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7화
257화
혼돈의 힘을 발동하는 속도, 그리고 운용력이 말도 안 되게 성장 했다.
이미 거듭된 수련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한 바 있었지만, 실전에서 그 감각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 졌다.
사실은, 바알의 상태가 온전하다 고는 볼 수 없었다.
전신을 휘감고 있는 검은 기운들
은 방대하지만 유지하는 것이 불안 정한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간 대신(大神)이라는 자들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나?’
어쩌면,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 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도 확실히 존재했다.
수련 뒤, 10갑자에 달하는 혼돈 의 힘을 다루기 시작한 이후로 제 대로 된 적수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것 말이다.
서준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악마왕, 바알.’
여태껏 봐왔던, 존재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더 강한 마력을 가진 괴물이다.
실제로도 방대한 마력을 이용한 바알의 재생능력은 치가 떨리다 못 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육신 을 재생해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살점과 핏물이 흩날리 는 와중에도, 바알은 본래의 형태 를 순식간에 찾아간다.
허나, 모두 부질없는 행동에 불 과했다.
‘압도할 수 있어.’
지금의 이 힘조차 자신의 한계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어느덧, 다시 재생한 바알은 거 대했던 육신에 비해 절반도 안 되 는 크기로 줄어 있었다.
[과거의 나약했던 내가 아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의 시작이다, 인간!]
바알의 붉은 눈이 서준을 직시한 다.
띠링-!
[상대가 혼돈의 파편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파편 쟁탈전을 시작하겠습니까?]
처음 보는 메시지.
그러나, 그 의미를 모르지는 않 았다.
용포 안에 보관한 혼돈의 파편에 잠식되어 있던 회색빛 기운이 꿈틀 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생사지적(生死之敵)이다.
‘시작하겠어.’
고개를 주억이기 무섭게, 주변의 풍경이 변화한다.
어떠한 기운의 파동도 없음에도 생긴 변화.
하나 서준은 그 근원이 어디서부 터 왔는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혼돈의 파편.’
온통 회색빛뿐인 괴이한 세상 속.
서준은 바알의 머리 위에 떠오른 숫자를 보았다.
‘1.’
마찬가지로 서준의 머리 위에도
‘1’이라는 숫자가 띄워져 있었다.
‘곧 2가 되겠네.’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 빛살 처럼 쏘아진 바알의 거대한 주먹이 서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운이 좋은 날이군, 네놈의 목숨 과 열쇠를 함께 취해가도록 하마!]
울려 퍼지는 음성과 함께 거대한 마력이 일대에 퍼져나간다.
“아직도 이렇게 큰소리칠 수 있 는 걸 보면, 숨겨둔 수가 더 있나 봐?”
비릿한 미소를 흘리고 있는 서준 의 육신이, 바알이 휘두른 팔짓 한
방에 밀려나며 사라지듯이 날아간 다.
‘ 빨라?’
주먹을 막아선 팔뚝에서 느껴지 는 충격에서준은 깜짝 놀란 표정 을 지었다.
괴력은 여전한데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같은 광속의 영역 안에 있긴 했 지만, 분명 그 속도가 전보다 한층 더 빨라졌다.
‘덩치가 줄어서 그런 건가?’
그러면 여기서 덩치가 줄어든다 면 얼마나 더 빨라질까?
이제야 바알의 자신감이 이해가 되었다.
어찌 보자면, 바알은 상처를 입 어서 덩치가 작아질수록 빨라진다.
그러나 기존의 육체가 품고 있는 괴력과 방대한 마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서준은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바알.”
[감히 위대한 악마 왕의 옥체에 해를 입히다니 죽음으로써 죗값을 치러라, 인간!]
서준의 부름에, 바알이 고함과
함께 살갗이 아릴 정도의 살기를 뿜어낸다.
자연스레, 곤두서는 감각들에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환하게 피어난 다.
“어느 정도까지 작아질 수 있는 거야? 지금보다 더 빨라질 수 있 어?”
생각해보니, 귀찮게 직접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직접 확인해보면 그만이다.
쾅-!
