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2화
252화
서준이 고개를 돌린다.
“그럼 시작해볼까.”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어느덧, 서준의 입가에 피어났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보인다.’
혼돈의 힘을 끌어내자, 닫혀있던 통찰안이 열리며 어그러진 차원의 핵으로 추정되는 물건의 결(結)이
드러난다.
천상의 빛이 닿는 곳이어서일까?
차원 전체에 이해할 수 없는 복 잡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적당한 파괴는 무의미해.’
철저하게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 어진 결계인 만큼, 어지간한 공격 은 모두 흡수되고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다.
온연한 성역이 아님에도 불구하 고 이만한 성능의 결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가 펼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 도 없다.
요피엘이 ‘위대한 존재’라고 칭한 자일 것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그런 존재가 정성을 들였다고 하 니 오히려 기분이 즐거웠다.
‘부수는 보람이 있겠네.’
내뻗은 손아귀에 계속해서 혼돈 의 힘이 응축된다.
찌지직…….
공간이, 차원의 결이 움츠러든다.
들썩거리던 지면이 천천히 주저 앉는다.
완성되고 있는 개벽의 검 주변으로 일그러짐이 번져간다.
쥐고 있던 팔이 뻐근해질 때쯤, 서준은 미련 없이 개벽의 검을 휘 두른다.
쩌적-!
세계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일어난다.
개벽의 검이 스쳐 지나간 곳에 있던 모든 것이 파괴된다.
차원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천상의 빛이 세상을 휘감고는 빠 른 속도로 본래의 형태를 복구해내 고 있었다.
“생각 이상이네.”
입꼬리가 비틀린 서준이 반대편 손을 들어올렸다.
그새 혼돈의 힘으로 빚어낸 개벽 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요동치던 천상의 빛이 더 이상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이쪽 을 향해 쏘아진다.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쇄도해 왔지만, 서준 또한 광속에 닿아 있 는 몸이었다.
곧장 왼손을 뻗어 휘두른 개벽의 검이 천상의 빛을 집어삼키고 차원 을 갈라놓는다.
콰앙-!
요란한 폭음이 일어나며 세상이 무너져 내렸지만, 전과 같이 천상 의 빛이 그것을 감싸 벌어진 파괴 를 복구했다.
“이것도 견뎠어?”
서준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 소가 흐른다.
‘힘 조절이 필요 없겠네.’
자신의 힘에 먹혀 죽는 것보다 추한 죽음은 없는 법이었다.
한계점에 달하는 혼돈의 힘을 쏘 아 차원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순간, 그 여파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생 각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지금 헤베니아가 두르고 있는 천상의 빛의 능력을 보면 괜 한 걱정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최고의 수련 장소네.”
서준은 히죽 웃으며 자세를 다잡 는다.
그사이 또다시 천상의 빛이 쏘아 진다.
개벽의 검으로 베어냈음에도 본 체인 차원이 멀쩡한 탓인지 여전히 그 위용을 온존하고 있었다.
그 기세를 보고 있자니 승부욕이 더욱 치솟는다.
통찰안에 집중을 더해 차원 전체 의 결을 훑는다.
목표를 확인했다면, 다음은 필요 한 화력을 측정한다.
‘단순히 베는 것으로 부족했다 면……
그렇다면 찢고, 발기고, 파괴한 다.
또다시 혼돈의 힘이 손바닥 위로 응집된다.
서준은 통찰안에 집중해 차원의 결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 한다.
펼쳐진 결계와 광속으로 이동하 는 천상의 빛이 시시각각 움직이는 결을 호위하고 있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어를 보이 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둘린 결계와 천상의 빛을 완전 히 갈라내고 결을 부순다.’
서준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벌 일 수 있는 가장 큰 위력의 파괴를 선사했다.
억제조차 힘든, 강렬한 혼돈의 힘이 일대에 퍼져나간다.
