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11화
261 화
마왕, 보티스는 간절히 바랐다.
‘한서준 녀석이 내 영토 쪽으로 와줘야 할 텐데.’
판데모니움은 현재 대격변의 시 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마의 왕이자 서열 1위인 바알 이 내전에서 패퇴했고, 사탄이 새 로운 악마의 황제로 군림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욕심이 많은 다 른 마왕이 괜히 이 상황을 지켜보
고만 있는 게 아니다.
‘어차피 한순간일 뿐이야.’
사탄은 그저 계약대로, 마신을 탄생시키기 위한 마신전(魔神戰)을 준비하기 위하여 마황의 직위에 올 라있을 뿐이다.
마신전에서 새로운 마신이 탄생 한다면 결국 버려질 운명이라는 것 이다.
그렇기에 더욱 한서준이라는 인 간이 가진 강력한 힘, 영혼이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 강렬한 영혼을 섭취한다면 분명 마신전의 승자는 내가 되겠
지.’
꿈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마신전은 마왕, 마황이 단신(單 身)으로 전투를 벌이는 곳, 압도적 인 힘을 가진 자가 승리하는 전장 이라는 말이다.
당장은 숭리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한서준의 영혼을 섭취할 수 있 다면 판데모니움의 지배자가 될 것 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오만한 사탄 놈을 내 앞에 무릎 꿇릴 수 있게 되다니……!’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까?
영토에 가까워질수록 강렬한 기
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설마?”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좁혀질수록 확신 이 생겨난다.
애초에 이렇게 강렬한 힘을 가진 존재는 판데모니움 내에서도 몇 되 지 않는다.
거기에 현재 마왕들은 계약으로 인하여 서로의 영토를 침공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은 존재는 하나뿐이 었다.
“아아, 우주가 나에게 기회를 주 네.”
물론, 조금 귀찮은 싸움이 남아 있긴 했지만, 성역이 있는 이상 패 배할 일은 없다.
대신이 가진 성역의 힘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결국, 판데모니움의 지배자는 이 몸이 되는구나.’
아니, 전 우주의 패자(«者)가 되 어 마침내 뿌리에 닿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흐른다.
‘아주 좋아.’
상상을 이어가자, 욕심이 끝없이 샘솟는다.
한시라도 빠르게 저 강렬한 힘을 취하고 싶어졌다.
보티스가 발을 놀린다.
타닥-!
광속의 속도로 움직이자, 영토에서 있는 한서준의 신형이 눈에 들 어온다.
당장이라도 한서준의 목을 비틀 어 쥐고 영혼을 섭취하고 싶었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몇몇 주제를 모르는 악마들이 곳 곳에서 하이애나처럼 몸을 숨긴 채 로 혹시나 한서준이 지쳐 쓰러지는 순간이 찾아올까 기대하며, 호시탐 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본 보티스는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펼쳤다.
“죽어.”
이후 허공을 향해 마기를 쏘아 보냈다.
천둥과 같은 울림이 판데모니움 을 뒤흔들었다.
쿠구구궁-!
이것만으로 하이에나와 같은 악 마들을 소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비록, 힘들게 가꿔놓은 성이 무 너지긴 했지만, 한서준의 영혼을 온전히 섭취할 수 있다면 그런 것 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마침내 폐허가 된 성의 꼭대기 위에 선, 보티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한서준.”
강렬한 영혼을 섭취하고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은, 악마로서 항상 즐거운 일이었다.
한서준과 같이 우주가 인정할 정
도의 강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정말 고맙게 나에게 와주었네.”
보티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흐 른다.
“이게 고마울 일인가?”
진심 어린 감사의 말에서준의 고개가 갸웃 젖혀졌지만, 다행히도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렬한 영혼은 강한 힘을 주는 법이지.”
“그건 날 이겼을 때나 가질 수 있는 거 아닌가.”
“아주 맛있는 식사가 되겠어.”
보티스의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욕망이 차오르고 있을 때였다.
펑-!
폭음과 함께 보티스의 머리가 띵 - 하고 울려왔다.
“ 어?”
의문을 느낀 보티스의 몸이 좌측 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털석.
이어서 서 있던 위치에서, 그대 로 성의 내부에 처박히게 된 보티 스의 두 눈에 허공에 뜬 인간의 모
습이 들어온다.