서준이 내뻗은 개벽의 검이 휘둘 러지며 단숨에 바알의 육신을 반으
로 갈라낸다.
삽시간에 검은 기운에 휘감긴 바 알의 육체가 조금 더 줄어든다.
[편히 죽지는 못할 거다, 인간!]
분노한 바알이 괴성을 내뿜으며 서준을 향해 달려든다.
‘빠르긴 한데.’
여전히 쫓지 못할 정도는 아니 다.
“왕의 한계인가?”
바알은 스스로를 악마의 왕이라 자처했다.
그 칭호가 가진 위용은 범부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서준에겐 결국 ‘왕’에 불과한 것이 었다.
악마의 ‘신’을 자처하지는 못했다 는 말이다.
무의식중에 한계, 벽이 있거나 혹은 다른 악마들의 반발로 인하여 신을 자처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고작 ‘왕’의 그릇을 가진 바알은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시하네.”
서준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 사이였다.
어느덧, 공중으로 날아오른 바알 은 머리 위에 마력을 응축해 거대 한 검은 구체를 만들었다.
[구도옥 (九道玉).]
구체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어둠 은 세상을 집어삼켜 단숨에서준의 육신을 집어삼키려 했다.
“너무 약해.”
방대하고 강력하긴 하나 결국 일 반적인 마기(魔氣)에 불과한 것.
혼돈의 힘을 집어삼키기에는 역 부족이라는 것이었다.
서준이 개벽의 검을 가볍게 휘두 르자 세상을 집어삼키던 어둠에 일 자의 선이 그어진다.
이후 벌려진 틈을 강제로 비틀고 찢어발겼다.
“더 강한 공격은 없어?”
혼돈의 힘이 단숨에 일대에 퍼져 나갔던 어둠을 집어삼키고, 그 중 심에서 있던 바알의 육신을 반으로 갈랐다.
촤악-!
다시금 갈라진 바알의 육신이 지 상으로 추락한다.
[정녕 끝을 보게 되는구나, 인 간!]
재빠르게 재생한 바알이 외치며 지팡이를 들어올린다.
그러자 바알의 주변으로 검은 기 운이 소용돌이치듯 거대한 마법 진 이 그려졌다.
쿠구구궁…….
요란한 굉음과 함께 세계가 뒤흔 들리며, 검은 기운이 허공으로 치 솟아 오른다.
그렇게 솟구친 검은 기운은 회색 빛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나아간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바알의 마법 진에서 아주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하여 서준 은 회색빛 기운, 혼돈의 힘으로 안 력을 돋았다.
그러자 솟구친 검은 기운에서 흘 러나온 회색빛 기운, 혼돈의 힘이 우주를 배회하고 있는 거대한 돌을 강제로 끌어당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돈의 힘은 네놈만의 특권이 아니다!]
“신기하네.”
갑자기 어떻게 바알이 혼돈의 힘 을 다뤄낼 수 있게 된 것인지 궁금 중이 밀려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에 대한 해 답을 내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 바알이 끌어당기고 있는 것 은, 폐안이 다뤄냈던 자그마한 운 석과는 다르다.
하나의 행성이라고 봐도 될 정도 의 거대한 크기였다.
심지어 그 행성은 불꽃에 휘감겨 있었고, 내부에서는 폭발이 일어나 고 있었다.
표면에서는 끊임없이 용암이 흘
러내린다.
저런 행성과 충돌하게 된다면 공 간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리가 없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 았는데 어쩔 수 없겠네.”
지잉-
혼돈의 힘이 손아귀에 모여든다.
어느 정도 능수능란하게 혼돈의 힘을 다뤄낼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여드는 회색빛 기운이 발작하듯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전력을 쏟는다.’
가진 특수 능력, 옵션들을 모두 사용한다.
정복왕의 수투에서 빛이 흘러나 오는 순간, 내력이 폭발하듯이 솟 구치며 응축된 혼돈의 힘이 열 갑 자를 넘어선다.
바알 또한 그 상황을 그냥 보고 만 있을 생각이 없는지 검은 기운 들을 서준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쇄도해오는 검은 기운은 바람을 찢으며 서준의 전신을 베어온다.
