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권 18화
243화
서준의 주먹이 타키온의 볼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용살진이 부서지면 곤란해.’
직접 겪어봤기에 알 수 있었다.
용족의 재생 능력은 말 그대로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말이다.
심지어 뒤덮고 있는 비늘의 방어 력 또한 혼돈의 힘을 사용해야지만 부술 수 있을 만큼 탄탄했다.
그렇기에 용살진만큼은 파괴하게
둬서는 안 됐다.
타키온이 바그너의 위치를 찾아 내지 못하게끔 마구잡이로 몰아붙 여야 했다.
다행히 그 의도는 정확하게 먹혔 다.
계속되는 공세로 늘어나는 상처 에 타키온의 얼굴에 노골적인 당혹 이 어렸다.
이윽고 주먹이 타키온의 복부에 꽂힌다.
퍼억-!
“크윽..
볼썽사납게 허공을 노닐던 타키 온의 신형이 얼마 가지 않아 벽면 에 처박힌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닦아내 고 있는 타키온의 표정에 커다란 분노가 어린다.
“감히-!”
타키온은 쥐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을 버렸다.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이런 무뎌진 감각과 나약해진 육 신으로는 서준의 움직임을 좇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대신하여 양손에 푸른 빛 기운의 응집체를 쏘아내고는 용 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몰아쳐라! 찢어져라! 사라져라!”
폭풍이 일어나고, 쏘아지는 바람 들에 몸 곳곳에 작은 자상들이 늘 어나기 시작할 때쯤, 머리 위로 벼 락이 내리친다.
“사로잡아라! 뭉개져라!”
말 그대로, 쉴 새 없이 용언으로 펼쳐내는 마법들이 쏟아진다.
그 위력은 용족이 펼친 것답게 굉장히 강력했다.
괜히 마나의 종주라고 일컬어지 는 게 아니었다.
‘어설픈 검보다 이쪽이 낫군.’
실제로도 검을 쥐고 있을 때보다 접근을 하는 것이 더욱 까다로웠다.
‘폐안……. 얼마나 큰 부상을 입 었던 거냐.’
천적 격인 용살진의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손쉬운 상 대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새삼스레 상처 입지 않은, 최상 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을 용족의 강력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인정할 수밖에 없네.’
용족, 타키온은 강하다.
그러나 용살진의 영향을 받고 있 는 지금, 옥황의 대권능을 통하여 광속의 영역에 닿을 수 있는 서준 을 좇지는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서준은 타키온처럼 가 진 힘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보법이 있어.’
그 보법이 신공절학이라 일컬어 지는 기묘하면서도 빠른 움직임을 가진 팔경성보라면?
타키온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 혀졌다.
쏟아지는 마법의 재해를 피하고 타키온의 지척 거리에 다다른 서준 의 입꼬리가 치솟는다.
“헛수고하지 마, 너도 알잖아? 지금처럼 비슷한 힘이라면 내가 압 도적으로 강해.”
“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밀 어내……
퍼억-!
방어 용언을 내뱉기도 전, 안면 을 강타한 주먹이 타키온의 턱을 반대편으로 돌려버린다.
“설마 너, 힘만 믿고 아무런 노 력도 하지 않은 거야? 바보 같긴.”
퍽, 퍼벅!
이어진 연격(連擊)이 다시금 타 키온의 목을 반대로 돌려놓는다.
“키아악—!”
핏물을 쏟아내며 괴성을 내지르 는 타키온의 주먹이 발악하듯 뻗어 진다.
그러나 그 어떠한 주먹도 서준에 게 닿을 수 없었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서준의 신형을 지나간 주먹이 허공에
휘저어지는 순간.
“이만 끝내자.”
서슬 퍼런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등 뒤쪽.
눈을 휘둥그레 뜬 타키온이 황급 히 몸을 돌렸지만, 서준의 동작이 한발 더 빨랐다.
뜨득 _
커다랗게 펼쳐져 있던 날개를 손 아귀에 움켜잡고 힘을 주어 뜯어버 린 서준의 발끝이 타키온의 육신을 짓누른다.
“끄아악-!”
비명을 내지른 타키온의 신형이 지면에 처박힌다.
희미해져 가는 타키온의 시야 속, 허공에 회색빛, 개벽의 검을 손 에 쥐고 있는 서준의 모습이 비친 다.
‘내가 진다고?’
종의 정점으로서 하등 종, 아랫 것들을 굽어보았던 자신이 쓰러진 것이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타키온은 많은 싸움을 겪 었고, 또 언제나 승리했다.
누군가의 머리를 짓밟고 군림하 고 지배하는 것이 그의 위치였다.
그런데 인간, 하등 종에게 깔린 것이다.
단 한 번의 패배.
그 때문일까?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 현실을 받 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수 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패배를 받
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기지 못할 뿐이다.’
한서준, 인간 놈이 원하던 이상 적인 승리를 부순다.
타키온은 승자가 존재하지 않는, 무승부를 만들어낼 수는 있었다.
‘마나 폭주.’
마나의 근원인 용의 심장을 폭주 시킨다.
물론, 심장은 용족에게도 생명의 근원이었기에 폭주시킨다면 이성을 잃게 될 것이 분명했다.
죽음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허무한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만큼, 행동 은 재빨랐다.
“이곳에서 모두 함께 공멸(共滅) 하는 것이다!”
콰앙-!
굉음과 함께 타키온의 심장에서 폭주하듯이 터져 나온, 푸른빛 기 운들이 일대를 장악한다.
동시에 타키온의 육신이 파르르 떨리고는 두 눈동자에 흰자위가 드 러났다.
놀란 서준이 다급히 타키온을 베 어내려 했지만, 일대의 푸른빛 기 운이 마구잡이로 날뛰며 접근을 불 허했다.
