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권 20화
245화
그 시각, 떠오르는 메시지 창을 보고 있던 서준의 귓전에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한서준! 역시 너라면 이길 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사이, 어느새 근 처로 다가온 바그너가 엄지를 치켜 세우고 있었다.
동시에 타키온의 시신을 바라보 고 있는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탐
욕이 차오른다.
피식, 웃은 서준이 타키온의 시 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다.
“그렇게 입에 발린 소리 안 해도 된다고. 어차피 계약 때문에라도 내줘야 하니까.”
훤히 드러나 있는, 타키온의 시 신에 재빠르게 다가선 바그너의 입 가에 진한 미소가 어린다.
“드디어, 드디어 용의 피를 얻게 되는구나!”
이후 망설임 없이 타키온의 피부 를 갈라 홀러나온 피를 삼키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
제지를 하려는 서준의 행동에 바 그너 눈을 부릅뜨며 노려본다.
“계약을 잊은 건 아니겠지?!”
“아니, 그렇게 막 마셔도 괜찮은 거야?”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아무리 귀한 영약이라 할지라도 그릇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 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법이잖 아.”
중원 대륙의 영약들도 그러했다.
천년설삼, 만년하수오와 같은 귀
하디귀한 영약이라 할지라도 능력 미달의 무인이 섭취한다면 도리어 내력이 폭주하는 끔찍한 죽음을 맞 이할 수 있었다.
물론, 바그너도 무인으로도 제법 뛰어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앞서 보았던 타키온의 힘 을 떠올려본다면, 바그너가 온전히 받아들일 정도의 그릇을 가졌다고 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기존에 품고 있는 힘과 상성, 그러니까 성질이 맞지 않을 수도 있잖아.”
서준이 괜히 타키온의 피를 섭취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치천마역천지공은 마공의 한 종 류라고 할 수 있었다.
순수한 마나를 다루는 타키온의 힘과는 상성이 맞지 않는다.
그리고 체내에 쌓은 기와 홉수하 는 것의 성질이 맞지 않으면, 충돌 하거나 마구잡이로 날뛰어 주인에 게 상처를 입히고 심하게는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주화입마가 찾아 온다는 것이었다.
바그너처럼 함부로 섭취하기에는 여러모로 변수가 많았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내 몸 에 흐르는 피가 누구의 것인지 잊 었나 보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인 바그 너는 단숨에 타키온의 피를 들이마 시기 시작한다.
거대한 타키온의 마력이 바그너 의 내부에 잠들어 있던 지크프리트 의 힘을 일깨워 내며 커다란 떨림 이 퍼져나간다.
화아아...
“으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는 바그너의 몸에서 푸른빛 기운이 일어나며 그의
육체를 휘감는다.
언제 폭주해도 이상하지 않은 방 대한 마력.
그러나 용살의 피라는 특성 때문 일까?
바그너의 변화는 상당히 놀라웠 다.
순식간에 타키온의 힘을 삼켜내 더니 기운을 몇 배나 부풀리는 것 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기운의 폭풍이 사그라지고, 타키온과 같은 푸른빛 눈동자를 가지게 된 바그너의 입가 에 미소가 흐른다.
“이게 바로 진정한 지크프리트, 용의 힘이구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 이 증폭되었음이 느껴진다.
그 넘치는 힘을 느끼는 바그너의 기분은 어떠할지 굳이 말하지 않아 도 알 수 있었다.
아마 당장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 때문일까?
바그너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 한다.
분노에 가득 찬 그 시선이 의미
하는 바는 명백했다.
“조금 강해졌다고 제 주인을 물 려하다니, 어이가 없네.”
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흘러나 오는 순간이었다.
타악-!
허공을 뛰어오른 바그너가 서준 을 향해 거칠게 손을 뻗어낸다.
“앞으로 우리의 밝은 관계를 위 해서라도 버르장머리를 한번 고쳐 주도록 하마!”
바그너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일대의 마나가 준동하기 시작한다.
지지직-
삽시간에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 지고 마법들이 펼쳐진다.
