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권 17화
242화
“……여동빈.”
서준의 부름에 도복의 사내, 여 동빈이 피식 미소를 흘린다.
“다행히도 아직 늦지는 않은 것 같군요.”
“그래, 아슬아슬했지만 늦지는 않았어.”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군.”
여동빈과의 해후를 끝마칠 때였 다.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 을 파고든다.
“오빠!”
눈을 휘둥그레 뜬 서준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오만한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 거늘, 감히 짐을 상대로 한눈을 팔 다니.”
타키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준 의 틈을 파고든다.
그러나 타키온의 칼날은 서준의 몸에 닿지 못했다.
애초에서준이 아무런 생각 없이
한눈을 판 것이 아니다.
“자네야말로 이 여동빈을 앞에 두고 한눈을 파는 것인가?”
후웅-
여동빈이 움직이는 순간, 타키온 이 내뻗은 검이 원치 않았던 경로 로 꺾이고는 허공을 베어냈다.
“..?!”
타키온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여동빈은 팔선 중 최강.
물론, 여동빈이 광속의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검의 신선’이라고 불리는 자.
지금 타키온처럼 단순하고 조잡 한 검격이라면 아무리 빠르고, 눈 으로 좇을 수 없다 할지라도 훤히 꿰뚫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검로는 또 오랜 만이군. 읽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나?”
“네놈도 짐을 모욕하는 것이냐?”
“하하, 설마. 그런 의도는 아니었 다만, 혹여, 자네가 자격지심을 가 지고 있는 게 아닌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타키온의
시선이 여동빈에게로 고정되고는 검격이 연달아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동빈이 벌어준 시간, 서준은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서연을 향해 외친다.
“지금 당장 돌아가!”
“말 안 해도 그럴 거니까 걱정 마!”
애초에 끼어들 수준의 싸움이 아 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 온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이거나 받아! 옥황 할아버지가 유용할 거래!”
서연의 손에서 한 장의 백색의 두루마리가 날아온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두루마 리를 받아 든 서준의 눈이 휘둥그 레진다.
‘ 이건?’
처음 보는 모습의 두루마리였지 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은 너무나 도 익숙했다.
‘옥황의 대권능……
일전에 한 번 다뤄 본 적이 있는 만큼, 두루마리 안에 담겨 있을 힘 이 무엇인지 쉽게 유추됐다.
이 힘이 있다면, 타키온과의 격 차를 어느 정도 메꿔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눈에 이채가 어려 있는 서준의 모습에, 서연의 입가에 피식- 미소 가 흐른다.
“이 정도면 찾아올 만했지?”
“그래, 고맙다. 수고했어.”
“믿고 있을게.”
서준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없 다.
하나, 서준 입가에 피어나는 미 소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띠링-!
[대권능, 태상개천옥황대천존현궁 고상제 (太上開天玉皇大天尊玄 W 高 上帝)의 가호가 내려집니다.]
[모든 스테이터스(힘, 민, 체, 내) 가 10,000씩 상승합니다.]
[우주의 법칙이 새로이 정립되며 사용자 ‘한서준’이 시간을 조율할 수 있게 됩니다.]
용솟음치는 힘, 의식의 흐름대로 조율되는 시간.
지금이라면 타키온의 광속에 닿 을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들 무렵, 여동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다.
“준비가 다 끝났으면 합류하시는 게 어떤가?”
고개를 돌리자 타키온의 맹공으로 인해 몸 곳곳에 검상(劍傷)이 난자된 여동빈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당연한 결과다.
검로를 읽어낼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워낙 속도가 빨랐기에 읽어내고 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달라질 것이 다.
“시간을 벌어줘 고맙다.”
“개미 하나 늘어난다고 결과가 바뀔 것 같더냐?”
구태여 친절하게 대답해 줄 필요 가 없었다.
어차피 직접 느끼게 될 것이다.
여유로운 미소를 그리고 있는 타 키온을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서준의 한 손에 회색빛, 개벽의 검 이 한 자루 생성되었다.
그 모습을 코웃음 치며 바라보는 타키온의 가슴에 개벽의 검이 틀어 박힌다.
