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6화
256화
“갈라져라!”
이번에는 바람을 일으키며 바신 의 육신을 갈라내려 했지만, 의도 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쯧, 대공이라 불리는 놈이 이렇 게 쓸모가 없어서야.”
뒤이어, 몰아친 폭풍이 바그너의 바람을 흩어내고 땅에 박혀 있는 그람을 뽑아낸다.
그러자 일대를 휘감고 있던 푸른
빛 섬광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바신의 육신을 구속하고 있던 억 제력 역시 빠른 속도로 소멸되었다.
구태여 누구인지 확인해 볼 필요 없었다.
이런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 바알.”
실제로도 허공 위, 검은 지팡이 를 들어 올린 바알의 신형이 모습 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미끼를 문 것이었다.
시선을 돌린 바그너의 입가에 미
소가 피어나고 있던 찰나였다.
“죄송합니다……
뇌전의 힘에 몸을 파들파들- 떨 고 있던 바신이 황급히 고개를 숙 인다.
동시에 대지에서부터 갑작스럽게 솟아난 촉수들이 바그너의 몸을 휘 감았다.
“힘들게 살아남은 목숨을 이리 허무하게 버리다니, 너무나도 어리 석은 인간이구나.”
바그너가 황급히 용언의 힘을 빌 려 마법을 발현하려던 순간이었다.
퍼버버벅-!
멀쩡하던 바그너의 육체 곳곳이 피를 분출하며 터져나가고 짓뭉개 진다.
그사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단숨 에 바그너의 머리를 짓밟은 바신의 뱀의 꼬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폐품의 사고라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비릿한 미소를 홀린 바신의 꼬리 가 바그너의 육신을 집어삼키려는 순간이었다.
빛살이 전장을 뒤덮었다.
그렇게 느낀 순간 바신의 몸이 허공을 날아 반쯤 뒤집혔다.
“어..?”
얼굴이 박살 나는 고통.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그 느낌에
바신의 머리가 띵하고 울려왔다.
“바신!?”
바알이 황급히 지팡이를 휘둘러
낸다.
허공에 펼쳐진 거대한 검은 손이
쏘아진 빛살을 휘감아낸다.
그러자 빛살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그때가 되어서야, 바알은 상대의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 인간!”
용기의 신, 그리고 구원의 신, 한서준.
“뭘 그렇게 놀라, 자신 있으면 찾아오라면서?”
그가 자신의 옷에 달라붙은 검은 흔적을 털어내고는, 비릿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서준.
위풍당당한 등장이었지만, 흩트 려놓은 검은 기운들이 순식간에 재 생을 마치는 모습에 눈이 가늘어진 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네.’
재생 능력뿐만이 아니다.
속도와 정확도까지 모두 예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실제로 처음 바알이 지팡이를 휘 둘러 검은 기운을 쏘아낼 때, 서준 은 자연스럽게 움직여 그를 회피하 려 했다.
한데 검은 기운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서준의 뒤를 빠르게 쫓아왔다.
즉 이 말의 의미는 하나였다.
“너 또한 나와 같은 세계에 있구 나. 악마왕, 바알.”
여태까지 봐왔던 분신체가 아니 다.
눈앞의 바알은 본신, 대신(大神) 에 이른 존재였다.
“오만하구나, 한낱 인간의 몸으로 악마왕인 이 몸과 같은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다니 말이야.”
코웃음을 흘린 바알은 여유롭게 지팡이를 내젓는다.
또다시 튀어나온 두 개의 검은 손이 서준을 향해 쏘아진다.
“확실히……. 같은 세계에 있는 건 아니지.”
피식- 미소를 흘린 서준은 피하 지 않는다.
딱히 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 었다.
회색빛 검을 쥔 서준의 손이 가 벼이 휘둘러지며, 쏘아지던 검은 기운들이 종잇장처럼 찢어진다.
아니, 가볍게 검은 손을 넘어서 뒤에서 있던 바알의 육신을 가격 하기까지 했다.
퍼억!
예기치 못한 충격에 바알의 육신 이 체공하고는 황성의 벽에 처박힌 다.