발현해낸 마법의 위력이 타키온 것과 비슷하다.
기운, 마나를 다뤄내는 능력이 실로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었으나 용족 특유의 육체 능력까지 얻어낸 것은 아니었다.
광속의 영역에 닿아 있는 서준에 게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삭-!
어느덧 바그너의 등 뒤편에 선
서준이 서슬 퍼런 목소리를 흘린다.
“확실히 위계질서는 확실하게 다 져 둘 필요가 있겠지.”
서준의 일장이 뻗어졌고, 바그너 의 등 뒤를 강타한다.
퍼억-!
충격을 견디지 못한 바그너의 육 신이 지면에 처박힌다.
“내리쳐라! 밀어내라!”
널브러진 바그너가 다급하게 타 키온의 능력 중 하나였던 용언을 쏟아 내본다.
하나, 어떠한 마법도 서준의 옷
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어느덧, 서준의 발에 머리가 밟 히게 된 바그너의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네, 네놈 정말로 인간이…… 맞 긴 한 거냐……
공포에 가득 질린 바그너의 눈동 자는, 어느덧 본래와 같은 갈색빛 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지 겹고. 어쨌든 타키온의 힘을 얻은 것을 축하한다, 바그너.”
검지 끝을 들어 올리며, 바그너 의 혈도를 모두 살핀 서준이 비릿
한 미소를 홀린다.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약소한 선물, 분근착골이다.”
“아악, 아아악!”
제법 오랜 시간, 대륙에 바그너 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바그너에게 위계를 확연히 각인
시킨 뒤.
싸움의 여파에 휘말리지 않도록 흩어져 있던 사람을 한 자리에 모 았다.
모두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바그너는 풀이 죽었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혼잣말을 이어간다.
“제길......
계속해서 뒷말이 이어졌지만, 정 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서준은 굳이 바그너의 이 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성을 못 느꼈다.
‘어차피 내 욕일 게 뻔하지.’
분근착골이 주는 고통은 상당했 을 것이기에, 바그너의 심정이 조 금은 이해되었다.
“다른 용족의 피가 더 있었다 면……
그러나 뒤이어진 바그너의 이야 기는,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다.
“뭐야? 용족의 피를 섭취할수록 강해지는 거야?”
“그래, 지크프리트, 우리 선조도 비슷한 방법으로 강해지셨던 거니 까.”
“그럼 타키온 말고 다른 용족의 능력들도 쓸 수 있다는 거네?”
“생각을 조금 해보면 알 수 있잖 아, 피를 섭취하는 것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당연하지 않겠……
“근데 아까부터 말투가 상당히 버릇이 없는데, 분근착골 한 번 더 해줘야 하나?”
입을 굳게 다문 바그너가 딴 곳 을 바라본다.
타키온의 피를 섭취하여 상당히 강해졌지만, 그럼에도 서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
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바그너가 한창 딴청을 피우고 있 던 사이, 여동빈이 물음을 던져왔 다.
“두 사람이 사이를 돈독하게 다 지는 건 내 알 바 아니지만, 지구 로는 대체 언제 돌아가는 것이오?”
아직 회복을 다 끝마치지 못했음 에도 불구하고, 선계의 옥황이 걱 정되는 것인지 여동빈의 말에는 다 급함이 어려 있었다.
“먼저 가, 아직 처리해야 할 일 이 있으니까.”
“처리해야 할 일?”
“자이로스 제국을 확실하게 정리 할 거야.”
주인이 사라진 이 땅, 파탈라 차 원은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나 도 아까운 땅이었다.
심지어 파탈라 차원에는 무수히 많은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
새로이 생긴 스테이터스, 신성력 을 얻어낼 기반이 갖춰진 차원이라 는 것이었다.
‘뭐든 모아둬서 나쁠 게 없지.’
특히나 신성력의 경우 그 가치가 더 소중했다.
대기 중의 기운, 마나를 자유자 재로 다뤄내는 것을 넘어서, 완벽 히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용족 이 타키온 한 마리뿐이라고 생각하 지 않는다.
