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9화
259화
절대적인 억제력이 바그너의 몸 을 휘감았지만, 다행히도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태가 온 전한 것은 아니었다.
고된 수련에 용족 특유의 재생력 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음에도 불 구하고, 바그너는 사흘째 눈을 뜨 지 못하고 있었다.
사흘째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황제.
혼란이 생길 만한 상황이었지만, 리벨레 제국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서준은 약속했던 일을 어 길 성정이 아니었다.
리벨리온 연합의 힘, 정확히 말 하자면 강석호를 통하여 유능한 인 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덕에 제 국은 온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혹여나 있을 귀족들의 부 패와 반란들을 생각해서 리벨리온 연합의 사절을 제국 곳곳에 파견해
두었을뿐더러, 비상 연락망 구축까 지 완성한 차였다.
깔끔한 업무 처리 능력을 지닌 강석호가 움직인 시점에 있어 서준 이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를 신경 쓰 고 있을 만한 겨를이 없었다.
리벨리온 의장실에 앉은 서준은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깊은 생 각에 잠겨 있었다.
“우주 전체가 거짓된 실험장.”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암중의 세력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 다는 말.
솔직히 말하자면 믿기 힘든 사실 이었다.
‘내가 보고 겪은 모든 것들이 만 들어진 거라고?’
하지만 두 눈으로 바그너에게 가 해졌던 억제력을 보았던 만큼, 마 냥 부정할 수도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서준에게 헛웃 음이 흐른다.
“ 하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인 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기분이 좀 많이 더럽네.’
마치 실험용 쥐가 된 것 같은 기 분이었다.
호의라곤 단 일 퍼센트도 찾을 수 없는 모종의 목표를 가진 한 집 단이,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이런 더러운 일을 벌인 것이다.
정말 최악의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한서준’으로 보 고 겪은 모든 일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진짜 였어.’
서준에게 이곳은 명백한 현실이 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켜낼 것이다.
그 어떠한 존재가 방해한다고 할 지라도 말이다.
“ 후우......
호흡과 함께 요동치던 감정들을 애써 갈무리한서준은 침착하게 현 상황을 차근차근 짚기 시작했다.
“모든 게 예상외야.”
우주의 비밀, 그리고 그 뒤에 숨 어있는 배후 세력까지.
모든 것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
고 있었다.
기존 가설을 모두 깨뜨리는 존재 들의 등장에, 서준의 표정이 딱딱 하게 굳어진다.
‘ 필패 (必敗) 다.’
리벨리온 연합, 그리고 서준 스 스로도 강자의 반열에 들었다고 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넓은 우주를 관리하고 지배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집단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금 강해졌다고 좋아할 게 아 니었네.”
여태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
는 강적이 분명 존재한다.
자고로 진정한 평화는 더할 나위 없는 국력, 전쟁에 대한 대비를 마 쳤을 때 비로소 거머쥘 수 있는 것.
강한 힘에 대한 갈망이 더욱 강 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서준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혼돈, 그 힘을 단기간 내에 급격히 성장시킬 만한 물건은 혼돈의 파편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혼돈의 파편 위치에 대해서 아는 정보가 하나도 존재치 않았다.
아무런 정보 없이 수많은 차원, 드넓은 우주를 뒤지고 다니는 것은 제아무리 서준이라 할지라도 버거 운 일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다 행히도 서준은 혼돈의 파편을 제외 하고서도 단기간에 강해질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천마의 보구.’
정확한 위치, 그리고 이동 좌표 까지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당 장 회수할 수 있으면서 적인 악마 까지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나라연천에게 들었
던 가지 중 하나인 마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니 더욱 움직여야만 했다.
발을 뗄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서준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나 나라연천의 우주선으로 향하였 다.
서준은 곧장 나라연천의 도움으로 판데모니움으로 향하는 게이트 를 열었고 그 너머로 발을 내디뎠 다.
역으로 침공할 것이라고 감히 상 상조차 하지 못했던 악마들의 영토, 판데모니움으로 향하는 게이트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인간이 된 것 이다.
게이트를 넘어선 순간, 펼쳐진 풍경은 황무지라 불려도 손색이 없 는 곳이었다.
“여기가 으]'마의 땅……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그 순간,
메시지가 전해진다.
띠링-!
[판데모니움 차원의 입구인 지하 1층에 진입했습니다.]
[악마의 영토에 침범해 판데모니 움의 패권을 쥐고 있는 마왕들이 사용자 ‘한서준’을 인지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어가 던, 서준의 입가가 묘하게 비틀렸 다.
“ 오호......
입구라고 함은 아직 완전한 악마 의 영토에 진입했다고 볼 수 없다 는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도 이렇게 층계로 나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셈이었다.
‘바알이 확실히 영악한 놈이긴 했네.’
연합, 동맹을 구축하는 대상에게 도 완전한 신뢰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조심스러운 바알의 행적을 보자니, 자연스레 의문이 만들어진 다.
‘그런 녀석이 왜 곧장 도망을 치
지 않았던 거지.’
눈가가 깊게 파였다.
이후,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혼자서 머리를 굴리고 있을 필 요가 없지.”
어차피 판데모니움을 돌아보다 보면 악마, 마왕들은 차고 넘칠 것 이다.
서준은 생각을 갈무리하고, 대신 하여,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파악한다.
‘붉은빛 대지와 천장……
꽤나 높다.
서준의 기준에서도 허공을 올려 다보면 하늘이라고 믿을 만큼 드높 은 곳에 천장이 있었다.