타키온이 마침내, 거대한 용의 형태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카아악-!
대기를 찢어버릴 듯한 굉음 속,
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른다.
용, 드래곤 자체가 거대한 종족 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허나, 지금 완연한 용의 형태가 된 타키온의 크기는 궤를 달리한다.
허공으로 높이 떠올라 있는 검은 형체는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제법 넓다고 생각했던 대륙 전체 를 뒤덮는 압도적인 덩치.
아니, 좌우로 뻗어진 날개만으로 도 대륙을 휘감아낼 수 있을 정도 다.
용의 모습인 폐안도 거대하긴 하 였지만 지금 타키온은 궤를 달리했
“정말 폐안이랑은 다르긴 하네.”
말 그대로 압도적일 정도로 거대 해진 육체가 보여주는 힘 또한 대 단했다.
딛고 있는 손을 내뻗을 때마다 지축이 뒤흔들렸고, 날갯짓 한 번 에 태풍이 휘몰아친다.
하늘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뿔에서는 계속해서 전류가 쏟아지고 벼 락이 내려친다.
폭주하듯이 날뛰는 마나들은 타키 온의 입안으로 응집되고 쏘아지며, 용의 숨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성이 없다는 거 정도인가.’
모든 공격이 특정 대상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마구잡이식의 공격.
미쳐 날뛰고 있을 뿐인 만큼, 일 정 거리만 벌리고 있다면 쏟아지는 공격들을 피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타키온이 쏟아내 는 힘에 차원, 파탈라 전체가 부서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타키온이 노린 것이 바로 이런 공멸이었다.
“조금 곤란한데.”
혼자 도망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 홀로 도망을 칠 수 는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충복이 된 나라연 천, 전심전력으로 도와야 하는 계 약관계로 얽혀있는 바그너와 옥황 의 측근인 여동빈까지.
그리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인 서연이도 있었다.
지금 파탈라 차원에는 서준이 지 켜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타키온을 쓰러뜨리는 게 최고의 결과인데.”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용살진으로 인해 재생 능력이 현 저히 떨어졌을뿐더러, 지금 타키온 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고 있었다.
방어 능력이 떨어지다 못해, 고 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단 말이다.
날뛰는 타키온, 용의 심장에 최 대 출력의 개벽의 검을 찔러 넣는 다면 일격에 절멸(絶滅)시킬 자신 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날뛰는 타키온의
공격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쉬운 일이었다면 서준이 이렇게 망설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너무 위험해.’
저 거대한 용족, 타키온을 일격 에 절멸시킬 수 있는 최대 출력의 개벽의 검을 다뤄내기 위해서는 제 아무리 서준이라 할지라도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다.
쏟아지는 타키온의 공격들로부터 방어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었다.
‘개벽의 검을 사용하는 동안 내
몸을 지킬 방법이 필요한데.’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져 가는 와중에 도 타키온의 폭주는 계속 이어진다.
카악-!
한 줌의 이성조차 남아 있지 않 은지, 타키온은 본인의 드래곤 레 어마저도 파괴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타키온의 공격으로 인 해 산 내부의 용암이 치솟아 오른 다.
꼭대기에서 터져 나오는 용암에 삽시간에 타키온의 레어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고
녹아내렸다.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던 서준의 눈에 이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이건......!”
잊을 수 없는 기운이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서준 의 눈동자에 화려한 검은 로브의 모습이 들어온다.
마치 황제들이나 걸칠 법한 모습, 자수로 새겨진 황금빛용의 형상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할 수준이다.
흡사, 장인이 만든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물건이다.
그리고 서준은 이 물건, 로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금룡흑포.”
서준이 손을 뻗어, 로브의 이름 을 읊조리는 순간이었다.
휘리릭-!
로브가 마치 생명이라도 가진 것 처럼 서준의 몸에 부드럽게 휘감겨 오더니, 전신을 가볍게 덮었다.
[금룡흑포 (金龍黑術)] 등급 : 고유(固有). 분류 : 반영구 아이템
오래전, 만물을 무릎 꿇게 하고 세상을 마(魔)로 물들였다는 존재 가 수집한 최고의 재료들을 가지고 우주 최고의 장인에게 요청하여 만 든 옷으로, 우주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단단합니다.
특수 효과.
1. 자재(自在) :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형태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2. 심고(深庫) : 아공간에 아이템 을 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3. 용린(龍廳) : 사용자의 체내의 마나, 내공을 이용하여 자동으로
적의 공격을 방어합니다. (마나가 고갈되기 전까지 자동 지속됩니다.)
옥황과의 대화를 통해, 폐안이 파 탈라 차원에 있는 용족에게 보구를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파탈라 차원에 있는 용족 은 한 마리, 타키온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알드노아와의 대화 를 통해 타키온이 천마의 보구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었다.
그런데 어찌나 꼭꼭 숨겨뒀는지 서준의 날카로운 감각으로도 위치 를 도저히 찾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쳐버린 타키온이 날뛰 어 스스로 제 레어를 파괴해준 덕 분에 보구를 숨겨 놓은 창고의 위 치가 드러난 것이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금룡흑 포가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금룡흑포라면……
포스 시스템이 인정해주듯이 금 룡흑포는 기본적으로 매우 단단한 옷이다.
더불어 사용자의 내공을 사용해 자동 방어 술식을 펼쳐주기까지 했 다.
그리고 지금 서준의 내공으로 펼 쳐지는 방어라면, 어지간한 의념강 기를 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수준이었다.
심장에 개벽의 검을 찔러 넣는 동안 타키온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켜낼 수단이 생겼다는 말과도 같 았고 난제를 돌파할 수 있는 수단 을 얻었다는 말이었다.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