혹여나 있을 최악의 상황에 대비 하여 많은 양의 신성력을 모아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천마, 자네의 뜻을 존중하긴 하 나, 나는 괜한 싸움에 끼고 싶지는 않으니, 먼저 물러나 선계로 돌아 가도록 하겠네.”
“편할 대로.”
여동빈과 서준의 대화가 끝날 무
렵, 바그너가 황급히 이야기에 끼 어들었다.
“제국을 정리한다는 그 계획에 나도 동참할 수 있을까?”
“바로 용을 사냥 간다고 하지 않 았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준의 모습 에 바그너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흐른다.
“일전에 싸우는 걸 보니까, 무작 정 쳐들어간다고 될 일이 아니더 군.”
솔직히 말하자면 그람의 힘, 용 살진의 능력을 활용한다면 어떠한
용족이라도 손쉽게 사냥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용족, 타키온은 예상과 달리 용살진의 영향을 받고 있음에 도 매우 강한 힘을 보였다.
피를 섭취한 지금의 상태라면 쉽 사리 지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이긴 다고도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 이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하여 최 소한의 안전 기반들을 확보해둘 필 요가 있었다.
그리고 타키온의 비호가 없는 자 이로스 제국은 바그너의 입장에서
아주 먹음직스러운 땅이자 훌륭한 안전 기반이 될 수 있는 영토였다.
“그럼 이번에도 목적지가 같겠 네.”
고개를 주억이는 바그너의 모습 을 확인한서준은 곧장 걸음을 옮 기어 자이로스 제국의 수도인 타그 마타로 향했다.
몇주 후.
제국, 자이로스는 오랜 시간 막 강한 부와 힘을 축적해낸 만큼 갖 가지 전술들을 벌여 레지스탕스를 압박해가며, 서준의 일행을 상대로 끈질기게 버텨냈다.
허나, 압도적인 힘의 차가 있는 만큼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타 그마타에 위치한 황성에 두 개의 칼날이 교차하는 레지스탕스의 깃 발이 내리꽂히게 되었다.
용족, 타키온을 숭배하고 있던 황제, 타그마니우스의 목은 효수되 어 성벽 드높은 곳에 올려져 까마
귀의 식사 거리로 전락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타키온의 이름 을 부르짖었지만 이미 소멸한 존재 가 구원을 내려줄 수 있을 리가 만 무했다.
죽음은 황제가 끝이 아니었다.
바그너는 그의 친인척, 관계가 있는 모든 혈족들의 목숨을 빼앗아 냈다.
레지스탕스의 수장이기에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들이 새로운 레지스탕 스를 창설하여 앞으로 일궈 낼 왕 국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
‘굳이 뒤탈을 만들어 둘 필요는 없지.’
솔직히 말하자면 먼 미래까지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차원 파탈라는 살얼음판 위에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타 키온의 피를 흡수하며 얻은 능력들을 통하여 용족들은 서로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오만한 용족이 동족에게 죽음 올 선사한 인간들을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머지않아서 심판을 내리러 올 것이다.
무시무시한 상황이었지만 어찌 보자면 바그너에게는 기회이기도 했다.
‘새로운 용의 피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물론,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당장 으로써는 용족과 전면전을 벌일 힘 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든든한 동맹이 자 우군이 존재했다.
‘한서준……
도저히 같은 인간의 뿌리를 가지 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힘, 혼 돈이라는 금기의 힘을 다뤄내는 한서준은 놀랍도록 강력하고, 무서웠 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한서준은 파탈라 차원에 있어 구세주라 할 수 있었다.
‘놈의 힘이라면 침공을 벌여 올 용도 사냥할 수 있겠지.’
물론, 제아무리 한서준이라 할지 라도 수호룡이 본격적으로 움직이 기 시작한다면 지금 당장으로써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렇기에 바그너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수장, 아니 새로 운 황제로서 국가의 종교를 새로 지정, 선포하도록 하겠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