‘웬만한 신격들은 볼 수도 없겠 네.’
그나마 이곳이 지하라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은, 하늘과 다름없는 천장까지 닿아있는 높은 돌기둥들 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차 원이네.’
입가로 묘한 웃음을 그린 서준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넓다는 것은 멀리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대의 악마들도 서준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내비게이션으로 쓸 만 한 놈이 하나 왔으면 좋겠는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준에 게로, 꽤 큰 기운이 접근해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인간? 길을 잃고 차원의 틈새로 빠진 것인가?”
허공 위.
사자의 머리에 근육질 인간의 몸, 그리고 검은 박쥐의 날개를 활 짝- 펼친 악마가 서준을 내려다보
며 말했다.
“너는 누구지?”
“크하하! 이 몸을 보고도 겁에 질리지 않을 줄이야.”
악마의 입가로는 사나운 미소가 번졌다.
“네놈의 패기를 높게 사서 특별 히 상으로 이 몸의 정체를 가르쳐 주지, 나는 암약(暗!®)의 군단을 거 느린 군단장, 페텔로서……
서준은 이어진 페텔의 말을 귀담 아듣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으로 쓰기에 적합한 악마라는 것을 안 것이면 족했다.
“페텔, 너 정도면 쓸 만하겠네.”
서준의 부름에, 페텔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한낱 인간 주제에 감히 이 몸의 이름을 부르다니, 건방지기 그지없 구나.”
동시에 페텔로부터 흘러나온 검 은 기운이 지면을 뒤흔들었다.
쿠궁…….
“군단장, 페텔의 이름으로 명한 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 그렇지 않 는다면 네 사지를 가르고 영혼을 찢어발겨……
“내비게이션으로 쓰기에는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조금 조용할 수는 없을까?”
말을 중간에 끊는 서준의 모습에 잠시 당황한 페텔은, 곧 납득했다 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큭큭…… 불쌍한 인간이여. 차 원의 틈새에 길을 잃어 정신이 나 가버린 듯하구나.”
“진짜, 말 무지하게 많네.”
“미친 인간의 고통을 보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지.”
“입을 좀 다물게 하려면 손을 조
금 써야겠는데. 귀찮게.”
“감히, 인간 따위가!”
분노한 페텔의 등 뒤로 검붉은 창이 생성되고, 매섭게 쏘아진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아우성치게 만들어 주마! 크하하!”
큰 웃음소리와 함께 쏘아진 검붉 은 창이 서준이 가볍게 내뻗은 손 에 잡힌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 을 페텔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무, 무슨……!?”
놀란 페텔이 눈을 동그랗게 떴 다.
“그러게, 조금만 말을 줄이라고 했을 때 입을 닫았어야지.”
쌔액-!
서준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진 다.
이어,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충 격과 함께 페텔의 신형이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퍼억-!
단숨에 지면에 내다 꽂힌 페텔은 멍하니 회색 하늘을 바라보았다.
육체적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는 악마 중에서도 손에 꼽히 는, 군단장의 직위를 가진 악마였 으며, 지면의 돌바닥은 그를 타격 할 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 어떻게 인간이?”
일정 이상의 한계를 돌파한 인간 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절대 다수, 전체의 99% 가 넘는 수치의 인간은 보잘것없을 정도로 미약하다.
군단장이라는 직위에 올라 있는
페텔의 입장에서 99.9%의 인간들 은 우스운 수준이었다.
한데 그런 인간의 움직임조차 좇 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한 우연도 아니다.
이 찰나의 순간에도 거리를 좁혀 내며, 발을 들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언제나 짓밟고 지배하던 하찮은 인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바닥에 널브러진 페텔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를 올려다보는 일뿐이었다.
“너, 나 몰라?”
서준의 질문에 페텔은 당황하며 기운을 일으켰다.
‘방심했을 뿐이다.’
실제로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거 나 이렇다 할 부상을 입은 것도 아 니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곧장 제압할 수 있을 거다.’
물론, 페텔의 착각이었을 뿐이지 만 말이다.
생각을 끝마치기 무섭게, 서준의 발이 페텔의 가슴을 강하게 짓눌렀 다.
.....
가슴 주변을 파고드는 거대한 고 통에 페텔의 눈이 부릅뜨였다.
“끄아아아악-!”
재빠르게 의념기를 둘러 보았지 만, 고통은 날카롭게, 지독히 파고 든다.
난생처음 겪는 고통에 머리털이 쭈뼛 선다.
“정말 나 몰라?”
페텔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답 답한 상황이었다.
‘대체 내가 네놈을 어떻게 알아!’
아쉽게도 페텔은 단 한 번도 판 데모니움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악마 였다.
외부의 소식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하나, 너무나 고통스러운 탓에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제법 유명 한 몸이거든.”
그 순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존재에 페텔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감정을 느꼈다.
‘유명한 인간?’
비록 다른 차원에 나가본 적은 없었지만, 판데모니움 내에도 소식 과 소문이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낱 인간이 판데모니움 에서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는, 그 에 버금가는 매우 큰 업적이 필요 했다.
이러한 조건에 적합한 인간은 단 한 명뿐이었다.
수많은 악마와 천사들뿐만 아니 라 종의 정점인 용족마저 사냥한 인간.
이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 연히 깨달아졌다.
눈앞의 상대는 단순히 길을 잃은 인간 따위가 아니었다.
“설....... 설마……
페텔의 눈이 크게 떨렸다.
“알고 있나 보네?”
“지, 지구의 대신……!”
“이제 주제 파악이 좀 됐지?”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