“너보다는 내가 더 높은 경지에 있으니 말이야.”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고 있는 서준을 향해 바그너가 말한다.
“방심하지 마, 바알은 이 정도 공격으로 쓰러질 놈이 아니니까.”
“그래도 한동안 못 돌아올걸?”
바알의 능력, 그중에서도 뛰어난 재생력을 말하려던 바그너의 말문 이 막힌다.
생각해보니, 바알이 서준의 공격 을 얻어맞고 날아간 지 시간이 제 법 지난 후였다.
광속의 영역에 닿아 있는 바알이 라면 전장에 복귀하고도 남았을 시 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바그너의 시선이 저 멀리 날아간 바알을 향한다.
마치 죽은 듯, 꿈쩍도 하지 않고 벽면에 박혀 있는 바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떻게?”
고작 일격일 뿐이었다.
심지어 검은 기운을 가르느라 힘 도 소진한 차였다.
그런데 지옥의 악마왕이라고 자 처하고 있는 바알이 일어나지도 못 하고 있었다.
용언들을 쉴 새 없이 쏘아붙였을
때도 가볍게 재생했던 그 바알이라 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일격에 죽었다고? 바알 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바그너의 시선이 서준을 향한다.
피식- 미소를 홀린, 서준이 어깨 를 으쓱인다.
“아니, 죽은 건 아니고. 조만간 일어날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지 금 일어나 있다고 봐야 하는데, 일 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말끝을 흐린 서준이 고개를 돌리 어 바그너를 향해 말한다.
“바알을 확실하게 처리하는 동 안, 바신을 맡아줄 수 있지?”
“당연한 거를 부탁하는군.”
“든든하네.”
악마왕, 바알과의 격전을 앞두고 도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미소 를 그리고 있는 서준의 모습에 바 그너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른다.
‘알고는 있었지만, 엄청난 괴물이 군.’
모든 용의 피를 흡수해도 저 높 은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닿는다고 확언할 수 없는 자신과 달리, 눈앞 의 사내 한서준은 시간만 있다면
분명히 도달할 것이다.
제멋대로 우주를 주무르고 지배 하고 있는 그들과 싸울 자격을 갖 출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믿을 수 있었다.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나누고 싶은 대화가 있다.”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고개를 주억인 바그너가 기운을 일으키며 바신을 향해 쏘아진다.
그람을 손에 쥐고 있는 바그너의 눈동자에는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괜한 걱정은 필요 없을 것이다.
앞의 전투처럼, 그람을 활용할 수 있는 바그너라면 바신을 쉽게 압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나도 가볼까.”
“죽여 버리겠다! 인간!”
때마침 고개를 돌리는 순간, 회 복을 마친 바알이 고함올 내지르고 있었다.
이후 망설임 없이 서준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미안, 지금 난 그런 나약한 공 격에 당할 사람이 아니거든.”
바알을 응시하고 있던 서준이 회 색빛 검을 손에 쥐었다.
“일단은 물을 게 있으니까, 바로 죽이지는 않을게.”
비릿한 미소를 홀린 서준이 회색 빛 검을 휘두르며 바알의 육신을 갈라놓으려는 순간이었다.
퍼펑-!
“자만하지 마라, 인간!”
바알의 두 눈동자에서 붉은 기운 이 넘실거린다.
쾅-!
동시에 하늘에서 일어난, 붉은
벼락이 서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여유를 보이던 서준의 얼굴이 처 음으로 일그러진다.
그러나, 당황을 보일 필요는 없 었다.
황급히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켜 쥐고 있던 개벽의 검을 휘둘렀다.
지잉-
전 방위로 둘린 혼돈의 힘에 쏟 아지던 공격이 무색할 정도로 수포 가 되었다.
바알의 육신을 가를 기회를 놓치 긴 했지만 아쉬워할 것은 없다.
애초에 스스로를 악마들의 왕이 라 자처하는 바알을 쉽게 사냥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시간을 준 그 여유로움 과 자만이 네놈의 패인(敗因)이 될 것이다.”
고함을 내지른 바알의 육신이 순 식간에 검은 기운에 잠식되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싸우는 맛이 있지.”