푸슉-
“어, 어떻게?!”
분명, 놈의 속도는 광속에 닿지 못했다.
그러나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시간을 접어 달린 느낌이었다.
“놀라고 있을 여유가 있나 보네?”
곧 서준의 개벽의 검이 타키온의 단단한 비늘을 갈라내 가슴팍에 일 자의 상흔을 만들었다.
키기기긱…….
마치 철판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 와 함께 처참한 비명이 사방에 울 려 퍼진다.
“끄아아악-!”
비명으로 가득 찬 외침.
그러나 용족은 이러한 외침조차 도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드래곤 피어’가 된다.
쿠구구궁…….
지면이 흔들리며 마력의 소용돌 이가 거칠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귀를 급하게 틀어막은 서준이 뒤 로 물러났다.
그 짧은 순간, 양 갈래로 찢어진 것만 같던 타키온의 육신은 단숨에 재생되어 본래의 형태를 취해 간다.
“감히 짐의 옥체에 상처를 입히 다니!”
소리친 후, 마구잡이로 휘두른 검은 그야말로 광속으로 서준을 향 해 쏘아졌다.
휙, 휙!
하나, 이번에는 서준의 몸에 닿 는 검격은 존재치 않는다.
종이 한 장 차이와 같은 아슬아 슬한 거리였지만 서준은 명확하게 타키온의 검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두 번은 힘드니까, 기회를 놓치 지 마.”
서준의 말에, 숨어서 눈치를 보 고 있던 여동빈이 끼어든다.
“음양귀일 (陰陽歸一).”
바닥에 새겨진 태극문양의 검흔, 여동빈이 그 중심에 검을 내려찍자 일대에 자욱한 운무(雲W)가 퍼져 나간다.
그 안개 무더기 속에 몸을 숨긴 여동빈이 타키온의 주변을 맴돌며 검격을 내질렀다.
챙-! 챙-!
연달아 마찰음이 들리더니 견고 했던 타키온의 비늘이 일그러지고 파괴되기 시작했다.
서준은 여동빈이 만들어 낸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재빠르게 시간을 가속해 타키온 의 앞에 당도했고 활짝 열린 등 뒤 에 피어난 날개를 모두 찢어발겼다.
그러나 무의미한 공격에 그치고 말았다.
“이따위 얕은 공격으로 짐을 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용족의 뛰어난 재생 능력, 속도 는 말도 안 될 정도였다.
아광속의 영역, 시간을 가속한 채 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 괴보다 재생이 더 빨랐으니 말이다.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켜 바람을 일으킨 타키온이 운무와 함께 등 뒤에서 공격을 가해 오던 서준을 밀쳐낸다.
복부 일부가 찢어지고 내장이 꿰 뚫리는 것을 느낀 서준의 눈이 부 릅뜨였다.
휙-
충격으로 인해 허공을 몇 번이고 회전한 이후 지상에 떨어진 서준이 피를 토한다.
직후, 타키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이것이 바로 용족이 가진 우월 함이니라! 용족은 그 어떤 종과도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이다!”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몸을 비틀어내는 것 으로 충격을 흘려냄과 동시에 시간 을 조율하여 내력을 몇 겹이나 둘
러 막아서지 않았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서준뿐만이 아니라 진법을 펼쳤 던 여동빈의 상황도 그리 좋지 못 했다.
“ 으음......
압도적인 힘 탓에 진법이 강제로 파훼된 충격의 여파로, 안색이 창 백했고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닦아 내고 있었다.
서준은 속으로 경악 섞인 감탄을 흘린다.
‘진짜 무식한 육체네.’
이게 상처 입지 않은, 최고의 컨
디션의 용족의 힘.
폐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 다.
“너희 같은 하등종의 힘으로는 상처를 입힐 수 없는 강대한 육신 을 가지고 있단 말이다.”
이번 타키온의 외침도 부정할 수 없었다.
최상의 컨디션의 용족, 저 말도 안 되는 육신에 상처를 입히기는 힘들었다.