마치 백색의 도화지를 덮어내듯 이, 앞으로 나아간 혼돈의 힘을 머 리 위로 응집시킨다.
위기감을 느낀 천상의 빛이 서준 을 향해 쏘아진다.
허나, 근처에 당도하기도 전에 모여든 혼돈의 힘에 집어삼켜질 뿐 이었다.
모은 혼돈의 힘을 더욱, 더욱 응 집한다.
그것을 다시 압축에 압축을 거쳤 다.
도저히 더 뭉칠 수 없을 만큼, 빚고, 누르고, 뭉친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대폭발이 일 정도까지 위력을 더하고 더했다.
‘혼천마공, 멸진(滅盡).’
최대한 파괴의 여파가 오지 않도 록 조절해 뭉쳐낸 혼돈의 힘을 시 선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차원의 결 을 향해 쏘아낸다.
간단했지만, 단순한 공격이 아니 었다.
멸진은 오직 파괴하고 박살 낸다 는 목표를 가진 힘이다.
위기감을 느낀 천상의 빛이 다급 하게 움직이며 한 자리에 모여들어, 혼돈의 힘을 막아선다.
치직, 치지직-!
빛과 혼돈의 충돌.
팽팽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던 찰 나,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부족해.’
천상의 빛의 기세가 거세져 가고 있는 탓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고작 이런 빛 따위 에 패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서준은 더 이상 파괴의 여파를 생각하지 않는다.
쏘아진 혼돈의 힘을 향하여, 보
유한 신성력을 더했다.
콰지직, 콰지지직!
억제를 벗어난 힘, 혼돈이 폭주 한다.
끔찍한 파괴가 세상을 뒤덮는다.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했던 천상 의 빛이 헤베니아에서 자취를 감추 어간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로 대단하구 나……. 한낱 인간이 혼돈의 힘을 이 정도로 다뤄내고 있다니, 정말 대단해.]
사라지는 빛 속에서,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었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네가 위대한 존재.”
수많은 천사, 그리고 요피엘이 언급했던 그 존재가 틀림없었다.
이제야 천상의 빛의 기세가 갑작 스레 거세진 것이 이해가 된다.
천상의 빛의 주인이 이곳, 헤베 니아에 당도하고 있던 것이었다.
너머의 존재가, 진심으로 바라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부디, 자네가…….]
말을 끝맺지 못했지만, 이어지는 목소리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어질 수가 없었다.
치익…….
마침내 천상의 빛이 완전히 자취 를 감추며, 차원 헤베니아, 천상의 세계가 혼돈의 힘에 파괴되었기 때 문이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최초로 위대한 존재, ???의 빛이 닿아 있는 성역을
파괴했습니다.]
[특전으로 금기(禁忌) 스킬, 차원 파괴와 초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 니다.]
[레벨이 633으로 상승합니다!]
‘진짜 최고의 수련장이네.’
혼돈의 힘을 여과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무대를 제공해줬을뿐 더러, 특전으로 고유 스킬과 더불 어 자그마치 10개의 레벨 업을 보 상으로 받았다.
입가에 주체할 수 없는 미소가 흐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만한 여유는 없었다.
쩌저적-!
헤베니아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
차원의 핵도 혼돈의 힘에 뒤덮여 파괴되었다.
당연하지만, 서준은 무너지는 차 원 속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 없었다.
솟아오르는 기쁨을 잠시 억누른 서준은, 빠르게 넘어왔던 게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엘리시움의 드높은 곳.
그곳에 위치한 신전 내부의, 권 좌에 앉아있던 대군주, 천사들의 입에서 경악과 탄성이 쏟아진다.
“말도 안 되는 일이군.”
“우리 천사들의 체면이 말이 아 니게 됐습니다.”
상위 종족으로 여태 황홀한 번영 과 권위를 누려왔던 그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천상의 땅을 함부로 침 공당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 눈에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분노가 차오른다.