처음 보았던 바알의 모습은 완전 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치 양과 황소를 합쳐놓은 듯한
기이한 모습을 한, 거대한 검은 형 체로 변해 있었다.
아니, 애초부터 저것이 바알의 본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거 다.
‘어느 정도 생각했던 모습이긴 한데……
문제는 그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 했다.
딛고 있는 두 다리가 움직일 때 마다 지축이 울렸고, 허리 위로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 있어 넓은 시 야가 아니었다면 제대로 보지도 못 했을 것이다.
과거, 폭주한 타키온과 흡사할 정도의 거대한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육신을 가진 바알이 시선 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서준을 향 해 읊조렸다.
[압도적인 힘 앞에 절규하고 절 망하게 될 것이다, 인간.]
악마왕, 바알.
그의 본체를 마주한 순간 서준은 전신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 다.
‘과거에 만났으면 끔찍했겠네.’
만약, 당장 몇 개월 전인, 나라연 천과 격전을 벌일 때였다면.
압도적인 힘 앞에 짓눌려, 말 그 대로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길 수 있어.’
치열한 싸움이 되겠지만, 끝내
승리하여 악마왕이라 불리는 바알 의 수급을 손에 쥐어낼 수 있을 것 이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 나기 시작한다.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바알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하 는 순간이었다.
[죽어라.]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검은 기 운이 서준을 향해 쏘아진다.
전과 다를 바 없는 공격인 만큼, 개벽의 검을 손에 쥐고 망설임 없 이 휘둘러 낸다.
허나, 결과는 명백하게 달랐다.
끼긱-
바알의 검은 기운은 쉽사리 베어 지지 않았고, 개벽의 검의 힘과 충 돌하며 폭발을 일으킨다.
잠시 당황을 느끼긴 했지만, 그 리 놀랄 것은 없었다.
본래의 힘을 숨기고 있던 것은 피차 마찬가지다.
열 갑자, 막대한 양의 혼돈의 힘 을 폭발시킨 서준은 폭발이 일어나 고 있는 그 속으로 곧장 몸을 날린 다.
허나, 바알도 순순히 돌파를 허 락해줄 생각이 없는지 곧장 검은 기운들을 쏘기 시작했다.
압도할 자신이 있었으나,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서준의 입장에서는 구태여 힘 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 었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은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기고, 약한 힘이 강한 힘을 제압 한다.
그마저도 무시하는 압도적인 격 차라면 모를까, 이렇게 힘이 비등 한 상황이라면 충분히 제압해낼 수
강하게 쏟아지는 힘을 가볍게 뻗 어낸 손으로 흘려 내가며 다가간다.
그렇게 어느덧, 서준은 바알의 코앞으로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무런 상처도 부상도 입지 않은 채 쏟아지는 공격들을 돌파한 모습 에 바알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떻게…….]
눈을 휘둥그레 뜬 바알을 보며 서준은 생각한다.
‘이 거대한 덩치를 어떻게 해야 완전히 조각낼 수 있을까?’
뻗어진 손이 바알의 가슴팍에 맞 닿는다.
놀란 바알이 몸을 뒤틀어 떨쳐내 려 했지만, 지금 서준의 영역을 벗 어날 수는 없었다.
‘광속을 넘어섰다면 모르겠지만.’
같은 광속의 영역에 있다면 언제 든지 닿을 수 있다.
서준은 아주 간단하게, 거대한 바알의 육신을 살덩이를 멱살 잡듯 잡아채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콰앙-!
폭음과 함께 지면이 움푹 꺼졌
그 순간에도 서준은 끊임없이 움 직인다.
널브러진 육신 위에 올라타, 가 슴 위에 개벽의 검을 꽂아 넣고는 바알의 체내에 농축된 혼돈의 힘에 회전력을 더한다.
끼기기긱…….
바알의 거대한 육신이, 마치 믹 서기의 과일처럼 사방으로 찢어지 며 흩날린다.
바알은 제대로 된 대항조차 하지 못한 채 홑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흩날리는 바알
의 육신을 지켜보던 서준은 속으로 감탄을 삼키고 있었다.
‘나 대체 얼마만큼 강해진 거지?’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