“결국에 네놈들은 지쳐 쓰러지게 될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번 말은 동의해 줄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서준은 타키온과 무 식한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번 것 같은데……
“시간?”
여유로운 서준의 모습에 타키온 의 고개가 갸웃거리던 순간이었다.
지잉-
요란한 가동음과 함께, 대륙 전 체에 붉은빛 오로라가 펼쳐지기 시 작한다.
동시에 타키온의 두 눈동자가 휘
둥그레진다.
“이, 이건……!”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었다.
하나, 용족인 이상 모를 수가 없 었다.
“어서 와, 용살진(龍殺陳)은 처음 이지?”
마침내, 바그너와 열 명의 슬레 이어가 용살진을 펼쳐낸 것이었다.
시구르드, 그는 용기와 힘만 갖 춘 영웅도, 정정당당한 싸움만을 고집하는 영웅도 아니었다.
실제로도 북유럽 신화에서 시구 르드라는 이름을 드높이게 된 계기 인 마룡, 파프니르 사냥은 전면 승 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물을 마시러 가는 길목을 확인한 뒤에 땅굴을 판 채로 숨어 있다가 파프니르의 심장을 꿰뚫어내는 기 습 전법이라는 형태였던 것이다.
처음 신화를 읽었을 당시, 어렸
던 서준의 기억에는 비겁한 영웅이 라는 이미지로 박혀 있지만, 이제 와 보니 실로 훌륭한 전략가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용 족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동시에 의문도 피어난다.
종의 정점이라 불리는 용족의 감 각과 육체 능력을 지닌 용족에게 기습 공격을 가할 수 있단 말인가?
해답은 그가 쥐고 있던 그람에 있었다.
그람은 단순히 날카로운 검이 아
용의 힘과 능력을 탐내던 레긴이 용족을 상대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 낸 연구의 집합체였다.
레긴의 집념과 연구 덕분일까?
그람의 효과는 실로 훌륭했다.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던 용족의 육체 능력을 저하시켰을 뿐만 아니 라, 감각들을 교란, 마비시키는 데 까지 성공한 것이다.
실제로도 그람의 능력 덕분에 땅 굴을 파고 있던 숨어 있던 시구르 드가 파프니르의 심장을 무사히 찌 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람에 걸려있던 마술들이 지금 시구르드의 후손인 바그너를 통하여 진법, 결계로 발현되고 있었다.
[지크프리트의 용살진이 펼쳐집 니다.]
[일대 용족의 모든 능력치가
50% 감소합니다]
모든 능력치의 감소로 인해 흐릿 해져 가는 감각에 타키온의 눈동자 에 초조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바그너! 바그너! 놈을 어디에 숨긴 것이냐!”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른 타 키온이 마나를 퍼뜨려 가며 결계의 중심, 바그너의 위치를 찾아내려 한다.
물론, 서준이 그를 지켜만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어딜 가려고.”
서준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삽 시간에 타키온의 앞길을 막아선다.
“비켜라! 비키란 말이다!”
유일한 장점이었던 육체의 능력
또한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잡했던 검술에 다급한 마음이 더해졌다.
조잡하다 못해 허접한 공격이 지 금의 서준에게 닿을 수 있올 리 만 무했다.
후웅, 후웅-
애꿎은 허공만을 가르는 검격의 틈, 서준이 그 사이를 파고들어 개 벽의 검을 찔러 넣는다.
“큭, 크아아악!”
전과 같은 절규가 일어나며 일대 에 드래곤 피어가 퍼져 나감에 따 라, 계속 공격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쉬워할 것은 없었다.
타키온의 상태가 전과는 명백히 달랐다.
어떠한 공격도 단숨에 재생을 해 내던 타키온의 육체에서 붉은 피가 폭포처럼 홀러내리고 있었다.
너무나 견고하여 파훼할 수 없을 것 같던 용족 특유의 재생 능력이 힘을 잃은 것이다.
두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한 서준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흐른 다.
“너도 느끼고 있지? 이 싸움의
승자가 정해졌다는 걸 말이야.”
부정할 수 없는 서준의 말에 타 키온의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