그의 전신에 휘감겨 있는 회색빛 기운, 혼돈의 힘이 보티스의 뇌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혼돈의 힘이라, 성격 이 급한 편인가 보네.”
지면에 쓰러져 묘한 미소를 그린 그의 말에, 차가운 표정을 지은 서준의 한 손에 혼돈의 힘이 응어리 지기 시작한다.
“특별히 어울려주도록 할게.”
보티스의 눈동자가 사냥감을 노 리는 뱀과 같이 가늘어진다.
사아악……!
손에는 맹독이 발라진 검이 쥐어 지는 순간이었다.
차악-!
찰나(죄」邪), 정말 눈 한 번을 깜 빡이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어느새 보티스의 검이 서준의 발 끝이 디디고 있던 지면을 무너트렸 다.
여유롭게 뒷걸음질 치며 피한 서준이 코웃음을 친다.
“아무리 봐도, 영혼을 섭취하기 에는 힘들 것 같은데?”
“쓸데없는 걱정이야.”
콰드득-!
다시 보티스의 신체가 변화한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전신에는 뱀의 비늘이 솟아난다.
이어, 입가에서는 맹독이 흐르는 송곳니가 솟아났고, 등 뒤에서는 다섯 쌍의 검은 날개가 펼쳐진다.
“뭐야? 뱀이야? 악마야?”
서준이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말 하고 있던 순간, 이전보다 두 배는 빠르게 뻗어온 검이 볼 끝을 스치 고 지나갔다.
“어……?”
“맹독의 보티스 이것이 이 몸의 진체(眞體)이자, 네게 사신(死神)으로 기억될 존재.”
보티스의 검이 어마어마한 속도 로 궤적을 그리며 날아온다.
‘과연 마왕.’
괜히 상위 종인 악마 중에서 손 에 꼽히는 강자가 된 것이 아니다.
어느덧, 수천의 검격이 눈앞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그에 맞춰 서준도 곧장 광속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촤자작-!
계속 충돌이 이어질수록 서준은 확신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강하지는 않 네.’
고된 수련 동안 대체 얼마나 강 해진 것일까?
마왕, 보티스조차도 어려운 상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헛웃음을 지은 서준이 거리를 벌 리며 입을 연다.
“이게 전력 맞아?”
서준이 던진 의문에, 보티스는 비릿한 비웃음으로 답해주었다.
“이런 무의미한 공격에서 우위를 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곧 의미가 생길 거야.”
“아니,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일반 적인 싸움이라면 네 말이 옳았겠지, 하지만 이런 싸움에서는 이유 없는 힘 싸움에 불과하단 말야. 굳이 있 다면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정도뿐이겠지.”
“말하는 걸 보니 뭔가 숨겨둔 한 수가 있나 봐?”
“무식한 줄로만 알았는데, 정보 를 빼내려고 세 치 혀를 놀리는 것 이 생각보다는 영악한 점도 있었구
나‘?”
“아무리 봐도 나보다 약자가 마 구잡이로 덤벼드는 꼴을 보면 누구 라도 그렇게 생각할걸?”
어깨를 으쓱한서준이 보티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천천히 훑 어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기 다려 줄게. 지금은 너무 시시해서 여홍도 안 될 것 같거든.”
“푸흐흐……. 어리석은 인간이야. 믿고 있는 바야 뻔하겠지.”
보티스의 입가가 기묘하게 뒤틀 린다.
“혼돈의 힘이 가진 파괴로 나를 압도하려 하는 거잖아? 그런데 아 쉬워서 어쩌지.”
송곳니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맹 독.
대지에 스며든 그 독을 바라보고 있던 보티스가 웃음을 흘린다.
“혼돈의 힘은 그 어떠한 것도 잡 아먹는 포식의 힘. 분명 그건 우주 에 정립된 법칙이야. 하지만 여기 는 내 영토이자 성역이란 말이지.”
“ 흐음......
“그건 내가 원하는 대로 법칙을 정립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부터는……
보티스의 등 뒤로 솟아오른 날개 가 거대하게 펼쳐졌다.
“이곳, 판데모니움 나 맹독의 보 티스의 명으로 영토, 성역의 힘을 개방하겠다!”
콰릉-!