몸 곳곳에 생기는 크고작은 자 상.
투둑, 후두둑.
핏물이 사방으로 튀기는 순간에 도 서준의 입가는 호선을 그린다.
“여전히 공격이 얕아.”
[언제까지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광속에 이른 움직임에, 놀라울 정도의 회복력.
그리고 세계를 뒤덮을 정도의 방 대한 기운까지.
바알은 확실히 강한 존재다.
지금까지 만났던 누구보다 강하 다고 말할 수 있었다.
대신의 힘을 이토록 실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기뻤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편으로 슬프기도 했다.
“이토록 강한데……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전투의 결과가 명백히 보인다 는 말이었다.
계속해서 쏘아지는 바알의 검은 기운을 바라보고 있던 서준이 휘감 은 회색빛 기운들에서 우주가 폭발 하듯 빛이 번뜩인다.
날아들던 검은 기운들의 순식간 에 자취를 감춘다.
바알이 힘을 거두어들인 것은 아 니다.
혼돈에 잡아먹혔을 뿐이다.
포식자(捕食者).
혼돈의 힘의 근간인 영역이 느껴 진다.
수련 과정에서는 몇 번이나 실패 했었지만, 오히려 실전에서는 단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결국 훈련은 훈련.’
지금과 같은 긴장감과 함께 감각 을 곤두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결과를 아주 바꿔놓는 법이었다.
지잉, 지잉.
응축된 힘이, 어느덧 한 자루의 검의 형태로 변화해 서준의 손아귀 에 쥐어진다.
세계를 뒤혼들 정도의 압도적인 힘의 파동, 개벽의 검이 뿜어내는 위용에 바알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위기감을 느끼고 재빨리 날개를 펼치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그 순간에 육신이 반으로 갈라진다.
특유의 재생능력이 발휘되지 않 았다.
포식을 바라는 혼돈의 힘은 고유 의 재생능력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바알의 모 습을 본 서준은 확신했다.
“이게 결국 왕의 한계야.”
무어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던 서준은 가벼이 개벽의 검을 휘둘러 낙하해오던 행 성을 갈라놓고, 혼돈의 힘을 일으 켜 집어삼켜 버리고 있었다.
최후의 발악이라 볼 수 있는 공 격마저, 허무하게 사라져간다.
“먹어 치워.”
서준의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혼돈의 힘이 기다렸다는 듯이 솟구 치며 바알의 육신을 삼켰다.
거대한 검은빛 영혼이, 한 줌의 자취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모습을 회색빛 눈으로 잠시 바라보던 서준이 혼돈의 힘을 거둬 들이는 순간이었다.
뒤흔들리던 세계가 안정을 되찾 아간다.
회색빛으로 물들었던 공간은 이 미 본 적 있던 파탈라 대륙의 풍경 으로 뒤바뀌었다.
띠링-!
[지옥의 악마왕, 바알을 처치했습 니다.]
[초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7()1로 상숭합니다.]
[사용자의 신명이 죄악을 미워하 는 세계에 울려 퍼짐에 따라, 숭배 자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신성력 + 500]
우선적으로 들려온 것은 시스템 의 메시지다.
자그마치 80레벨의 상승과 500 이라는 신성력의 상승을 알렸다.
실로 대단한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지금 서준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었다.
[파편 쟁탈전이 종료됩니다.]
[숭리자는 대투신(大請神) 한서준입니다.]
[현재 수집한 조각의 수 : 2]
[혼돈의 경쟁자들이 당신을 인지 합니다.]
[아카식 레코드가 당신의 등급을 상향 조정합니다.]
[권한 레벨이 6으로 상승합니다.]
[이제부터 혼돈의 파편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혼돈의 파편!’
그토록 궁금해하던 정보였다.
자연스레 서준의 눈동자에 호기 심이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야.’
고개를 돌리어 보자, 악마 군단 과 대치 중인 연합원의 모습이 눈 에 들어온다.
아카식 레코드는 언제든지 확인 할 수 있다.
지금은 전쟁을 마무리 짓고 괜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고개를 주억인 서준은 망설임 없 이 발을 놀리며,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향해 날아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