“다들 이렇게 말로만 주절거릴 생각인가?”
우리엘.
대전신(大戰神)이자 심판의 천사 라고 불리는 그가 노기 어린 표정 으로 권좌에 앉아있는 대천사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임을 보일 수 는 없었다.
분명 위대한 존재라고 일컬어지 는 신의 의지가 움직였다.
물론, 워낙 위대한 존재인 만큼 곳곳에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 지만은 않을 자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기에 함부로 움직임을 보기에 는 문제가 많았다.
때문에 의식의 편린(片廳)에 의 지를 담았다.
이제 갓 대신에 오른 존재라면 그 정도로 충분하리라 여겼기 때문 이다.
그러나 결국 위대한 존재는 패배 했고, 그 충격으로 잠시 침묵에 잠 겼다.
큰 타격이 아닌 만큼 회복은 오 래 걸리지 않을 터지만 여기 모여 있는 천사, 대군주들의 입장에서는, 모시는 입장인 위대한 존재가 누군 가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를 쉽 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이대로 당한 채로 참고만 있을 수는 없지, 한낱 인간 따위에게 천 상이 짓밟히다니.”
뒤를 따라 가브리엘 역시 우리엘 의 곁에서며 분노를 토한다.
“당장에 게이트를 연결하여 지구 인 놈들에게 상위 종족인 저희에게 반기를 든 것에 대한 심판을 내려 야만 합니다.”
우리엘이 이를 빠득빠득 갈며 목 소리를 높였다.
그 분노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요피엘이었다.
“우리가 모두 자리를 비운다면 악마들은 누가 막을 것이지?”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우 리엘을 향해 옅은 조소를 보였다.
“당장 우리엘 네가 거느리고 있 는 테베 차원도 악마들의 침공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상관없다! 요피엘. 네놈은 치욕 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우리엘이 성큼 걸어가 요피엘의 멱살을 잡았다.
어느덧 반대편 손에 생성된 화염 의 검은 당장에라도 요피엘의 목젖 을 꿰뚫을 듯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움직임 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 그만.”
서기관 메타트론, 위대한 존재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있는 천사의 말이 들려왔기 때문이
“우리엘 자네의 성격이 불같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우리끼 리 싸울 때가 아닐 텐데?”
메타트론은 눈동자를 굴려 모여 있는 열둘의 대군주를 바라본다.
한 명, 한 명이 수십의 차원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 을 가진 존재였다.
한서준이 아무리 강한 대신이라 할지라도 엘리시움의 전력을 동원 하여 전면전을 벌인다면 절대로 패 배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 상황을 악마, 판데모니
움의 마왕들이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내전을 벌이고 있다고 하지만 언 제 상황이 변할지 알 수 없었다.
‘특히 바알과 사탄은 위험하다.’
검은 속을 가진 바알과 파괴적인 힘을 가진 사탄의 움직임은 메타트 론의 입장에서도 부담이 된다.
함부로 움직임을 보이기에는 변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메타트론의 입가에 쓴웃음이 흐 른다.
‘꼴이 우습게 됐군.’
상위종인 천사, 그중에서도 대신 에 오른 존재로 어떠한 이의 눈치 를 본다는 것은 여태 있지도, 상상 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원하는 것을 언제나 약탈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파괴했다.
그런데 고작 한낱 인간을 어찌하 지 못하여, 숙적인 악마들의 눈치 를 봐야 했다.
무엇보다도 짜증 나는 것은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타 개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장 우리의 전력으로는 리벨리 온과 악마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네.”
메타트론은 침착하게 자신의 생 각을 내뱉었다.
쓰라리고 치욕적인 말이었다.
“저희의 힘은 천상에만 미쳐 있 지 않습니다. 차원 연합, 트리니티 를 움직인다면……
우리엘의 희망적인 말에 메타트 론이 코웃음을 친다.
“그들이 진심으로 우리를 도울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