하게 휘어진다.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분명 마몬이 숨기고 있는 다른 꿍꿍이가 더 있을 것이었다.
허나, 지금 당장에는 알 방도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설사 조금의 위험 부 담이 있다 할지라도, 판데모니움이 라는 차원을 통째로 파괴할 수 있 는 이런 기회는 흔치도 않았다.
고민을 끝마친, 서준이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연다.
“며칠 후지?”
“지구의 시간 개념으로는 6일 정
도 남았군.”
그리 촉박하지도, 여유롭지도 않 은 시간이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최고의 컨 디션을 만들기에 최고의 시간이었다.
“좋아. 네 계획대로 6일 후에 움 직이는 걸로 하지.”
“현명한 선택이야.”
서준과 마몬이 서로의 손을 잡는 순간이었다.
빛 한 줌조차 들지 않는 지하, 무저갱 (無底坑).
어둡다 못해 섬뜩하게 느껴지는 풍경 속에서 서준이 할 수 있는 것 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이런 어둠만이 내리깔린 세상 속에서도 서준이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어.’
여태껏 마주했던 어떠한 존재들
보다도 강자라고 할 수 있는 마몬 과의 만남은 마음속에 강렬한 자극 을 주기에 충분했다.
때문일까?
견고했던 마음속의 벽이 조금 더 허술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우선 빠져나가 볼까.”
척 보아도 비싸 보이는 가구류들 이 비치된 넓고 좋은 방을 내주었지만, 결국에는 마왕의 성이다.
훤히 노출되는 공간에서 내면의 벽을 마주해 깨달음을 얻을 순 없 었다.
내리깔린 어둠 탓에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서준에게 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허공을 걷어차 공중에 떠오른 서준은 오감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시야를 가리던 어둠이 가시고 근 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악마들의 존재감이 잡힌다.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 서준은 기척을 죽인 채로, 어둠 속에 녹아 들었다.
악마들의 감시망을 손쉽게 뚫고 는 일대의 산으로 걸음을 옮긴다.
서준이 선택한 가장 안전한 장 소, 그곳은 판데모니움의 지붕에
닿을 것 같은 높은 절벽에 파여 있 는 자그마한 틈이었다.
정확하게 성인 남성 한 명이 들 어갈 만한 비좁은 공간, 서준은 그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