세상의 일부가 흔들리고는 폐허 나 다를 바 없던 성 주변으로 검은 빛 회오리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대신(大神)의 성역.
절대 영토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 는 곳에서 보티스가 가해올 제약이 몇 가지일지, 또 어떤 내용일지 서
준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가지였다.
‘약해지고 있어.’
여태껏 강렬하고 포악하게만 느 껴지던 혼돈의 힘이 온순하기 그지 없게 변했다.
이어서 응집시켜 놓았던 혼돈의 힘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 오호?”
이번만큼은 서준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태껏 혼돈의 힘을 압도했던 법
칙, 힘은 그 무엇도 보지 못했다.
비록 성역의 힘을 빌리긴 했지 만, 눈앞의 보티스는 혼돈의 힘을 억제해내고 있었다.
‘단지 성역의 힘만올 이용한 것 은 아닌 것 같은데.’
서준의 눈이 성역으로 선포된 일 대를 훑어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훑고 있 던 서준의 시선이 무너져 내린 보 티스의 성, 그 바닥에서 멈춰 선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너도 혼돈의 파편의 소유자였어?”
“보는 눈은 있네. 그런데 아쉬워
서 어째? 이미 너무 늦어 버렸는 데.”
보티스의 입가에 명백한 조소가 피어난다.
“성역의 힘에 혼돈을 더하여 너 의 혼돈을 제어해낸다. 그리고 나 에게는 불사의 법칙까지 더했지.”
자신만만한 표정에, 확신에 찬 눈빛을 한 보티스는 생각지도 못했 던 정보까지 발설해주고 있었다.
“재미있는 법칙들이네.”
“아직 끝이 아니야. 혹시나 네가 이 성역을 벗어나려 발악할까 봐, 격리의 법칙까지 새로이 세워 뒀
지.”
“많이도 준비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인간? 이게 바 로 성역이 가진 힘이다. 너의 자신 감의 원천인 혼돈의 힘마저 봉쇄시 킬 수 있는 전력이라고.”
“대단하긴 한데. 진짜 쓸모없는 노력을 들였네.”
“여유가 과한걸? 아니 자만인 가‘?”
서준은 대답 대신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주먹을 말아 쥔다.
“믿어왔던 혼돈의 힘을 봉인당하여 완전히 정신이 나갔군! 내 영토
를 찾아온 상으로 특별히 더 구차 하게 끌지 않고 깔끔하게 죽여주 마!”
보티스의 신형이 사라진다.
검격과 함께 검은 기운들이 매서 운 기세로 서준에게로 쏘아진다.
그 뒤를 따라 불사의 법칙을 정 립한 보티스 역시 함께 돌진해 왔 다.
심지어 하늘에서는 맹독의 비가 쏟아져 내리고 지면에서는 독으로 빚어진 초록빛 촉수들이 서준의 전 신을 무섭게 옭아왔다.
피할 곳은 없다.
애초에 성역의 제한으로 인하여 도망도 칠 수 없었다.
“끝이다, 인간! 크하하!”
보티스가 확신에 가득 찬 환호성 을 내지르고 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만큼 허 무한 것도 없지.”
서준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정 면, 보티스를 향하여 팔을 내뻗었다.
아직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던 만 큼, 뻗어진 주먹은 보티스에게 닿 지 않았다.
그러나 애초에서준이 노린 것은 보티스가 아니었다.
“부서져.”
쨍그랑-!
요란한 굉음이 일대에 울려 퍼지 는 순간이었다.
일대를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들 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무너지기 시작한다.
차원 파괴, 헤레시아 차원을 파 괴하고 새로이 얻었던 스킬이 지금 이 자리에서 발현된 것
이었다.
“성, 성역이……
거리를 좁혀오던, 보티스의 동공 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세게 혼들린다.
하지만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도 전에, 이어서 뻗어진 서준의 주 먹이 보티스의 얼굴을 짓뭉갰다.
빛의 속도로 내뻗어진 광속타(光 速打).
퍼억-!
연이어 뻗어지는 주먹질에 무언 가를 말하려던 보티스의 입가가 계 속해서 뒤틀렸다.
빛은 말보다 빠른 법이다.
결국, 보티스가 쏟아낼 수 있는 것은 비명뿐이었다.
“크아아악-!”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